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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방[6320]古方4자성어91~100
서예명제(91)해납백천(海納百川)
(海: 바다 해. 納: 바칠 납. 百: 일백 백. 川: 내 천)
바다는 모든 하천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바다가 넓은 것은 모든 하천을 구분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海納百川은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의 잘못을 탓하지 않고 받아들이다보면
언젠가는 바다가 된다는 말이다.
[출전]《通鑑節要(통감절요)》
[내용] 秦(진)나라에 客卿(객경)으로 있던 이사(李斯)가 종실 대신이
진왕(후에 진시황)에게 다른나라에서 들어와 벼슬하는 사람을 쫓아내자고
간하여 버림을 받게 되자, 진왕에게 글을 올려 말하는 가운데 나오는
이야기다.
“.... 신이 듣건대 태산은 흙덩이를 사양하지 않는 까닭에 능히 그 큼을
이루고, 河海(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 까닭에 능히 그 깊음에
나아가며(聞太山이 不讓土壤故로 能成其大하고 河海不擇細流故로),
왕 노릇 하는 사람은 무리를 물리치지 않는 까닭에 능히 그 덕을
밝힌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오제삼왕이 대적할 사람이 없었던 까닭입니다.
이제 이에 백성을 버려서 적국을 돕고, 빈객을 물리쳐서 제후를 섬기게
하시니, 이른바 도적에게 무기를 빌려주고, 도둑에게 양식을 보내
준다는 것입니다.” 하였다.
왕은 이사를 불러 그 관직을 회복시키고, 빈객을 쫓으라는 명령을 거
두었으며, 마침내 이사의 계책을 써서 천하를 겸병하였다.
臣은 聞太山이 不讓土壤故로 能成其大하고 河海不擇細流故로
能就其深하고 王者不却衆庶故로 能明其德이라하니
此는 五帝三王之所以無敵也라 今에 乃棄黔首하여
以資敵國하고 却賓客하여 以業諸侯하니
所謂藉寇兵而齎盜糧者也니이다 王이 乃召李斯하여
復其官하고 除逐客之令하고 卒用李斯之謀하여 兼天下하다
고방서예명제(92)機不可失(기불가실)
[요약] (機: 틀 기. 不: 아닐 불. 可: 옳을 가. 失: 잃을 실)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
[유사] 물실호기(勿失好機;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
機不可失, 時不再來(기불가실, 시불재래; 시기를 놓치지 말아라, 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출전]《구당서(舊唐書) 권67 이정전(李靖傳)》
[내용] 이정(李靖)은 당나라 초기의 장군으로서, 당나라의 개국 공신이기도 하다. 당나라 고조(高祖) 이연(李淵)이 제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던 때, 이정은 황제에게 장강 중부지역을 차지하고 황제라 칭하고 있던 소선(蕭銑)을 평정해야한다고 건의하였다. 이에 이연은 이정의 건의를 받아들여, 조카 이효모(李孝慕)를 통수(統帥)로 삼고 이정을 부통수로 삼아 정벌에 나서도록 하였다.
서기 621년 8월, 이효모와 이정은 군대를 이끌고 기주(夔州; 지금의 사천성 봉절현)에 도착하였다. 소선은, 때가 가을철 만조시기이라 강물이 불어나 삼협(三峽)의 물길이 매우 위험하였기 때문에 당나라 군대가 감히 공격해 오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소선은 이에 대하여 아무런 방책을 강구하지 않았다.
당나라 장수들 가운데에도, 만조시기의 물길이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았다. 그들은 모두 만조가 지난 다음에 소선의 본거지인 강릉(江陵)을 공격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정은 군사 작적은 신속함을 생명으로 한다는 생각으로, 만조만을 믿고 경계를 느슨하게 하고 있는 소선의 허점을 찔러, 이때가 가장 좋은 기회로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兵貴神速, 機不可失).
이효모는 이정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군대를 이릉(夷陵)으로 진격시켰다. 소선은 급보를 듣고 장군 문사홍(文士弘)을 보내 청강(淸江) 일대에 주둔하며 적을 막도록 지시하였다.
이에 이효모가 공격을 하려고 하자 이정이 말했다.
"문사홍은 소선 휘하의 맹장(猛將)이며, 그의 부하들은 매우 용맹합니다. 그들은 이제 막 청강에 도착한 까닭에 사기가 높습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니, 그들의 사기가 좀 떨어졌을 때 공격하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이효모는 이정의 말을 듣지 않고 직접 군대를 이끌고 공격에 나섰다. 그 결과, 문사홍에게 크게 패하였다. 문사홍의 군대를 승기를 잡고 당나라 병사들을 추격하여 그들이 달아나면서 버리고 간 각종 병기나 수레들을 끌고 갔다. 이정은 군사들을 데리고 나가 이효모를 맞아들이는 한편, 적군 병사들이 무거운 노획물들을 지고 있는 것을 보고, 즉각 반격을 하여 그들을 물리치고 대세를 만회하였다. 이효모와 이정은 이 분위기에 힘입어 곧장 강릉 성까지 쳐들어갔다. 소선은 여러 차례 반격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성문을 열고 투항하였다.
고방서예명제(93)點滴穿石(점적천석)
點 점 점, 滴 물방울 적,穿 뚫을 천,石 돌 석
치마의 빗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뜻으로, 작은 힘이라도 그것이 거듭되면
예상하지 못했던 큰 일을 해냄을 이르는 말
동이한 사자성어로 수적천석(水滴穿石)이 있습니다.
수전천석은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뜻으로
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종내엔 돌에 구멍을 뚫듯이,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의 비유.
작은 것이라도 모이고 쌓이면 큰 것이 됨의 비유. 큰 힘을 발휘함의 비유.
북 송(北宋:960∼1127)때 숭양 현령(崇陽縣令)에 장괴애(張乖崖)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관아를 돌아보다가 창고에서 황급히
튀어나오는 한 구실아치를 발견했다. 당장 잡아서 조사해 보니
상투 속에서 한 푼 짜리 엽전 한 닢이 나왔다.
엄히 추궁하자 창고에서 훔친 것이라고 한다. 즉시 형리(刑吏)에게 명하여
곤장을 치라고 했다. 그러자 그 구실 아치는 장괴애를 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사또, 그까짓 엽전 한 푼 훔친
게 뭐 그리 큰 죄라고 이 말을 듣자 장괴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네 이놈! 티끌 모아 태산[塵合泰山]이란 말도 못 들었느냐? 하루
한 푼[一文]이라도 천 날이면 천 푼이요, '물방울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돌에 구멍을 뚫는다[水滴穿石]'고 했다
장괴애는 말을 마치자마자 층계 아래 있는 죄인 곁으로 다가가 칼을 빼어
목을 치고 말았다. 이 같은 일은 당시 상관을 무시하는 구실아치의 잘못된
풍조를 고치려는 행위였다고 "옥림학로(玉林鶴露)"는 쓰고 있다.
'수적천석'은 우리 나라의 속담(俗談)
'낙숫물이 댓돌[臺石]을 뚫는다'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고사 성어임.
-구실아치- 관아의 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보는 하급관리
고방서예명제(94)절차탁마(切磋琢磨)
切 : 끊을 절. 磋 : 갈 차. 琢 : 쫄 탁. 磨 : 갈 마
옥이나 돌을 자르고 갈고 쪼고 닦아서 빛을 낸다는 뜻으로
부지런히 '학문과 덕행'을 갈고 닦는다는 말.
절차탁마는 원래 '시경'에 실려있는 시의 한구절입니다.
'시경' 위풍 기욱편에 '학문'과 '덕'을 쌓은 군자를 찬양하며 시를 지어 부른 구절이 있습니다.
有匪君子 아름다운 군자여 如切如磋 뼈와 상아를 깎고 갈아 놓은 듯
如琢如磨 구슬과 돌을 쪼고 갈아 놓은 듯 절차는 뼈나 뿔을 다듬는 것을
말하는데 학문을 닦음을 비유함이요, 탁마는 덕을 닦음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이 구절이 고사성어로 유명하게 된 것은 공자와 그의 제자 자공의 문답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자공이 묻기를 "가난하면서도 아첨함이 없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함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공자가 대답하기를 "괜찮기는 하나,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다시 자공이 덧붙여 말하기를 "시경에 절차탁마라고 한 말씀이 이를 두고 한말이겠군요." 이말을 들은 공자가 크게 기뻐하며 "너와 함께 시경을 말할 수있게 되었구나 과거의 것을 알려주면 미래의 것을 안다고 했듯이, 너야말로 하나를 듣고 둘을 알수 있는 인물이로다." 하였다고 합니다.
적우침주(積羽沈舟)는 전국책 위책에 나오는 말이다.
적(積)은 벼화(禾)에 맡을 책(責)을 짝지은 글자로서,
자신이 볏단을 책임지고 맡아 '쌓는다'는 의미로 쓰였다.
전국시대 때 동주(東周) 왕조가 나날이 쇠퇴해지자 각 제후들은 천하를
다투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진(秦)나라의 세력이 가장 강했다. 이에 여섯
나라가 힘을 합쳐 진나라에 대항하자는 합종책이 제기 되었다. 진나라
재상 장의는 합종책을 깨기 위해 여섯 나라 중의 하나인 위나라로 건너갔다. 장의는 위나라 애왕에게 제나라와 초나라 등을 정복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애왕은 머뭇거렸다. 여러 해 기다리던 진나라는 위나라로
쳐들어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일 년 후 위나라는 다시 제나라의
침범을 받고 패했다. 이때 장의는 다시 애왕을 설득했다.
“내가 듣기에는, 새의 깃털도 쌓이면 배가 가라앉고(積羽沈舟),
많은 사람들의 말은 쇠도 녹인다고 했습니다. 위나라는 여러 번의
패전으로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결국 애왕은 합종을 탈퇴하고 진나라에
연횡을 청했다. 이때부터 적우침주는 '작은 힘도 합하면 큰 힘이 된다'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고방서예명제(95)海不讓水(해불양수)
바다 해. 아니 불. 사양 양. 물 수.
바다는 강물을 사양하지 않고 받아 들인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그 인연 안에서 함께 생사고락을 하며 살아 갑니다
그런데 때로는 내게 아무런 해를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미워지고 보기 싫어지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시기하고 좋지 않은 평가를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해불양수(海不讓水)라는 이야기 들어보셨죠?
바다는 강물을 물리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물은 깨끗한 물이라고 해서 환영하고
더러운 물이라고 해서 물리치지 않습니다
물은 그 어떤 환경을 구분하지 않고
자기에게 오는 모든 물은 다 받아드립니다
그리고 자기 안에서 정화를 시켜나갑니다
만약 우리들의 삶이 물과 같은 삶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분명 성인이 되겠지요?
보기 싫던 사람이 불쌍하게 느껴져서
그 사람을 위해 울어주고 기도 해주며
사랑을 나눠주는 나 자신이 삶이 될 수 있다면
누구보다 복된 사람은 "나" 일 것입니다.
고방서예명제(96)流芳百世(유방백세)
流(흐를 유,류) 芳(꽃다울 방) 百(일백 백) 世(대 세)
훌륭한 명성(名聲)을 후세(後世)에 영원(永遠)히 전함을 비유한 말이다.
[出典] -진서(晉書) 권98 반역전(叛逆傳)-환온(桓溫).
동진(東晋) 시대, 진(晋)나라와 북방 이민족들은 서로 끊임없는 마찰을
빚어왔다. 서기 354년, 환온(桓溫)은 보병과 기병 4만을 이끌고 북벌에
나서 전진(前秦)을 공격했다. 함락한 지역의 한족(漢族)들의 협조로
그들의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섬서 지역에서 전진의 주력부대인
5만 대군을 물리치며 도읍인 장안(長安)까지 압박해 들어갔다.
환온의 세 차례에 걸친 북벌은 저족(저族), 강족(羌族), 선비족(鮮卑族) 등
북방 이민족들에게 일대 타격을 가하였다.
서기 363년, 환온은 대사마(大司馬)에 임명되었다.
뒤이어 동진 조정에서는 그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였으니,
그의 지위는 제후들보다 위에 있게 되었다.
환온은 군사대권을 장악하고 중원(中原) 회복을 생각하며, 군사적
승리를 꾀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명망을 높여서
동진의 제위(帝位)를 빼앗아 스스로 황제가 되려고 하였다.
환온은 "대장부가 훌륭한 명성을 후세에 전할 수 없다면,
죽은 뒤 나쁜 이름이라도 세상에 남겨야 한다
[大丈夫不能流芳百世, 亦當遺臭萬年]"라는
말을 하였다. 서기 373년, 61세의 환온은 병을 앓으면서도 이러한 꿈을
버리지 않았으나, 재상(宰相) 사안(謝安)의 저지로 야심을 이루지 못했다.
* 族(겨레 족) 羌(종족 이름 강) 鮮(고울 선) 卑(낮을 비).
[類似語] -萬古流芳(만고유방)
[反意語]-遺臭萬年(유취만년:오명(汚名)을 오래도록 후세에 남김).
고방서예명제(97)反求諸己(반구저기)
돌이킬 반 / 구할 구 / (어조사) ~에서 저 / 몸 기
- 돌이켜 자신에게서 찾는다
맹자 '이루 離婁' 제4장에 나온다.
孟子曰(맹자왈) 맹자가 말했다
愛人不親(애인불친)이어든 反其仁(반기인)하고
사람을 사랑하는데 친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어진 태도에 문제가 없는지
돌이켜 보고 治人不治(치인불치)어든 反其智(반기지)하고
사람을 다스리는데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신의 지혜로움에 대해
반성할 것이며 禮人不答(예인부답)이어든 反其敬(반기경)이니라
사람을 예로서 대하는데도 응답이 없으면 자신의 공경함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行有不得者(행유부득자)어든 皆反求諸己(개반구저기)니
행하고 얻지 못하는 게 있거든 모두 돌이켜 자기에게서 구할 것이니
其身正而(기신정이)면 天下歸之(천하귀지)니라
그 몸이 바르면 천하가 돌아오는 것이니라
'반구저기(反求諸己)' 는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때 남을 탓하지 않고
그 일이 잘못된 원인을 돌이켜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
고쳐 나간다는 의미이다.
이 구절은 맹자(孟子) 공손추편에도 나오는 글귀로
'돌이켜서 자기에서 찾을 따름'이라는 의미다.
모든 일을 '남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되고
자기 자신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원문은 '발이부중(發而不中) 불원승기자(不怨勝己者)
반구저기이이(反求諸己而已)'로
'활을 쏴 적중하지 않아도 나를 이기는 자를 원망하지 않고
돌이켜서 자기에서 찾을 따름이다'라고 해석된다.
고방서예명제(98)道不遠人(도불원인)
道:길 도 不:아닐 불 遠:멀 원 人:사람 인
道는 사람의 본성일 뿐 먼 곳에 있지 않다
중용<제13장> (자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道不遠人(도불원인)하니 :
도는 사람에게서 멀지 아니하니 人之爲道而遠人(인지위도이원인)이면 :
사람이 도를 행하되 사람을
멀리 한다면 不可以爲道(불가이위도)니라 : 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詩云伐柯伐柯(시운벌가벌가)여 : 시경에 말하기를, “도기 자루를 찍어내나니
도끼 자루를 찍어내나니, 其則不遠(기칙불원)이라하니 : 그 법은 멀지 않도다.” 고 하셨다. 執柯以伐柯(집가이벌가)하되 : 도끼 자루를 잡고서 도기 자루를 찍어내되 睨而視之(예이시지)하고 : 대중하여 보고 猶以爲遠(유이위원)하나니 : 오히려 멀다고 생각한다. (고)로 : 그러므로 君子(군자)는 :
군자는 以人治人(이인치인)하다가 : 사람으로서 사람을 다스리다가
改而止(개이지)니라 : 고쳐져야 그만둔다.
忠恕違道不遠(충서위도불원)하니 : 충과 서는 도에서 어긋남이 멀지 아니하니,
施諸己而不願(시제기이불원)을 : 자기에게 베풀어짐을 원하지 않는 것을
亦勿施於人(역물시어인)이니라 : 또한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
君子之道四(군자지도사)에 : 군자의 도가 넷인데
丘未能一焉(구미능일언)이로니 : 구는 하나도 다하지 못하였다
所求乎子(소구호자)로 : 자식에게 요구하는 바로써
以事父(이사부)를 : 아버지를 섬기는 일을
未能也(미능야)하며 : 아직 다하지 못하였다.
所求乎臣(소구호신)으로 : 신하에게 요구하는바로서
以事君(이사군)을 : 임금 섬김을
未能也(미능야)하며 : 아직 다하지 못하였다.
所求乎弟(소구호제)로 : 아우에게 요구하는 바로써
以事兄(이사형)을 : 형님 섬김을
未能也(미능야)하며 : 아직 다하지 못하였다.
所求乎朋友(소구호붕우)로 : 친구에게 요구하는 바를
先施之(선시지)를 : 먼저 베풀어 주는 일을
未能也(미능야)로니 : 아직 다하지 못하였다.
庸德之行(용덕지행)하며 : 용덕을 행하며
庸言之謹(용언지근)하여 : 용언을 삼가
有所不足(유소불족)이어든 : 부족한 바가 있으면
不敢不勉(불감불면)하며 : 감히 힘쓰지 아니치 못하며
有餘(유여)어든 : 남음이 있으면
不敢盡(불감진)하여 : 감히 다해버리지 않아서
言顧行(언고행)하며 : 말은 행동을 돌아보고
行顧言(행고언)이니 : 행동은 말을 돌아보는 것이니
君子胡不慥慥爾(군자호불조조이)리오 : 군자가 어찌 부지런히 힘쓰지 않겠는가?
서예명제(99)時不可失(시불가실)
(時: 때 시. 不: 아닐 불. 可: 옳을 가. 失: 잃을 실)
한 번 지난 때는 두 번 다시 오지 아니하므로,
①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말
②좋은 시기(時期)를 잃어버려 서는 안 된다는 말.
[유사] 물실호기(勿失好機; 좋은 기회(機會)를 놓치지 말 것).
[출전]《제4편 주서(周書) 제1장 태서 상(泰誓上)》
[내용] 중국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은 원래 총명한 인물이었으나,
애첩 달기의 미색에 빠진 뒤로는 주지육림을 일삼아 국정을 돌보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의 삶이 황폐해졌다. 이에 희발(姬發)이 군사를 일으켜
주왕을 벌하고 새로 주(周)나라를 세웠으니, 그가 바로 무왕(武王)이다.
은나라 정벌에 나선 무왕은 승리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군사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정당성을 훈시하였는데,
그 내용이 주서(周書) 태서(泰誓)편에 기록되어있다.
" .... 주왕은 신하가 億萬人이 있으나, 億萬人의 마음은 각각 다르다.
나는 신하를 三千을 두었으나, 마음이 하나이다.
②상나라의 죄는 가득 차고 넘쳐 하늘이 벌하도록 명하시어 그를 쳤으니
(商罪貫盈, 天命誅之), 내가 하늘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죄가 같아질 것이오.
이 소인은 새벽부터 밤까지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돌아가신 아버지 문왕(文王)의 명을 받았으니 하느님에게 제사를 지내고,
큰 땅에도 제사를 지냈으며, 그대 무리들을 거느리고 하늘의 벌하는 것을
이루려 하는 것이오. 하늘은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고 있으니, 백성들이 바라는
바를 하늘은 반드시 그대를 따를 것이오. 바라건대 그대들은 나 한 사람을
도와 영원히 온 세상을 맑게 하시오.
때가 되었으니 이를 잃어서는 아니 되오
(爾尙弼予一人, 永淸四海. 時哉, 弗可失)!
......受有臣億萬,惟億萬心。予有臣三千,惟一心。
商罪貫盈,天命誅之,予弗順天,厥罪惟鈞。
予小子夙夜祗懼,受命文考,類于上帝,宜于冢土,以爾有眾,厎天之罰。
天矜于民,民之所欲,天必從之。爾尚弼予一人,永清四海。
時哉!弗可失。!
고방서예명제(100)法古創新(법고창신)
[자해] 法 법 법, 古 옛 고, 創 비로소 창, 新 새 신.
논어 위정편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공자왈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알면 가히 스승이 될 수 있다."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 溫 : 익힐 온 (여기서 익히다는 "習"이 아니고, 따뜻하게 데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흔히 溫故而知新, 또는 줄여서 온고지신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요.
그런데 <온고지신> 이 말과 더불어 <법고창신>이라는 말도 많이 씁니다.
서예나 문장, 예술을 즐기시는 분들도 자주 Tm는 말이지요.
법고창신.... 그 참 뜻과 출전을 알아보지요. 法古創新이란 연암 박지원이 쓴
<楚亭集序(초정집서)>에 나오는 말로써, 글자대로 풀이하자면 한마디로
<옛 법도에 맞게 하되,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라는 뜻이죠.
-[한문의 멋]카페(南 村님의 글) 다음은 민속학자 주강현선생 글입니다.
- 진실로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할 줄 알고, 새것을 창안해낼지라도
능히 전아(典雅)할 수 있다면, 금문(今文)이 고문과 같아지는 것이다.
(중략) 박연암은 과거의 양한(兩漢), 또는 성당(盛唐)의 글을 무분별하게
모방 표절하는 의고적(擬古的)인 당시 문단풍조를 비판하고,
작가가 처한 현실을 배경으로 한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문학을 쓸 것을 주장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박연암이 고문을 전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었으니,
고문을 본받되 현실에 맞도록 창조적으로 수용하여 써야한다는 이른바
'선변(善變)의 문학'을 제시하였다. 선변의 문학을 이루는 구체적 방법으로
그는 법고창신(法古創新)과 합변지기(合變之機)를 논하였다.
법고창신은 [楚亭集序]에서 따온말.
그는 법고(法古)에 기울지도 않았고, 창신(創新)에 기울지도 않았다.
지나친 법고와 창신을 모두 부정하고 비판하였다.
그가 긍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선변을 통한 법고에 있었다.
편벽된 '법고'와 '창신', 즉 맹목적인 '법고'와 '법고'를 전혀 무시한
'창신' 모두를 비판하고는, "진실로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할 줄 알고,
새것을 창안해낼지라도 능히 전아(典雅)할 수 있다면,
금문(今文)이 고문과 같아지는 것이다"고 하였다.
그의 합변지기는 이렇다. 글자를 사졸(士卒)에,
뜻을 장수에 비유하고, 글쓰는 일 또한 장수가 사졸을 지휘하여
전투를 수행하는 것에 비유하였다. 합변지기를 잘하면,
아무리 비속한 말일지라도 휼륭한 문장을 이룰수 있다.
이 합변지기의 합변은, '부분적인 요소를 합쳐서 부분적인
요소들이 원래 지니지 않았던 새로운 뜻을 만들어내는 변화'라고 할수 있다
. '선변'과 통하는 말이니, 그는 '합변지기'를 '법고'와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즉, 옛것을 배워 그것에 집착하기만 하여서는 결코 휼륭한 글을 쓸 수없고,
옛것을 현실에 알맞게 변화시켜 쓸때 비로소 새롭고 휼륭한 글이 창조될 수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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