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경주 삼태봉에 오르는 도중의 바위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외동읍 전경. 도로나 터널 공사로 흙이 누렇게 드러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사진 왼쪽의 저수지가 들머리 겸 날머리인 모화지다.
중국 당나라 때, 엄양 존자가 먼 길을 걸어 조주 선사를 찾아왔다. "어떻게 왔느냐?"고 조주가 물으니 "가르침을 받으러 왔다"고 엄양이 말했다. 그 말에 조주는 "방하착(放下着)"을 외쳤다. '내려놓아라'는 뜻이다. 엄양은 그 말을 좇아 손에 든 염주와 지팡이를 내려놓고 조주를 올려다보았다. 계곡서 능선 오르는 대숲, 사람 키 '훌쩍' 오르내리는 길 이어져도 그리 힘들진 않아 주변 산등성이에 647·650봉 있지만 산꾼들은 630봉을 정상으로 여겨 원원사 절 마당의 붉은 고추 묘한 느낌 천태종 계열 사찰로 '오신채' 금기시 안 해
그럼에도 조주의 대답은 똑같았다. "방하착!" 엄양은 잊은 게 있는 듯 등에 진 걸망을 내려놓으며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이제 더 이상 내려놓을 것이 없다는 무언의 답변이었다.
그때 조주가 내뱉었다. "착득거(着得去)!" '정 내려놓기 싫으면 그대로 지고 가라'는 얘기다. 우두커니 서 있던 엄양은 비로소 깨달았다. 조주가 지칭한 것은 마음이었다. 온갖 번뇌와 갈등, 원망, 집착을 다 내려놓아라는 가르침이었다.
원원사는 천태종 사찰이라 '오신채'를 금하지 않는다. 경내의 태양초.
■옛 절터에 7m 높이 삼층석탑 두 기
경북 경주 삼태봉(三台峰·630.0m) 들머리인 원원사 주차장에서 천불보전에 오르는 계단 옆 돌비에 '방하착'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조주와 엄양의 선문답을 되새기며 원원사 마당을 가로질렀다. 마당에는 묘한 것이 눈길을 잡았다. 붉은 고추였다.
오신채(五辛菜·자극성이 있는 5가지 채소)라고 해서 스님들이 삼간다고 들었는데, 사찰에서 태양초를 만들고 있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이해'는 순전히 '오해'였다. 원원사는 천태종 계열의 사찰이라 조계종과 달리 오신채를 특별히 삼가지 않는다. 금기도 마음속 짐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다 내려놓으면 금기도 없어지는 것을….
옛 원원사 터는 원원사 뒤편에 있다. 그곳에 7m 높이의 삼층석탑이 동·서로 서 있다. 석탑은 헌걸찼으나 상처가 심했다. 탑의 역사는 8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지금처럼 형태를 알아볼 수 있게 된 것도 1931년 경주고적보존회의 복원 이후라고 했다. 1층 몸돌에는 사천왕상이 돋을새김됐고, 기단면석 4면에는 평복을 입은 십이지상이 연화좌 위에 있었다. 옛 원원사는 김유신, 김의원, 김술종 등 삼국 통일의 신라 영웅들이 뜻을 모아 세운 호국사찰이었다.
`방하착(放下着)` 돌비가 서 있는 절 입구.
■오르막 내리막 번갈아 걷는 능선
삼태봉 산행은 원원사∼삼태봉∼모화지 순으로 이어가면 된다. 모화지는 원원사 입구에 있으니 원점 회귀 코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전체 7.8㎞로, 4시간∼4시간 30분 걸린다. 곳곳에 바위가 있어 조망이 좋은 편이다.
원원사 터 서탑 옆의 용왕각과 대숲을 지나면 물이 없는 계곡에 이르고, 여기서 오른쪽 대숲 비탈을 오르면 능선에 다다른다. 대나무는 앞서 지나간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키가 크다. 계곡에서 능선까지 1시간이면 오를 수 있으나, 이후부터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가야 하니 때때로 숨이 차다. 그럼에도 아주 힘든 구간은 없다. 그늘이 많아 햇빛을 피해 걷기 좋고, 가끔 바람도 불어 시원한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
산등성이를 따라 647봉과 650봉을 지나면 이보다 조금 낮은 해발 630m의 삼태봉 정상석 지점에 이른다. 양남양지산악회와 외동의용소방대가 정상석을 세워놓았다.
하산은 오던 길을 되밟아 삼거리 이정표로 돌아오면 '모화찜질방' 방향으로 이뤄진다. 특정 업소 이름이 이정표에 표기된 것이 못마땅하다. 최근 이런 상호 이정표가 더러 눈에 띄는데, 안전을 위한 산행 이정표까지 광고 홍보물로 전락한 것 같아서다. 이정표 윗부분에는 경주시의 왕관 심벌도 붙어 있다.
삼거리에서 1시간 반가량 내려오면 저수지(모화지)에 이른다. 모화지는 지난해 12월 준공돼 그 전에 만들어진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았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아 반대편으로 나오면 '모화북1길'과 마주친다. 대중교통편을 이용하려면 그 길을 따라 3㎞ 정도 떨어진 태화방직 앞(계동교)까지 내려와야 한다.
■정상이 가장 높다? 삼태봉 '예외'
정상은 사전적으로 '산 맨 꼭대기'나 '그 이상 더없는 최고 상태'를 뜻한다. 산 정상은 멧부리 혹은 산봉우리, 산마루 등으로 불리는데, 산에서 뾰족하게 솟은 부분을 지칭한다. 이른바 능선을 산등성이라고 부르고,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지점을 산봉우리나 산마루라고 호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예외가 있다.
삼태봉이 그런 경우다. 삼태봉은 해발 630m 지점에 정상석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 지점에 이르는 산등성이에 647봉과 650봉이 있다. 정상보다 더 높은 지점이 두 곳이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산꾼들은 그 두 지점을 삼태봉 정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분명히 더 높은 지점임에도 말이다.
왜 그럴까? 전준배 산행대장은 "예부터 사람들이 630봉을 오르내리며 정상이라고 불렀던 관행을 여전히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630봉과 647봉, 650봉의 차이는 17∼20m로, 눈으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처럼 측량 기술이 뛰어나지 않은 시절이라면 더 그랬을 것이다. '관행'이 때때로 '원칙'보다 더 무섭다.
삼태봉에 한참 못 미쳐 봉서산 팻말도 지난다. 봉서산 정상을 뜻하는 팻말로 한 산악회가 나무에 임의로 매달아 두었는데, 봉서산 위치도 일찍부터 산꾼들 사이에 논란이 됐다. 이곳은 누가 봐도 독립된 산으로 볼 만한 '정상미'가 없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국립지리정보원이 표기한 지점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것이 산꾼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국립지리정보원은 원원사 서쪽 능선 끝 지점을 봉서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전준배 산행대장은 "옛 원원사를 '봉서산 원원사'로 묶어 부를 때는 봉서산이 그만한 후광 역할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정작 국립지리정보원이 표기한 봉서산은 해발 360.8m로 주변의 삼태봉은 물론이고 백일산(564.3m)보다도 낮다"면서 위치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답은 누가 해줄 수 있을까? 문의:전준배 산행대장 010-8803-8848. 위크앤조이팀 051-461-4095.
글·사진=백현충 선임기자 choong@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 경주 삼태봉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경주 삼태봉 구글 어스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원원사(경북 경주 외동읍 모화북1길 263) 주차장에서 대웅전 격인 천불보전에 오르는 계단 앞에 ‘방하착(放下着)’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마음을 내려놓아라’라는 조주선사(당나라)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그 옆에 아무 것도 새겨놓지 않은 바위에 더 마음이 쓰인다. 도대체 무엇을 담으려고 남겨 놓았을까?
▲ 원원사 마당에 태양초가 널려 있다. 조계종 계열의 사찰에서는 오신채라고 하여 맵고 짠 것을 금기시하는 관행이 있지만 천태종 계열의 원원사는 이를 엄격히 규제하지 않는다. 심지어 천태종 본산인 구인사에서는 직접 생산한 고추로 김장을 담그는 행사를 매년 크게 벌인다.
▲ 원원사 위쪽에 있는 옛 원원사 터에 커다란 삼층석탑 두 기만 덩그러니 남아 과거를 추억하게 한다. 주변 송림이 아름답다.
▲ 능선에 이르면 바위전망대에 올라설 수 있다. 건설 공사로 곳곳이 팬 경주 외동읍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 한 산악회가 달아놓은 봉서산 표식. 국립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원원사 서쪽 산봉우리를 봉서산으로 표기하고 있어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원원사 측도 ‘봉서산 원원사’라고 스스로 부르고 있는데, 이때의 봉서산도 국립지리정보원의 봉서산과는 위치가 다르다.
▲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거대한 물탱크(왼쪽)와 변전 시설을 지난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의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자마자 ‘삼태봉’ 이정표를 따라야 한다. 이정표 옆에 오솔길이 있다.
▲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외동읍이 내려다보이는 조망처가 자주 나온다. 바람도 함께 불어 늦여름 산행에 도움을 준다. 사진 가운데에 보이는 푸른 빛깔이 날머리인 모화저수지다. 저수지 오른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들머리인 원원사가 나온다.
▲ 삼태봉 정상. 해발 630m(정상석에는 629m)의 멧부리이나, 정작 정상에 이르는 능선에는 이보다 조금 더 높은 산마루(646.8m, 650.2m)가 두 곳이나 있어 정상에 대한 기준을 모호하게 만든다.
▲ 날머리인 모화저수지. 저수지를 한바퀴 돌아 반대편으로 빠져나오면 들머리인 원원사로 이어지는 모화북1길에 이른다.
▲ 계동교 주변. 가운데 모화식육식당 옆 골목이 방금 빠져나온 모화북1길이다. 부산으로 되돌아오기 위해 울산행 시내버스를 타려면 흰 승용차 옆의 지하도를 통과해 반대편으로 건너와야 한다. 횡단보도가 없다. 산행을 시작할 때에도 모화식육식당 옆 콜택시 사무실에 문의하면 들머리인 원원사까지 이동할 수 있다.
경주 삼태봉 산행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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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봉 산행 들머리인 모화리는 경주 외동읍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 울산과 가깝다. 두 도시의 경계 지점에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부산에서 모화리로 가는 방법은 울산을 거치거나, 고속도로를 이용해 경주시내로 들어갔다가 다시 모화리로 거슬러 오는 버스편과, 무궁화호를 타고 울산 호계역으로 이동한 뒤 시내버스를 연계하는 열차편 등 세 가지가 있다. 환승과 대기 시간을 감안하지 않으면 열차가 가장 빠르나, 버스도 큰 차이가 없다. 대략 2시간을 잡으면 될 듯하다. ■울산 거치는 버스 부산∼울산∼경주 모화리의 경우, 부산동부버스터미널(1688-9969)에서 1127번 직행버스를 타고 가다 울산대 앞에서 시내버스(402, 412, 482번)로 바꿔 타고 경주 모화 '태화방직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태화방직 앞'은 종점인 '모화' 바로 앞 정류장이다.
부산∼울산대는 40분(2천700원), 울산대∼태화방직은 1시간 20분(1천200원) 걸린다. 차편은 두 구간 모두 자주 있다. 울산시버스운송사업조합 052-223-9561.
■경주시내 우회
부산∼경주∼모화리는 부산동부버스터미널에서 경주시외버스터미널로 먼저 간다. 오전 5시 30분부터 15분 간격으로 배차되며, 1시간 걸린다. 운임은 4천800원.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새천년미소(054-742-2690)의 600번 좌석버스를 타고 가다 '태화방직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600번은 15분마다 운행하며, 태화방직 앞까지 50분이면 족하다. 운임은 1천200원. 이 밖에 604, 609번 좌석버스도 있지만 노선이 600번보다 훨씬 길고 자주 다니지 않아 불편하다.
■열차
부전역(1544-7788)에서 울산 호계역까지 무궁화호 열차로 이동해 시내버스로 갈아 타고 모화리로 가는 방법도 있다. 무궁화호 열차는 부전역에서 오전 5시 47분, 6시 3분, 7시 20분과 45분에 각각 출발한다. 1시간 7분∼1시간 21분 걸리며, 운임은 4천800원.
호계역에서 나오면 '농소1동 주민센터 앞' 버스정류장에서 울산 시내버스 402, 412번을 이용할 수 있다.
귀갓길은 역순으로 하면 된다.
■모화리∼원원사 어떻게
대중교통을 이용해 모화리까지 왔으면 걸어서 원원사로 갈 수 있지만, 길 입구에서 콜택시(모화 8000콜 054-743-8000)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운임은 5천 원. 하산 때 원원사에서 콜택시를 불러도 요금은 같다. 모화리∼원원사는 3㎞ 정도 된다. 백현충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