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 속의 구더기 한 마리
어릴 적 여름이면 어머니는 장독대에서 된장을 떠서 국을 끓이셨다.
나는 그 옆에 앉아,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떠낸 된장을 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국자로 된장을 퍼내실 때, 갑자기 국자 위에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속에서 하얀 구더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엄마! 된장에 구더기 있어요!”
나는 충격을 받아 소리쳤다. 그 묵직한 된장 속에서 구더기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순간, 머리가 멍해지며 그 장독의 된장을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실, 된장은 언제나 어머니가 정성껏 만든 것이었고, 우리 집 된장은 마을에서도 소문날 정도로 맛있었다.
나도 그 맛을 정말 좋아했다. 하지만 구더기를 본 순간, 그 모든 기억이 사라지며, 된장이 갑자기 불쾌하게 여겨졌다.
나는 그저 구더기가 움직이는 모습을 어쩔 줄 몰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내 당황한 표정을 보며, 국자에 구더기를 담아내고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된장을 떠내기 시작했다.
나의 놀란 표정을 본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구더기 한 마리 때문에 된장 못 먹으면, 손해 보는 건 우리야.”
어머니는 그런 말과 함께 여전히 차분하게 된장을 떠내시며, 그날 저녁에는 맛있는 된장국을 끓이셨다.
나는 여전히 구더기를 본 후, 그 된장을 먹을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지만, 어머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대로 된장국을 즐기셨다. 어머니의 권유로 나도 한 숟갈 떠먹었고, 그 국물은 언제나처럼 구수하고 진한 맛을 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어머니의 말이 음식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구더기 한 마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된장국은 여전히 맛있었고, 내가 걱정했던 것처럼 된장이 상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장독 속 된장의 깊은 풍미와, 어머니가 그 맛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을 쏟았는지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일을 겪고 난 후, 나는 어머니의 말씀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적용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실망이나 불편함을 겪으면
그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고, 그 순간을 피해 가거나 관계를 끊으려 한다.
그러나 그럴 경우, 한 가지 불편한 점 때문에 우리는 그동안 얻은 좋은 것들을 잃을 수 있다.
된장 속 구더기 한 마리로 그 장독의 된장을 버린다면, 어머니가 그동안 쏟은 시간과 정성이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작은 불편이나 실망에 휘둘려 그 관계를 포기하면,
그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신뢰와 소중한 감정을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어머니는 구더기 한 마리로 된장을 버리지 않았다. 그저 구더기를 건져내고, 남은 된장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셨다.
그 모습은 내게 큰 교훈을 주었다. 인생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어려움이나 갈등도 마찬가지다.
한 번의 실수나 불편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 문제를 해결한 뒤 남은 좋은 점들을 보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도 나는 내 마음속 장독을 들여다본다.
작은 불편이나 실망 때문에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본다.
된장 속 구더기 하나 때문에 된장 전체를 버릴 수 없듯, 사람들 사이에서도 작은 문제를 지나쳐가며,
소중한 인연을 지키고 이어나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 수필가 이남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