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 경제환경이 악화되면서 기업이 골머리를 앓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구조적으로 진행되는 대외여건은 쉽게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 이제 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에겐 좋은 사례가 있다 . 바로 삼성전자다 .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어려운 대외환경에도 불구하고 매년 신화를 새롭게 써나가고 있다.
특히 2006년 9월 삼성전자는 40나노 32기가 플래시메모리를 개발, 매년 메모리 용량이 두 배씩 증가한다는 메모리 신성장론을 7년째 입증해보였다 . 이젠 ‘황의 법칙’으로 굳어졌다.
이로 인해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반도체 분야의 최고상인 2006 국제전기전자공학회 ‘앤디그로브’ 상을 받았다 . 경쟁사인 인텔이 후원하는 상을 받은 것. 이는 경쟁업체마저도 삼성전자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2006년만 해도 삼성전자는 3월에 세계 최초 32기가 플래시메모리 기반 SSD(잠깐용어 참조) 개발에 이어 9월에는 세계 최초 40나노 32기가 낸드플래시(잠깐용어 참조) 및 CTF(잠깐용어 참조)기술 개발을 완료했다.
10월에는 세계 최초 50나노 1기가 D램, 12월에는 2011년까지 25억달러 신시장을 개척할 퓨전메모리 원D램 개발에 성공했다.
황의 법칙 성공요인은 어디에 있을까.
반도체 전문가들은 황의 법칙 성공요인으로 리더십, 스피드, 기술력, 표준화 노력 등을 꼽는다.
■ 성공요인1 미래를 예측한 리더십 ■
삼성전자 반도체가 시작된 것은 지난 1974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당시 경영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미래를 예측한 뛰어난 리더십을 바탕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 특히 87년 일본 기업이 반도체 불황으로 설비 투자를 축소할 때 삼성전자는 신규 라인을 건설, 호황기로 접어든 88년에는 당시 13년간 누적된 적자를 모두 해소할 수 있었다 . 지난 92년엔 세계 최초로 8인치 라인 투자를 결정, 93년에는 메모리 업계 1위에 올라 최근까지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반도체 중흥기를 이끈 진대제 사장에 이어 황창규 사장은 낸드플래시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 황 사장은 2002년 국제반도체학회에서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메모리 신성장론’을 발표했다 . 당시 예측한 것처럼 올해를 기점으로 낸드플래시 메모리 시장은 급팽창하고 있다 . 삼성전자는 2001년 12인치 메모리 양산 라인을 업계 최초로 도입, 2001년 메모리 시장 점유율 18%에서 12인치 메모리 라인이 본격 가동된 2002년에는 25%로 성장, 1위에 올라섰다 . 현재 세계 메모리 시장 점유율은 30% 정도.
경종민 카이스트 전자전산학부 교수는 “일본 업체가 주춤할 때나 기회다 싶을 때 메모리 산업에 집중 투자한 게 성공요인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황 사장은 앞으로 황의 법칙을 새롭게 써나갈 각오다 . 실제로 2005년 말에는 제2의 반도체 신화 창조를 위해 2012년까지 총 330억달러를 투자하는 첨단 반도체 신규 라인 8개와 차차세대 50나노급 이하 미래형 반도체 개발을 위한 12인치 R&D라인 1개 등 총 9개의 신규 라인을 건설키로 하는 중장기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 성공요인2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 ■
미래를 예측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의사결정을 빨리하느냐 하는 경영자의 결단력과 개발기간을 어떻게 단축하느냐 하는 시간싸움으로 요약된다 . 반도체 수명은 보통 3~4년이다.
제때 내놓으면 가격 프리미엄이 붙지만 늦으면 30~40% 가격이 하락한다.
사실 플래시메모리는 1년에 두 배씩 성장이 가능한 분야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플래시 메모리는 기술이 상대적으로 D램보다 단순하고 투자비용도 적게 든다”며 “D램보다 생산기간이 짧고 공정수도 적어 생산에 유리하다”고 말한다.
그렇더라도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기술을 개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현재 삼성전자의 신기술을 후발업체들이 따라가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정창원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선도업체가 세계 최초로 메모리 용량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어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며 “삼성전자 내부에서 황의 법칙을 위해 목표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 성공요인3 안되면 새로 만들어 내는 기술개발 능력 ■
사실 반도체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40나노 32기가 낸드플래시를 개발할 때만 해도 황의 법칙이 깨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 기존 기술로는 개발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가능케 한 게 CTF기술이다 . 2001년 무렵 태스크포스팀은 처음 CTF기술 개발 및 제품 상용화에 착수했으나 실패했었다.
그러나 2003년 무렵 황 사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며 다시 기회를 줬다 . 결국 태스크포스팀은 2006년 기술 개발 및 상용화에 성공했다 . 이는 황창규 사장이 말하는 노마드 정신(한 곳에 안주해 고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와 도전을 추구하는 자세)과 일맥상통한다.
CTF기술을 활용할 경우 엄지손톱 크기의 플래시메모리로 플래시토피아 시대를 열 수 있다 . 이는 기가 시대를 넘어 2010년 이후 테라 시대에 진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
오정숙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기술을 선점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못 따라 오도록 기술 격차를 벌리는 등 선도적으로 앞서 나간다”고 말한다.
민후식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나노에 들어가면 반도체 기술 개발에 한계가 있으니까 신기술을 개발했다”며 “이는 창조적인 R&D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언급했다.
삼성전자의 기술력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VLSI 심포지엄이다 . VLSI는 삼성, 인텔, NEC, IBM 등 세계 유수의 반도체 업체들이 참여하는 세계적 권위의 반도체 관련 학회. 삼성전자는 지난 88년 처음 논문이 채택된 이래 2003년 21건, 2004년 22건, 2005년 17건에 이어 2006년 19건 등 4년 연속 최다 논문 선정 기업으로 뽑히는 등 세계 최고 반도체 기술력을 입증했다.
이런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력의 산실이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다 . 이곳의 총 연구 인력은 2500여명. 이중 석·박사가 65% 정도고, 박사급은 25% 정도 된다 . 삼성전자는 반도체 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사내에 반도체 대학도 개설했다 . 이는 국내 최초로 기업체에서 실시되고 있는 사내대학 1호. 졸업 때 교육인적자원부가 인정하는 정규 학사학위가 수여된다 . 석·박사 과정은 성균관대와 산학협동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학위 취득이 가능하다.
■ 성공요인4 표준화 노력과 수요창출 ■
삼성전자는 270개 업체가 활동 중인 국제 반도체 표준화 기구인 JEDEC에 적극 참여해 SD램, DDR, DDR2, DDR3 등 차세대 D램이 국제 표준제품이 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 2004년부터는 JEDEC에서 회장사를 맡아 반도체 기술 표준화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신기술 창출·표준화를 주도해도 시장에 수요가 없으면 그만이다.
민후식 연구위원은 “아이팟 등에 대량으로 제품을 공급하는 등 고객 수요 창출도 전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 실제로 신시장 창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지난 2002년, 휴대전화의 주요 부품인 노어플래시를 낸드플래시로 교체한 데 이어 2005년에는 MP3도 종전의 4기가바이트HDD에서 낸드플래시로 바꿨다 .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디지털카메라, 휴대전화, 캠코더 등의 절반 정도에 삼성전자 낸드플래시가 들어있다고 보면 된다.
▶ 잠깐용어
·SSD(Solid State Disk): 기존 하드디스크와 달리 메모리 반도체만으로 구성된 PC 보조기억장치. 외부충격에 의한 데이터 손실 방지 및 고속 데이터 입출력, 초저전력, 무소음 등을 구현했다.
·낸드플래시(NAND Flash): 대용량 저장능력이 뛰어난 플래시메모리로 값이 싸고 구조가 간단해 디지털카메라, 휴대용저장장치, 컴퓨터 등에 폭넓게 쓰인다.
·CTF(Charge Trap Flash): 반도체 셀의 크기를 28%, 공정을 20% 줄여 반도체 개발의 난제인 ‘초미세화’ ‘고용량화’ ‘고성능’ 등을 한꺼번에 실현시킨 차세대 반도체 기술.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