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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취산 510m |
진달래가 유명한 산으로 산행할 때는 타이밍을 맞추기가 무척 힘들다. 남먼저 보겠다고 서둘렀더니 진달래는 커녕 눈밭을 걸어야 했고 한창이라는 때에 찾았더니 진달래는 지고 철쭉이 만개해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진달래 명산으로 알려진 전남 여수의 영취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영취산의 진달래 산행 적기는 매년 4월 첫째 주에서 둘째주로 알려져 있다. 그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금년(2004년)엔 4월 10일을 영취산 산행날자로 잡았다. 여수에선 돌산의 향일암도 꼭 들러야 할 곳이라기에 1박2일로 일정을 잡고 9일 하오에 6명이 승합차로 서울을 출발, 여수에서 하루 묵었다. 10일 아침 7시께 숙소 주변의 식당에 들러 아침을 먹을 때 식당주인에게 영취산으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주인은 "이곳에 왔으면 영취산보다는 향일암을 가봐야 한다"고 충고를 했다. "영취산을 갔다온 후에 향일암에도 갈 예정"이라고 하자 그는 "오늘이 토요일이니 향일암을 먼저 들러야지 오후에 갔다간 가는데 3~4시간, 나오는데 3~4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우리는 식당주인의 말에 따라 식사가 끝난 후 곧바로 향일암으로 향했다. 향일암 가는 길은 왕복 2차선 도로여서 토요일 오후 관광객들이 몰리면 차량소통이 어려울 것같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를 지나 시멘트 포장길을 오르자 왼쪽으로 일주문이 있는 돌계단길이 나왔고 오른쪽으로는 평탄한 길을 우회하는 코스가 있었다. 우리는 우회길로 갔다가 계단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향일암은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처음에는 원통암이라 했으나 절이 동향으로 앉아 일출을 바라볼 수 있어서 100여년 전부터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향일암을 안고 있는 산이 금오산(금거북의 산)인데 향일암의 앞쪽에 바다로 잠수하려는 작은 산은 온전히 거북의 형상이다. 특이한 것은 향일암 주변의 암벽이나 바위들이 거북의 등처럼 금이 가 있다.
절의 뒤편에는 흔들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경전이 펼쳐진 모양이어서 이같은 산과 바위의 형세를 두고 사람들은 '거북이 경전을 등에 지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상서로운 모습'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인지 이곳 부처님은 영검하여 '중생이 간절히 기원하면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고 소문나 있다.
향일암에는 대웅전, 관음전, 용왕전, 산신각등의 전각이 있는데 이들 전각에서 남해쪽을 내려다 보는 전망이 일품이다. 푸른 하늘과 더 짙은 바다의 색조속에 중생들의 서원에 불보살이 감응했다는 '감응도', 부처님이 머물렀다는 '세존도', 아미타불이 화현했다는 '미타도'등 눈앞의 섬들이 고찰의 격을 높여 주는 것같았다.
바다위 150m의 절벽에 세워진 향일암을 두루 구경한 후 절에서 1km 거리인 금오산 정상에 올라 가는게 어떠냐는 얘기나 나왔으나 대부분이 "영취산으로 바로 가자"고 하여 계단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주차장에서 향일암을 보고오는데 1시간 남짓 걸렸고 걸음수는 3500보 였다.
우리는 급히 영취산으로 향했다. 여천공단쪽으로 들어가 LG정유옆으로 뚫린 임도로 올라갔더니 차량들이 많이 주차해 있는 등산로 입구가 나타났다. 입구에서 진달래가 피어있는 능선위로 봉우리가 두개 보였으며 그중 높은 것이 정상이겠거니 했다. 이정표에는 '정상 1.8km'라고 되어 있었다.
11시 5분, 산행을 시작할 때는 섭씨 20도를 웃도는 초여름 날씨에 등산로 주변에는 키 큰 나무 하나없는 민둥산이어서 오르기도 전에 땀부터 나올 지경이었다. 능선 왼쪽의 진달래 군락지에는 사람들이 더덕을 캐고 있는지 진한 더덕향이 코를 찔러 기분은 좋았지만 정작 진달래가 무리지어 피어있는 곳은 그 반대쪽인 여천공단쪽의 사면이었다.
내가 처음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봉우리는 450봉으로 이 봉우리에 올라서니 그 뒤쪽으로 암봉과 철탑이 있는 높은 봉우리가 따로 있었다. 정상으로 가는 능선의 좌우에는 진달래가 군데 군데 피어 있었으나 이미 절정기가 지났는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산이 높지 않아서 인지 정상까지도 별로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여천공단과 광양제철소가 한눈에 들어 올만큼 시야는 넓었으나 바람도 별로 없어 시원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공단쪽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으며 공해가 심하겠다는 생각탓인지 아황산가스 냄새가 나는 것같았다.
정상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5분이니 딱 1시간이 걸렸고 걸음수는 2500보에 불과했다. 동네 산인 서울의 청계산도 4500보 정도는 되는데 이건 청계산보다도 훨씬 못하다는 생각에 어이가 없었다. 정상에는 2003년 6월 22일 여수오동산악회가 세운 '진례산 510m'라고 적힌 표지석이 있었고 산불감시를 위한 철탑이 있었는데 이 철탑옆의 편편한 시멘트 바닥이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산신제와 기우제를 지냈던 장소였던 '금성대'로 짐작된다.
우리가 하산하기로 했던 흥국사가 정상에서 내려다 보였다. 우리가 왔던 길의 반대쪽이다. 이정표에는 1.8km로 되어 있었다. 등산로와 하산로의 거리가 꼭 같았다. 정상은 널찍하여 등산객들이 주변에 흩어져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날벌레들이 웅웅 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어 우리는 서둘러 하산했다.
봉우재로 가는 내리막 길은 경사가 급해 잔걸음을 걸어야 했다. 밑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어서 우리는 코스를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앞쪽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하산을 하고 있었는데 창녕에서 왔다는 아주머니들은 "영취산 진달래가 화왕산 진달래만 못하다"고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영취산은 창녕의 화왕산, 마산의 무학산과 함께 남한의 3대 진달래 명산으로 꼽히고 있는데 우리가 산행시점을 잘못 택한 탓도 있겠지만 스케일면에서도 다소 미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계곡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니 왼쪽에 공사가 진행중인 절이 있었다. 원통전과 용왕전이었다.
흥국사는 이름보다 작은 절이라고 생각하면서 길을 따라 주차장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큰 가람이 보였다. 알고보니 이곳이 흥국사였다. 810년 보조국사 지눌이 세운 고찰로 나라를 흥하게 하는 사찰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임진왜란때 700여명의 승군이 머물렀던 승군훈련소이기도 했다고.
흥국사 도착시간이 13시 5분이니 정상에서 흥국사까지 내려오는데 1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걸음수는 5000보가 넘어 이날 영취산의 산행에서 모두 7600보를 걸었다. 유명한 산치고 등하산에 1만보가 되지 않는 산은 별로 없었는데 영취산은 산행거리가 너무 짧은 편이다. 아침 일찍 들렸던 향일암의 걸음수를 합치면 1만보가 넘기 때문에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