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1.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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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2023년 1월 21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예전에 동창 신부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동창 신부님은 공부를 잘 하였습니다. 담임선생님은 동창 신부님이 'SKY' 대학에 지원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본인에게도 좋고, 학교에도 좋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창 신부님은 굳이 ‘서울 신학교’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름도 잘 들어보지 못한 대학으로 간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미친 짓’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협박’도 하고 ‘회유’도 하면서 설득했지만 동창 신부님의 강경한 주장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벌써 4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동창 신부님처럼 우수한 성적은 아니었기에 ‘미친 짓’이라는 소리를 듣지는 않았지만 담임선생님도 약간 의아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교가는 이렇습니다. “진세를 버렸어라. 이 몸마저 버렸어라. 깨끗이 한 청춘을 부르심에 바쳤어라.” 교가의 내용도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미친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배움의 목적은 채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배움의 목적은 성공, 명예, 권력을 향한 사다리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신학교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줄고 있다고 합니다. ‘미친 짓’을 선택하려는 학생들이 줄고 있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기도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미친 짓’을 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가정에서 말씀을 읽는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미친 짓’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미친 짓’을 하지 못했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기도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미친 짓’을 몸소 행하셨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고, 죽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몸소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사제들이 참된 행복을 찾기보다는 세상의 것들을 먼저 찾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미친 짓’이 신앙의 기준으로는 ‘참된 행복’의 길입니다. 거름이 되기보다는 화려한 꽃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남에게 떠넘기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아야 하는데 세상의 창고에 보화를 쌓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 때문에 가슴이 벅차야 하는데 말씀이 바람처럼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서 촛불이 재가 되어야 하는데 기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형식과 관습의 ‘틀’에 갇혀서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몸은 세상의 것들에 머물면서 말은 천상의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제들이 있다면, 자비를 베푸는 사제들이 있다면, 온유한 사제들이 있다면,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제들이 있다면, 믿음 때문에 세상의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는 사제들이 있다면 그래서 ‘미친 짓’을 하는 사제들이 행복해 한다면 성소는 다시 불처럼 타오를 것입니다. 불쏘시개가 없는데 밑불이 없는데 불이 타오르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꿈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면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이웃을 위해서 자신의 살과 피를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어제 내가 보낸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 시간이 참된 행복의 시간이면 좋겠습니다. 어제 내가 했던 행동은 어떤 행동이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그 행동이 참된 행복의 행동이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기도에 머물며, 말씀을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