謫所¹에 들다_이지엽(1958 ~ )
푸르게 금 긋는 대밭 머리를 지나면
명치 끝에 걸리는 불혹不惑
겨울의 입구에 선 사랑이 보인다
눈이 내리는 남도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섬, 영산벌 가득히
물보라 날린다 부서져 흩어지는 저 욕망의 흰 파편들
온 산의 거친 숨소리가 뒤척이며 돌아눕는다
보았던가 그때, 절명의 한 순간을 위하여
한 세기의 노을을 바스라지도록 끌어안고
느낌표처럼 쓸쓸하게 추락하던 한 사내
죽어서도 제 육신에 새순을 밀어 올리는 고목 등걸, 위에도
연連하여 며칠 눈이 또 내리고
이윽고는 네 處女林에 돛을 내리리라, 편지를 쓰는 저녁
나는 은백색의 곰 한 마리가 되는 꿈을 꾸곤 했다
보이는 모든 세계가 눈보라 속 아득한 경계로 사라져
더러 미명의 열꽃으로 깊이 앓으리라
유년의 대장간 소리가 그리운 겨울 한낮
걷가가 웃다가 언뜻언뜻
어머니를 만나기도 하면서,
또 말없이 보낸 하루
꽃피울 무엇이 아직 남아 한 그루 나무 되어 서는가,
저 뒤틀린 지상의 가슴에다 누가 화살을 쏘고 있는지
백련사² 동백나무에 가볍게 가 닿는 風磬³ 소리,
선명하게 저리 붉다
[2001년 발표 시집 「씨앗의 힘」에 수록]
¹謫所(적소): 귀양살이 하는 곳.
²백련사(白蓮寺):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에 있는 통일신라의 승려 무염국사가 창건한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
³風磬(풍경): 처마 끝에 다는 작은 종.
속에는 붕어 모양의 쇳조각을 달아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면서 소리가 난다.
《동백꽃》, 이선희 작사/ 작곡
이선희(1964 ~ ) 2020년 발매 16집 앨범 수록곡입니다.
https://youtu.be/IwbhfbXTIII?si=KQFUXs9q37pFBMxp
첫댓글 ㅎㅎ
안녕하세요
멋진 시,
멋진 음악
잘 감상했습니다
해피 휴일 보내세요🌼
백련사 동백나무 숲이 천연기념물이라는군요.
위 詩를 읽노라니 느닷없이 가 보고 싶습니다. ㅎ
평안한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