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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의 신앙 모습
딤전 3:8-13
8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딤전 3:8-13 / 집사도 감독과 마찬가지로 진지하고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과음하지 않고 부당한 이득을 탐내지 않으며 9) 믿음의 숨은 원천이신 그리스도를 정성과 온 마음을 다해 섬기며 깨끗한 마음을 소유한 자라야 합니다. 10) 누구를 집사로 임명할 때는 우선 그의 성격과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교회 안의 다른 일을 시켜 보시오. 그래서 그 일을 훌륭하게 해내거든 집사로 선정하시오. 11) 집사의 아내 역시 사려가 깊고 과음하거나 남의 흉을 보지 않으며, 모든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12) 집사는 한 사람만을 아내로 맞아야하며 자녀들이 순종하는 행복하고 원만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13)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물론 그 스스로도 주께 대한 확신과 신뢰가 더욱 강해져서 이중의 보상을 받게 됩니다.
집사는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일들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집사의 자격과 지위, 그 직분을 잘 감당한 사람의 상급을 말하고 있습니다.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8-10) ‘봉사하는 자’란 의미로 사용된 집사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사도행전 6장에서 발견되는데, 집사 임명의 목적은 실무적인 것으로 그들은 특별히 헌금을 분배하는 일에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임무를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인 인품이 잘 갖추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집사의 품성 목록은 감독에 대한 것과 유사하지만 몇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일구이언’ 즉 말에 진실성이 없는 수다쟁이,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은 집사 직분을 맡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술에 인박힌 사람’과 ‘더러운 이익’을 탐하는 사람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는 집사들이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그들의 직무를 감당하는데 그들에게 이런 죄악에 대한 유혹이 더 강하였기 때문입니다. 집사는 깨끗한 양심과 믿음의 비밀을 가지고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들의 충성스러운 삶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다고 판명되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은 집사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11-13) 어떤 이들은 여자들에 대한 특별한 명령을 집사들의 아내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합니다. 집사의 아내는 남편이 방문해야 할 일을 분담해서 담당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들은 집집마다 방문하는 일과 세례받으려는 여자 지원자들을 돌보는 일을 담당해야 했기에, 도덕적 품성을 잘 갖추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일에 충성된’ 즉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을만한 도덕적 신앙적 품성이 요구되었습니다. 감독과 마찬가지로 가정의 질서유지와 자녀를 잘 다스리는 것은 집사에게도 필요한 조건입니다. 집사제도의 목적은 감독직책으로 승급하기 위한 디딤돌이 아닙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큰 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적용: 하나님이 주신 직분은 선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당신의 언행심사와 가정생활, 인격과 양심은 검증의 과정이 있고 확신이 있습니까?
교회를 섬기며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사람의 평가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평가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화려함과 웅장한 건물을 보고 교회를 평가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은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높이며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 설 교 >
집사 직분
디모데전서 1 Timothy 3:8-16 / 최정인 목사
도입 Introduction: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So the Twelve gathered all the disciples together and said, ‘It would not be right for us to neglect the ministry of the word of God in order to wait on tables” (사도행전 Acts 6:2).
교회는 영적 기관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조직에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 조직이 가정이든, 비영리 단체이든, 영리단체이든 돈은 꼭 있어야 합니다. 한 조직의 재정 상태는 그 조직의 존속에 결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만일 한 조직이 지속적인 부도 상태에 있다면 결국 그 조직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교회는 비영리 단체이기 때문에 재정을 늘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교회에는 반드시 돈이 있어야 하고, 그 돈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이 돈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6장을 다시 봅시다. 막 태어난 예루살렘 교회는 아람어를 사용하는 본토인과 헬라어를 사용하는 귀환인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이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모든 제자를 모아 회의를 열었습니다. 사도들은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을 두 가지로 구분하였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이 일을 자신들의 일로 규정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성도를 구제하고 이웃을 섬기는 일입니다. 사도들은 이 일을 위해 새롭게 일곱 명을 제자들 가운데서 추천을 받아 선정하였습니다. 본토인인 사도들은 열두 명이고, 새롭게 뽑힌 귀환인 지도자는 일곱 명입니다. 이것으로 본토인과 이주인 사이의 비율이 대략 12:7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습니다. 3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성도와 이웃을 섬기는 교회의 일을 위해 택함을 받는 사람은 믿음이 좋고 지혜롭고 칭찬받는 이들이었습니다. 이 일곱은 이 당시에는 집사라는 칭호로 불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맡은 일의 성격으로 볼 때, 이들을 집사로 소급하여 이해하는 것은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이제 4절을 봅시다. “우리는 오직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주로 재정을 사용하여 섬기는 일을 일곱 분에게 분담한 후, 사도들은 기도 사역과 말씀 사역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씀으로 대표되는 목사의 사역과 재정으로 대표되는 집사의 사역은 사도행전 6장부터 분명하게 구분되어 발전하였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디모데전서 3:1-7에서 감독, 즉 목사의 직분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디모데전서 3:8-16에서 “집사 직분”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눕니다.
1.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8-10).
집사(deacon)로 번역되는 헬라어는 “디아코노스”(diakonos)입니다. 그러니까 영어 deacon은 헬라어 직역입니다. 의미를 번역한다면 종(servant), 사역자(minister), 행정가(administer), 직원(officer), 또는 돕는 자(helper)가 됩니다. 디아코노스는 “디아”(dia)와 “코니스”(konis)가 합해진 단어입니다. 디아는 “충분히, 철저히, 완전히”(throughly)라는 뜻입니다. 코니스는 “먼지”(dust)라는 뜻입니다. 이 두 단어 사이의 의미를 연결하면 어떻게 될까요? “부지런히 움직임으로 완전히 먼지를 일으키는, 즉 그럴 정도로 섬기는” (thoroughly raise up dust by moving in a hurry, and so to minister) 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는 먼지를 일으킬 정도로 바쁘게 섬기는 모습이 그려지는 단어입니다. 물론 이 단어도 교회에서 사용하기 이전부터 이미 헬라어로 사용되던 것을 교회에서도 사용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1-7에서 감독 즉 목사의 자격 요건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8-12에 열두 가지 정도로 집사의 자격 요건을 열거합니다.
(1) 정중하고: 집사는 그 공동체에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2) 일구이언하지 아니하고: 한국어로 “일구이언”이라 번역된 “다이로구스”(dilogous)는 신약성경에 단 한 번 이곳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 그 의미는 정확하게 “하나의 입으로 두 가지 말을 하는”(double-tongued)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집사는 정직하고 신실하고 진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3)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이 말씀의 의미는 술에 붙들려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술이 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죠. 감독의 자격에서도 “술을 즐기지 아니하고”라는 조건이 있듯이, 집사도 술을 다스릴 수 없다면 교회 공동체를 섬길 수 없습니다. 공동체에서 함께 예배하며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실 때, 집사가 술을 다스리지 못하여 과음하고 취한다면 그 예배는 엉망진창이 될 것입니다. 평소에 술을 절제하여 마실 수 있어야만 집사로 교회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금주가 오히려 건강에도 좋고 주님을 섬기는 면에서도 좋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하여 금주는 교회의 좋은 전통과 미덕이 되었습니다.
(4)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교회의 재정을 맡는 일은 집사의 고유한 임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일 집사로 섬기는 분이 더러운 이를 탐한다면 본인과 교회가 함께 망하게 될 것입니다.
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5) 깨끗한 양심에: 한 사람이 깨끗한 양심을 가졌는가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드러날 것입니다. 그래서 역시 집사도 새롭게 믿기 시작한 분은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난 후에 그의 고결함이 드러난 후에 선정될 수 있습니다.
(6)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 교회 공동체를 섬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믿음을 소유한 분이 집사가 되어야 합니다.
10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7)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공동체에 의하여 이상의 여섯 가지 정도로 구분되는 자질이 드러났는지를 점검한 후, 그에 적합한 이를 집사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에게도 교회에도 집사의 직분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신자를 일등 신자와 이등 신자로 차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를 선정할 때, 그 공동체가 기도하며 신중하게 이러한 자격 요건을 갖춘 이를 안수하여 집사로 세워야 합니다.
2. “한 아내의 남편” “the husband of but one wife” (11-13).
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8)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여기서 “여자들”을 집사들의 아내로 읽어야 하는지, 아니면 여자 집사들로 읽어야 하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집사의 아내를 의미한다면, 집사 자신의 자격 요건에 그의 아내의 자격 요건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여자는 집사로 세울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자 집사로 이해한다면 네 가지로 여자 집사에게 요구되는 자격을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해하든 이 네 가지는 여자 성도에게 우선하여 주어진 말씀입니다. 물론 남자 성도에게도 해당합니다. 정숙하다는 것은 8절에서 “정중하고”라고 번역한 것과 똑같은 단어, 똑같은 의미입니다. 공동체에서 존경을 받는 분이 여자 집사로 세움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9) 모함하지 아니하며: 여기서 모함한다는 단어는 형용사 “디아볼로스”(diabolos)입니다. 이 단어가 명사로 사용될 때는 “한가운데 던지는 자”(literally someone who “casts through”)로 영어 “데블”(devil)의 어원입니다. 그러니까 모함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을 망하게 할 목적으로 하나님께 고소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에 어떤 거짓된 내용을 던진다는 의미입니다. 단지 하나님과 사람 사이뿐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이렇게 모함하는 사람은 여자이든 남자이든 집사로서 세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10) 절제하며: 2절에서 감독의 자격에 절제가 나왔듯이 절제는 모든 성도가 갖추어야 할 덕목입니다. 특별히 여자 성도가 절제의 덕목을 자신에게 적용할 때, 많은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11) 모든 일에 충성하는 자: 어떤 일을 맡아도 신뢰가 되는 사람이 여자 집사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12 /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12)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 한 아내의 남편 혹은 한 남편의 아내가 집사의 자격 요건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분도 남녀를 불문하고 집사로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아내의 남편이나 두 남편의 아내는 집사로 세울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4-5에 나온 감독의 자격 요건에서도 거의 같은 내용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이며 교회는 큰 가정입니다. 집사이든 목사이든 가정을 잘 다스리는 것과 교회를 잘 섬기는 것은 서로 큰 연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기본적 의미는 먼저 가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교회에서 직분을 받아 섬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이제 사도 바울은 13절에서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한 분들이 얻는 두 가지 유익을 말씀합니다. 먼저 그들은 아름다운 지위를 얻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의 영광스러운 지위입니다. 섬기는 이에게 주어지는 영예입니다. 둘째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그들의 믿음이 더욱 확실해지는 유익을 얻습니다. 믿음으로 섬길 때, 믿음이 더 좋아집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섬길 때, 더 많은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섬기는 영적 유익의 선순환이 이루어집니다.
3.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14-16).
이제 사도 바울은 14-16에서 성도와 교회와 주님과의 관계를 말씀합니다. 먼저 14절에서 사도 바울은 직접 에베소 교회와 디모데를 방문하기를 원하는 그의 소망을 얼마나 간절한지 편지로 설명합니다.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자신이 방문하기 전에 편지가 먼저 도착하여 디모데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집을 섬겨야 하는지를 글로 알게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집은 기초와 기둥과 벽 그리고 지붕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집의 재료는 교회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그 에베소를 중심으로 하는 여러 교회의 감독과 집사들을 세우고 그들과 함께 이 하나님의 집이 튼튼하게 세워지도록 해야 합니다.
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이제 16절을 봅시다. 교회는 결국 성도의 공동체입니다. 한 사람의 성도는 경건의 비밀로 세움을 입습니다. 경건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경건의 비밀을 여섯 가지로 구분하여 제시합니다.
(1)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는 요한복음 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하였고, 또 로마서 1:3에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 몸으로 그 생명으로 그 보혈로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기 피로 우리를 사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0:28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우리 주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성령과 함께 가르치시고, 성령과 함께 사역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이는 로마서 1:4에서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3)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우리 주님은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4)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열두 사도와 사도 바울과 많은 이름 없는 전도자는 경건의 비밀이신 주님을 그들이 갈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전했습니다.
(5)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그리하여 사람이 사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세상과 교회는 이렇게 반드시 구분되어야 하지만,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떠나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이 교회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6) 영광 가운데 올려지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장사되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건의 비밀을 믿음으로 가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의 구성원입니다. 그 교회 공동체를 섬기는 이가 곧 집사요, 목사입니다.
결론 Conclusion: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And I tell you that you are Peter, and 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ades will not overcome it” (마태복음 Matthew 16:18).
마태복음 16장을 봅시다. 13절입니다. 우리 주님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세상이 예수님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이제 15절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우리 각자가 주님을 누구로 고백하는가는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경건의 비밀입니다. 16절입니다. 주님의 물으심에 베드로가 가장 먼저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는 주님을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습니다. 17절을 봅시다. 주님은 베드로의 대답에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성령을 통하여 알게 하신 이는 하늘에 계신 우리 주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18절을 봅시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는 주님의 교회를 이루는 반석의 첫 번째 재료가 됩니다. 베드로는 자갈돌도 되고 반석도 됩니다. 우리가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하고 따를 때, 우리도 또 하나의 베드로가 되어 주님의 교회의 구성원이 됩니다. 그럴 때, 그 교회는 사탄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하나님의 공동체가 됩니다. 우리는 이미 29년 동안 배톤루지한인중앙교회라는 신앙 공동체로 주님을 섬겨왔습니다. 이제 곧 있을 29주년 기념부흥회를 위하여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가 각자 자신의 직분으로 충성스럽게 주님을 섬김으로 더욱 큰 믿음의 복을 받아 이 한주도 더욱 큰 확신으로 주님 앞에 살 수 있기를 위하여 다 함께 기도합시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딤전 3:8-10 / 양향모 목사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제사 드리는 방법을 소상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교회나 성도들에게는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는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형식대로 잘 드렸지만 그 제사를 왜 드려야 하는지 의미는 잘 모르고 그저 형식적으로 가식적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약시대의 예배는 우리 성도들이 순서를 정하고 시간을 정하고 드립니다. 외형적인 것보다는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바르게 알고 진심으로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예배의 형식이나 순서보다는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일에 수종 드는 사람들의 직책이나 그들이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와 같은 직책을 주시고 그들이 하는 일도 뚜렷하게 구별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일하는 직분이나 하는 일에 관해서는 자세하게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구약시대의 직분자들이 직분을 이용해서 자기의 이익을 챙기고 권리를 행사함으로 돌보아야 할 백성들을 오히려 착취하고 억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새로운 교회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목사나 장로 집사나 권사를 비롯한 여러 직분을 정하고 선출하거나 임명합니다. 시대에 따라서 교회의 형편에 따라서 성도들을 잘 섬길 수 있는 직분자들을 세워서 일하게 합니다.
구약시대 직분자들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권위를 내세워서 군림하지 않고 봉사자가 되어서 성도들을 잘 보호하고 바른길로 인도하는 직분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우리가 목회 서신인 디모데전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기록하여 서신으로 보내준 것입니다.
그 디모데전서 3장에는 교회의 직분자의 자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독과 집사라는 직분을 가진 사람이 갖추어야 할 자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감독과 집사는 원래 직분의 명칭이 아닙니다. ‘감독’이라는 말은 목사나 장로 같은 어떤 직책을 말하기보다는 직책이 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교회의 지도자는 세상의 관리들처럼 권위를 내세우고 백성을 지배하는 사람이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살펴주고 보호하고 인도하는 일을 했습니다.
집사라는 말도 오늘날 교회의 집사 직분을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집사로 번역된 헬라어는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라는 단어입니다. 디아코노스라는 헬라어에서 디콘(deacons)이라는 영어 단어가 나왔습니다.
이 단어는 집사라는 단어 외에도 봉사자, 섬기는 자, 하인, 일꾼, 사역자 등으로 번역된 단어입니다. 집사라는 직분이 어떤 자세로 일을 하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집사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영광스러운 직분이기는 하지만 군림하고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인처럼 일꾼처럼 섬기고 봉사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배운 사도행전 6장에서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를 선출하여 임직하였습니다. 그 초대교회 일곱 집사라고 불리는 직분이 우리가 말하는 집사는 아닙니다. 그들을 우리나라 말로 집사라고 번역된 곳은 없습니다.
사도들이 교회를 시작하자 많은 성도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들 중에는 교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말씀 전하고 기도하는 일이 너무나 바쁜데 이런 구제의 일까지 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행6:2)라고 하면서 성도 중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 명을 뽑아서 세웠습니다.
“접대를 일삼는”일을 이 일곱 사람에게 맡겼는데 “접대를 일삼는”이라는 이 말씀이 식탁 봉사라는 뜻이고 구제라는 뜻인데 오늘 본문의 집사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때로는 이 일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너무나 귀한 일이기 때문에 사역자라고 번역되기도 했고 그 하는 일의 성격이 섬기는 일이기 때문에 종, 일꾼, 봉사자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집사는 한없이 영광스러운 직분이지만 봉사하고 섬기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집사의 자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단 집사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주님의 일을 하는 모든 봉사자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성도들의 기본자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본문 8절 말씀에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집사들의 자격을 말하면서 가장 먼저 “정중하고”라고 했습니다. 정중하다는 말은 품위가 있고, 신중하고, 단정하고, 진지하고, 존경받을 만하다는 뜻입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집사직의 유래는 식탁 봉사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구제하는 일과 성도들의 헌금을 관리하여 적절하게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당의 관리나 이런저런 사소한 일까지 맡아서 하는 직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일이 허드렛일이나 하는 그런 일은 아닙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귀한 일이고 교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소중한 일입니다.
이런 소중한 일을 함에 있어서 예의를 갖추고 정중한 몸과 마음 자세로 일을 하야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례하게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소중한 일을 하는 사람답게 예의가 바른 정중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대접을 받거나 구제나 도움을 받을 때 그런 도움을 주는 사람의 자세가 참 중요합니다. 주는 사람이 어떤 자세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받는 사람의 마음의 느낌이 매우 다릅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그냥 주는데 감사하면서 받으라고 한다면 받는 사람의 마음이 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도움을 받지만 도움을 주는 사람이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고 봉사를 한다면 받는 사람이 마음이 매우 기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도 예의를 갖추고 정중한 자세로 살아가면 주변의 사람들에게 매우 큰 기쁨을 주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만나는 사람도 기쁘고 우리 자신도 기쁘고 모두가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옛날에는 이런 예의를 중요하게 여기고 예의를 중심으로 교육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배운 사람은 예의가 바른 사람이고 예의가 바른 사람을 보면 좋은 가문의 자손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오늘날은 학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다 예의가 바른 것은 아닙니다. 예의는 학생들이 배우는 과목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고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의 바르게 정직하게 살면 가난해지고 출세도 하지 못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예의가 바르지 않는 사람이 더 출세하고 더 잘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런 예의를 갖추고 바르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귀한 신분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처럼 아무렇게나 살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예의를 다 배울 수는 없지만 중요한 세 가지만 있으면 훨씬 좋은 사람이 될 거라고 합니다. “삼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사와 감사와 봉사를 삼사라고 합니다. 성경 어느 한 곳에서 말씀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 여기저기에 많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인사를 잘하면 훨씬 더 예의 바른 사람이 됩니다. 마음속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사람을 만날 때 인사를 할 줄 모르면 사람들이 예의가 없는 사람으로 오해합니다. 더 자상하고 더 반갑게 인사를 잘하면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인사드리는 것입니다.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모아서 하나님께 예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사를 잘하는 것 즉 예배에 성공하는 것이 신앙의 성공입니다. 사람에게 인사를 잘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성공입니다.
감사를 잘하면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칭찬을 받습니다. 감사를 잘하기 위해서 늘 마음속에 모든 일에 감사하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감사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잇는 통로와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하시고 더 좋은 것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를 서로 이어주는 것도 감사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때 더 가깝고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좋은 사람이 됩니다. 무슨 일이든지 앞장서서 하고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려는 마음을 가질 때 사람들이 예의 바른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 본문에서 말씀하는 정중한 사람이고 교회의 일꾼으로서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의 일은 이런 예의를 갖춘 사람이 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본문에 집사의 자격을 말하면서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한입으로 두 가지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중하게 품위 있게 사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언어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수준을 보아서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언어생활이 그가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았는가를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투리 쓰는 것을 보아서 그 사람의 고향을 알 수 있고, 그가 자주 쓰는 언어를 통해서 그의 직업이나 배움의 수준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언어가 고상한가 아니면 저속한가를 보고 그 사람의 인격을 판단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언어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언어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입으로 두 가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어떤 사람에게도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언어의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신앙고백을 통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고백함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신앙고백이 상황에 따라 바뀌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나 밖에 나가서나 언제나 우리의 신앙고백은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에 나가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처럼 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 있어서도 일구이언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한번 한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말을 하는 사람은 별 의미 없이 한 말이라도 그 말을 듣는 사람은 확실하게 그렇게 믿기 때문에 말을 할 때 잘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말이 한결같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을 신뢰하게 되기 때문에 말은 참 중요합니다.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술에 대해서는 앞서 감독에 대해서 살펴볼 때 잘 살펴보았습니다. 감독은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술을 즐기지 않는 것이나 술에 취하지 않는 것이나 술에 인박히지 않는 것은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술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기쁨이나 몸의 건강을 위해서 주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술에 빠짐으로 인해서 오히려 건강도 해치고 이런저런 죄를 짓게 되는 악한 것으로 변하고 맙니다.
본문에서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라는 말은 술 마시는 일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며 과음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술에 중독되지 말아야 한다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술을 즐기고 술 마시는 일에 빠져 중독이 된 사람은 술에 취해서 사는 날이 많아집니다. 술에 취해서 제일 잘못하기 쉬운 것이 언어입니다. 술 취한 사람은 횡설수설하고 말의 실수를 많이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아예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술을 마시면 한두 잔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취할 때까지 먹어야 끝납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 대부분은 술에 어느 정도 중독이 되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술을 마시려고 하기 때문에 아예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집사는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더러운 이”는 부끄러운 이익이라는 뜻입니다. 부정한 돈, 부당하게 얻은 이익이라는 뜻이며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행위를 말합니다.
감독의 자격을 말할 때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돈을 사랑하기는 하되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력을 해서 정당하게 돈을 벌어야지 수고하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는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기의 지혜라는 말이 있는데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투자하는 것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씨를 뿌리는 대로, 수고한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대로 살면 이 세상의 삶은 망하지 않습니다. 이 법칙을 무시하고 투기를 하고 일확천금을 노리다가 번번이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법칙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완전히 공짜입니다. 행한 대로가 아니라 우리의 행함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거꾸로 생각합니다. 구원은 노력해서 행위를 통해서 얻으려 하고 세상 복은 기도해서 은혜로 받으려고 합니다. 구원은 은혜로 세상의 부와 재물은 노력해서 땀을 흘린 대로 얻는 것입니다.
세상은 노력 없이 부당하게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부정부패로 돈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질서가 무너지고 부정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돈 때문에 많은 다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돈을 정당하게 사용하지 않고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집사는 특별히 구제와 재정을 취급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물질관이 바른 사람이어야 합니다. 돈을 효율적으로 잘 써서 일을 잘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돈을 욕심내서 부당한 방법으로 자기 이익을 삼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교회의 직분자가 특별히 봉사의 직분을 맡은 사람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집사 직분을 맡은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런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직분자가 되려면
딤전 3:8-16 / 서명성 목사 / 팔로마한인교회
어떤 회사에서 여직원을 뽑는 구인 광고가 나왔는데 그 자격을 보면 이중 언어를 구사해야 하고 해당 분야 3년 이상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구인광고를 보고 온 여인이 아무리 예쁘고 요리를 잘해도 회사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 회사의 직원에 뽑힐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을 수 있으나 교회의 직분자가 되기 위하여 성경에서 제시하는 자격이나 덕목을 갖추어야 합니다. 오늘은 공동의회에서 교회를 섬길 직분자들을 선출하기에 지난주에 이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직분자들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봅니다.
디모데 전서 3장 2절에서 감독이 단수로 표현된 반면, 8절에 보면 ‘집사들’ 하면서 복수로 기록되었습니다. 감독은 한 지역에 여러 가정교회를 전체적으로 지도하는 역할을 했던 반면, 집사는 감독을 도와 성찬이나 구제의 일을 맡아 섬겼는데, 각 가정교회마다 여러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집사로 번역된 디아코노스는 문자적으로 ‘돕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구체적으로는 감독을 돕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그래서 집사의 자격과 감독의 자격을 비교해보면 대체적으로 비슷합니다. ‘이와 같이’라는 표현도 이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집사들의 자격을 보면 감독의 자격에 비하여 요구되는 항목이 작지만 그렇다고 집사직이 감독직보다 덜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장로, 권사와 집사 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는 직분이므로 자신들의 직분에 대한 특권의식을 지니기보다는 더욱 섬기고 낮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들이 오직 기도와 말씀전하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행 6:4), 집사들은 교회 안에서 재정과 구제를 포함하여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일에 참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복음전도자로서의 일을 하기도 하였는데, 빌립과 스데반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난 주간 살펴본 감독은 오늘날의 상황에 비추어보면 장로보다는 목회자에 더 가깝고, 본문에 나오는 집사는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임명하고 있는 장로나 안수집사와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바울이 제시하는 집사의 자격은 어떠합니까?
1)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합니다
바울은 집사의 자기 관리에 대해 네 가지를 언급합니다. 행동과 말이 세상과 교회 안에서 바른 모범을 보이지 못하는 사람, 자기관리나 절제가 부족한 사람은 집사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 정중하기
집사는 교회를 몸으로 섬기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정중함을 제일 먼저 언급한 이유는 집사가 이웃을 섬기는 직책으로서 이웃의 필요를 살피고 헤아리는 마음가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정중’으로 번역된 헬라어 셈노스는 ‘존경할 만한’, ‘위엄 있는’, ‘공경할 만한’이란 뜻을 가집니다. 같은 단어를 여자에게는 ‘정숙’으로 번역합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의 군대귀신 들린 사람을 처음 만나셨을 때 옷도 벗고 소리도 지르면서 광기를 부렸습니다. 그러나 그에게서 귀신들이 모두 다 나갔을 때 그는 옷을 입고 단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집사가 될 만한 사람은 세상적인 광기와 때가 완전히 벗겨져서 하나님 앞에 태도나 자세가 변하여 범사에 진지하고 사려 깊어야 합니다. 집사는 함부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해서는 안 되고, 도리어 그들의 믿음을 존중하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섣부른 정죄나 판단은 자칫 사람들을 실족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신중해야 하고 언제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집사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기
말을 통해 생각을 전달하고 다른 이들의 슬픔을 위로하기도 하지만, 말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말이 진실을 전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사실을 왜곡하는 거짓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혀를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약 3:8)이라고 하면서 말의 독성을 경고합니다. 야고보가 볼 때 참을 수 없는 것은 한입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하면서 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인하여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섬기는 자가 상황에 따라 말이 달라지고 사람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르면 곤란합니다. 자꾸 거짓말을 하여 말에 신뢰가 없다면 집사의 자격이 없습니다. 집사는 언어 사용에 신중하여 사려 깊지 못한 말로 공동체를 어렵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 덕이 되고 기쁨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낙심한 자에게 소망을 주고 어둠 가운데 있는 영혼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사역자로 부르실 때에 먼저 거룩한 제단의 숯불을 그의 입술에 닿게 함으로 그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에서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혀는 작지만 영향력이 큽니다. 혀는 필요하지만 위험합니다. 혀는 길들이기 어렵습니다.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하며 절제된 언어생활을 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말, 감사하는 말, 찬양하는 말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칭찬과 격려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되, 인생을 황폐케 하는 말(비방, 멸시, 조롱, 더러운 말)은 피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 성령의 역사가 메마르지 않도록 회개를 통하여 자신을 비우고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능력으로 채움 받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성숙한 인격이 배어난 언어생활을 통하여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를 만들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 술에 인 박이지 않기
집사들은 깊은 신앙적인 체험을 가지고 품행 특히 술 문제에 관하여 깨끗해야 합니다. 나는 술은 먹으나 인 박이지는 않았으니 괜찮다고 자신을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진리를 우리 삶 가운데 적용할 때 문자 그대로의 적용이 아니라 그 원리를 깨달아서 제대로 적용해야 합니다. 지나친 것은 아니함만 못합니다. 바울은 이미 감독의 자격을 다룰 때, 술 문제가 그리스도인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가져다주는지에 관하여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말하면서 술과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표현이 나옵니다. 감독에게는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not addicted to wine)”라고 한 반면에 집사에 대해서는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며(not addicted to much wine)”라고 되어 있습니다. 감독에게는 술을 가까이하지 말라하고, 집사에게는 과음을 하지 말라는 인상을 줍니다. 목회자는 주로 믿음의 사람들과 접촉하기 때문에 술의 유혹을 덜 받는 편이지만 집사를 포함한 성도들은 사회생활을 통해서 불신자들을 많이 대하고 술의 유혹을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술은 모든 성도들에게 언제나 경계의 대상입니다.
•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 않기
집사들은 감독을 도와 구제와 재정과 관련한 직무를 맡기에 이웃의 필요를 살피고 헤아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또한 부정한 이를 탐하지 않고 맡겨진 모든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이익을 탐하는 자가 자신의 것을 제대로 나누어 줄 수 없고, 교회의 재정을 마음대로 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많이 갖고 싶다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주인 되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주권을 맡기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삶입니다. 소유의 욕망을 극복한다면 다른 것들은 대개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다른 분야에서도 자기를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성도들이 자기 소유를 나누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은 집사의 직무 중에서 핵심 사항입니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집사는 오직 자신을 온전히 내어 줄 수 있는 헌신적인 자라야만 합니다.
2)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합니다
세상의 양심이란 공중도덕과 법규를 지키는 것, 타인에 대한 진실함 등을 들 수 있겠지만 신앙양심이란 하나님께 대해 부끄러움이 없는 신실함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양심을 버린 것을 믿음에서 파산하였다고 말하고 거짓교사들은 양심이 화인 맞은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바른 신앙양심을 가진 자들은 동시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들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말과 행실의 신실함으로 복음의 진리를 나타내는 경건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집사에게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많은 일로 분주하기 말라고 하시면서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이란 사람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도 발견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계시로만 알려집니다. 이 비밀은 성령의 조명으로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입니다.
3) 시험을 거쳐 증명되어야 합니다.
집사의 직분이 귀한지라 집사를 선택할 때 그들이 성경적인 기준에 합당한가 먼저 시험하여 보고 합당하면 직분을 맡게 할 것을 사도 바울은 권면합니다. 사실 교회들이 직분자들은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가에 대한 충분한 사전교육이나 강조 없이 쉽게 직분들을 줌으로서 임명된 사람도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거나 교만하여져서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로 번역되어 있는데 ‘최우선적으로’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집사를 세울 때도 성품과 언행, 물질과 진리에 대한 태도, 교회 안팎의 평판 등을 두루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하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겉모습만 가지고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좋지 않은 동기를 가지고 교회에 들어와서 열심을 내다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따라서 공동체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 집사 직분을 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다른 교회에 다니다가 전입해 온 집사라 할지라도 검증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왜 교회를 옮기게 되었는지, 전에 있던 교회에서는 그 직분을 어떻게 감당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귀는 교회 안의 직분자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지금도 쉬지 않습니다. 보다 견고한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서 그 일꾼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 힘써야만 합니다.
- 여자들에 대한 권면
초대교회는 여성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의 시기나 미움으로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빌립보교회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갈등이 대표적입니다. 바울이 세 번째 선교여행 도중에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기록하는데, 이때 그가 로마서를 전달할 자로 겐그레아 교회의 여집사 뵈뵈를 추천해 보낸 것을 보면, 그 당시 교회에 여자 집사가 존재했던 것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자들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여자가 여집사를 말하는가 아니면 남자 집사들의 부인을 말하는가는 논쟁이 있지만 대부분의 남자 집사들의 아내가 집사이기에 그건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자들도 일정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 기준은 남자 집사들의 것과 비슷합니다. ‘정중’함이 여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여자집사들도 신중하고 사려 깊어야 합니다. 남자집사들이 일구이언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여자들도 남을 모함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함이라는 것은 남의 좋지 않은 것을 들추어내어 떠벌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여자들은 까칠해서 문제만 지적하고 선동을 하기 쉽습니다. 작은 일도 큰일처럼 호들갑을 떨게 해서 풍파를 일으키려 합니다. 야고보는 이런 말이 지옥에서 나오는 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자 집사들도 입이 무거워야 합니다.
4) 가정생활에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집사들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일과 다스리는 일을 하는 감독을 돕는 봉사자이기에, 이들의 자격 요건도 대체로 감독의 자격과 일치합니다. 특히 가정생활과 관련해서는 더 그러합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 된다는 것은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잘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지만 마음은 따로 사는 부부들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더러 있습니다. 적어도 집사라면 가정생활에 있어서 성경적인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집사가 얻는 유익
바울은 직분 수행에 따른 보상과 결과를 언급함으로써 교회 구성원들이 집사 직분에 기꺼이 참여하도록 동기부여를 합니다. 시험을 통과해 집사 직분을 잘 감당하면 큰 유익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의 큰 담력입니다. 집사 직분은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운 것이기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영예로운 지위입니다. 예수님께서 므나 비유를 통해 어떤 귀인이 왕위를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에 갈 때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고선 떠났습니다. 나중에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 왔을 때 한 종이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다고 하자 주인은 잘 하였도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였고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 대해 다섯 고을 다스리는 권세를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직분을 잘 감당한 성도에게 아름다운 지위를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0장 6절에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는 것 역시 아름다운 지위를 얻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섬기면서 진리의 능력과 역사를 더 분명하게 경험할 수 있기에, 직분을 잘 감당할 때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은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높이며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집사의 직분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며,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충성해야 합니다.
이 집은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작은 교회, 큰 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가 중요합니다. 팔로마한인교회는 기본에 충실한 건강한 교회를 지향합니다.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는 교회, 말씀으로 충만한 교회,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 아름다운 헌신이 있는 교회,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교회, 이웃과 더불어 숨 쉬는 교회, 가정이 든든히 서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가진 진리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이 진리를 믿는 사람만이 경건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진리의 기둥과 터로 삼으신 것이 교회이기에 주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은 교회의 사명 중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바울은 그가 전하는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종종 하나님의 비밀 혹은 그리스도의 비밀로 묘사했습니다. 그 비밀을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해서 여섯 단계로 제시합니다.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영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으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열방 중에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은 자 되셨고, 영광 가운데 올림 받으셨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널리 알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습니다. 그러려면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터가 되고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말씀가운데 바로 설 때 교회가 교회답고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이 맡겨주신 전도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은혜스러워야 하고 가장 사랑이 충만한 곳이어야 하는데 때로 교회에서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도 합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 안에 분쟁을 일으켜서 교회를 교회답지 못하게 합니다. 특히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 파가 갈려 싸우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것은 일반 성도들이 아니라 직분자들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성도들을 섬기고 가르치는 일에 본이 되도록 부름을 받은 목회자와 장로, 권사, 집사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혀 있지 않을 때 교회는 곤경에 빠집니다. 교회를 위해 가장 많이 헌신하고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본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올바른 섬김의 정신없이 마지못해 하는 허울뿐인 섬김을 보여준다면 다른 지체들이 그들을 통해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주님이 그 모습을 기뻐하실까요? 진정이 실리지 않는 습관적인 섬김, 의무감에 하는 섬김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용서 받아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나보다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고 겸손으로 허리를 동일 때 사탄이 틈 탈 기회는 적어집니다.
사무엘상 2장을 보면 하나님은 엘리 가문의 멸망을 선포합니다. 영적인 특권을 권력으로 착각한 자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엘리 가문이 제사장의 직분을 얻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고 엘리 가문의 특권이었습니다. 그 특권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봉사이지 권력이 아닙니다. 그러나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 특권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권력으로 사용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주님의 몸 된 교회이지 자기를 과시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우리의 직분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섬기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지 신분상승이나 권력을 휘두르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영적 권위는 힘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섬김에서 나타납니다. 우리가 가진 직분을 잘 수행하기 위해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먼저 주님의 진실한 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며 구원을 베푸신 은혜에 감격하여 주님과 그의 몸 된 교회를 섬기려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세상에서는 남을 지배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남을 섬기는 자를 높이 평가합니다. 많이 준 자에게 많이 찾으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입니다. 맡긴 자에게 바랄 것은 충성이라 하였는데 하나님은 내게 이러한 직책을 맡겨 주셨는데 나는 과연 얼마나 충성하고 있는지 우리의 신앙생활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의 기준에 합당한 분들이 교회의 지도자들로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 선출된 분들이 앞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잘 훈련받고 사역에 임하도록 격려하시고 기도합시다. 디모데 전서 3장에 언급된 지도자의 자질과 덕목은 우리 모두가 갖추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성도들이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참된 제자가 되기를 결단하고 주님의 나라와 그분의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는 일꾼들이요 제직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일꾼
딤전 3:8-13 / 이정선 목사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사도들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을 때, 교회에 일꾼들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과 빌립 등 일곱 사람을 집사로 선출했습니다(행 6:5-6). 스데반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고, 빌립은 바울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가장 열성적이고 탁월한 전도자였습니다. 이 집사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예루살렘 교회는 조직이 정비되고 사역이 질서와 규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전통이 되어 교회에서는 평신도 가운데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집사로 세워 교회 안팎의 제반 업무를 담당하게 해 왔습니다.
집사(deacon)라는 단어는 헬라어에서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인데, 종이라는 뜻입니다. 섬기는 사람, 봉사하는 직책이 집사인 것입니다. 교회는 그 시작부터 섬기는 일을 매우 귀하고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세상에서는 종이라고 하면 가장 낮고 천하게 생각되겠지만, 교회에서는 섬기는 일이 최고의 미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이시고 우리의 믿음의 주 되신 예수께서 자신의 역할을 섬기는 것이라고 천명하셨기 때문입니다(마 20:28). 그래서 교회라는 조직 안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희생하고 봉사해야 한다는 정신이 교회를 구성하는 이념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일꾼들을 세우면서 디아코노스, 즉 섬기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사람마다 각각 다른 은사를 받는다고 하면서, 예언하는 은사, 섬기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다스리는 은사 등을 언급합니다(롬 12:6-8). 잘 섬기는 것은 은사 중 하나입니다. 즉 하나님이 특별히 내려주신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잘 섬기는 은사를 가진 분들을 선출해서 중요한 직책을 맡기게 되는데, 결국 그분들이 교회의 지도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종(servant)이 지도자(leader)라는 매우 역설적인 원리가 성립됩니다. 군대에서는 용맹한 장수가 지도자가 됩니다. 학교에서는 뛰어난 학자가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잘 섬기는 종이 지도자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자신의 삶과 사역으로 보여주시고 실천하셨던 원리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상징적인 사건으로 아주 강하게 이 원리를 확립하셨습니다(요 13:14). 그러니까 교회에서는 잘 섬기는 것이 가장 영광스럽고 존중되어야 할 일이라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집사로 뽑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다음 문제가 되겠지요? 당연히 잘 섬기는 사람을 뽑으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교회의 직분이라는 것은 단순히 기능만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지도자로서, 일꾼으로서, 합당한 자격과 자질이 고려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여기서 집사의 자격으로 열거하고 있는 이 덕목들은 그저 생각나는 대로 좋은 말을 이어 붙인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교회를 세우고 섬기면서 일꾼을 세웠던 경험에서 나온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령께서 이 편지를 쓰는 바울에게 감동(inspiration)하셔서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이 교회의 일꾼들에게 요구하시는 자격요건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조직이나 기관에서는 일을 맡기는 가장 주요한 기준이 능력입니다. 시험을 보고 면접을 하는 것은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교회의 일꾼들에게도 능력이 요구되겠지만, 능력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일꾼들이 하는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고,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죄인을 불러 회개에 이르게 하여 구원을 얻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에이전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구체적으로 하는 일들 가운데 하나는 자연 상태의 인간, 즉 죄의 영향과 능력 아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일꾼들은 그런 변화를 이끌고 돕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꾼이 되기에 합당한 사람은 그런 변화를 겪은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자질들은 자연 상태에 있던 사람이 변화된 상태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여기 나오는 자질들의 반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의 죄성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방종하고 제멋대로 사는 모습입니다. 그러던 사람이 예수 앞에 나와서 옛 습관들을 버리고 거룩한 양심에 따라 사는 삶의 모습이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선언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먼저 신분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죄로 인해 멸망하게 된 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가 대신 치르신 죗값의 결과로 죄를 용서받고 의인으로 인정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인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 즉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분의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거지가 왕자의 신분으로 바뀌었다면 거지의 옷을 벗고 왕자의 옷을 입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인의 신분에서 의인으로 바뀌었다면 죄인의 행실과 삶을 버리고 의인의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거기까지 이르러야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집사의 직분을 맡기에 합당한 사람의 자질은 먼저 단정해야 합니다. 여기서 단정하다는 말은 말쑥한 외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품위나 존엄성(dignity)을 의미합니다. 인품이 뛰어나서 존경할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구이언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이렇게 말하고 저기 가서는 저렇게 말하는 사람은 신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신실하고 한결같아야 하나님의 교회를 수종드는 직분을 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술에 인박인 사람, 알콜에 중독되거나 마약을 복용한다면 온전한 정신으로 교회를 받들 수 없습니다.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유난히 돈 앞에 치사한 사람, 또는 돈 되는 일이라면 양심도 팔고 영혼이라도 팔 사람에게 교회의 일을 맡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믿음이 비밀이라고 말해지는 이유는 누구나 다 손쉽게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영적 세계를 살아가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이 볼 때 정말 알 수 없는 비밀일 것입니다. 그 믿음이 이제 깨끗한 양심으로, 깨끗한 행실로 증거되는 사람이어야 집사의 직분을 맡길 수 있습니다.
11절에는 여자들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이것은 초대교회부터 교회의 지도자를 세우는 일에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이 시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의 사역을 도왔던 충실한 일꾼들 중에는 여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만나 평생의 동역자가 된 사람들이 있는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입니다(행 18:2). 그런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이렇게 아내의 이름이 앞에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브리스길라가 더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외에도 겐그리아 교회의 일꾼 뵈뵈(롬 16:1), 바울과 감옥에 함께 갇혔으며 여자 사도로 여겨지는 유니아(롬 16:7) 등을 비롯해서, 많은 여성들이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여자들에게 요구되는 집사의 자격은 단정함과 아울러 참소하지 않는 것입니다. 참소란 말로 다른 사람을 흉보는 행위입니다. 좋은 말,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만 하기도 바쁜데, 흉보고 트집 잡는 말을 하고 돌아다녀서는 교회를 섬길 수 없습니다. 말은 인격의 표현입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도 많아집니다(잠 10:19). 또 집사는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성질난다고 그대로 성질내버리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그런 줄 알라는 식으로 행동해서는 교회에 덕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절제는 온유함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절제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충성된 자여야 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이 큰 일에도 충성할 수 있습니다.
집사들은 또한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정이 평안하고 안정되어야 밖에 나가서도 마음 놓고 힘 있게 일할 수 있습니다. 또 밖에서 일하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쉬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더욱이 가정은 리더십을 배우는 곳이고, 리더십에 순종하는 것을 배우는 곳입니다. 또 서로 협력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곳입니다. 즉 사회나 조직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가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교회의 일도 신실하게 잘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섬기는 종으로 직분을 잘한 자들은 보상을 받게 되는데, 아름다운 지위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큰 존경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신실하고 충성스럽게 일하는 사람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습니다.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가운데 믿음에 큰 확신을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믿음과 봉사는 수레의 두 바퀴와도 같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봉사를 할 수 있고, 또 봉사를 해야 믿음이 성장합니다. 그렇게 충성한 일꾼들에게는 우리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라는 칭찬을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일꾼을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허리를 동이고 팔을 걷어붙이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수고할 일꾼을 뽑는 것입니다. 오늘 선출될 장로, 집사, 권사님들께 하나님께서 성령과 지혜를 충만케 하셔서 큰 능력으로 앞장서서 교회를 이끌어가게 하시고, 모든 성도들이 한 마음을 품고 기쁨으로 함께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도록, 이 모든 일 위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큰 믿음의 비밀을 가지라
딤전 3:8-13 / 민경설 목사
각박하고 어둡고 자기밖에 모르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신앙의 위인들은 다 이 믿음으로 세상을 다 이긴 것입니다.
믿음에는 힘이 있습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져야 합니다. 그 믿음의 비밀을 갖지 못하면 세상 속에서 실패하게 됩니다.
블레셋의 대장군 골리앗을 물맷돌 5개로 이긴 소년 다윗의 힘도,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느브갓네살 왕에게 절하지 않으면 일곱배 뜨거운 풀무불 속에 던져진다고 협박을 받아도 조금도 굴하지 않았던 힘도. 믿음의 힘입니다.
오늘 분몬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교회의 직분을 줄 때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에게 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 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딤전3:8-9)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의 비밀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합니까?
첫 번째, 하나님의 말씀이 믿음의 비밀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 말씀 그대로 믿으면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링컨 대통령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최대의 선물은 성경이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매일 읽은 미국 대통령 존 퀸시 아담스는 “성경은 지식과 덕의 무한한 금광이다.”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믿음의 비밀은 기도입니다.
성도는 기도의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자만이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비밀을 갖고 있지 못하면 사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 기도만이 하늘을 묶을 수도 있고 하늘을 풀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16:19)
기도에는 힘이 있습니다. 기도의 비밀을 아는 자만이 오늘도 기도하여 하늘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9-13)
세 번째, 믿음의 비밀은 예배입니다.
예배가 비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그 예배를 받으시고 복을 내려 주십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4:23-24)
예배는 지금 이 순간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내 정성과 마음을 드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을 영적으로 육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순간 내 소원을 아뢰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산제사를 드릴 때, 새롭게 변화받고,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선하시고 기쁘시고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믿음의 비밀은 전도입니다.
전도가 비밀입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을 다 이루었지만 전도할 때만 인간은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한 사람도 사실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14-15)
그리고 전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성령의 권능을 주시어 세상을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여기서 권능은 세상에 어떤 장애물도 다 이기고 극복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전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놀라운 기적을 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16:20)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5-18)
큰 믿음의 비밀을 가져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건강한 교회의 특징
딤전 3:8-13 / 오정호 목사
건강한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조직 신학자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는 교회의 세 가지 표지(標識)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첫째는 말씀의 참된 전파입니다. 교회가 말씀을 좌지우지해선 안됩니다. 교회가 말씀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주의 복음의 말씀이 거침없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성례(聖禮)의 정당한 집행입니다. 성례에는 세례와 성찬이 있습니다. 성례는 합법적 성직자들에 의해 믿음의 고백을 가진 자들과 그 자녀들에게 집행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권징(勸懲)의 신실한 시행입니다. 권징은 연약한 자, 낙심한자, 죄 중에 빠진 자를 주님의 은혜의 마음으로 세워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 권징(discipline)은 제자(disciple)라는 말과 어원이 같은 말로 훈련을 의미합니다. 교리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성례의 거룩성을 보존하고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다운 체질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권징의 신실한 시행이 필요합니다.
음식점도 특징이 있습니다. 소문난 음식점의 특징을 인지하고 있습니까? 소문난 음식점은 ①최상의 재료를 사용한다. ②음식점 주인이 일선에서 진두지휘한다 ③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베푼다 ④음식의 질(qulity)을 계속 유지한다. 곧 음식의 R&D를 시행한다 ⑤잘 할 수 있는 음식 한 두가지에 투자한다. 곧 한 두가지를 가지고 승부를 건다 입니다. 교회는 그 역사, 위치, 건물의 크기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이 교회의 해답입니다. 목회의 일번지는 건물이 아닙니다. 행정이나 조직도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세우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주님 닮은 사람이 중심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가정과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대표선수로 불러주셨습니다. 대표선수로 섰다면 품격 있게 뛰어나가야 됩니다. 성경을 통해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 교회의 대표일꾼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건강한 교회는 경건(敬虔)한 성도가 많은 교회입니다(8-9절).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8-9절). 경건한 사람은 예수님을 많이 사랑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전하는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① 경건한 사람은 단정합니다. 단정하다는 말은 가볍지 않다, 진지하다, 신중하다는 의미로 인간관계에 있어서 존경받을 만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우리의 인격적인 감화력 때문에 존경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안목과 윤리적 수준과 믿음의 통찰력이 있어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볼 때 소홀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② 경건한 사람은 일구이언(一口二言/double-tongue) 하지 않습니다. 한 곳에서 말하는 것과 다른 곳에서 말하는 것이 일치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의 모습과 직장에서의 모습이 일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③ 경건한 사람은 술에 인박이지 않습니다. 이 말은 술에 중독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디모데전서 3:3). 당시에는 유희가 별로 개발되지 못하여 술마시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사회와의 차별성 부각을 위해 교회지도자는 술에 중독되어선 안된다는 원칙을 세운 것입니다. 우리는 술에 인박이지 않는 대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인박여야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사로잡히면 잡힐수록 가정이 살고,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로 변모됩니다. 요즘 어린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헛된 일에 중독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우리를 붙잡으시고 도우실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중독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신을 이끌고 다스린다고 고백했습니다(고린도후서 5:14). 하나님의 복음의 은혜가 우리자신과 가정과 교회를 이끌 때 그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삽니다. ④ 경건한 사람은 더러운 이(利)를 탐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재정적인 투명성을 말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공적인 일을 맡은 사람들은 부당하고 부정한 이득을 취득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더러운 이' 대신에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져야 합니다(9절). 깨끗한 양심은 오염되지 않은 양심을 말합니다.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디모데전서 4:2). 화인(火印)이라는 것은 불도장입니다. 옛날에는 소유를 확인하기위해 가축의 허리나 귀에 불도장을 찍었는데 불도장이 찍힌 부분은 감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예민함을 상실하여 감각이 마비된 양심은 죄가 죄 인줄 모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먼저 깨끗한 양심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깨끗한 양심은 회개하는 영으로 충만한 마음입니다. 우리의 양심은 주님의 사랑과 보혈의 은혜로 깨끗해집니다. 부부간에 거리끼거나, 자녀들이 보아 부끄럽거나, 성도로서 부끄럽게 여겨지는 일들은 해선 안됩니다. 양심이 마비되면 영혼에 해(害)가 되고 성도다운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비밀은 믿음의 깊은 확신(Great Assurance)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행한 기도의 응답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대로 살면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그 앞길을 인도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한 교회가 반듯하게 서고 대사회적인 역할(對社會的인 役割)을 잘 감당하는 것은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들의 결단과 주님 사랑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둘째, 건강한 교회는 관계(關係)가 좋은 성도가 많은 교회입니다(12절).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12절). 잘 다스린다는 말은 감독들에게도 공히 사용된 말입니다(디모데전서 3:2,4). 여기서 다스린다는 말은 군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섬김으로 이끄는 것을 말합니다. 특별히 삶의 모범을 통해서 가정사역을 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에 속한 모든 가정들이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 사역과 교회 사역이 갈등구조가 아니라 상호보완 관계를 이루어 가정에서 힘을 얻어 주 앞에 봉사하고, 교회에서 영적재충전을 이루어 가정의 삶에 성공하는 관계의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고는 주의 귀한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정에 소낙비처럼 내려야 합니다. 집안의 가장은 가정을 믿음으로 경영하는 원칙이 필요합니다. 가정의 성공자가 교회의 성공자가 되고, 교회의 성공자가 사회의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건강은 성도의 가정의 건강에 따라 결정됩니다. 셋째, 건강한 교회는 인격(人格)과 사역(使役)이 검증된 성도가 많은 교회입니다(10절).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10절). 여기 시험하여 본다는 것은 불순물을 제거하고 정금(精金)으로 제련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 교회를 교회답게 하기 위해서 사람의 인격과 그가 소유한 능력 곧 은사를 시험해 봐야 합니다. 인격적인 성숙과 은사를 함께 개발하게 될 때 그 교회가 주 앞에 반듯한 교회로 쓰임을 받습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사도행전 13:22b).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쓰임 받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건물, 제도, 조직도 필요하지만 그것들에 앞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될 때 그 교회가 바로 건강한 교회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로남 믿음의 가족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교회, 기대되는 교회, 흡입력 있는 교회를 지금도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새로남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대표일꾼이 됩시다. 이를 위해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주님을 더욱 닮은 교회의 경건한 대표일꾼이 됩시다. 가정 사역과 교회 사역이 상호보완 관계를 이루어 가정의 건강과 교회의 건강을 이루어 내는 관계의 성공자가 됩시다. 인격적인 성숙과 아울러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함께 개발하여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교회의 대표일꾼이 되어 우리 새로남 교회를 건강한 교회로 만들어 갑시다.
하나님의 구인광고
인구밀도 소문난 독생자 주신 사랑
한반도 갈보리에서
정치권 예루살렘 거쳐
경제계 유대 사마리아 두루 지나
교육계 대전까지 왔건만
종교계 여전히
아우성 계속되는
목마른 소리 갈급한 소리
사람 찾는 소리 사람 찾는 소리
어디 사람 없어요? 사람 마른 현장
어디 사람 있어요? 인간 가뭄 드세어
십자가 네온사인 우리 하나님
열병분열 네거리 온 땅을 두루 살피네
이 교회 하나님의 구인광고
저 교회 누가 누가 누가
주일학교 갈꼬 갈꼬 갈꼬
청년부 인간 홍수 속에서
장년부 여전히 계속되는
한숨소리 하나님의 구인광고
목 타는 소리어디 하나님의 아픈 메아리
어디 사람 없어요? 마음먹고
어디 사람 있어요? 귀먹은 인간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