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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송 :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요한계시록 16:8-9> 8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8절 말씀을 다시 보면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일곱 대접 재앙 중에 네 번째 재앙은 태양이 사람들을 태우는 재앙임을 말합니다. 이 지구는 사실 태양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지요. 지구라는 이 땅덩어리가 존재할 수 있었고, 또 여기에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은 전적으로 태양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대 시대 사람들 중에는 태양이 생명의 근원인 우리의 신이라고 여기면서 태양신을 섬기기도 했던 거죠. 지금 이 시대에 아무리 최첨단과학이 날고 긴다 해도 태양이 없으면 이 지구는 죽음의 땅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지금까지 이 지구를 살게 했던 태양이 최후의 심판에서는 이 지구의 사람들을 죽이는 심판의 도구가 되버립니다. 그토록 소중한 태양이지만 태양이 영원토록 우리에게 혜택만 주지는 않는다는 거죠. 그런데 태양 뿐이겠습니까? 우리가 그토록 매달리고 집착하는 돈이라는 것도 지금 우리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것이 분명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 돈마저도 심판의 도구가 될 겁니다. 그 외에 나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에는 나에게 심판의 도구가 되는 거죠. 몇 차례 말씀드린 적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병원에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이러니칼 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지요. 우리를 살게 해 준다는 병원이 결국은 우리의 죽음의 장소가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우리가 최종적으로 의지해야 할 절대자는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이 사실을 깊이, 그리고 제대로 깨닫는 게 우리의 삶을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함의 삶이 되게 하지요. 예수께서도 요한복음 8:32절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진리는 곧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에게 영원하고 완전한 자유를 주는 것은 많은 재물이 아니고, 내 꿈과 야망을 성취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따르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 진리의 삶이 우리를 자유케 하는 거죠. 이 사실을 얼마나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깨닫게 되느냐가 우리의 삶을 믿음으로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겁니다.
9절 말씀을 보지요.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그렇게 크게 태워지는 재앙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비방하고 회개하지 않고 영광을 돌리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사탄과 악의 세력에게 많이 기울어진 자들의 당연한 모습이지요.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아벨을 돌로 쳐 죽였을 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찾아가셔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그 때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이런 식으로 뻔뻔하게 하나님께 따졌지요.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을 걸으셨다는 자체가 이미 다 알고 오신 건대 그 앞에서 자복하고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따지고 있는 게 이미 악으로 많이 기울어져서 양심이 무뎌지거나 화인 맞아 버린 자들의 모습인 겁니다.
출애굽 당시 애굽 왕 바로도 아홉가지 재앙이 겪으면서까지 백성들을 내보내지 않았지요. 어떨 때는 내 보낼테니 제발 이 재앙 좀 물러가게 해달라고 요구하다가 재앙이 물러나면 다시 내보내지 않겠다고 말을 바꾼 적도 여러 차례 있었지요. 그러다가 마지막 재앙인 맏아들과 초태생들이 죽어나가는 열 번째 재앙 앞에서 굴복하고 백성들을 내 보냈습니다. 그리고 끝났나요? 바로는 또 이스라엘 백성들을 뒤쫓아가서 다 죽이려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차례 하나님의 심판의 재앙을 당해도 전혀 돌아서지 않는 겁니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땠나요? 애굽에 내린 재앙과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넌 것과 광야에서 먹을 것을 주시고 물을 주시고 광야의 그 메마르고 열악한 모든 상황 속에서 기적적인 손길로 이끄신 하나님을 그토록 많이 경험했는데도 애굽에서 노예생활했던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불평과 원망과 투정을 부리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다툼과 분열의 모습을 버리지 못합니다. 결국 출애굽 1세대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광야에서 다 죽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지요.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 무릎 꿇고 믿고 따르는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은 정말 크고 귀한 주님의 은총이고 은혜인 것이 분명합니다만 우리도 사실 얼마나 많은 예배와 기도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대하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가 듣고 읽고 알게 된만큼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고 진실하게 따르고 있나요? 우리의 믿음의 현실을 돌아보면서 주님을 향한 믿음의 의지를 더 견고히 하고, 주님을 향한 믿음의 방향을 결코 놓치지 않기를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우리가 최종적으로 의지해야 할 절대자는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이 사실을 깊이, 그리고 제대로 깨닫는 게 우리의 삶을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함의 삶이 되게 하지요. 진리는 곧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에게 영원하고 완전한 자유를 주는 것은 많은 재물이 아니고, 내 꿈과 야망을 성취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따르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 진리의 삶이 우리를 자유케 하는 거죠. 이 사실을 얼마나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깨닫게 되느냐가 우리의 삶을 믿음으로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겁니다. 우리가 듣고 읽고 알게 된만큼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고 진실하게 따르고 있나요? 우리의 믿음의 현실을 돌아보면서 주님을 향한 믿음의 의지를 더 견고히 하고, 주님을 향한 믿음의 방향을 결코 놓치지 않기를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