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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5:21-33절) 사랑의 회복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거나,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이 많고, 유명하다 해서 결코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 유명한 특별 호텔에서 잠자고, 비싼 고급술을 마시고, 호화로운 유람선을 타고, 경치 좋은 곳을 다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잠언17:1절)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을 누리려면,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었을 때입니다. 즉 진정으로 내가 다른 사람의 시랑을 받을 수 있고, 또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때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복음(福音)의 놀라운 능력은 우리 인생을 고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은 가장 먼저 우리 영혼부터 고쳐 놓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 것, 이것이 우리의 생명을 건진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은 우리의 부패(腐敗)한 본성을 하나씩 하나씩 고치기 시작합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 속에 있는 분노(忿怒)와 죄악(罪惡)된 습관과 더러운 정욕들을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恩惠)는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한 단계까지 회복시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 충만한 상태를 계속 지속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겉모양 즉 외모(外貌)를 치료하기 시작하는데, 그 첫 수술이 우리의 가정(家庭)치료입니다.
그중에서도 부부(夫婦)와의 관계, 또는 남녀(男女)간의 이성관계를 치료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내면(內面)이 겉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원리는 겸손(謙遜)입니다.
5:21절)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세상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원리는 남을 공격하고, 짓밟고, 빼앗고, 차지하려는 욕망(慾望)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힘이 센 사람이 이기고, 모든 것들 즉 좋은 것들을 모두 다 차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강한 자는 언젠가 자기보다 더 강한 자를 만나게 될 때, 실패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자기가 공격하고, 빼앗고, 차지했던 것과 똑같은 순서에 의해 자기도 공격당하고, 짓밟히고,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부메랑 원리)
그렇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을 사는 원리는 그리스도를 경외(敬畏)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이란 다른 사람을 주님 대하듯 공손하게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 세상에서 겸손(謙遜)한 사람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금방 무시를 당하고, 짓밟힐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겸순한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누구를 만나더러도 *저 사람이 우리 주님일 수도 있다*는 자세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속에 적어도 몇 퍼센트 주님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전혀 믿지 않는 사람도 그렇게 대할 때, 자기가 존귀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최고로 좋은 호텔 직원들이 대하는 태도를 보면 다릅니다. 그들은 찾아온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도록 친절하게 대 해 줍니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비싼 돈을 지불하고, 자꾸만 특급 호텔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을 만나서 잠시 대화를 나누어 보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겸손한 태도는 무더운 날씨에 시원한 냉수를 마시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고, 자신이 굉장히 존귀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Ⅰ.남녀의 바른 관계의 회복
최초 인간이 타락한 이후, 갖게 된 감정(感情)은 이 세상에서 생존(生存)하려면, 강(强)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모두 다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남아 있는 것이란 생존(生存)을 위한 본능적 사랑 일뿐, 진정한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랑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인간들은 살아남기 위해 동물(動物)과 같이 다른 사람과 투쟁(鬪爭)하고, 더 나이가 정복(征服)하고, 지배하고, 빼앗는 것, 이것이 본능(本能)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남녀(男女)관계에서도 남자(男子)는 여자(女子)를 지배하고, 강탈했고, 결혼을 어떤 정치적 거래나, 종족(種族)보존을 위한 제도로 전략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선물(膳物)은 남녀(男女)에게 사랑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창1:26절)남자와 여자를 만드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만드셨습니다. 즉 인간의 남자(男子)와 여자(女子)사이에는 거룩하고,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形像)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군가가 싫어졌을 때, 그 사람이 준 가장 좋은 선물(膳物)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타락(墮落)한 후,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인 남녀(男女)관계를 더럽히고, 파괴시켜서 가장 추하고 악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자신도 남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膳物)인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과 신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친구들끼리의 우정(友情)과 이성간의 사랑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친구들끼리의 우정은 자기의 있는 그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호감과 친밀감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정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성간의 사람은 서로가 소유(所有)하려는 사랑입니다. 즉 상대방의 인격 안에 내가 파고들어가 그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소유하고, 차지하려는 사랑이므로 자신의 겉껍질을 깨고, 상대방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성간의 사랑은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마음이 굉장히 아프고, 답답합니다. 이것이 곧 질투(嫉妬)의 감정입니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을 완전히 소유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분노(忿怒)의 감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성간의 사랑은 자신이 껍질을 깨고, 상대방도 껍질을 깰 때에야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대개 위기를 초래하기 쉽고, 실패할 경우, 마음의 심한 충격(衝擊)과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한 만큼 서로가 성숙(成熟)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다가 이제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존재를 귀하게 생각하는 것을 배우는 성숙함입니다.
하지만 결혼(結婚)은 단순히 껍질을 깨는 것만이 아니라, 한 몸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창2:21-22절)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하나님이 태초(太初)에 사람을 만드실 때, 남자와 여자를 똑같이 만들지 않고, 남자를 먼저 만드셨습니다.
남자(아담)가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물(生物)들의 이름을 다 지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아담)는 외롭고, 고독했습니다. 왜냐하면 여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아무리 강하고, 머리가 좋아도 반쪽에 불과 했습니다. 그는 나머지 반쪽을 만나기 전까지는 결코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자를 전신마취 시키고, 대수술을 하셨습니다. 그 남자(아담)의 배를 가르고, 갈빗대를 꺼내어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자가 태어나기 위해 남자는 큰 수술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남자가 될 수 있습니다. 즉 남편이 되려면, 대수술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남자가 한 여자를 책임지는 남편이 되려면, 총각 때, 가졌던 자기중심적 생각과 사고방식을 완전히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갈빗대란 뼈 중에서도 가장 약(弱)한 뼈입니다.
그런데, 갈빗대 안에는 심장(心臟)과 허파와 간(肝)과 대장(大腸)과 소장(小腸) 등, 중요한 기관(器官)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약한 여자 안에 남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넣어서 공짜로 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남자를 거의 죽게 하셔서 그 희생으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남자로 하여금 여자를 취하려면, 자기 자신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자신의 야망(野望)과 욕망(慾望)을 다 죽이지 않으면, 여자를 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이전에 가졌던 꿈과 취미와 욕망 등 모든 것들을 갈빗대와 함께 수술해버리지 않으면,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면서 남자는 힘으로 여자를 정복(征服)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여자에게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도록 육체적 사랑만 했고, 결국 성(性)을 상품화 했습니다.
지금도 포르노(porno)나 야한 영화나 작품들은 언제나 베스트셀러에 들어갑니다. 그것은 인간이 모두 성(性)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잘못된 방향에서 좋아하고, 즐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을 찾기 위해 남녀 사랑을 바르게 회복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Ⅱ.여성의 책임
우리가 남녀(男女)사이의 올바른 관계에 대해 말하려면, 반드시 남자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결혼(結婚)이나, 부부생활(夫婦生活)에서 모든 우선권(優先權)은 남자가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대로 여성에서부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2절)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질서(秩序)를 회복하는 일을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의문을 갖게 되는데, 왜? 다른 것은 다 남자부터 시작하면서 이 문제만은 여자에서부터 시작할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초대교회 안에서 여자들이 수적(數的)으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단 숫자가 많은 쪽(女子)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의 중요한 특징은 현실적인데 있습니다. 만약 교회에 나오지도 않는 사람을 두고,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일단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은혜(恩惠)를 받고, 변화되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의 특징입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깨달은 자부터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다른 사람을 징계(懲戒)하고, 탓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먼저 깨닫고, 은혜(恩惠)를 받고, 먼저 성숙(成熟)한 사람으로부터 실천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22절)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현대 여성들이 이 말씀을 들으면, 너무나도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服從)해야 하는 것은 여자가 남자보다 결코 열등(劣等)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남자보다 결코 열등(劣等)하게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즉 처음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실 때, 여자를 남자보다 열등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은 여자를 남자의 발가락의 뼈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남자의 가장 중요한 갈빗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남자보다 결코 못나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가지지 못한 너무나도 아름답고, 풍성한 자질(資質)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즉 사랑의 감정과 부드러운 감정, 그리고 인내심과 동정심, 남을 믿어주는 마음 등은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탁월(卓越)합니다. 여자가 남자에 비해 부족한 것은 오직 육체적 힘밖에 없습니다.
만약 여자가 남자보다 힘까지 강했더라면, 남자들을 모두 다 죽이거나, 노예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24절)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목적(目的)은 자신을 높이기 위해 살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결혼한 여자는 자기 남편을 인정해 주고, 그를 완성시키는 것이 기장 소중한 것입니다. 사실 남자는 여자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남자에게 가장 행복하고, 자신감이 생길 때는 아내의 칭찬과 인정을 받을 그때입니다.
만약 남편이 방향(方向)을 잃고, 헤맬 때, 신앙적으로 조언(助言)해 주는 아내는 백만 대군보다 더 낫습니다. 이런 여자 없이 성공한 남자는 한명도 없습니다.
잠언12:4절)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잠언14:1절)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그래서 아내는 남편을 성공(成功)하게 하고, 행복(幸福)하게 하는데, 탁월(卓越)한 은사(恩賜)가 있습니다.
여성이 가장 아름다울 때가 언제일까? 자기가 똑똑하고, 잘났다고, 남편을 업신여기고, 교만하여 우쭐댈 때가 아닙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아름다워도 조용히 남편의 의견(意見)에 귀를 기울이고, 칭찬해 주는 아내입니다.
이때, 아내는 정말 보석(寶石)같은 인격이 다듬어져 있는 여인입니다. 어떤 부인(婦人)은 남편이 순하고, 자기 말을 잘 들어준다고 마치 종 부리듯 남편을 부려 먹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악(惡)을 쓰면서 욕하고 저주합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악(惡)하고 교만(驕慢)한 여자입니다.
이런 사람을 잠언21:9절)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에게 복종(服從)한다고 해서 무조건 남편 앞에서 설설 기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Ⅲ.교회론 적 부부 관계
에베소서의 놀라운 특징은 그리스도인들의 결혼생활을 교회의 원리에 입각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가정은 하나의 작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23절)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삼각형(三角形)을 말합니다. 즉 ①아내와 남편의 관계 ②몸과 머리의 관계 ③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입니다.
①몸과 머리 관계란? 몸에 필요한 모든 정보(情報)는 다 머리에게 나옵니다. 만일 머리(腦)의 어느 한 부분이 잘못되어도 몸의 일부는 마비되고 말 것입니다. 즉 몸의 모든 기능은 머리에 의해 움직이기도 하고, 제한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모든 필요를 공급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구약 율법에서도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의 먹을 것과 입는 것과 그리고 성적(性的)인 필요 등을 채워주게 되어 있었습니다. 즉 남편은 자기 아내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몸은 머리에 붙어 있어야 하고, 붙어 있는 한 머리는 몸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②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란? 교회는 모든 필요를 그리스도로부터 공급받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모든 것이 와야 합니다. 즉 교회는 의도적으로 자신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고, 말씀에 자신을 제한시키려고 애쓸 때, 풍성한 성령의 역사가 더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내의 신앙이 깊어질수록 더 가정적이고, 더욱 남편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아내가 신앙이 깊어지면, 남편을 성자(聖者)와 비교하면서 그를 무시하거나,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남편은 자신감을 잃게 되고, 반발심으로 신앙을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여성은 지금까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면서 늘 의존적(依存的)인 상태에서 생활해야만 했습니다. 즉 어렸을 때는 부모에게 의존했고, 결혼하면, 남편에게 의존해야 합니다. 나중에 늙으면 자식들에게 자신을 의탁해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의 직업(職業)과 삶의 영역(靈域)을 따로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직업(職業)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자신의 직업(職業)없이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레위인들이었고, 또 그들 중에 있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주는 자들이었고, 또 그들의 영적(靈的)필요를 채워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들이 밭에 나가 일하고, 장사하여 돈 벌 동안 누군가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가정(家庭)안에서도 아내의 역할이 이런 레위인과 제사장과 같은 역할입니다.
결국 가정은 아내의 가치관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남편은 사회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세상의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내가 위로해 줄 때,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즉 아내의 신앙적 권면 한마디는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냉수와 같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온전하게 함으로써 자신을 완성시키고, 또한 아이들을 바르게 자라게 하는 현숙(賢淑)한 아내로써 가정(家庭)을 완성시킵니다(잠31:10-31절 참조).
여기서 *복종한다.*는 말씀에는 분별력과 설득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남편과 어떤 의견(意見)차이가 생겼을 때, 주님의 뜻을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일 때는 남편을 조용히 설득하고, 또 그가 마음이 변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忍耐)가 필요한 것입니다.
Ⅳ.남편의 책임
25절)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불신자 남자는 절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결혼(結婚)을 통해 상대방의 사랑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사실 이런 욕구(慾求)가 있기 때문에 이성(異性)에 관심을 갖고, 결혼(結婚)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感情)은 너무 빨리 없어집니다. 결국 사랑이란 헌신(獻身)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야망(野望)과 성공(成功)과 출세(出世)를 포기하고, 아내를 위해 희생(犧牲)할 수 있는 남자입니다.
요즘은 돈이 있고, 능력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남편은 모든 야망(野望)과 욕심(慾心)을 버리고, 아내 한 사람만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결혼할 때, 큰 대못 하나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정욕(情慾)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자기 부인 외(外) 다른 여자는 일체 좋아하거나 사랑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26-27절)이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주님께서 교회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셨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과거 주님 앞에서 너무나 추(醜)하고, 더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들을 씻어 깨끗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우리를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완전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주님은 남편 된 자들이 이런 식으로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남편이 아내를 매일 물로 씻어 주는 일일까?
주님이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아내의 진정한 필요가 다른데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편들이 아내를 26절)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라”는 것은 남편이 해야 할 일은 아내의 진정한 필요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물론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더 사랑해 주고, 물질적 필요를 채워주고, 자식들의 문제에도 더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 여자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마음속에는 단순한 감각적 필요를 떠나 깊은 영적(靈的)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자는 영적(靈的)필요가 채워질 때, 진정으로 행복(幸福)할 것입니다.
또한 남편이 해야 할 일은 아내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음의 상처나, 두려움이나, 부족한 부분을 사랑으로 감싸 주며, 고쳐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영혼의 세계를 잘 알고, 참된 자신의 가치(價値)를 알기 시작할 때, 엄청난 내면(內面)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그러면 아내 된 자가 원하는 것은 남편을 통해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恩惠)를 공급되고, 채워지는 이것입니다.
제대로 신앙을 가진 여자는 남편에게 깊은 영적(靈的)필요를 요구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기도하자고 하고, 예배 시간에 졸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물질적(物質的)축복부터 주지 않습니다. 먼저 영적(靈的)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교회는 너무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로 영광스럽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는 아름다운 모습* 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내에게 주신 축복(祝福)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를 위해 기도할수록 아내는 아름다워질 수 있고, 거룩해 질 수 있고, 완전해 질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아내는 교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여성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습니다. 여성은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여성들마다 자기 안에 꿈이 있습니다. 남편들은 그 꿈을 이루어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만들어지기에 따라 무한히 영광스럽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내입니다.
율법에서 최고의 계명(誡命)은“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8절)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필요를 채워주어야 할 대상입니다. 즉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잠이 오면 자야합니다.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몸같이 하라는 말씀은 아내의 필요를 먼저 채워 주라는 것입니다.
항상 아내의 상태를 살피고, 아내가 힘들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내의 필요를 먼저 채워주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 남편은 아내가 행복(幸福)해 하지 않고서는 결코 자기 혼자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평가받는 것은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많이 했느냐? 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남편이 아내를 위해 무엇을 희생했느냐? 는 것으로 판단하실 것입니다.
벧전3:7절)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사탄은 사람들을 방탕(放蕩)과 정욕(情慾)을 충동질하여 가정(家庭)을 파괴 시킵니다. 그래서 수많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식들이 집도 없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집이란 단순히 들어와서 잠만 자고 옷 갈아입는 곳이 아닙니다. 이곳은 사랑의 보금자리요, 축복(祝福)의 샘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아름다운 가정, 주님을 모시고 사는 복(福)된 가정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찬송가 559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가정의 달(4)부부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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