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수사(修辭)/ 김영란
분홍빛
한 자락이
날아가 길이 되듯
텅 빈 하늘 한쪽
휘파람새로
와서 울듯
한 생(生)이
까맣게 익어
톡톡 튀는
저것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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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 잔느*를 위한 별곡/ 김영란
바람이 불고 있다 반쯤 젖는 그녀 가슴
꽃 피는 들길 따라 닿고 싶은 지상의 빛
눈 없는 그 여인에겐 눈동자가 있었네.
만나고 헤어짐도 썰 밀물 오가듯이
역광 속 에스키스 빛나는 시간 사이
목이 긴 삶의 흔적이 길 하나를 만든다
흔들리는 사랑 앞엔 오차도 잴 수 없어
비워 둔 괄호처럼 뼈만 남은 영혼 위에
두고 온 세상 한쪽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잔느: 화가 모딜리아니의 부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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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길이/ 김영란
때로는 시인이었다가
때로는 철학자였던
밀물진 조간대에
홀로 선 왜가리
그 반경 뒤뚱거리다
목만 길어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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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봄- 불칸낭* 앞에서/ 김영란
4.3때 온 마을 불탄 선흘리에 가면
불에 타도 죽지 않은 팽나무 한 그루
숯덩이 가슴을 안고 지금도 살아 있다
질기게 살아남은 목숨 더욱 아프다
세월에 불연소된 뭉툭한 상처자국이
반역의 한 생을 돌아 시퍼렇게 눈을 뜬다
*불칸낭: 불에 탄 나무라는 뜻의 제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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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장마/ 김영란
해마다 사월이면
마른 젖 탱탱 불어
까맣게 잊은 듯이
가슴에 품은 아이
조막손 제주고사리
젖 달라고 보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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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새로운 교감
김영란 시조집/ [꽃들의 수사(修辭)]/ 동학사/ 2014년
바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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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1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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