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전 스님의 본생담으로 읽는 불교
36. 비두라 현자의 본생(‘본생경’ 545번) ③ 야차와 용왕에게 설법하다
힘 있고 거친 자들 조복시킨 힘은 탐진치 없는 마음
야차에게 ‘현자의 심장’ 참뜻 설명하고 선한 이의 성품 가르쳐
용궁에 다시 태어나고 싶은 용왕에겐 허물없는 행동·말 강조
선한 인연 씨앗도 심은 현자, 죽음 극복하고 최상의 지혜 얻어
인도 아잔타 2번 석굴의 비두라 본생담 벽화 가운데 용왕에게 설법하는 비두라 현자의 모습.
마지막 인사를 마친 비두라 현자에게 푼나카는 “두려워 말고 너는 이 준마의 꼬리를 꼭 잡아라” 하였다. 이에 현자는 사자후를 하였다. ‘몸과 말과 뜻의 삼업에 의해/우리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그런데 그런 죄업 내게 없거니/내가 다시 누구를 두려워하리!’
그는 말 꼬리를 두 손으로 붙잡고, 두 발로 말 다리를 감고 “마음대로 달려라” 하였다. 말은 현자를 달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어느새 높이 60유순(900km)이나 되는 카라 산에 당도하였다.
푼나카는 산꼭대기에 현자를 세워두고, “이 자를 죽여 심장을 도려내어 왕비에게 주고 이란다티를 얻어 신의 세계로 가리라” 하였다.
푼나카는 무서운 나찰, 사자, 취한 코끼리, 큰 뱀으로 변하여 위협하였다. 맹렬한 바람을 일으켜 현자를 산에서 떨어뜨렸다. 하늘과 땅을 하나로 한 듯 크고 무서운 소리를 내었다. 또 산골짜기로 내려가 산 속을 통해 위로 올라가 머리를 밑으로 하여 현자를 공중에 매달았다. 지옥의 벼랑에 거꾸로 매달린 채 현자는 게송을 읊었다. ‘고귀해 보이나 비천하고/자제가 있는 듯하나 무절제하여/가련하고 참혹한 업을 그대 짓는구나/네 성품에는 선(善)이란 없나니’
현자는 “나의 죽음이 네게 무슨 이익이 있느냐?” 묻자, 푼나카는 용왕의 딸 이란다티를 사모해서라고 한다. 현자는 “이 세계는 오해로 인해 파멸한다”고 탄식하고 그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현자는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로써 이 일이 용왕비가 현자의 심장을 원한 것에 대한 오해 때문임을 알고 선한 이의 성품에 대한 게송을 외웠다. ‘이미 길을 가로질러간 자(=피안에 이른 자)를/초대하여 자리를 마련하고/그를 따르라//단 하룻밤이라도 누군가의 집에 묵고/거기서 음식을 얻어먹었으면/그 사람에 대해 악을 도모하지 말라/벗을 속이는 자는 젖은 손바닥도 불에 타리니//어떤 나무의 그늘에 앉거나 눕거든/그 나무 가지를 꺾지 말라/벗을 배신하는 자는 악인이리//재보에 가득 찬 이 땅까지도/좋아하는 여자에게 남자는 주리라/그러나 기회 있으면 그녀는 그를 경멸하리니/좋지 못한 여자의 손에 떨어지지 말라’
푼나카는 사흘간 현자의 집에서 받은 좋은 대우를 상기하고, 선한 이의 성품을 실천하고픈 마음이 생겼다. 그러자 젊은 용녀에 대한 애착이 떨어져 버렸다. 그는 현자를 풀어주고 집으로 돌아가라 하였다.
현자는 “용왕을 온순하게 만드는 것도 내 임무이다” 하면서, 자신을 견줄 데 없는 영광스러움이 있는 용의 세계로 데려가라 하였다. 푼나카는 용궁에 도착하여 용왕이 바라던 그 사람을 데려 왔노라 하였다. 용왕은 현자를 보고 게송을 외웠다. ‘아직 본 적 없는 나를 보고/이 사람은 죽음의 두려움에 떨고 있다./두려워하는 그는 (용왕인 나를) 경배하지 않나니/아무래도 지혜 있는 사람 같지 않구나’
현자는 게송으로 응수했다. ‘용왕이여, 나는 불안하지 않고/죽음의 두려움에 눌리지도 않는다./죽임을 당하는 자는 죽이는 자를 경배하지 않고/죽이는 자는 죽임을 당하는 자에게 경배하지 않으리//어떻게 그가 경배 할 수 있으며/또 어떻게 경배하게 할 수 있을까?/자신을 죽이려고 하는데!/그런 일이란 있을 수 없네’
용왕은 실로 그렇다고 현자를 칭찬하였다. 현자는 용왕에게 이 용궁을 어떻게 얻었는지 물었다. 용왕은 인간세상에서 자신과 아내가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공양하고 보시하고 깊이 존경한 선행과 법행의 과보로 이 번영과 장엄, 체력과 의지, 출생과 용궁을 얻었다고 했다.
현자가 부지런히 법을 행하여 이 용궁에 다시 살 수 있도록 하라고 하자, 용왕은 여기에는 사문과 바라문이 없다면서 용궁에 재생하는 방법을 물었다. 현자는 그 구체적인 방법을 말해주었다. ‘여기에 사는 많은 용이 있나니/네 아들이나 딸이나 시종들이나/저들에게 너는 행동이나 말로써/언제나 조그만 허물도 없게 하라//이렇게 너는 행동이나 말로써/허물로부터 네 몸을 보호하라/생명 있을 때까지 이 용궁에 머문 뒤/여기서 너는 저 천상으로 가리라’
용왕은 기뻐하여 푼나카가 현자를 법답게 얻었는지 물었다. 현자는 도박에 패배한 왕이 자신을 푼나카에게 주었기 때문에 폭력을 쓰지 않고 법답게 자기를 얻었다고 하였다. 용왕은 더욱 크게 즐거워하여 현자의 손을 잡고 왕비의 방에 들어갔다. 왕비는 현자를 보고 용왕과 같은 질문을 하였고, 현자도 같은 대답을 하였다. 용왕 부부는 기쁨에 가득 찼다. 현자는 용왕 부부에게 자신의 심장을 필요한 곳에 쓰라고 하였다. 현자의 설법이 준 기쁨에 마음이 밝아진 용왕은 “지혜야말로 현자들의 심장이다” 하였다. 용왕은 이란다티를 푼나카에게 주었다.
푼나카는 현자가 자신과 이란다티를 이어주었다고 생각해서 그 감사의 표시로 쿠루 왕과의 내기에 걸었던 전륜성왕의 마니주를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와 이란다티를 자신의 앞뒤로 태우고 사람의 마음이 가는 것보다 더 빨리 신마를 타고 인다팟타시로 달려갔다.
그날 새벽 쿠루 왕은 꿈을 꾸었다. 왕궁 입구에 다섯 맛의 열매 있고, 지혜의 줄기와 계율의 가지들로 이루어진, 코끼리와 말이 숨을 만한 큰 나무에게 대중들이 존경하여 합장하고 절하는데, 붉은 옷을 입은 사내가 와서 그 나무를 밑동까지 베어 가더니 본래대로 세워두고 가는 것이었다. 왕은 현자가 돌아옴을 알고 시내를 장식하고, 법당을 정리하고, 법좌를 차렸다. 푼나카는 현자를 법당 앞에 내려놓고, 이란다티를 데리고 신의 도성으로 돌아갔다. 그를 보고 기뻐한 왕은 죄수를 방면하고 한 달 동안 큰 축제를 베풀었다. 현자는 그동안의 경위를 말하고, 푼나카가 자신에게 준 마니주를 왕에게 선물하였다. 그 후 목숨을 마치고 천상세계로 갔다. 왕과 백성들도 복덕을 쌓고 함께 천상세계를 채웠다.
현자의 부모는 지금 대왕 일가요, 현자의 부인은 야쇼다라, 큰 아들은 라훌라, 용왕 바루나는 사리불, 금시조왕은 목건련, 제석천은 아나율, 다난쟈야 왕은 아난, 비두라 현자는 부처님이었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현자가 힘은 있지만 거칠고 무지한 자들(야차와 용왕)의 마음을 항복시키는 것이다. 이들을 항복시키는 바탕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음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음은 신구의(身口意) 죄업이 없기 때문이다. 신구의 죄업이 없는 것은 탐진치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에도 욕심 없고, 어떤 경우에도 성내지 않고, 모든 일에 어리석지 않으니 죽음을 넘어서고 상황을 극복하는 최상의 지혜를 얻은 것이다.
또 하나의 바탕은 현자가 3일간 야차를 극진히 대접한 것, 용왕을 만나자마자 죽는 자의 게송으로써 그를 감복시킨 것 등 사전에 선인(善因)을 심었다. 그리하여 현자는 야차에게는 은혜를 배신하지 말라 하고, 용왕에게는 행동과 말에 허물없게 하라 가르친 것이다.
[1688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