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전 스님의 본생담으로 읽는 불교
37. 마이트리발라왕 본생(‘자타카말라’) ①목동의 예찬
깨달음의 필수조건은 고결한 ‘행동’의 축적
자비바라밀로 나라 다스린 국왕 보호로 번영하던 왕국에
범죄 저지른 다섯 야차 들어와 국민 해치려 했지만 실패
고결함은 내면에만 머무는 미덕 아닌 사회적 실천의 영역
아잔타 17굴. 싱할라아바다나의 야차녀들. 인도고대미술에서 야차의 모습은 이와 같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루시고, 사르나트에서 다섯 비구를 만나 첫 설법을 하셨다. 이를 초전법륜이라 하고, 그 내용이 ‘초전법륜경’에 전한다. 이어서 오비구와 함께 첫 안거를 하시고 ‘무아의 특징경’을 설하여 오비구 모두 아라한이 된다. 이렇게 하여 이 지상에 여섯 명의 아라한이 출현하였고 첫 승단이 형성된다. 오비구들은 카필라국의 대신들로서 출가한 싯다르타 태자를 보호하도록 아버지 정반왕이 보낸 사자들이었다.
과거 생에 오비구와 부처님의 첫 인연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그에 관한 기록이 아리야 수라(Ārya Śūra, AD 1~3세기)가 저술한 ‘자타카말라(Jātakamā lā)’의 여덟 번째 이야기인 마이트리발라(Maitrībala) 본생담에 나온다. 아잔타 석굴 1굴에 벽화로 그려져 있다. 아리야 수라의 ‘자타카말라’는 탁월한 수식과 비유, 고양된 신심으로 충만한 아름다운 예찬문이다.
어느 때에 보살이 고결한 정신을 가지고 항상 중생들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자비바라밀을 확고부동하게 실천하면서 관용, 겸손, 절제, 부드러움 등을 증장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중생들을 향한 자애스러운 가슴을 가진 왕이었으며 마이트리발라라고 불렸다. 마이트리는 자애, 발라는 힘의 의미이므로 자력왕(慈力王)이라고 한다.
왕은 그의 신민들의 안녕과 비애를 자신의 것으로 느꼈다. 왕은 자신의 진실성, 자유의사에 대한 존중, 평정, 지혜 등 여러 덕목들이 타인의 행복과 이익에 공헌하도록 이끌면서 높디높은 고결한 행동들을 쌓아나갔다. 그것은 깨달음의 성취를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그의 왕국이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면서 많은 축제를 열고 있는 어느 날, 다섯 명의 야차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다른 야차 무리로 도망갔는데 야차 우두머리로부터 쫓겨나 이 왕국으로 들어왔다. 이 마귀들은 다른 이들을 죽이는 기술에 능숙한 오조하라(Ojohara)들이었다. 그들은 이 나라 국민들의 활력을 없애 버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최대한의 노력을 하였음에도 그 활력을 없앨 수 없었다. 왕이 나라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너무도 강력하여 뚫을 수 없는 최고의 방패막으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나라 숲에 살고 있는 목동이 혼자서 노래하고 허밍하면서 즐겁게 새끼를 꼬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야차들은 바라문의 모습으로 가장하여 그에게 접근해서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말했다. “어이, 친구여, 아무도 눈에 띄지 않는 이 외로운 숲에서 혼자 이렇게 머무는 것은 무섭지 않나?”
그러자 그는 “무엇에 대해 내가 두려워해야 하나?”
야차들이 말했다. “너는 이전에 야차, 락샤사, 혹은 피샤카 같은 마귀들이 천성적으로 잔인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나?”
목동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허허, 이 나라 사람들은 강력한 주문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신들의 왕이라도 어찌해볼 수 없거늘, 고기 먹는 마귀들 따위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나는 숲속이라도 집에 있는 것처럼, 밤에도 낮인 듯, 혼자서 다녀도 군중 속에 있는 것처럼 두려움이 없다.”
야차들이 질문했다. “당신이 가진 그 뛰어난 주문이란 어떤 것인가?”
그는 대답했다. “그 주문은 황금산을 담은 접시와 같이 넓은 그의 가슴이며, 티끌 하나 없는 가을 달과 같은 그의 얼굴이며, 황금 곤봉 같이 길고 통통한 그의 팔이며, 황소 같은 그의 눈과 걸음걸이다. 간단히 말해 그 주문은 바로 우리의 왕이다.”
야차들이 말했다. “왕이 가진 힘의 본성은 무엇인가? 그의 영토에 사는 사람들을 어떤 방법으로도 해치지 못하게 하는 그 정신은 무엇인가?”
목동이 “우리의 왕은 고결한 마음을 통해서 이러한 힘을 얻었다”고 하며 게송으로 말했다. ‘그의 힘은 잡다한 깃발을 휘날리는 군대가 아니라 자애이네/ 자애를 따라 법을 지킬 뿐/ 성낼 줄 모르며, 거친 말을 하지 않네./ 정치적 지혜가 아니라 학문에 근거한/ 법다움이 행동의 준칙/ 부는 미덕을 영광스럽게 하는 데 사용될 뿐/ 사악한 자들의 돈을 사용하지도 않고 우쭐해하지도 않네.’
이같이 말하고, 다시 계속해서 “왕의 수많은 미덕들로 인해 어떠한 재앙도 그의 왕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해칠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당신들이 우리 왕의 뛰어난 자질들을 더 알고 싶다면, 도성으로 들어가 보라. 왕의 미덕들을 직접 목격하게 될 것이며, 왕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질 것이다.”
강렬한 분노를 일으키는 대상을 칭찬할수록 어리석은 자들의 마음은 더욱 악화되기 마련이듯, 더욱더 분노가 치밀어 오른 야차들은 도성으로 달려갔다. 도성에 도착한 야차들은 왕을 알현하는 시간에 왕에게 접근해서 식사를 요구하였다. 식사가 제공되자 그들은 호랑이가 푸른 풀을 대하듯 퇴짜를 놓고, 자신들의 요구를 숨기지 않고 노골적으로 표출하였다. ‘방금 잘라내서 아직도 따뜻한,/ 익히지 않은 사람 고기와 피를 주시오./ 오! 연꽃 같은 눈을 가진 왕은/ 야차의 음식이요, 음료수이네./ 약속을 절대적으로 준수하는 왕이여!’
이렇게 말하고, 본래의 흉측하고 끔찍한 외모를 드러내었다. 입은 커다란 이빨들이 흉포하게 드러나 있고, 눈은 사시(斜視)에다 사납고 불타오르는 듯 붉었으며, 납작한 코는 구멍이 뻥 뚫린 채 기형적이었다. 머리와 수염은 황갈색의 불꽃 같고, 안색은 큰비를 몰고 오는 구름같이 어두웠다. 왕은 그들이 괴물임을 알았다. 그러나 왕은 그들에 대한 위로와 동정에 휘둘리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왕의 고결한 마음이 백성을 지키는 방패막이며, 고결한 마음에서 고결한 행동이 나온다는 것, 그리고 고결한 행동의 축적이 깨달음의 조건임을 밝히고 있다.
모든 공동체와 집단의 근본은 잘 깔린 사회인프라도 아니고, 최첨단 기술도 아니며, 핵무기도 아니다. 그 집단을 구성하고자 하는 구성원의 마음이다. 구성원들의 마음, 구성원들 간의 합의라는 기초 위에 가족, 집단, 공동체, 국가 등의 건물이 지어진다. 기초가 바로 서지 못한다면 그 건물은 곧바로 허물어져 버릴 것이다.
구성원의 마음은 사회의 근본을 이룰 뿐만 아니라 관습을 형성하고 문화를 만들고, 시대를 넘어서 후대에 전승된다. 왕이 고결한 마음을 가진 것처럼 구성원 각자의 마음이 고결한 미덕으로 장엄될 때 삶이 윤택해지고 문화가 번창한다. 그러한 미덕들이 실천에 옮겨질 때 보살의 고결한 행동이 된다. 이 본생담은 고결한 행동의 축적이 깨달음의 필수조건임을 선언함으로써 미덕의 문제가 내면의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의 영역임을 밝히고 있다.
[1690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