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
1.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는 미래의 세계를 배경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한다. 기술의 발달 속에서 인간의 존엄은 과연 유지될 수 있는가? 인간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인간은 얼마만큼 이용가능하고 그것을 용납할 수 있는가? <미키 17>는 끔찍한 지구의 생활에서 탈출하기 위해 우주식민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미키는 사채업자에게 생명까지 위협받자 지구를 떠나기로 결정하지만 특별한 재능과 기술이 없는 그로선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는 실험대상에 지원한다. ‘익스펜더블’을 자원한 것이다. 익스펜더블은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의 산물로써 비록 인간이 죽었을지라도 과거의 기억을 완벽하게 보존하고 육체 또한 정확하게 데이터화시켜 언제든지 재프린트하여 탄생할 수 있는 존재이다. 즉 죽더라도 끊임없이 기술에 의해 재탄생하는 인간인 것이다. 익스펜더블은 미지의 우주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거기에서 나타난 데이터를 바탕으로 위험을 예방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탐사도구인 셈이다.
2. ‘미키’는 혹독한 우주환경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인간 ‘마루타’의 역할을 재현한다. 그가 죽으면서 얻게 된 자료는 우주식민 프로젝트 개선에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 그가 죽으면 다시 재프린트되어 똑같은 존재로 나타난다. 비록 다른 인물이지만, 똑같은 기억과 육체를 갖고 태어난다는 점에서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게 재프린트 될 때마다 숫자가 더해져 <미키 17>로 활동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탐사 작업 중 깊은 동굴에 빠진 미키는 동굴 속 괴이한 동물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된다. 그것을 목격한 동료는 미키의 죽음을 보고하고 새롭게 <미키 18>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미키 17>는 죽지않고 살아나게 된다. 행성의 생물들이 오히려 그를 살려서 동굴 밖으로 내보내 준 것이다. 예기치 않게 같은 두 개의 존재가 발생하게 되었다. ‘트리플’ 현상이다. 영화는 트리플 현상 속에서 일어나는 소동과 충돌을 약간은 블랙 코미디처럼, 때론 심각한 충돌로 묘사한다. 그 속에서 인간의 문제는 더욱 명확하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3. <미키 17>에서 발견할 수 있는 메시지는 수많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이슈를 정리한다면 크게 3가지 방향으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의 가치’에 대한 심각한 질문이다. 오래전 철학자 칸트는 인간을 결코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키 17>에서 인간은 철저하게 수단으로 활용되어지는 존재이다. ‘익스펜더블’ 프로그램은 윤리적, 사회적 문제 때문에 지구 내에서는 사용될 수 없었지만, 우주 식민에는 허용되었다. 특별한 상황이지만 인간을 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끊임없이 확장될 수밖에 없다. ‘익스펜더블’은 로봇으로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대한 반응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기술적 성취였다. 하지만 필요성이라는 명분으로 인간을 도구화되는 현상은 누구도 전체의 목적에 의해 희생될 수 있다는 현실을 냉혹하게 보여준다. 기술의 위험성은 이렇다. 그것에 대한 엄격한 제한요건을 달지라도 실행되다면 끊임없이 오남용의 늪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을 완벽하게 재프린트 할지라도 그것을 같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같은 기억과 같은 몸을 지닌 존재이지만 ‘인간복제’에 대한 고민은 우리를 위협하는 주제이다. 하지만 기술이 개발되면 그것을 악용하는 존재들이 여러 개의 복제을 이용하여 범죄에 이용하는 현상은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4. 두 번째는 ‘우주식민 프로젝트’의 정당성이다. 시간의 변화는 지구의 안전에 위협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우주식민 프로젝트는 결국 다른 생물들이 살고 있는 공간을 강제로 빼앗는 것이다. 미키가 참여한 우주프로젝트 또한 그러한 목적으로 실행되고 있었다. 미키를 구해준 생물들은 호의적이고 공격적이지 않았지만, 프로젝트 책임자는 이들을 신경가스로 멸종시켜 영토를 장악하려는 계획을 추진한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그들의 문명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려없이 자신들의 계획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완전한 멸절을 추진하는 것이다. 우주선을 둘러싼 우주 생물들의 모습은 마치 아메리카 들소들의 군집과도 유사하다. 과거 힘으로 아메리카를 장악한 유럽인들의 식민지 개척의 역사가 오버랩되는 것이다. 이미 먼저 살고 있는 존재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 없이 추진되는 인간의 개척 프로젝트는 탐욕과 아집으로 가득찬 비열한 행위들의 집합체이다.
5. 세 번째는 인간의 가장 큰 수수께끼인 ‘죽음’의 문제이다. 사람들이 미키에게 가장 큰 관심을 갖는 것은 ‘죽을 때’의 느낌이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공포이자 피하고 싶은 존재의 사라짐이다. 비록 재프린트 되지만 미키는 죽음을 극복한 존재인가? 정신만 살아있다면 육체의 소멸은 문제가 되지 않는가? 죽음은 다시 재생할 수 있다면 결코 문제가 되지 않은 사건인가? 미키는 죽을 때마다 큰 고통과 불안에 빠진다. 수많은 죽음이 반복되면서도 죽을 때의 공포는 결코 경감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죽은 그 순간의 공포와 고통은 항상 실존적이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 ‘익스펜더블’ 프로그램은 폐지되고 <미키 17>은 마지막 프린트로 남게 된다. 미키를 사랑한 여인은 말한다. 그와 함께 늙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죽음’은 인간의 삶은 한 번 뿐이라는 점을 말해주는 공포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유한성이 그를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죽음’이 있기에, ‘소멸’이 있기에, 인간은 그것이 도달하기 전까지 현재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 이후에는 다만 절대적 ‘무’만 남기에.....
첫댓글 - "죽음 이후에는 다만 절대적 ‘무’만 남기에....." !!! '있는 것'에서 '있었던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