저기가 거제인데
내가 생활 속 남기는 글들 가운데 올해 이월은 예전에 없던 낯선 지명이 등장했다. ‘거제’와 ‘고현’과 ’연초‘다. 이 세 곳은 모두 나의 생활권이 다소 거리감이 있는 거제에 속한 지명이다. 거제는 우리나라 섬 가운데 제주도 다음 큰 섬으로 경남의 한 자치단체로 큰 조선소가 두 곳이 있다. 고현은 거제의 중심이고 고현과 옥포 사이 면 소재지인 연초에 올봄 내가 근무할 학교가 있다.
이월이 가는 마지막 날 마산합포구청 맞은편 마산의료원 앞으로 나갔다. 삼월 신학기가 되면 나는 주중엔 거제 근무지에 머물고 주말이 되어야 창원으로 복귀하게 된다. 내가 근무지가 되는 거제를 빤히 바라다 볼 수 있는 마산 구산 갯가를 찾아가는 걸음이다. 마산역 광장을 출발해 어시장을 둘러오는 62번 버스를 기다렸더니 배차 간격이 뜸해 마산의료원으로 들어 시간을 보냈다.
61번은 ‘콰이강 다리’로 가는 저도행 버스고, 62번은 낚시터로 알려진 원전행 버스다. 나는 원전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밤밭고개 너머 현동 택지지구를 지났다. 구산 면소재지인 수정을 지나 안녕마을 해안을 따라 옥계를 둘러 반동삼거리였다. 구산 일대는 로봇랜드로 지정되어 산업단지와 배후 도로 건설이 한창이었다. 내가 가을이나 겨울이면 갯가 산책을 가끔 나서는 해안가다.
반동삼거리에서 난포에 이르니 차창 밖 바다는 양식장 부표가 점점이 줄을 지어 있었다. 수정만에서 심리 해안 일대는 홍합 양식장으로 유명하다. 심리를 지나니 장수암 앞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장수암은 내가 벌바위 둘레길을 걸었을 때도 지났다만 잊을 수 없는 49재를 보냈다. 수 년 전 여름 대학동기가 폐암을 앓던 아내를 황급히 보내면서 그 암자에서 별리 의식을 가졌다.
원전 종점에 내린 승객은 현지인은 없고 외지인 다섯이었다. 그 중 내 말고는 넷은 낚시 장비를 갖고 내렸다. 넷 가운데 한 한 사람은 여성이었다. 주말이 아닌 평일에 낚시를 나선 여유가 부러웠다. 물론 대중교통이 아닌 자가용 승용차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으리라 짐작된다. 원전 종점 해안은 공원 이상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먼저 낚시부두로 나가 뒷산을 올려다 봤다.
원전마을 뒷산은 벌바위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별’이 아닌 ‘벌’이다. 해안가 야트막한 산자락을 오르면 암반지대가 나타나는데, 마치 한 마리 벌이 붙어 있는 형상이다. 지명은 대체로 천지개벽 당시 남은 산봉우리가 어찌 생겼느냐 따라 이름이 붙게 된다. 야트막한 원전마을 뒷산은 둘레길이 나도 워낙 외진 곳이라 산행객이 잘 찾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몇 차례 걸은 바 있다.
이번 원전마을 걸음은 둘레길 산행이 목적이 아니었다. 물론 낮은 산봉우리지만 정에 오르면 다도해가 훤히 드러난다만 굳이 그럴 일도 없었다. 내일이 삼월인데 신학기면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바다 건너 저편이다. 으레 삼일절을 보낸 그 이튿날 신학기가 시작인데 올해는 삼일절이 금요일이라 주말을 건너 뛰어 시간 여유가 생겼다. 그리하여 나는 구산 갯가 원전마을을 찾았다.
포구엔 물때가 아니어선지 낚시꾼을 만나지 못한 여러 척 낚싯배들이 묶여 있었다. 나는 등대가 세워진 방파제 끝까지 나가 보았다. 바로 앞에는 실리도가 그림 같았다. 어민들이 몇 가구 사는 작은 섬이다. 더 멀리는 거제에 딸린 칠천도와 황덕도였다. 그 곁 어디쯤 고현으로 거대한 크레인과 도크가 있는 조선소가 있다. 그 고현에서 멀지 않는 곳이 내가 근무할 학교가 있지 싶다.
구산 원전 갯가 다도해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옅은 해무와 함께 미세먼지까지 끼어 시야가 흐려 거제 일대가 선명하지 않았다. 내일모레부터 주중이면 내가 그곳 학교에 근무하면서 원룸에서 보내야 한다. 앞날 앞길을 예측하지 않음도 아니지만 나에게는 연고가 전혀 없는 곳이라 낯이 설기는 어쩔 수 없다. 벌바위 둘레길은 오르지 않고 해안선을 따라 걸으면서 섬으로 눈길이 갔다. 19.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