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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2002. 6월호 수록 소설)
백미러 사나이
- 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이기호
1
그의 뒤통수에 상처를 낸 사람은 당시 현직 중앙정보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김재규 씨였다. 물론 김재규 씨가 여덟 살이던 그를 향해 맥주병을 집어던지거나 몽키스패너로 내려친 것은 아니었다. 김재규 씨는 서울에, 그는 지방의 한 소도시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단 한 번의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끝까지 그의 뒤통수에 상처를 낸 사람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라고 우겨댔다. 그의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보며 미치려거던 곱게 미치라며 악을 써댔다. 그렇지 않아도 머리 나쁜 자식 아예 병신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자식 뒤통수에 대고 재떨이를 던지는 아비도 정상은 아니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칠십구년도 가을이었다. TV에선 며칠 동안 지루한 조가만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태산이 무너진 듯 강물이 갈라진 듯 이 충격의 비통 어디다 비기리까’로 시작하여 ‘이 나라 수호신이 되어 못다한 일 이루소서’로 끝나는 조가는 무려 5절이나 계속되었다. 정규방송이 지켜질 리 만무했다. TBC에서 하는 호돌이와 포순이, MBC에서 방영하는 샤롯트 대신 소복 단정히 차려입은 할머니들이 떼로 몰려나와 태극기 뒤엎인 관 앞에서 누가 누가 더 오래 통곡하나, 시합하는 프로그램이 편성되었다. 때때로 부산에 입항한 미 항코 키티호크호의 크기를 재는 과학 프로그램도 방영되었다. 그는 보름 넘게 TV앞에서 호돌이와 포순이를, 샤롯트를 기다렸다. 가끔씩 ‘이 같은 어인광풍 낙엽 지듯 가시어도’를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기도 했다.
보름 정도 지난 후엔 할머니들 대신 포승줄에 묶인 김재규 씨가 장기 출연하며 권총 저격을 무덤덤한 표정으로 재현해냈다. 독일제 32구경 7연발 권총을 무표정한 얼굴로 당기는 김재규 씨의 깔끔한 연기에 비해 박정희 대통령 역을 맡은 연기자(검찰 혹은 합수부 소속의 군인인 듯)의 액션은 지나치게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총을 맞고 쓰러지는 연기라기보단 총을 피해 상 밑으로 숨는 듯한 포즈였다. 카메라맨은 그런 연기자의 액션이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에게 누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지 계속 누워 있는 장면만 앵글에 담아 화면에 내보냈다. 보다 못한 김재규 씨도 한 마디 했다.
아니지, 그쪽으로 쓰러진 게 아니라 이쪽으로 넘어졌다니깐.
그의 아버지가 TV수상기를 향해 용궁다방 마크 찍힌 사기 재떨이를 집어던진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예정대로였다면, 그의 아버지는 이주일 후 초도순시차 도청에 내려온 박 대통령에게 직접 ‘모범 전매인’ 표창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전매청 산하 외산담배 특별단속반 소속이었다. 럭키스트라이크나 카멜 말보로 따위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적발, 검찰에 인계하는 역할이었다. 그의 아버지의 전과는 혁혁했다. 검찰에 인계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적발해냈다. 그런 경우, 그의 아버지는 검찰의 과중한 업무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수표나 물품 같은 것으로 피의자들의 조서를 대처해주기도 했다. 그의 집에 들어온 금성사의 야심찬 신제품인 14인치 텔레비전과 대한전선의 250리터짜리 냉장고도 그런 조서 중의 하나였다. 그의 아버지는 그 모든 것이 다 박 대통령의 은덕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도 박 대통령의 은덕, 국산 잎담배 농가들을 보호하는 것도 박 대통령의 은덕, 조서를 텔레비전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도 박 대통령의 은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은덕을 긍정동 주안상 위에 올려져 있던 시바스 리갈과 함께 허공으로 날려버린 원흉이 바로 김재규라고 여겼다. 그러니 어찌 재떨이를 집어던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할 수만 있다면 냉장고라도 집어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의 손을 떠난 재떨이가 착지한 곳은 불행히도 금성사의 최신식TV브라운관이 아닌, 방바닥이었다. 재떨이는 바로 산산조각났다. 그리고 그 많은 조각 중 두 조각이 TV 바로 앞에 앉아 이제나저제나 샤롯트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의 뒤통수에 내려앉고 말았다. TV에선 다시 김재규씨의 말이 흘러나왔다.
바로 쓰러진 게 아니라니깐!
그렇게 해서 그의 뒤통수엔 고양이 눈 크기만한 구멍이 두 군데 생기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뒤통수에 생긴 두 개의 구멍이 그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긴, 어쩌면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뒤통수에 생긴 두 개의 구멍은 단지 구멍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니깐.
그의 뒤통수에 생긴 두 개의 구멍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사람은 이웃집에 살던 재야 의료 엔터테이너(그는 분명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나누어주는 사람이었다)최씨였다. 동네에서 최씨에 대한 소문과 평판은 상반된 두 가지로 극명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한쪽의 의견은, 최씨가 국내 최고의 의과대학을 탁월한 성적으로 졸업하였으나 현 정부의 반민주적인 보건의료정책에 강한 회의를 품고 재야에 묻혀 몸소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실천하고자 우리 동네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동네 아주머니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시중 의원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동네 아주머니들의 쌍거풀 수술을 해주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동네에 살던 몇 안 되는 대학생들은 제 어머니의 눈꺼풀을 보며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좀더 심취하게 되었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동네엔 온통 마르크스 레닌주의 문신을 새긴 아주머니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니게 되었다.
최씨에 대한 또 다른 소문 하나는, 그가 어느 작은 정형외과의 원무과 직원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병원의 규모가 너무 소규모여서 때때로 최씨가 간호사를 대신하여 의사의 진료를 도왔고, 그러면서 눈대중으로 몇 가지 의료행위를 배웠다는 것이다. 그 소문을 입증이라도 하듯 그는 외과 진료에 비해 내과 진료에는 부진을 면치 못했는데, 배가 아프고 현기증 증세가 약간이라도 보이면 그는 무조건 회충약부터 조제해주고 보았다. 한번은 맹장에 걸린 할머니에게 다량의 회충약을 그 자리에서 삼키게 만들어 심각한 의료사고를 일으킬 뻔하기도 했다. 동네 아이들은 매일매일 항문에서 실뱀장어만한 회충을 뽑아내며 그를 욕했고, 일부 동네 어른들은 그가 전라도 출신이라 믿을 만한 위인이 못 된다고 쑤근거리기도 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최씨의 의술은 내과를 빼곤 썩 훌륭한 것이었다. 동네 노파의 십 년 묵은 관절염을 단 두 달만에 완치시켜주기도 했고, 조기축구회원들의 찢어진 무릎근육을 V자 모양으로 꿰매어 그들의 잠들어 있던 투지를 불러일으켜주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마약성분이 다량 포함된 약품으로 주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고도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가 비교의 신봉자로서, 신의 의지로 병든 자를 완쾌시키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가 진료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는 것도 다 주술의 일종이라고 했다.
당시 초등학교 일학년에 재학중이었던 그는, 최씨에 대해 그 어떤 편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가 최씨에 대해 명확히 아는 것이라곤, 최씨가 미군부대 식당에서 주방보조로 일하는 아주머니의 눈가에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심어주고 대신 카멜 담배 열 보루를 받았다는 것. 최씨가 버린 카멜 담배꽁초를 집어들고 개미집을 파헤치던 그를 퇴근하던 아버지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것. 한참을 고민하던 그의 아버지가 이웃간의 정을 생각해 최씨의 조서를 어머니의 쌍꺼풀과 영양제로 염가봉사해주었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그의 뒤통수에 두 개의 구멍이 생기자마자 그의 어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최씨를 찾아갔다. 그리곤 가뜩이나 공부 못하는 자식, 머리에 땜통까지 있으면 얼마나 보기 싫겠느냐, 최대한 예쁘게 꿰매 달라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최씨는 그의 어머니가 말하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지갑을 꺼내들다 말고 갑자기 생각난 듯 자신의 쌍꺼풀이 동네에서 제일 얇게 된 것 같다고, 이래서 야매가 나쁘다는 소리를 듣는 거 아니냐며, 화를 내곤 쏜살같이 진료소 밖으로 나가버렸다.
진료소엔 최씨와 그만이 남겨졌다. 말이 진료소지 최씨 집 자그마한 정원 한 편에 얼기설기 가건물을 짓고, 가정용 싱글침대와 철재책상 하나, 그리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적어놓은 액자하나가 전부인 초라한 진료소였다.
최씨는 한동안 말없이 철제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두 주먹에 힘을 모아 철제책상을 내리쳤다. 그는 여진으로 인해 위태롭게 흔들리는 히포크라테스를 불안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히포크라테스는 환자용 의자 바로 옆 벽면에 걸려 있었다. 최씨는 당장이라도 일어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바닥에 내던질 것처럼 연속해서 철제책상을 내리쳤다. 히포크라테스가 빠르게 왕복운동을 했다. 선서 글귀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어린 그는 최씨의 그런 행동이, 환자를 좀더 빨리 싱글침대에 눕게 만드는 최씨만의 독특한 사인이라고 이해했다. 그는 조용히 일어나 싱글침대에 엎드렸다. 그러자 철제책상의 울림도 덩달아 멈춰졌다. 대신 최씨의 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진료는 최씨의 한숨소리가 대여섯 번 정도 더 이어진 뒤에야 시작되었다.
누가 이랬니?
최씨가 잘 들지 않는 면도칼로 피와 함께 엉켜버린 그의 뒷머리칼을 자르며 물었다.
김재규요.
최씨의 손이 멈칫 했다.
누구?
김재규.
최씨는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고 서 있다가 다시 면도칼을 놀리기 시작했다.
박통이 어린 네 머릿속에도 숨어 살고 있었나 보구나.
그는 최씨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뒤통수에선 연신 사각사각거리는 최씨의 면도칼 소리가 들려왔고, 싱글침대에선 시큼한 크레졸 냄새가 났다. 그는 두 눈을 말똥말똥 뜬 채 베개 앞 벽면을 무덤덤히 바라보았다.
좀 아플 거야.
최씨는 바늘에 실을 꿰며 갑자기 한 옥타브 높아진 정도 높아진, 의욕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늘을 든 최씨의 오른손엔 거미줄 같은 퍼런 힘줄들이 이곳저곳 돋아났다. 그는 온몸의 맥이 노글노글 풀리는 것만 같았다. 침대는 의외로 푹신했다.
이건 정말 박통의 눈을 닮았는걸.
최씨는 바늘 끝으로 그의 두 군데 상처 부위를 툭툭 건드리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내 사명감을 갖고 꿰매줄게. 꼬마야. 너도 사명감을 갖고 꾹 참으렴.
최씨의 바늘이 상처 가장자리를 파고들었다. 그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아프지?
아니요. 그냥 따끔해요.
그래?
최씨의 상체가 그의 뒤통수 쪽으로 좀더 기울어졌다. 바늘이 그의 상처에 길을 내고, 다시 허공으로 빠져나올 때마다 그의 머리는 실과 함께 허공으로 십 센티미터 정도씩 들어올려졌다.
정말 안 아파?
실 때문에 간지러운 걸요.
최씨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정말 지독한 박통이구나.
최씨는 다시 바늘을 움직였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바늘은 두 동강나고 말았다. 최씨는 재빠른 동작으로 다시 바늘귀를 꿰고 상처를 잇대기 시작했다. 그의 몸은 옴쭉도 하지 않았다. 까무룩 까무룩 몰려드는 졸음을 참기 위해 어금니를 몇 번 앙다물었을 뿐이었다.
이래도?
최씨의 얼굴은 술 마신 사람처럼 불콰하게 변해버렸다. 그는 최씨가 좀 안쓰럽게 여겨졌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최씨가 조용히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는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아파요. 아파 죽겠어요.
그렇지? 아프지? 내 오늘 이 박통의 눈깔을……!
최씨는 조용해지기는커녕 좀더 시끄럽게 바늘을 움직였다. 그는 두 눈을 감아버렸다. 머릿속이 자꾸만 자우룩해져갔다. 따끔거리는 느낌마저도 사라졌다. 그저 쉬지 않고 웅얼거리는 최씨의 목소리만이 귓가에서 맴돌았을 뿐이었다. 이놈, 박통 네 이놈, 담배도 내 맘대로 골라 못 피우게 하는 이 나쁜 놈…….
그 순간, 그는 처음으로 정말 자신의 뒤통수에 박 대통령이 숨어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 자신이 못 본 것을 최씨가 보았을 수도 있다고. 그래서 저렇게 흥분한 것이라고. 뒤통수는 남의 눈에 보이는 곳이니……. 그렇지 않고는 어른은 최씨가 어린 자신에게 저렇게 화를 낼 리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그런 것도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아프지도 않은 것이라도. 최씨의 카멜 담배를 우연히 집어든 것도 다 박 대통령이 시켜서 한 짓이라고……. 그는 또 한편으론, 정말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박 대통령은 아버지에게 은덕을 베푼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러면 다신 아버지가 재떨이를 집어던지는 일도 없을 거라고……. 그는 그렇게 소망하다가 잠들어버렸다.
그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최씨는 그의 발치 옆에 팔꿈치를 베고 엎드려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최씨의 얼굴은 몹시 지쳐 보였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뒤통수부터 먼저 만져보았다. 운동화끈 모양으로 꿰매진 상처는, 뒤통수 한가운데 모로 누운 두 개의 초승달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오톨거리는 실밥을 한참 동안 만져보았다. 왼쪽 구멍에 일곱 바늘, 오른쪽 구멍에 다섯 바늘, 총 열두 바늘이었다. 그는 최씨가 깨지 않게 최대한 발소리를 낮춰 진료소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진료소 문을 막 열었을 때, 등뒤에서 울려오는 최씨의 지친, 그러나 여전히 화난 목소리를, 어쩔 수 없이 듣고야 말았다.
한 번만 더 고자질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하면 네 뒤통수 박통이 눈 뜰 거야. 실이 모자라서 헐겁게 꿰맸으니까 더 조심해야 한다고……. 알았어? 네 눈을 잡아먹을지도 몰라!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상처 부위가 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투둑, 소리를 내며 당장이라도 실밥이 풀릴 것처럼 상처 부위에 힘이 쏠렸다. 실밥이 조금 헐거워진 듯한 느낌. 그는 전력질주로 최씨의 집을 빠져나왔다. 실밥이 헐거워진 것을 최씨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는, 최씨가 또다시 박 대통령과 일전을 겨루는 것을 원치 않았다.
집에 돌아온 그를 보자마자 어머니가 소리쳤다.
한 번만 더 TV 앞에 붙어 앉아 있어봐! 그땐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그는 주섬주섬 책가방을 뒤져 받아쓰기 공책을 폈다. TV에선 오랜만에 샤롯트가 방영되고 있었다.
그가 최씨의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보름 정도가 지난 후의 일이었다. 금요일 4교시 받아쓰기 시험중이었다. 당시 여덟 살의 그에게 닥친 심각한 당면과제는, 박 대통령의 돌연한 죽음도, 계엄령의 발동과 그에 따른 통행금지 시간의 확대도, 박 대통령 사후 권력지향의 급격한 변혁도 아닌, 한글 맞춤법에 대한 명쾌한 이해와 활용이었다. 안타깝게도 초등학교 일학년이었던 그는 거의 문맹에 가까운 한글 맞춤법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가 쓰고 읽을 수 있는 한글은 고작 그의 이름 석자인 ‘이시봉’과 집 안 장롱 위에 있던 여러 국산담배 박스들의 이름들. 그러니까 ‘태양’, ‘은하수’, ‘한산도’, ‘신탄진’, ‘거북선’ 등이 전부였다. 초등학교 일학년 교과서엔 나오지 않는 단어들. 그는 거의 매일같이 나머지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날도 그는 받아쓰기용 갱지를 받아든 순간, 담담히 자신의 나머지공부 운명을 예견하고, 그에 순종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친구들과 똑같이 연필을 쥔 채 선생님이 부르는 단어를 받아쓸 예비자세를 취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이번에도 또 빵점을 받아오면 옷을 홀딱 벗기고 대문 앞에 하루종일 세워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TV도 내다버릴 것이라고 위협했다. 나머지공부를 하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일찍 집에 돌아가봤자 놀아줄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친구들은, 그와 말을 하면 한글을 까먹는 전염병에 감염되는 줄 알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그가 낮에는 사람이지만 밤이 되면 닭으로 변해 한글을 배울 수 없는 것이라고 제법 논리 있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유일한 친구는 저녁 6시에나 만날 수 있는 TV 속 호돌이와 포순이, 그리고 샤롯트뿐이었다. 허나, 이제 그는 그런 친구들조차 만나지 못할 위기에 처해진 것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의 입술에서 제발 ‘태양’이나 ‘한산도’같은 것이 발음되길 바랄 뿐이었다.
첫 번째 문제는 ‘햇살’ 이었다. 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태양’이라고 적었다. 두 번째 문제는 ‘태극기’였다. 그는 소리 나지 않게 연필을 내려놓았다. TV를 내다버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그러졌다. 저 멀리선 샤롯트가 슬픈 표정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호돌이와 포순이는 고양이로 변해 책상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슬프게 작별인사를 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감은 그의 두 눈앞에 뒷자리에 앉아 있는 반장의 얼굴이 또렷하게 들어왔다.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샤프를 들고 열심히 답안을 적으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반장의 얼굴……. 반장은 반에서 유일하게 모나미 제도샤프를 갖고 있는 친구이기도 했다. 그는 감은 두 눈을 떴다. 다시 그의 눈 앞에는 앞자리 친구의 굽은 등과 교탁 앞에 서 있는 선생님의 모습이 들어왔다. 사각거리는 연팔 소리와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친구들. 교실풍경은 예전과 다름없었다. 그는 몇 번 손으로 눈두덩을 문질러보기도. 연필 꽁지로 눈썹 부위를 눌러보기도 했다. 시력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그는 다시 조심스럽게 두 눈을 감아보았다.
역시 뒷자리 반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번엔 반장의 얼굴뿐만 아니라, 반장의 책상에 놓여진 답안지와 그 안에 적힌 알 수 없는 한글 낱말들까지 확연하게 시야에 잡혔다. 교실 뒷벽에 걸린 환경미화용 그림들과 조잡한 게시판까지.
그는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이번엔 고개를 돌려 직접 반장을 바라보았다. 두 눈을 감았을 때 보았던 반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선생님은 그에게 뒤돌아보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반장도 신경질적인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다시 앞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자신의 뒤통수를 만지작거리다가 짝꿍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박 대통령께서 눈을 뜨셨군.
눈을 떴을 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상이 겹치거나 흔들리는 일도 없었다. 다만, 두 눈을 감았을 때가 문제였다. 마치 고개를 돌린 것처럼, 눈 앞에 백미러를 부착한 것처럼 뒤편의 영상이 또렷하게 망막 안에 들어왔다. 그는, 그건 자신이 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건 박 대통령의 눈이라고, 박 대통령이 보는 세상이라고…….
그는 다시 두 눈을 감았다. 박 대통령이 힘겹게 다시 뜬 눈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뒷자리 반장의 답안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반장의 답안지 속 글자들을 제 답안지에 옮겨 적기(아니,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연필을 쥔 손이 조금 떨리긴 했지만 글자를 옮겨 적는 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생각했다. 나는 그저 박 대통령이 보는 세상을 기록 할 뿐이라고.
그날 받아쓰기 시험에서 그는 당당히 90점을 획득했다. 그가 틀린 문제는 ‘햇살’ 한 문제에 불과했다(안타깝게도 그에겐 지우개가 없었다). 선생님은 그를 일으켜세운 뒤 상기된 얼굴로 ‘하면 된다’를 연속해서 외쳤고, 친구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그는 조금 우쭐한 심정이 되었다.
그날 저녁, 그는 느긋한 포즈로 호돌이와 포순이, 샤롯트를 연속해서 시청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그가 내민 받아쓰기 답안지를 가족앨범에 소중히 끼워놓았다. 아버지는 그가 오래 전부터 졸랐던 도깨비감투 미니어처를 사주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뒤통수에서 눈을 뜬 대통령에 대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건 아주 소중히 간직해야만 할 비밀 같았다. 그게 당연한 예의인 것 같았고.
그로부터 이틀 후, 최씨는 느닷없이 급습한 보건소 직원들과 검찰 직원들에 의해 ‘공중위생법위반’으로 체포되고 말았다. 최씨는 변변한 항의 한번 해보지 못하고 연행되어 갔다. 동네사람들은 수갑 찬 최씨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을 뿐. 누구 한 명 최씨를 변론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보건소 직원들은 최씨를 끌고 가며 제보전화를 걸어온 목소리가 아이의 목소리였다고 동네사람들에게 귀띔해주었다. 이후, 동네사람들 중 그 누구도 최씨의 소식을 들은 사람은 없었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 동네 아주머니들의 점 십 원짜리 화투판에서, 서로의 눈가에 그어진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보며 그래도 퍽 괜찮았던 사람이었는데, 하고 회자되는 게 전부였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최씨를 잊어갔다. 무럭무럭 커나가기에 바빴던 그 역시도……. 하긴, 어디 잊혀진 게 최씨뿐인가? 사람들은 박정희도, 그를 죽인 김재규도 쉽게 잊어 가고 있었다.
2
그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남들처럼 똑같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큰 병치레를 한 적도, 소년원에 수감된 적도, 예능 방면에 두각을 나타낸 적도 없었다. 지극히 평범한 성격과 체격을 가진 소년으로 자라났다.
그 와중에 그의 아버지는 전매청 소속 외산담배 특별단속반에서 퇴직하여 시내 상가 한귀퉁이에 담뱃가게를 열었고, 그곳에서 간간히 미군부대 px에서 흘러나오는 카멜 담배를 밀거래하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당시 시내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두발로’ 스텐드바에 출입하며 뭇 제비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번번히 제비들의 낙점에서 제외되곤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술 취한 목소리로, 자신의 쌍꺼풀이 지나치게 얇아서 그런 것이라며 동네가 떠나가라 울부짖기도 했다.
동네에 몇 안 되던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어머니의 눈두덩에 새겨진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제비들의 스텝 몇 번에 허물어지는 것에 좌절, 차례차례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로 진로를 바꾸었다. 그리곤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동네 전봇대 한복판에 김지하의 시구를 적으며 훌쩍거렸다.
그의 친구들은 연이어 세 번씩이나 대통령을 배출한 육사에 들어가기 위해 미리부터 머리를 삭발한 채 수학 정석에 매달렸고, 교련 시간만 되면 마치 당장이라도 육사에 합격한 사관생도처럼 모조 칼빈소총을 들고 김일성 허수아비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진격하였다.
사람들과 사회는 그렇게 변하고 있었지만, 그에겐 좀처럼 변하지 않는 몇 가지가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한글 맞춤법의 이해와 활용 실력이었다. 안타깝게도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온전한 제 실력으로 쓰고 읽을 수 있었던 한글은 이름 석자와 ‘태양’ ‘은하수’ ‘한산도’ ‘신탄진’ ‘거북선’뿐이었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의 실력 그대로, 하나의 보탬과 빠짐없이.
그가 그런 한글 실력으로 고등학교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의 뒤통수에 자리잡은 박 대통령의 시력이 그때까지도 쌩쌩하게, 노화되지 않고 활달하게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배치고사를 볼 적에도, 인문계 고등학교 입학 연합고사를 치를 때도, 그는 그저 두 눈을 연심 감았다 떴다 하며 답안지를 작성해나갔다. 그리곤 그때마다 매번 무난한 성적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했다. 더구나 당시의 시험은 한 문제도 빠짐없이 객관식으로 출제되었기 때문에 글자를 그리는 번거로움도 없었다. 그저 OMR카드에 까만 점만 찍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시험이었다. 그의 학교 성적 순위는 뒷자리에 어떤 성적을 보유한 친구가 앉느냐에 따라 매 학년 상하고저의 그래프가 가팔랐다. 중학교 2학년 1학기 때는 그가 늘 맨 뒷자리에서 시험을 봤기 때문에 성적 또한 맨 뒷자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었다. 그의 뒤통수에 박 대통령이 들어앉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확실할 순 없지만, 그는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은 한글 단어를 읽고 쓸수 있지 앉았을까? 인문계고등학교는 몰라도 도시 근방 농업고등학교나 공업고등학교는 충분히 제 실력으로 입학할 수 있는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각고의 노력 끝에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뒤통수에 박 대통령의 눈이 생긴 뒤부터 모든 학문들과 그를 익히기 위한 노력들에게 아쉬운 작별인사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감고 학문적 고민을 하려 해도 뒤통수 한가운데 자리 잡은 박 대통령이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겸허한 마음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내 부족한 머리를 안타까이 여긴 박 대통령이 눈을 감지 못하고 직접 왕림한 것이라고, 박 대통령이 이승에 학문적 여한이 남은 것이라고, 다른 분야에만 욕심내지 않는다면(그러니까 예를 들어 노름판 같은 곳)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그가 육사를 지원하지 않고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교에 당당하게 입학원서를 낸 것도 그런 생각의 일환이었다. 학구열 왕성한 박 대통령에게 좀더 좋은 환경을 열어주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좀더 머리 좋고 영특한 친구를 뒷자리에 두는 것.
하지만 그는 몰랐던 것이다. 서울이라는 곳이, 당시 대학교라는 곳이, 학문적 분위기와는 얼마나 동떨어져 있었는가를. 박 대통령이 살아생전 대학교라는 곳을, 대학생들을, 얼마나 경원시하고 미워했는가를.
아무튼 그는 그렇게 해서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일천구백구십일년도였다. 대통령은 여전히 군인 출신이었고, 그해 육군사관학교는 사상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하였다.
3
그는 과묵하고 성실한 대학생이 되었다. 괜스레 선배들과 어울려 라면을 끓여먹으며 킥킥거리지도 않았고, 동기들과 숨넘어가기 일보 직전까지 사생결단 족구에 매달리지도 않았다. 회비 이천 원짜리 개강파티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동아리방이나 학회방을 기웃거리는 일도 하지 않았다. 당시 신입생이라면 거의 의무적으로 배워야 했던 문선도, 평발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이유를 내세워 빠지곤 했다. 그는 그저 아현동 산동네에 있는 자취방과 신촌에 위치한 학교 사이를 부지런히 오갈 뿐, 별다른 취미활동도, 연애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보고 동기들은, 그가 안기부 고위간부의 외동아들이서 그렇다, 아니다, 용산에 있는 호스트바에서 밤새도록 아줌마들에게 시달려 우리와 어울리는 것이 피곤했던 것이다. 무슨 소리냐, 쟤가 원래 프랑스 입양아 출신이다.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서 그런 거다. 쟤 원래 이름은 이시봉이 아니라 알랭 시봉이다. 등등 수많은 추측과 억측을 해댔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직접 확인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부지런히 자취방으로 향하는 그를 바라보며 쑤군거리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의 이름이 학우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구십일년도 사월 하순경이었다. 좀더 정확히 말해 백골단이 풀스윙한 쇠파이프에 뒤통수를 가격당한 서부총련 소속 대학생이 숨을 거둔 바로 다음날, 그러니까 구십일년도 사월 입십칠일 신촌 일대에서 일어난 가두시위가 마감된 직후부터였다. 갑자기 수십 명의 학우들이 그의 주위에 몰려들어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이름 앞에 ‘사수대 선봉일꾼’ ‘차차기 서부총련 사수대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부르기도 했다. 총학생회장이라는 사람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두드렸고, 학우들은 그와 어깨동무를 한 채(그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학교로 돌아갔다. 왼쪽 편에서 어깨동무를 한 학우는 삼십 초 간격으로 ‘열사의 뜻 이어받아 노태우 정권 타도하자’라는 아지를 외쳐, 그를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는 학교로 돌아가면서도 이게 도무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왜 갑자기 자기에게 이렇게 친한 척을 하는지, 왜 왼쪽에 있는 친구는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만드는지…….
그날의 일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대강 다음과 같다. 그러니까 그날도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강의를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부지런히 학교 정문을 나서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빨랐고, 고개는 지상을 향해 최대한 수그러져 있었다. 그는 철저히 남들과의 접촉을 꺼려했다. 남들과 이야기하다가 행여 자신의 한글 실력이 들통나고 대학합격의 비밀까지 발각된다면, 자신의 뒤통수에 힘겹게 부활한 박 대통령의 의지를 제 스스로 저버리는 꼴이 된다고 생각했다. <?>자취방에서 그때 막 데뷔한 신승훈과 김건모의 리사이틀 공연을 하루 종일 감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어쨌든.
헌데, 그날은 도로에 버스 대신 깃발을 든 여학생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박수를 쳐댔고 연신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는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동안 버스를 기다리고 서있었다. 하지만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학생들만이 끊임없이 꾸역꾸역 밀려들어올 뿐이었다. 학교에서 자취방까지는 도보로 30분 거리였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어깨에 멘 가방끈을 바싹 조인 후, 도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뛰어간다면, 행여 동기들이나 선배들을 만난다 해도 자신을 알아보긴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학생들의 행군방향도 그의 자취방 쪽이었다. 그는 느릿느릿 걷는 학생들 사이를 헤치고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몇 명의 여학생들이 그의 몸과 부딪쳐 넘어지기도 했지만 그의 발걸음은 멈춰지지 않았다.
서울시청을 향해 순탄하게 전진하던 학생들의 대오는 이대 앞 사거리 근처에서 멈춰지고 말았다. 아현고가도로를 최후 저지선 삼아 이중 삼중 진을 치고 있던 전경들이 다연발 최루탄을 쏘며 격렬한 저항을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학생들의 대오가 흐트러졌다. 전경들과 학생들은 도로를 가운데 두고 대략 백오십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일부 심약한 학생들은 마치 당장이라도 전경들의 손에 의해 낚아채지기라도 할 것처럼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질서! 질서!’를 쉼 없이 외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금방이라도 기도가 막힐 것처럼 도로 한가운데 누워 가쁜 숨을 몰아 내쉬는 여학생도 생겨났다. 학생 대오 맨 앞에 서 있던 사수대들은 일대 혼란에 빠진 학생들을 보면서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괜스레 도로에 쇠파이프를 두들겨대며 찔끔찔끔 흐르는 눈물을 감추거나, 십중팔구 불발되기 일쑤인 화염병을 애꿎은 가로수에다 대고 던질 뿐이었다. 한 치 앞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 전경들은 점차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학생들의 대오에서 누군가가 쏜살같이 전경들을 향해 뛰어나갔다. 입고 있는 옷으로 보나 가방을 멘 폼으로 보나 대학생이 분명했다. 머리에 별다른 띠도 두르지 않았고, 왼쪽 가슴에 검은색 리본도 달지 않았다. 평범한 체격에 평범한 얼굴을 한 대학생이었다.
처음 그를 본 사수대와 학생들은,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전경들에게 달려드는 무모하고 감수성 풍부한 학생쯤으로 생각했다. 가끔 피를 보거나 사과탄에 직격으로 맞은 학생들이 저지르는 우발전인 도전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실제로 사수대 몇 명이 그를 제지하기 위해 전경 쪽으로 달려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사수대는 그를 잡는 것을 포기했다. 그의 걸음이 빠르기도 빨랐지만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뛰는 폼이……. 전경들을 향해 달려가는 자세가 이상했다. 분명, 전경들을 향해 뛰어나가고 있었지만, 얼굴과 가슴은 학생들을 향하고 있는 자세. 그제야 사수대 학생들은 그가 뒷걸음질로 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루가스 들어간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무서운 속도로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것을.
어안이 벙벙해진 것은 전경들도 마찬가지였다. 화염병과 돌멩이와 최루탄이 난무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자신들을 향해 홀로 뒤통수를 내보인 채 달려오는 학생이라니……. 전경들은 학생들을 향해 겨누고 있던 최루탄 발사기를 내려놓은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그로 인해 이 모든 상황들이, 화염병과 돌멩이와 최루탄이 난무하던 도로가, 그저 아이들 놀이터쯤으로 변해버린 듯했다. 그는 변함없이 씩씩하게 두 팔을 내저으며 전경들을 향해 맹렬히 뒷걸음질 쳐오고 있었다.
보다 못한 백골단 몇 명이 그를 잡기 위해 뛰쳐나갔고, 그때부터 그와 백골단 사이의 쫓고 쫓기는 긴박한 릴레이가 벌어졌다. 도망치는 자가 쫓아오는 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뛰어가는, 추적자의 자존심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릴레이. 학생들과 전경들 사이, 비어 있는 백오십 미터 도로를 트랙 삼아 어지럽게 회전하는 정체불명의 릴레이. 건물 창문 곳곳에 매달려 시위를 구경하던 시민들의 탄성 아닌 탄성이 흘러나왔고, 황당한 표정으로 릴레이를 지켜보던 사수대들은 다시 대오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뒷걸음질치면서도 전방의 가로수나 쓰레기통 같은 엄폐물에 한 번도 부딪치지 않았고, 백골단이 휘두른 곤봉에도 맞지 않았다. 되레 이성을 잃고 무작정 그를 쫓아오기만 했던 백골단 몇 명이 사수대 학생들에게 사로잡혀 방독면과 곤봉과 헬멧을 빼앗기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전경들의 사기는 급속하게 저하되었고,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사수대들의 화염병은 그 어느 때보다 정확하게 페퍼포그 위로 날아갔다. 그 와중에도 그는 뒷걸음질을 멈추지 않고 전경과 학생들의 완충지대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의 뒷걸음질이 멈춰진 것은 전경들이 아현고가도로를 포기하고 충정로 종근당 빌딩 앞까지 후퇴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좀더 정확히 말해 아현고가도로 옆, 그의 자취방으로 향하는 골목을 에워싸고 있던 전경들이 모두 철수한 뒤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학생들이 전경들을 대신해 골목길을 에워쌌다. 그리곤 일제히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는 그때까지도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최루가스 잔뜩 먹은 두 눈을 대신해 뒤통수에 부활한 박통이 대학생들과 거짓 화해를 시도한 첫날이라고 기록해두었다.
4
그날, 그가 순순히 학생들의 어깨동무를 받아들이고 다시 학교까지 되돌아간 이면에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숨겨져 있었다. 여자가 한 명 있었다. 그를 에워싸고 박수를 치던 많은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뒤통수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의 뒤통수가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어깨동무를 한 뒤에도, 학교로 돌아간 뒤에도.
평범한 얼굴이었다. 늘 조금 감겨져 있는 듯한 큰 눈과 작고 오똑한 콧날, 빠른 하관, 반듯한 이마에는 ‘해체 민자당 타도 노태우’라는 빨간 띠가 둘러져 있었다. 초록색 체크무늬 티셔츠와 물 빠진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가느다란 팔목에는 흰 손수건이 단단하게 감겨있었다. 무척이나 슬픈 목소리를 낼 것만 같은 얼굴. 후에 그는 그녀의 얼굴이, 예전 박통이 궁정동에서 숨을 거둘 때, 그의 죽음을 슬픈 목소리로 지켜주었던 가수 심수봉과 지나치게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에 대한 끌림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자신보다 한 발 앞서 뒤통수 박통이 그녀에게 매혹된 것이라고.
다음 날, 그는 강의실 대신 교내 출정식이 벌어지고 있던 학생회관 앞을 한참 동안 어슬렁거렸다. 어제와 비슷한 복장을 한 학우들이, 어제 밴 최루가스 냄새를 폴폴 풍기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어제 남은 화염병과 어제 휘둘렀던 쇠파이프를 들고 어제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학우들의 모습은, 그러나 하나같이 지치고 데꾼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그녀를 찾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여학생들은 단체로 주문이라도 한 것처럼 엇비슷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는 대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학생들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여린 목소리의 구호가 들려오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연단에 있던 총학생회장이 그를 발견하고 무대 위로 불러 올렸다. 그는 잠시 주춤하다가 연단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연단에 오르자마자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한참 동안 학우들을 훑어보았다. 곧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연단 바로 앞 좌측 열 선두에 어제와 같은 띠를 두르고 서 있었다. 검은색 양복을 차려입은 총학생회장이 어제와 같이 그를 일컬어 ‘백만 학도의 선봉일꾼’ 이라고 흥분된 목소리로 소개하는 와중에도, 그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뒤통수 박통의 눈이 아닌 자신의 온전한 두 눈으로, 처음 그녀를 본 순간이었다. 그의 눈 또한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총학생회장의 연설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단을 내려서려던 그를 몇 명의 학우가 제지했다. 그리곤 비장한 얼굴을 한 세명의 신입생 남학생들이 그의 곁에 일렬로 도열했다. 연단 바로 앞에는 하얀색 플래카드 천이 펼쳐졌고, 총학생회장의 연설은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반드시 이 땅에서 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민주정부를 수립코자……. 여기 네 명의 새내기들이 혈서로써 우리들의 투쟁의지를 드높이고자…….
총학생회장의 격양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중에 누군가 다가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원래 혈서를 쓰기로 예정되어 있던 새내기가 감기몸살 탓에 나오지 못했다. 잠깐이면 되니까 수고 좀 해달라. 총학생회장에게 선봉일꾼으로 지목된 마당에 혈서쯤…….
당연, 그는 사양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를 바라보며 ‘투쟁!’ 하고 외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는 얼떨결에 그녀를 따라 ‘투쟁!“하고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이던 친구는 고맙다고, 진정한 선봉일꾼이라고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그가 포함된 네 명의 새내기가 쓸 혈서의 내용을 사수대장이라는 사람이 읊어주었다.
‘파쇼 독재의 원흉인 미국을 축출하고 한국 총독 그레그를 추방하자!’
그에게 배당된 글씨는 ‘한국 총독 그레그를’이었다. 원문을 보고 쓰는 것이 아니었다. 사수대장이 읊어준 글자를 기억해내 하얀색 플래카드 위에 각자 자기 몫의 글자를 적는 것이었다. 그는 두 눈을 질끈 감고 플래카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른손 검지 첫 번째 마디를 면도칼로 그을 때도 그는 감은 두 눈을 뜨지 않았다. 무언가 저 멀리 옥상 위에 희미하게 보이는 글자를 뒤통수 박통이 읽어내고 있었다. 그를 포함한 네 명의 새내기들은 피 한 방울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재빠르게 혈서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앞에 앉아있던 몇몇의 여학생들은 차마 눈을 뜨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연신 두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혈서를 적어나갔다. 피가 잘 흘러나오지 않자 마치 치약 짜듯 손가락을 눌러가며 한 자 한 자 그려 나갔다.
그렇게 완성된 플래카드가 학우들을 향해 들어올려지자 이곳저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파쇼 독재의 원흉인 미국을 축출하고 기술의 혁신-삼성 추방하자!’
학우들은 그와 그가 쓴 글자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함께 혈서를 쓴 새내기들은 틀린 글자 때문에 다시 혈서를 쓰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고 원망 섞인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았다. 이곳저곳에서 학우들의 추측이 나무하기 시작했다. PD계열이어서 저런 거다. NL계열인 총학생회의 독단에 맞서 나름대로 항의한 거다. 삼성의 노사관계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아니다, 쟤네 아버지가 삼성 이사라더라. 무슨 소리냐, 쟨 알랭 시봉이 맞다. 사노맹의 도움요청을 받고 잠입해온 프랑스 좌파연합 회원이다. 등등. 그러나 그 누구도 학생회관 너머 15층 건물 옥상에 세워져 있는 광고판을 주시하진 않았다.
학우들의 동요를 본 총학생회 측은, 혈서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가두시위를 벌이려던 당초의 계획을 서둘러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어제 가투에서 빛나는 전과를 올린 그를 사수대 선봉에 내세우려 했다. 그러나 그런 총학생회의 바람과 달리, 그는 한 여학생 옆에 바투 붙어선 채 좀처럼 앞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다. 몇 명의 총학생회간부가 그에게 달려가 설득해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는 그저 여학생의 내지르는 구호를 반 박자 느리게 따라 외칠 뿐이었다. 총학생회 간부들은, 그가 PD계열이 분명하다고, 극렬 분파주의자일지도 모른다고 쑤군거렸다.
그가 없는 사수대들은 전경들에게 맥없이 밀리고 말았다. 이대 상가 건물주들은 창문에 고개를 내밀고 그가 등장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지인들 몇 명을 데려와 함께 창문에 매달린 건물주도 있었다. 이제 곧 상황이 역전될 것이라고. 불세출의 투사 한 명이 나타나 전경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하지만 그는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몇몇의 사수대들이 그의 행동을 따라 뒷걸음질치며 뛰어다녀 보았지만, 대부분 도로 턱에 걸려 넘어지거나 백골단들의 곤봉세례에 혼비백산, 다시 자세를 바꿔 학교 쪽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건물주의 말만 믿고 창문을 주시하던 지인들은, 과연 맷집 하나는 타고난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날 가투에서 학생들은 이대 앞 사거리 전경들의 저지선을 단 한 발자국도 넘어서지 못하고 다시 학교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날 시위에서 그의 뒷걸음질을 본 사람이 딱 한 명 있기는 있었다. 바로 심수봉을 닮은 그녀였다. 최루가스와 백골단에 쫓겨 삼삼오오 이 골목 저 골목 뛰어다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그와 그녀, 단둘이서만 염천동 어느 주택가를 내달리고 있었다. 그는 그녀보다 정확히 한 발자국 앞서 달려나갔다. 전날과 다름없는 뒷걸음질이었다. 전날의 그를 기억하는 그녀는 내심 안심이 되었다. 그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그가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 언제 어느 때 뒤에서 나타날지 모르는 백골단을 경계하기 위해 뒷걸음질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헌데, 그의 뒷걸음질이 이상했다. 쓰레기통과 가로수와 백골단의 곤봉을 날렵하고 능숙하게 피하던 어제의 세련된 뒷걸음질과는 달리, 무언가 허술하고 투박하고 서툴렀다. 채 십여 미터를 나아가지 못해서 전봇대나 담벼락에 부딪치기 일쑤였고, 스텝이 엉켜 제풀에 제가 넘어지는 경우도 왕왕 발생했다. 그의 모습은 전날과 다름없었다. 가방도 그대로였고, 신발도 그대로였다. 다만, 두 눈을 질끈 감고 뛰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그녀의 얼굴에서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고 있다는 점, 그 점만 다를 뿐이었다. 그녀는 숨을 헉헉 내쉬며 뛰어가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이 적잖이 부담스러워 자주 고개를 수그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어쨌든 그가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으니까. 그는 총학생회장이 인정한 ‘백만 학도의 선봉일꾼’이었으니까.
그날 저녁, 그는 미아동에 있는 그녀의 집까지, 그녀를 안전하게 에스코트해주었다. 이동하는 도중 통성명을 나누었으며, 서로의 전화번호를 교환하기도(그는 불러주었고, 그녀는 적어주었다) 했다. 그는, 그녀가 집으로 들어간 이후에도 한참 동안 대문 앞을 서성거렸고, 그렇게 수십여 분이 지난 후에야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쳐 그녀의 집에서 멀어져갔다. 그리고 더 이상 근의 집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 된 이후, 비로소 돌아서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인식하지 못했겠지만, 그는 그날 하루 그녀에게 자신의 뒤통수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어쩔 수 없이 뒤통수를 보이는 경우엔, 두 눈을 깜빡거리지 않기 위해 눈꺼풀에 잔뜩 힘을 주었다. 온전히 제 눈으로만 그녀를 보기 위해 애썼다는 것.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어떤 사람에게 그녀의 모습과 그녀의 집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그녀는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수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와 박통이 한 여자를 두고 균열하기 시작한 첫날이었다.
5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그는 줄곧 심수봉을 따라 ‘해체 민자당 타도 노태우’를 외치며 서울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그녀를 처음 만난 이후, 그의 두 눈으로 직접 그녀를 본 이후, 그의 뇌리 속엔 온통 그녀 생각뿐이었다. 강의실엔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고, 그녀가 있을 법한 장소, 그러니까 학생회관 앞에나 학회실 근처를 끊임없이 어슬렁거렸다. 그러다가 그녀를 발견하면 그녀의 곁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인문대 문화선전반 소속인 그녀를 따라 ‘불타는 청춘’ 문선을 익히며 ‘애국의 새세대를 걸어가’기도 했고, 휘발유 냄새를 뒤집어쓴 채 화염병을 만들기도 했다. 동기들 사이에선 그와 그녀가 사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매일매일 집까지 바래다주는 그의 곁에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운운하는 민중가요를 흥얼거리거나, 아주 가끔씩 손을 잡아주어 그의 가슴을 활랑거리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헤어지기 전 꼭 한번씩 그날의 투쟁에 대해 서로 비판하는 시간을 갖길 원했는데, 그때마다 지나치게 흥분하고 목소리가 높아져 그를 적잖이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녀의 비판은 대강 이런 것이었다. 나는 네가 예전처럼 사수대의 선봉에 서길 원한다, 보다 적극적인 투쟁의 한길로 나아가길 원한다, 동지들에 대한 피끓는 애정으로, 혈기왕성한 애국청년으로 거듭나길 원한다. 오늘처럼 나약하고 수동적인 모습은 노태우 군사정권의 장기집권 야욕을 더욱 공고히 해줄 뿐이다, 등등. 반면, 그녀에 대한 그의 비판은 언제나 간단명료했다. 네가 오늘 쓴 모자는 챙이 너무 짧았어. 얼굴이 다 탔잖아. 다음부턴 챙이 긴 모자를 써…….
그는 그녀의 비판에 마음 상해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곁에 머물 수 있는 현실이 꿈만 같았을 뿐이었다. 자신의 뒤통수에 부활한 박 대통령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박통이 세상을 바라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눈 감을 시간이 어디 있는가, 한 번이라도 더 그녀를 봐야지……. 그는 그날도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자취방에 되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자취방 이부자리에 누워 두 눈을 쉬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날 자취방 문을 열려던 그는 멈칫하고 제자리에 멈춰 서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의 방문이 틀림없는데, 문의 정중앙에 낯선 황금색 십자가 모형이 붙어져 있었다. 그건 그의 자취방 맞은 편 방문에 붙여져 있던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힐끗 뒤돌아보았다. 맞은편 방문엔 십자가가 보이질 않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주인집 아주머니가 자신을 전도하기 위해 그랬구나, 쓸데없는 생각을 하셨구나, 하며 십자가를 떼어내려 손을 내밀었다.
헌데, 무언가가 이상했다. 손에 십자가가 잡히질 않았다. 분명 십자가를 향해 손을 뻗었는데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거칫한 방문 표피만 손가락 끝에 스칠 뿐이었다. 그는 몇 번 더 손을 뻗어보았지만 허사였다. 눈에 보이는 십자가가 손에는 잡히질 않았다. 그는 자신의 시력을 위심했다. 하루 종일 최루탄 난무한 거리를 돌아다녔으니 무리도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두 눈을 감고 눈덩이 위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아릿하고 시큼한 최루가스 냄새가 났다. 금세 눈물이 고이고 뒷목 부위가 뻐근해져오기도 했다.
그 순간, 그의 뒤통수 박통이 눈을 떴다. 혈서 사건 이후, 처음 떠진 박통의 눈이었다. 물론 엄밀히 따져보면 그 기간 중에도 박통의 눈을 몇 번 떠지긴 떠졌었다. 그가 잠들기 직전이나, 좌변기에 앉아 힘줄 때, 커피 물에 손을 데었을 때 등등. 하지만 그건 눈을 떴다고 말하기 힘들 만큼 짧은 순간이었다. 무채색과 유채색의 구분도 할 수 없을 만큼 찰나의 순간……. 그는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베개 깊숙이 자신의 뒤통수를 파묻고 난 뒤에야 겨우 눈을 감고 잠을 청할 정도였다. 박통이 부활한 이후 처음으로 그는 뒤통수에 생긴 두 눈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생각도……. 그의 그런 생각의 중심엔 심수봉이 있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데 있어 뒤통수에 생긴 두 눈은, 부활한 박통은, 그저 거북스럽고 거추장스러운 존재였을 뿐이었다.
그는 그러나, 박통의 시선을 의식하고도 감은 두 눈을 뜨지 않았다. 박통의 시선을 야멸차게 거둘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의 등뒤에 그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잠시 자신의 두 눈을 쉬게 하는 것이라면. 기껏 박통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해봤자 자신의 방문과 똑같이 생긴, 굳게 닫힌 맞은편 방문이 전부였으니까.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 두 눈을 문지르고 있던 그는, 어느 한순간 두 눈을 번쩍 뜨고 말았다. 박통의 시야에 들어온 무엇인가를 그제야 인식했던 것이었다. 그의 두 눈이 미처 보지 못한 것. 그러나 박통의 눈엔 보이는 것. 맞은편 방문의 황금색 십자가……!
그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맞은편 방문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십자가는 보이질 않았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이번엔 자신의 방문을 보았다. 십자가는 분명 그곳에 매달려 있었다. 여전히 자신의 손에 잡혀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한동안 꺼꾸정한 자세로 굳은 듯 서 있다가, 다시 몸을 돌려 맞은편 방문 앞에 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에겐 보이지 않는 십자가를 향해 손을 뻗어보았다.
아아, 그곳엔 분명 무언가가 걸려져 있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 거칫한 나뭇결이 아닌, 날카롭고 차가운 금속성의 십자가와 벌거벗은 예수의 형상이 만져졌다. 보여지진 않고 만져지기만 하는 형상…….
그제야 그는 자신의 두 눈이 뒤통수에 들어앉은 박통의 눈에 의해 일부분 잠식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자신의 방문에서 본 십자가는, 실제론 맞은편 방문에 걸려 있는 십자가라는 것을, 마찬가지로 맞은편 방문에서 본 나무무늬는, 실은 자신의 방문무늬였다는 것을……. 눈을 뜬 상태에서도 정면이 아닌, 뒤가 보인다는 것을…….
그는 더듬더듬거리며 간신히 그의 자취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간 이후에도 증상엔 이렇다 할 변함이 없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배구공만한 구멍이 뚫렸고, 그 구멍 속으로 뒤통수 너머의 풍경이 펼쳐졌다. 창문 중간에 자리 잡은 사방무늬벽지, 형광등 가운데 떠 있는 모노륨 장판, 커튼 중앙에서 입을 다물고 있는 책상서랍…… 마치 세상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듯한 풍경.
그는 한쪽 벽면에 서 있는 전신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거울 안에는 얼굴 없는 한 청년이, 아니 마치 사방연속무늬 가면을 뒤집어 쓴 듯한 청년이 서 있었다. 그나마 박통에 의해 잠식당한 눈앞의 세상이 아직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시선이 닿는 정중앙의 배구공만한 구멍을 빼곤 모든 것이 다 정상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거울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젠 정말 박통과 헤어질 때가 되었다고, 둘 중에 어느 한 명은 시력을 잃어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그는 한참 동안 그렇게 중얼거리며 거울 앞에 서 있었다.
6
다음 날, 그가 눈을 떴을 때도 증상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오히려 전날보다 구멍의 크기는 더 넓어져 있었다. 앞의 세상보다 뒤의 세상이 조금 더 커진 것이었다. 그는 학교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더구나 그날은 ‘민자당 해체와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 결의대회’가 예정된 날이기도 했다. 전날 그녀는 그에게, 내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시청 앞 로터리를 해방구로 만들자고, 네가 선봉에 서지 않겠다면 나라도 쇠파이프를 들고 전경과 맞설 테니 알아서 하라고,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로 다짐을 받아 두었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서둘러 나갈 채비를 갖추었다. 이대로 집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비단 그녀와의 약속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박통이 뒤의 세계를 보여준다면, 뒤의 세상으로 그녀에게 가는 길을 막아선다면, 기어서라도 제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것만이 박통에게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았다. 그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옷을 입으며 그는, 자신이 정말 투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옷을 다 입었을 때쯤 그는, 자신이 진정 투사가 되어야만 다시 앞의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날, 그가 학교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평소의 두 배가 조금 넘는, 한 시간 이십여 분이었다. 도무지 제대로 발을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층계의 끝이 어디인지, 층계참이 어디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신호등을 노려보아도 시야에 잡히는 것은 오직 등뒤에 서 있는 행인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신문가판대뿐이었다. 앞으로 걸어나갈수록 다가오는 것은 하나 없고, 점점 멀어지기만 하는 풍경들…… 멀어지기만 하는 사람들…… 박통의 구멍은 점점 더 넓어져만 갔고, 그는 심한 현기증을 참아내기 위해 자주 어금니를 악다물어야만 했다.
다른 무엇보다 그의 걸음을 더디게 만든 것은 흔미해진 방향감각이었다. 한참을 걷다보면 반대방향이거나 엉뚱한 골목길이었고, 우측에서 오는 사람을 피해 왼쪽으로 몸을 틀면, 바로 그 방향에서 걸어오던 뒷사람과 정면으로 충돌하곤 하였다. 그는 도로 한쪽 전봇대에 몸을 기대는 일이 잦아졌고, 그때마다 미간을 웅크리며 가쁜 숨을 토해냈다. 그러나 절대 두 눈을 감거나, 뒷걸음질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건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이대로 박통에게 질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학교에 당도한 건, 교내 출정식을 끝낸 학우들이 구호를 외치며 막 도로로 빠져나오고 있을 무렵이었다. 마이크를 든 총학생회장이 선두에,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든 사수대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오직 소리로서 인식해냈다. 이제 그의 시력은 거의 대부분 뒤의 세상에 의해 점령당하고 남은 게 별로 없었다. 평소 그가 바라보던 세상이 콤펙트 화장품 크기만한 사각형이었다면, 이제 남은 부분은 콤팩트 속 둥근 거울을 제외한 나머지 모서리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서리에 들어오는 세상이란 기껏해야 팔랑거리는 머리끈과 낡아빠진 운동화, 불규칙적으로 들어올려지는 주먹들이 전부였다.
그는 한동안 도로에 서서 학우들의 구호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리곤 무언가를 작정한 듯 단호한 표정으로 학우들의 행렬에 끼어들었다. 연신 앞사람의 뒤꿈치를 밟고, 제 발에 제가 엉켜 넘어지는 일도 있었지만, 그의 발걸음은 멈춰지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처럼, 그 어떤 구호도, 그녀의 이름도 외치지 않고, 오직 발걸음만 옮겨나갈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눈을 찾게 될 것이라고, 오직 자신의 눈으로만 그녀를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모서리에 들어오는 세상이 점점 얇아지고 있었음에도, 그는 그렇게 오해했던 것이다. 자신의 오해가 부를 그 어떤 사태도 예감하지 못한 채 말이다.
7
한 청년이 살았다. 두 눈을 감으면 뒤통수 너머의 세상을 볼 수 있는 신기한 재주를 가진 청년이었다. 청년은 그것을 부활한 박통의 두 눈이라 믿었다. 청년은 박통 덕분에 손쉽게 대학에 들어갔고, 백만 학도의 선봉일꾼이 되었으며,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청년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자 자신의 뒤통수에 생긴 박통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청년은 의도적으로 박통과 멀어지려 노력했다. 사랑을 새마을운동처럼 할 순 없는 거라고, 새마을운동이 오히려 사랑을 방해할 수도 있는 거라며…….
그러자 부활한 박통이 가만있질 않았다. 지금까지 청년에게 건네준 모든 것들을 다시 앗아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청년의 눈마저 내놓으라고 위협했다. 박통은 청년에게 몹시도 화가 났던 것이었다.
청년도 박통의 역습에 무방비상태로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청년은 저항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방향감각마저 상실했지만, 청년은 예전처럼 박통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려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진 않았지만, 그럴수록 더 제 눈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박통의 손길에서 벗어날 날이 올 것이라고…….
그날, 청년은 ‘민자당 해체와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 결의대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청년은 자근자근 자신의 시력을 향해 덮쳐오는 박통의 발걸음을 느꼈고, 그로 인해 몹시도 불안해하고 두려워했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그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속 앞으로만 걸어나갔다.
시위대의 맨 앞쪽까지 걸어나갔을 때, 누군가 청년의 등을 가볍게 쳤다. 청년은 뒤돌아보지 않고도 그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시위대 앞쪽에 쪼그려 앉아 화염병을 투척하고 되돌아오는 사수대원들에게 부지런히 새 화염병을 건네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청년은 그녀의 얼굴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 그건 자신의 시선이 아니었으니까.
네가 올 줄 알았어.
그녀는 청년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곤 재빠르게 청년의 손에 무엇인가를 넘겨주었다.
봐. 우리 편이 밀리고 있어. 나라도 뛰어나가 던지려던 참이었어.
화염병이었다. 청년은 보이지도 않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켜보았다. 그러나 청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최루가스 속에서 나부끼는 깃발들뿐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 동안 화염병을 만지작만지작거리만 하던 청년을 그녀가 채근했다.
뭐 해. 어서 안 가고! 가서 꽃병을 날리라고!
그녀는 청년이 들고 있던 화염병에 불을 붙여주었다. 청년은 고개를 숙인 채 주춤주춤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곳저곳에서 최루탄 터지는 소리, 화염병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에선가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빨리 가! 빨리 뛰라구!
그제야 청년은 한 발 두 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보이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눈앞엔 온통 자욱한 최루탄 연기뿐이었다. 두 눈이 쓰리고 숨이 턱턱 막혀왔지만, 청년은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 계속 달려나가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두 명의 백골단이 청년을 향해 뛰어왔다. 청년은 그들에게 잡히지 않으려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자 이번엔 네 명의 백골단이 청년을 향해 곤봉을 들고 달려들었다. 백골단이 휘두른 곤봉에 청년은 어깻죽지를 맞고 쓰러졌다. 하지만 손에 든 화염병은 놓지 않았다. 청년은 휘청거리며 일어나 또다시 앞을 향해 뛰어나갔다. 화염병을 던지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청년에게 중요한 건 오직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자신의 뒤통수에 부활한 박통을 향해, 박통의 눈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뿐이었다.
또 다시 전경들의 무리가 청년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이번엔 청년도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물러서지 않고 전경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손에는 아직 화염병이 쥐어져 있었다. 화염병을 던져서라도 길을 만들고, 그래서 계속 앞으로 뛰어나갈 생각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청년은 전경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전력을 다해 뛰어 나갔다. 그리고 있는 힘껏 전경들을 향해 화염병을 집어던졌다.
바로 그 순간, 이대 앞 사거리 상가 건물주는 3층 창문에 매달려 전경들과 학생들 사이의 밀고 밀리는 공방전을 구경하다가 또 한 번 난생 처음 보는 희한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한 남학생이, 여학생이 건네준 화염병을 들고 용감무쌍하게 백골단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거기까지야 뭐, 늘상 보던 풍경이어서 그리 새로울 것도 없었다. 어느 정도 선까지 달려나가 화염병을 던지고 도망치는 학생들의 모습은 이제 이골이 나도록 보고 또 보아온 모습이었다.
헌데, 그 남학생은 달랐다. 어찌된 일인지 화염병을 던져야 할 선에서 던지지 않고 그냥 한 손에 든 채 계속 앞으로만 달려나가는 것이었다. 그걸 놓칠 백골단들이 아니었다. 두 명의 백골단들이 그를 향해 달려나갔다. 저대로 가다가는 영락없이 백골단의 곤봉세례를 달게 받을 것 같았다. 초짠가?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남학생의 뒷모습을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건물주는 그 학생이 바로 지지난번 시위에서 멀어지지 않을 만큼 뒷걸음질로 전경들의 사기를 저하시간 바로 그 불세출의 투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키로 보나, 입고 있는 옷으로 보나 그 학생이 틀림없었다. 건물주의 허리가 창문 밖을 향해 한 뼘쯤 더 내밀어졌다.
남학생은 백골단의 손에 잡히기 일보직전에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자 다시 네 명의 내려친 곤봉에 맞아 도로에 넘어지기도 했다. 지켜보던 건물주와 학생들과 시민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남학생은 재빠른 동작으로 다시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손엔 여전히 불붙은 화염병이 들려져 있었다. 이제 남학생이 달려가는 방향은 다시 그가 뛰쳐나온 데모대를 향해져 있었다. 백골단들은 여전히 그의 등 뒤에서 빠르게 좇아오고 있었고, 화염병의 불씨는 정점에 달해 있었다.
순간, 남학생의 손에 들려져 있던 화염병이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거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가 던진 화염병을 따라 들어 올려졌다. 그를 뒤쫓아오던 백골단들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졌다. 그를 돕기 위해 화염병을 들고 뛰쳐나오던 사수대들의 발걸음도 멈춰졌다. 마치 도로 위의 모든 시간들이 정지된 듯 짧은 정적이 흘렀다.
남학생이 던진 화염병은 포물선을 그리며 목표물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데모대 한 중앙에서 파열했다. 화염이 솟았고, 학생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와중에 몇몇 학생들의 운동화에 화염이 옮겨 붙었으나 다행히 재빠른 동작으로 신발을 벗어버려 별다른 화상 피해는 입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를 쫓던 백골단도, 그를 도우려 뛰어나오던 사수대도, 시민들도, 건물주도.
그의 걸음은 그제야 멈춰졌다. 그가 만들어낸 화염은 데모대 중앙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마지막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그의 고개는, 자신이 던진 화염병을 외면한 채 백골단 쪽으로 향해져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백골단들도 들고 있던 곤봉을 무릎 아래까지 내린 채 서로서로 눈을 마주치기만 할 뿐,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그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번엔 데모대도, 백골단 쪽도 아닌 그 중간에 자리 잡은 염천동 골목 쪽이었다. 좀전과 같이 앞으로 뛰는 것이 아닌, 예전 그 맹렬한 뒷걸음질로……. 능숙하게 전봇대와 가로수를 피하고, 도로 턱을 넘고, 쓰레기통을 비껴가며…….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뒤쫓아가진 않았다. 그저 멀어져가는 그의 앞모습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사수대와 백골단 사이의 맹렬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서로가 서로에게 집중하며…….
오직 3층 창문에 서 있던 건물주만이 그가 사라진 염천동 골목길을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소리 나게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오늘 데모에서 말이야…….
8
이후, 그의 모습을 학교에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의실에서도, 학생회관 앞에서도, 교문 앞에서도, 그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학기가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그는 등록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그가 용산에서 본격적으로 호스트바를 차렸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가 모국인 프랑스로 되돌아갔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믿을 만한 것은 못 되었다. 그저 대부분 술자리 농담처럼 금세 후끈 달아올랐다가 금세 식혀지고 마는, 그런 것들이었다. 그는 완벽하게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또다시 시간을 흐르고 흘렀다.
그 와중에 여러 차례 투옥과 구금과 도피생활을 일삼던 총학생회장은, 여당의 구청장 후보로 변신하여 자신의 전과기록을 자랑스럽게 선거 홍보물에 삽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을 관할 구청 안으로 유치하여 막대한 수익 창출을 이루겠다는 공약을 내놓아 야당후보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으로 인해 임대수입이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대 앞 건물주는, 지인들에게 열심히 전화를 돌려 총학생회장 지지를 부탁했고, 통화 간간이 새삼 박 대통령의 치적을 떠올리곤 감회에 젖기도 했다.
한편, 졸업 후 비영리 여성단체를 조직, 진보적인 페미니스트 이론가로 여러 여성잡지에 얼굴을 내밀었던 심수봉은, 박통의 딸을 단체에 초청하는 문제로 회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는데, 회원들은 그녀에게 대놓고 ‘여성해방만을 위하는 거냐. 인간해방을 원하는 거냐’ 하며 큰 소리로 항의하기도 했다. 그녀는, 그런 회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수첩에 적은 후, 이름 상단 위에 조만간 정리해야 할 대상이라고 더 큰 글자로 적어놓았다.
그는 그런 사람들 앞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아니, 한두 번 정도 모습을 나타냈을지도 모른다. 다만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 사람들은 모두 제 갈길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에 정신없었다. 미처 그를 기억하거나 회상할 만한 짬이 나질 않을 정도로. 그를 떠올리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그가 다시 여러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구십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여의도 한강고수부지 조깅코스에서였다. 며칠 전부터 조깅코스에 나타나 오직 뒷걸음질로만 뛰는 한 사내를 보며 근처 아파트 주민들이 쑤군거리기 시작했다.
왜 저렇게 뛰는 거지?
뭐 특별한 이유가 있나보지.
저게 더 힘들지 않나?
힘든 만큼 건강에 좋겠네.
그렇구나. 그래서 저렇게 뛰는구나.
어때, 우리도 한번 저렇게 뛰어볼까?
그럴까? 뭐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해서 한 명 두 명 그의 뒤를 따라 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처음 그를 따라 뛴 사람들이 건강엔 아주 그만이라고, 옆집 사람들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다음 날부터 옆집 사람들도 그의 뒤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옆집 사람들도 자신의 체력단련 비법을 친척들에게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뒤를 따라 뛰는 사람들이 수십여 명에 달하게 되었다. 각종 매스컴이 몰려들어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그는 두 눈을 감은 채 묵묵부답이었다. 그저 계속 뒷걸음질칠 뿐이었다. 그의 그런 태도에 할 말을 잃은 리포터는 건강엔 아주 그만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멘트를 세 번이나 반복해서 웅얼거렸다. 그때부터 전국 공원이나 약수터에서 뒷걸음질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늘어났고,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부딪혀 넘어지는 아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를 직접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한강시민공원이나 남산 계단길로 나가보면 된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뒷걸음질치고 있는 사내. 앞을 등진 채 앞을 향해 뛰고 있는 사내. 그가 바로 그다. 대신 그에게 말을 걸거나 사인을 해달라고 졸라선 안 된다. 왜 안 되는지는 다들 알고 있을 테니 더 이상 긴 말은 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