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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2023년 7월 초, 스리랑카 정부는 스리랑카 중앙은행(CBSL, Central Bank of Sri Lanka)과 함께 국내 채무조정을 목표로 하는 중요한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국내 채무 최적화(DDO, Domestic Debt Optimization)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해당 이니셔티브는 2022년 4월 외채 상환 불이행(Default, 디폴트) 선언 이후에 만들어졌다. 동 법안은 스리랑카의 총 부채를 지속 가능하고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입안되었으며, 주요 퇴직연금 기금인 근로자공제기금(EPF, Employee Provident Fund)이 부채로 인해 발생하는 충격의 일부를 흡수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DDO가 기금 자체에 미칠 잠재적 영향력과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해당 법안의 시행 내용과 국가 재정 구성 요소들과의 상호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이 법안이 기금과 국가 전체에 미칠 영향력을 예측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스리랑카 부채의 역사: ISB
스리랑카는 국가 개발과 경제 성장을 도모하고자 해외에서 자금을 차용했다. 1970년까지의 스리랑카의 국가 대외부채는 4억 3,500만 달러(한화 약 5,769억 원)였다. 이후 대외부채는 꾸준히 증가하여 2021년 말 국가 총 대외부채는 566억 달러(한화 약 75조 719억 원)에 달했다(Macrotrends, 2023). 4개월 후인 2022년 4월 12일 스리랑카는 역사상 처음으로 디폴트를 선언했으며(Economynext, 2022), 이후 IMF와 협상을 통해 채무 구조조정에 돌입했다(Hoskins, 2022).
스리랑카를 부채의 늪과 디폴트로 내몬 결정적인 원인은 고금리의 국채(ISB, International Sovereign Bonds)였던 것으로 평가된다(Nicholas & Illanperuma, 2023). 30년간 이어진 내전에서 벗어난 스리랑카는 2009년 이후 본격적인 경제 개발에 돌입했다.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총 약 170억 달러(한화 약 22조 5,554억 원) 규모의 ISB를 5~8%의 높은 표면 금리로 발행했다. 이로 인해 스리랑카의 GDP대비 공공 대외부채 비율은 2010년 29%에서 2021년 44%까지 상승했다. 2019년 이후 디폴트를 선언한 잠비아, 가나,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레바논도 유사한 수준의 높은 ISB 금리를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채무 최적화(DDO) 프로그램
2022년 IMF가 스리랑카와 협상을 개시하면서 내건 주요 조건 중 하나는 채무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재조정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스리랑카 정부는 △세수 확대를 통한 재정 건전성 확보 △합리적인 정부 지출 시행 △GDP대비 공공 부채 비율 감축을 달성해야 했다(IMF, 2023). 이를 위해 정부는 우선 2020년 이후 인하했던 세금을 인상하고 과세 기반을 확대했다(Andrew, 2023).
지출 합리화를 위해 공공부문에 긴급하지 않거나 필수적이지 않은 지출을 제한한다는 지침이 발표되었다. 또한 스리랑카 내각은 2023년 모든 정부 기관에서 승인된 반복적 지출 추정치의 6%를 삭감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스리랑카 정부는 연료에 대한 원가 반영 책정 공식을 재도입했고 공기업의 구조조정도 단행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GDP 대비 부채 비율을 128%에서 95%로 낮추는 조건의 이행을 위해 스리랑카는 고군분투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GDP의 9.4%를 외채상환에 사용해야 한다. 현재 스리랑카는 외채 구조 조정을 진행 중이나 해외 채권자들은 채무 부담을 국내 채권자들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Mushtaq, 2023). 2020년 기준 스리랑카 채무의 40%에 가까운 금액이 양자간 부채, 다자간 부채 그리고 금융시장의 형태로 외국 채권자들이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Public Finance, 2023).
이로 인해 스리랑카 중앙은행은 국내 채무 조정을 위해 DDO를 제안했다. 스리랑카의 국내통화시장 부채는 국가 전체 공공부채의 42%(354억 달러, 한화 약 46조 9,530억 원)로 스리랑카 공공 부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국가 GDP의 5%를 초과한다. 정부의 국내 채무 60% 이상은 비상업은행 부분(스리랑카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다(<그림1> 참조).
<그림 1> 현지 통화 시장에서 각 주체가 보유한 채무의 비율
자료: 스리랑카 중앙은행 DDO 발표
스리랑카 국내통화시장은 단기국채(T-bills), 장기국채(T-Bonds), ISB 그리고 스리랑카 개발채(SLDB, Sri Lanka Development Bonds)로 나뉜다(Wijayasekera, 2023). 중앙은행은 보유하고 있는 T-Bill(60%)을 T-Bond로 전환하는 안을 제시하여 총자금수요(GFN, Gross Financing Needs)를 줄이고 정부가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재정적 여유를 확보하고자 했다. T-Bills의 18.7%와 T-Bonds(국영 및 상업 은행 전체)의 44.4%를 보유하고 있는 스리랑카 은행들은 구조조정에서 제외되었다. 중앙은행이(Derana, 2023) 제시한 논거는 은행권이 이미 높은 세금,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 동안의 채무지불유예, 경제 위기로 인한 불량 채권 비율의 증가 등으로 높은 부담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추가적인 재정 압박이 금융 불안정성과 경제 위기 심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스리랑카 최대 규모 기금 EPF
다음에서는 3조 스리랑카 루피(한화 약 10조 9,372억 원)에 가까운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최대 규모의 의무 단일 기금 EPF에 DDO가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EPF는 스리랑카 전체 T-Bonds의 약 36.5%를 보유하고 있다. DDO에 따르면, 중앙은행은 EPF에 단기 채권을 장기 채권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EPF에는 2027년부터 2038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동일 가격 상품 12개가 있다. 이를 위해 채권 가치 재조정(haircut)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2025년까지 이자를 12%로 낮추고 만기까지 9%의 이자율을 유지할 것을 제시했다. 해당 방안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현재 총 수익의 14%인 양허세율 대신 30%에 달하는 고세율이 적용된다(Ranasinghe, 2023).
1958년에 도입된 EPF는 현재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Verite Research, 2023). 1960년까지 공표된 EPF의 수익률은 연간 2.5%였으며 이 수익률은 1967년까지 유지되었다. 이후 EPF의 수익률은 1979년 4%로 증가했고 이듬해인 1980년에는 두 배 이상 증가한 8.5%에 달했다. 1988년 최고치인 13%에 도달했다가 그 다음 해 11%로 떨어졌다. 1993년 13.5%로 다시 한 번 최고치를 기록한 후 2002년까지 등락을 반복했다(Rannan-Eliya & Eriyagama, 2023). EPF 홈페이지에 명시된 최근 데이터를 살펴보면 2015년, 2016년, 2017년에는 약 10.5% 내외의 수익률을 나타내다 2018년 9.5%로 소폭 하락한 후 2019년에는 보다 하락한 9.25%를 기록했다(Employees Provident Fund, 2023).
베리테 리서치(Verite Research)에 따르면 EPF는 과거 도입 초기부터 국채 투자에 주력해 왔으며, 1998년 이후로는 지분(Equity) 투자를 시작했다. 베리테 리서치(Verite Research)는 2010년경 EPF의 지분 비중이 기금의 5% 이상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EPF는 2019년에 콜롬보 증권 거래소에 재상장되며 주식(Stock)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Ada Derana Business, 2019). 당시 중앙은행 총재였던 인드라지트 쿠마라스와미(Indrajit Coomaraswamy)는 통화위원회에서 포트폴리오의 최대 6%까지 주식 투자를 승인했다.
스리랑카 정부가 공개하고 있는 정보량 부족과 DDO와 EPF의 관계성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DDO에 따른 정확한 EPF 손실액 산정은 매우 어렵다. 이에 대해 베리테 리서치(Verite Research)의 이사이자 경제학자인 니샨 드 멜(Nishan De Mel) 박사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가장 극단적인 시나리오는 DDO에 의해 DPF에 15년 동안 12조 스리랑카 루피(약 37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였다는 것이며 보다 보수적인 시나리오에서도 각각 11조 스리랑카 루피(한화 약 43조 7,698억 원)와 9조 7,000억 스리랑카 루피(한화 약 39조 7,908억 원)에 달하는 손실액을 제시했다. 그러나 난달랄 위라싱헤(Nandalal Weerasinghe) 스리랑카 중앙은행 총재는 해당 계산에 사용된 가정의 상당수가 부정확하고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며 DDO에 따른 EPF의 손실이 15년 동안 12조 스리랑카 루피 이상에 달할 것이라는 니샨 드 멜의 주장을 반박했다(Kotalawela, 2023).
EPF는 보다 투명해져야 하는가?
콜롬보 대학교의 경제학자 우메쉬 모라무달리(Umesh Moramudali)는 대부분의 논의가 가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Moramudali, 2023). 스리랑카 중앙은행은 채권의 개수와 만기 수익률 등을 포함한 EPF 채권 포트폴리오의 구체적인 사항들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모라무달리 교수는 중앙은행이 이 정보를 공개해야 하며, EPF 주주들은 DDO가 주주들의 퇴직금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모라무달리는 DDO에서 상업은행 부문이 제외된 것은 경제 성장 가속화에 대한 정부의 열망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런 접근 방식을 통해 은행이 대출 여력을 회복하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DDO가 시행되지 않을 경우 스리랑카 경제는 더욱 위축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근로자의 급여에 영향을 미침과 동시에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여 결국 EPF 보유자산의 가치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학자인 라비 라난-엘리야(Ravi Rannan-Eliya) 스리랑카 보건연구원 실장은 DDO의 장기적인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DDO가 야기할 수 있는 부정적 결과의 두 가지 주요 원인을 언급했다(Rannan-Eliya R., 2023). 우선, DDO는 스리랑카 루피화로 발행된 정부 부채와 연관된 위험 프리미엄을 높여 향후 국내 대출 금리를 인상시킬 가능성이 있다. 라난-엘리야(Ravi Rannan-Eliya)는 “DDO는 해외 대출보다 국내 대출이 상대적으로 더 비싸져 외채가 증가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로, DDO가 EPF 퇴직자들의 퇴직급여를 감소시켜 정부가 노년층에 대한 추가 소득 지원을 시행해야 하므로 재정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DDO가 정부의 재정 운영에 단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재정 문제 악화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라난-엘리야(Ravi Rannan-Eliya)는 부유층이 더 큰 희생을 부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진정한 형평성을 고려하고 있다면 적절한 입법을 추진하여 고소득층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동시에 EPF 보유자산에 누진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라난-엘리야(Ravi Rannan-Eliya)는 DDO가 적립형 연금제도와 비적립형 연금제도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거시경제적 현실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에 지속적으로 구조적 재정 적자(structural deficit)가 발생한다면 시장 메커니즘이나 정부 정책으로 인해 EPF 투자 수익률이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투명성이 EPF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일반 시민들은 EPF 성과에만 관심이 있을 뿐 EPF의 구조적 복잡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EPF 수익 확보를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 적자를 줄이고 경제 성장과 투자 수익을 높일 수 있도록 전반적인 경제 정책의 개선 및 강화를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결론적으로 기금의 투명성 제고가 기금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라난-엘리야(Ravi Rannan-Eliya)는 ‘아니오’라고 답했다.
라난-엘리야(Ravi Rannan-Eliya)는 EPF 수익률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크게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가 1970년대 후반 이후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재정 적자를 발생시키지 않아야 하며, 실물 경제, 특히 수출 분야에 대한 투자자들의 수익률을 높여 장기적인 경제 성장률을 높이는 등 전반적인 경제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리랑카 정부의 대대적인 경제 정책 개선 없이는 EPF가 투자 전략을 투명하게 공개하는지 여부에 관계 없이 수익률은 계속 낮아질 것이라며 스리랑카의 범 국가적인 정책 개선과 경제 환경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결론
스리랑카의 재정 상황을 고려할 때 디폴트 선언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현재로서는 DDO가 EPF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스리랑카가 디폴트에 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다만 많은 스리랑카 국민은 정부가 선택한 채무재조정 방식에 의문을 표하고 있는데, 이는 DDO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투명성 확보가 현 정부에서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된다. 서민연금기금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미 국민의 불안감이 증폭된 상황에서, 스리랑카 정부는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서만이 국민의 지지를 얻어 국가적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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