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순례
주덕 사도 성 토마스 성당
신성근 신부(문화유산교육지도사)
「덕이 머무는 들판에서 피어난 믿음」
충주 방향 들녘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마음이 느려지는 순간이 있다.
넓은 논과 밭, 계절 따라 색을 달리하는 평야,
그사이에 조용히 자리한 마을 하나.
바로 주덕면이다.
그리고
길가에 주덕 성 토마스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周德”, 덕이 널리 퍼지는 마을
주덕(周德).
이 이름은 참 깊은 울림을 지닌다.
두루 주(周), 덕 덕(德).
곧 “덕이 두루 퍼진다”, “큰 덕이 마을을 감싼다.”라는 뜻이다.
신앙 역시 그렇다.
믿음은 혼자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가 되고,
기다림이 되고,
다시 일어설 힘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주덕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오랜 세월 서로 기대어 살아온
농촌 공동체의 마음처럼 느껴진다.
그 중심에 주덕 성 토마스 성당이 있다.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시작
주덕 성당은 1957년 5월 15일 설립되었다.
먹고사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
삶은 참으로 고단했다.
그러나 그런 시대였기에 오히려 신앙은 더 간절했다.
사람들은 가진 것은 적었지만 마음만큼은 넉넉했다.
누군가는 작은 돈을 보탰고,
누군가는 벽돌을 날랐으며,
누군가는 땀을 흘렸다.
그렇게 공동체는 조금씩 성당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그리고 이듬해인 1958년, 첫 성당이 세워졌다.
그 안에는 사람들의 기도와 희생이 담겨 있었다.
소박함 속에 따뜻함이 살아 있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는 늘 이렇게 작은 곳에서
큰 일을 시작하시는지도 모른다.
메리놀 선교사들의 발자국
메리놀 선교사들의 헌신이 녹아있다.
길도 좋지 않았던 시절,
선교사들은 마을을 찾아다니며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갔다.
신앙만 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농촌 성당은 언제나 사람 냄새가 난다.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이 더 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불길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믿음
그러나 주덕 성당의 역사는 평탄하지 않았다.
1984년 사제관 화재.
그리고 1985년 성당 화재.
성당은 잿더미가 되었고,
오랜 기록들도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신자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공동체의 진짜 믿음이 드러났다.
불탄 자리 위에 천막을 세우고 다시 미사를 봉헌하였다.
벽이 무너져도 기도는 무너지지 않았고,
지붕이 사라져도 믿음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불길 속에서 공동체는 더 단단해졌다.
사도 성 토마스의 고백처럼
토마스는 의심했던 사도였지만,
가장 깊은 신앙고백을 남긴 인물이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어쩌면 주덕 성당 역시 그런 공동체인지 모른다.
아무 흔들림 없이 살아온 공동체가 아니라,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끝내 믿음을 붙들었던 공동체 말이다.
그래서 이 성당의 신앙은 더 조용하고 깊다.
들판 위에 남아 있는 믿음의 향기
성당 마당에 서면 바람 소리와 함께
농촌의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도시처럼 빠르지 않다.
계절을 따라 살아가는 들판의 리듬 속에서
신앙도 그렇게 천천히 스며든다.
오늘날 농촌 본당들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젊은이는 떠나고 공동체는 늙어 간다.
그러나 그럼에도 누군가는 새벽종을 울리고,
누군가는 성전을 닦으며
공동체를 지켜 낸다.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성당」
주덕 성당은
“덕이 널리 퍼지는 마을”이라는 이름처럼,
오랜 세월 사람들의 삶 속에
조용히 믿음의 향기를 남기고 있는 공동체이다.
어쩌면 신앙이란 결국,
서로의 삶 안에
덕처럼 스며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