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상인왕>으로 기억되는 '멜리함 언더힐'은 300년전 '칼리가람'강 하류의 저습지에 계획적
대도시를 세우라는 명을 내리고 인력을 모았다. 그리고 그때 모인 여러 사람들 중에서는 아직도
역사속에 '시대의 거장' 이라는 별명으로 기억되는 '칼시노아 핸'이 있었다.
역사의 기록을 빌자면<상인왕>이 칼시노아에게 내린 명령은 약간은 황당하기도 한것이었다.
"이곳은 천혜의 상업적 요충지요. 짐은 그대가 '칼리가람'강을 가로질러 강 서편과 동편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해 주기 바라오. 모두들 내가 말한 다리의 규모와 강물의 거친 흐름에 난색을 표하나
당신이라면 가능할것이라 믿소."
"어떤 명이십니까? 이 비천한 건축공은 '어렵다'라는 한마디에 벌써 이 늙은피가 끓는군요."
왕의 면전 앞에서는 다소 무례하다고도 할수있는 칼시노아의 발언. 하지만 <상인왕>'멜리헴'은
가볍게 웃어주고 말을 이었다. 6살때부터 설계도속에서 놀았다는 노장(老匠)의 자부심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쌍두마차 4대가 나란히 지나갈수 있을만큼 넓고 큰 교량의 건설을 그대에게 명하오."
". . . . . . . . . ."
"어렵겠소? 이번에 '칼리가람'강 하류의 소택지에 새로 건설하는 도시는 상업의 중심지가 될거란 말이오. 기존의 도시들 처럼 거룻배를 만을 이용해서는 물류의 수송이 원할하지 못하오. 게다가 겨울에는 강 상류에서 부빙(浮氷)들이 떠내려 온단 말이오 그래서는 겨울에는 강을 건너거나 할수도 없소."
". . . . . . . . . ."
"일부 건축가들은 강의 빠른 유속을 문제삼아 짐의 교량건설 계획을 반대하나 그런 이유로 우리는 견고한 교량이 더 필요한 것이오. 다리를 놓기도 힘들만큼 거센 강물위에 배를 띄우기란 더더욱 힘든법 이니까. 해답은 견고한 교량뿐이오. . . . . . .아니. . . . . .칼시노아. . . . .왜 그러시오?"
기록에 따르면 '시대의 거장' 칼시노아 핸은 <상인왕>'멜리헴' 앞에서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고 한다.
". . . . . .전. .전하께서. . .이처럼 미. . .미욱한 늙은이에게 그런 중대한 일을 맡기시니. . . .소인 그저
이 늙은 목숨을 다해 명을 받들을 뿐입니다."
"할 수 있다는 말이오? 짐은 그대만을 믿겠소."
(그런데 여기에 좀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하나있으니 그 당시 한 궁내부원의 개인 기록에 따르자면
감동에 취한 '칼시노아 핸'은 평소의 습관대로 <상인왕>앞에서 맨손으로 콧물을 팽풀어 바닥에 깔린 주단(朱丹)에 쓱쓱 닦아버리는 용감무쌍한 행동을 보여줌으로 궁내부원들을 기겁하게 했다고 한다.)
그때 이미 '칼시노아 핸'의 나이가 54살.칼시노아 헨은 왕명을 받은이후 자신의 작업실에 쳐박혀
두문불출 교량의 설계만을 연구한다. 하루에도 수십장씩. 치수와 설명이 빼곡히 적힌 교량의
설계도가 그려지고 또 수정되고 폐기되었다.
그러기를 정확하게 3년하고 11개월. 설계에만 그토록 공을 들인 끝에 '설계'가 완성 되었다.
그리고 그 설계도에 따라 길고 긴 대역사(大役事)가 시작되었다. 교각의 기초를 만들기 위해서
사람이 수십명이 들어갈수 있는 커다란 구리 종 모양의 구조물들 수십개가 강바닥에 가라 앉혀졌다.그후 종안에 차있는 강물을 일일히 인력으로 빼내어 작업공간을 만든후 돌과 자갈을 수백,수천개씩
붓고 다져서 지반을 다지고 다시 말뚝을 수백개씩 박아 교각의 뼈대를 만드는 형식으로 공사는
진행되었다.
이런 엄청나게 어렵고 힘든 작업들이 계속 되었다.
[9번의 겨울과 9번의 여름]이 지난후 마침내 <리벌레이테 교(橋)>는 완성되었다.
그리고 설계에 근 4년, 건설에 9년. 도합 13년이라는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내며 이제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칼시노아 헨은 <리벌레이테>다리의 개통식때 친히 참석한 <상인왕>'멜리헴'
의 공치사를 듣고는 다시 한번 어린애 처럼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날 그는 일기(라기 보다는 작업일지에 가까운)의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적어넣었다.
[이제 이 늙은몸은 죽어도 여한이 없다.]
짐승도 자기 죽을때는 안다고 하는 말은 '시대의 거장' 칼시노아에게도 적용 되었음인가. 칼시노아는 그날 저녁 잠자리에 들어서는 다시 아침해를 볼수 없었다. 자신의 할일을 다했다는 듯이 편안한 미소를 띄우고 영원히 잠들은 '시대의 거장' 칼시노아는 그렇게 갔다. 그리고 <리벌레이테 교(橋)>는 시대의 거장(巨匠)이 자신의 혼을 불어 넣어 건축한 건축물로 사람들의 뇌리게 기억 되었다.
그리고 칼시노아 사후 3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이 다리는 칼시노아 핸 그가 직접 붙인
<리벌레이테 교(橋)>라는 공식 이름보다 다리의 좌우 난간에 도열해 있는 여덟왕의 동상들 때문에 <왕의 다리> 라고 '엘고르스'시민들에게 더 많이 불리게 되었다.
[얼음의 땅]이라는 별명이 붙은 대륙 최북단 광산도시 '나르삭'에서부터 [바람의 곶]이라는 별명을
가진 대륙 최남단 '키르짐'항구 까지 연결되는 중앙대로를 끝에서 부터 끝까지 여행하는 여행자는
-물론 그런 초장거리 여행자는 거의 없지만- 정확하게 3개의 큰강, 8개 달하는 작은강과 34개의
큰 강의 지류들, 그리고 조물주가 빚어낸 최대 창조물이라는 '텐마림'산맥 하나를 만날수 있다.
물론 이런 지형지물 이외에도 만날수 있는것들이 최근에 여러개 생겼다.
위에서 말한 자연물과 달리 '그것'들은 숫자가 매우 불규칙하고 거취도 분명하지 않다.
'그것'은 바로 수십, 아니 어쩌면 수백에 달할지도 모르는 강도들.
'그것'은 종류의 분리조차 쉽지 않았다.
산채 하나 차려놓고 행인들에게 통행료를 강탈하는 산적단 부터 (이 정도면 양반이다), 미친개처럼
돌아다니며 마을을 습격하고 주민들을 약탈하는 강도때들,먹고 살길이 없어서 '소유권이전업'을
신장개업한(물론 손님은 만만한 여행자다) 부랑자 패거리 얼마전 끝난 '17년 전쟁'이후로 밥줄이 끊긴 용병단들 까지 갖가지 종류의 강도들이 중앙대로에는 득시글 거렸고 호되게 당한 여행자들은
그들은 한대 뭉쳐 [때강도]라고 부르는 '간단함의 미학'을 보여줬다.
사정이 이러니 한때 "차 한잔 마실 시간이면 행인 발길에 길바닥 포석이 삭아내린다."라는 농담까지
만들어 내던 중앙대로에는 사람의 인적이 끊어진지 오래다.
물론 사정이 이렇게 된데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라는 것은 바로 역사에 '17년 전쟁'으로 기록될 북방 '케로빈' 제국의 대규모 남침.
거대한 천연장벽 '텐마림'산맥은 북방 '케로빈' 제국과 남방 '사우스힐' 왕국을 정확하게 둘로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텐마림'산맥의 일대는 양국 모두 통치권을 발휘하기 힘든 곳이라 여러 도시급의 소국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형국이었다. '텐마림'산맥은 실로 양국에게 더할 나위 없는 국경 방어선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상대적 열세인 남방 왕국 '사우스힐'은 '텐마림'산맥의 보호하에 100년에 가까운 안정을 유지할수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29년전 되던 때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지금으로 부터 29년전. 대륙력 2187년이 되던 해. 북방 '케로빈'제국의 '카하벌 그림'황제가 서거했다.
평소에 국정은 뒤로 돌린체 주색잡기에 몰두하는 무능함으로 유명하던 '카하벌 그림'황제의 갑작스런 병사(시의의 진단결과 간경화로 판명 되었다)는 제국에 엄청난 혼란을 동반했다. '카하벌 그림' 황제의 밑으로는 이미 장성한 아들만 해도 16명이었던 것이다.
'카하벌 그림'황제가 후계자 지명을 해놓고 죽었다고 해도 황위계승으로 내전이 일어날 판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찔한 상황속에서 '카하벌 그림'황제는 자신의 무능함을 온몸으로 증명이라도 하는듯 후계자의 지명도 없이 갑작스럽게 '병사'했다.
'케로빈'제국에서는 마치 당연한 순서라는 듯이 정권다툼이 시작되었다.
원로대신들의 힘을 등에 업은 장남인 '커래힘 그림'이 일단 '카하벌 그림'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으나 그의 황제 생활은 매우 짧고도 짧았다. 정확하게 즉위 3개월 하고 하루 되던날 황제 '커래힘 그림'은 차남 '트롬벡 그림'에게 살해 당한다. 그런데 우습게도 '트롬벡 그림'을 기다리는것은 황제의 옥좌가 아니었다. [황제 시해자]라는 죄명 뿐이었다.
가진 야심만 커다랬던 멍청이 '트롬벡 그림'은 황도 '제페람'의 한복판에서 황도 거민들이 지켜보며
침을 뱉고 돌을 던지는 가운데 능지처참을 당한다. 그러나 그나마 정당한 황위 계승자로 인정을 받던 '커래힘 그림'의 죽음은 정권암투를 가속화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황도의 거민들 사이에서는 "제페람 황궁의 준엄의 홀에 있는 황제의 옥좌는 사신(死神)과의 1:1 면접장소 -합격률 100%-"라는 농담이 공공연히 돌아다닐 지경이었다.
황제의 평균 제임기간은 채 반년이 못되었다.
'백디컨 그림'이 집무실에서 등에 칼을 맞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는 가하면, '칼펜 그림'은 사냥터에서 정체불명의 괴한이 쏜 화살이 심장을 관통. 목숨을 잃었다.
평소에도 책벌레로 유명하고 형제들 중 유일하게 권력에 관심없던 '할슈런 그림'은 원인불명의 개인
서제의 화재사건으로 사고사 했다. 표면상으로는 그랬다. 불에 시커멓게 그슬려 알아볼수도 없는
'할슈런 그림'의 시신 옆에서 발견된 손잡이가 다 타버린 날카로운 단도의 도신이 발견 되었음에도.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그중에 가장 기가 막힌 사건은 황족의 신분으로 친위대에 의해 감금 당한채
'굶어'죽은 태자 '비아닐 그림'. '비아닐 그림'의 아사(餓死)사건 이후 황도 거민들 사이에서는 다시
"거렁뱅이도 황족보다 잘 먹는다" 라는 비아냥이 섞인 농담아닌 농담이 돌아 다녔다.
형이 아우의 목을 치고 아우는 형의 음료에 독을 넣었다.
그리고 이런 치열한 정권다툼에 병권을 쥐고있는 군대의 장군들 친위대를 거느린 황족과 지방 군소영주들까지 이 암투에 끼어들자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북방 제국 '케로빈'은 장장 11년에 달하는 내전에 시달리게 된다.
형제의 피로 형제의 피를 씻어내는 길고 긴 내전. 살아남은 태자들과 가까운 황족들마저 자신에게
'황제가 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며 스스로 황제를 참칭하였다. 그리고 혼란이 최고조에 달했을때
케로빈 제국민은 5명의 황제중 누구를 모셔야 할지 고민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하루 일을 점 칠수 없는 혼란. 한치 앞이 안보이는 혼란속일지라도 이런 난장판은 반드시
언젠가는 수습되기 마련이다. 뭉치고 다시 찢어지며 손을 잡았다 또 다시 배반하는, 서로 이용하며
서로 찔러 죽이는 길고 긴 혼란끝에 북방제국 '케로빈'은 11년간의 내전 끝에 마지막 라이벌인
형 '커리마시 그림'을 자벨컨 평야에서 전사시킨 '필로스테 그림'을 황제로 맞이 하게 된다.
'필로스테 그림'은 11년간 계속된 내전으로 제어하기 힘들정도로 자라버린 지방영주와 군벌들 그리고 황족들의 친위대를 소모시키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두가지 계획을 세운다. 하나는 현 황도 '제페람'을 버리고 훨씬 더 남방에 위치한 대도시 '벡데코힌'으로 황도를 이전시키는 계획이었으며,
나머지 다른 하나는. . . . . . .
[안이 씨끄러우면 바깥을 쳐라!!]
라는 해묵은 금언으로 대표되는, 그리고 그 금언의 유명도 만큼이나 정치판에서 초기 정권 굳히기의
단골 메뉴로 자주 등장하던 '타국과의 전쟁'이었다.
'필로스테 그림'의 성대한 '케로빈'제국 황제 즉위식.
그것은 남방 왕국 '사우스힐'에게는 불운한 미래의 전주곡이 되었다.
강력한 남진의지를 표방한 '필로스테 그림'황제가 그 의지를 실현시키는데는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대륙력 2199년.
남방 왕국 '사우스힐'은 '텐마림' 산맥을 거짓말 같이 넘어서 쳐들어오는 '케로빈'제국 군대의
발에 짖밟히게 된다. 양국간의 17년간의 긴 전쟁. 내전으로 실전경험이 다져진 국가의 부대와
적수의 내전과 천연장벽 '텐마림'산맥을 힘입어 1백년 가까이 평화를 구가하던 국가의 부대간
싸움의 결과는 뻔했다.
밤으로는 아군의 패배를 알리는 [아산 담]봉화가 남방왕국 '사우스힐' 수도 '미테이브'로 줄을
이었고 낮으로는 주요 저항거점 함락과 도시 낙성(落城)의 비보를 품은 파발이 '미테이브'로
끝도 없이 달렸다.
비록 초반에 형편없이 밀리던 '사우스힐'왕국이 '케로빈'제국을 원점인 '텐마림'산맥까지 도로 밀어내고 양국이 종전화약을 맺음으로 전쟁은 끝났다하나, 양국 간에 피와 증오로 얼룩진 17년의 전쟁이 할라일 대륙에 입힌 상처는 거대했다. [중앙대로에서 창궐하는 강도들과 심각한 치안의 공백]이란 '17년 전쟁'이 할라일 대륙에 남긴 작디작은 생채기 하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2.
그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그 누구보다도 빠른 존재인 바람. 비록 이름을 가질 이유도 필요도 못 느끼는 존재인 바람이지만 인간들은 바람에게 이름을 주었다. 바람은 인간들이 붙여준 이름을 딱히 거부하지도 환영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인간들이 자신에게 준 이름들이 '재미있다' 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휘이이이이이이-----------------------------------]
한 줄기 바람이 중부대로변의 무성한 갈대숲을 스쳐지나갔다. 바람은 장난스럽게 갈대잎을 휘감아 올리고 갈대 줄기를 휘돌았다. 같은 장난을 몇번이나 반복하던 바람은 기성을 지르며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바싹 마른 갈대잎들이 몸서리를 치며 부스스하는 소리를 내었다.
하늘에는 잿빛 먹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순식간에 하늘끝에 다다른 바람은 잠시 그 자리를 빙빙 선회하며 자신이 이곳까지 뭐하러 올라왔는지 곰곰히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1년전에 했던일을 그리고 2년전에도,3년전에도 했던일을 하러 이곳을 왔는데 . . . . 바람은 자신의 멍청함을 자책하듯 거센 바람소리를 내며 상공을 맴돌았다.
[휘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한참을 생각하던 바람은 간신히 인간들이 자신에게 붙여줬던 이름을 기억해 낼수 있었다.
<계절풍 스나우>
인간이 자신에게 선물로 준 이름이었다. 옛 중남부 사우스힐지역의 방언으로 '폭설의 바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바람 '스나우'는 자신의 일이 확실히 생각났다. 친구인 구름과 눈을 소리를 질러 깨운후 다시 바다로 돌아가 수분을 한껏 끌고 오는것이 그의 일이었다.
[휘이이잉----------- 휘ㅇㅇㅇㅇㅇㅇㅇㅇ------------]
바람 '스나우'는 즉시 목청을 높여 구름을 깨웠다. 인간의 도시 "엘고르스" 위에 몸을 드리운채 잠을 푹 자던 구름은 방정맞은 바람 '스나우'의 부름에 약간은 귀찮다는듯이 나즈막하게 대답했다.
[으르릉---우릉--우릉---]
그리고 구름은 다시 습기로 무거워진 비둔한 몸을 흔들며 기지개를 켰다.
[우르르르------꾸르릉---------]
그러자 잿물을 뿌려둔것 같이 검은 구름에서 거짓말처럼 하얀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바람'스나우' 는 만족한듯이 구름 주위를 빙빙돌며 눈송이들을 휘감아 올렸다. 하늘 거리며 떨어지는 눈송이들에게 그런식으로 인사를 보낸 '스나우'는 다시 신이 난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며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휘이이이이-----------휘이이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바람에 어지럽게 흔들리던 눈송이는 꼭 감았던 눈을 살포시 떴다. 그리고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구제불능의 친구인 바람'스나우'의 뒷모습을 한번 쳐다보고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그리고는 다시
밑을 내려다 보았다. 인간의 도시. 거대한 도시 "엘고르스"가 한눈에 들어왔다. 눈송이는 '히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인간의 도시 엘고르스>
'엘고르스'는 중부대로를 따라 위치한 여러 도시중 할라일 대륙 남부 최대의 크기를 자랑하는 상업도시다. '엘고르스'를 관통하여 흐르는 '칼리가림'강을 따라 대륙 동부의 산물이 내려오고 중앙대로를 따라 대륙 북부와 남부의 특산물이 어우러 진다. 또한 '사우스힐'왕국의 남부와 중부를 이어주는 도시이자 '사우스힐'의 왕도 '미테이브'의 관문 도시이기도 한 '엘고르스'는 모든 재화와 부의 최종 집결지였다.
밤 이어도 꺼질줄 모르는 '엘고르스'의 불빛들은 오히려 밤하늘에서 어둠을 쫓아낼 지경이었다.
할라일 대륙에서 이 보다 큰 도시는 북방제국 '케로빈'의 황도였던 '제페람'이 유일하다. '케로빈'제국의 새 황도인 '벡데코힌'이나 '사우스힐'의 수도인 '미테이브'마저도 '엘고르스'에 비하면 초라해보일 지경인 엄청난 부(富)의 도시인것 이다.
눈송이는 매우 흡족했다. 그녀는 전에도 '엘고르스'근처로 몇번 와본적은 있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엘고르스' 시가지 쪽으로 정확하게 와본적은 딱 한번 뿐이었고 그때는 그나마 여름 소나기의 형태로와 본것이었다. 엄청난 속력으로 까마득히 떨어져 길거리 포석에 부딛쳐 박살이 난후 정신을 잃어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자신은 '엘고르스'를 뒤로 둔체 '칼리가람'강에 합류해 떠내려 가고 있었다.
눈송이는 더할나위 없이 즐거웠다. 부풀은 호기심에 그녀는 가슴이 뛰었다. 그녀는 하늘에서 하늘하늘 춤을 추며 아래로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엘고르스'가 점점 커다랗게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는 도시가 점점 눈에 크게 들어올수록 당혹감을 떨칠수 없었다. 그녀는 잠시 도시를 착각한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정확하게 '엘고르스'의 시가지를 향해 떨어지고있었다.
'멍청한 인간들!!!'
그녀는 고함을 지르며 화를 내었다. 인간의 도시 '엘고르스'의 영화는 이미 옛 이야기속의 일이 된듯
하였다. '엘고르스'를 가로지르는 '칼리가람'강의 동안(東岸)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특히
빈민가가 빽빽하게 모여있던 '흐긴'언덕 부근은 완전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벽에 하얀 석회를 바른체 오밀조밀 모여있는 집들이 한여름의 태양 아래서는 눈부시게 작렬하고 늦가을의 석양에서 황금색으로 물든다던 '흐긴'언덕의 아름다움-비록 살기힘든 빈민들의 집이라 해도-은 다시 찾아 볼수가 없었다.
'자신의 보석을 스스로 부수는 멍청한것들!!'
그녀가 다시 고함 질렀다. 드문드문 불타다 남은 건물들이 앙상한 골조를 드러낸체 서있었다. 간신히 화마(火魔)를 피한 건물들도 군데군데 허물어지고 포탄에 맞아 부서져 있었다.
'너희들이 일순간에 부수고 불지른 것은 너희들이 평생 죽을때까지 다시 만들어 내기 힘든 것이라고!'
그녀는 완전히 폐허가 된 '칼리가람'강의 동편에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강의 서편을 바라 보았다. 제발 이 아름다운 도시가 절반만 이라도 무사 하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런 그녀의 소박한 소원은 무참히 짖밟혔다. '엘고르스'의 나머지 반인 강 서쪽도 무지막지한 파괴가 할퀴고 지나갔던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창조할 손과 열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너희 인간들의 머리 속에는 음모와 파괴가 가득해!'
크고 웅장하던 시청건물은 화재와 포격으로 반쯤 허물어져 있었다. 수목이 가득하던 하리온 광장은
난민들의 것으로 보이는 지저분한 천막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난민들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하리온 광장의 무성했던 수목들을 모두 벌채해 땔감으로 불태워 버린지 오래였다. 도시 중앙에 우뚝 솟은 종탑은 기단부가 극심한 포격으로 파괴된체 아슬아슬하게 서있었다. 늘상 정오가 되면 종을 울려 온 도시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던 이 종탑은 이 극심한 파괴의 광경 앞에 완전히 침묵한듯 했다.
'17년 전쟁'이 할라일 대륙에 남긴 상처는 여기 남부의 상업도시 '엘고르스'에도 있었다.
평화시에는 하늘의 '축복'과 같던 도시의 부와 명성은 전쟁이 일어나자 더욱 더 적의 모진공격을 받게 되는 하늘의 '저주'가 되었다. 더욱이 '사우스힐'왕국의 최후 방어선이자 왕도 '미테이브'의 관문도시 라는 '엘고르스'의 지리적 위치는 적의 길고도 잔혹한 대규모 포위공격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사우스힐'왕국도 필사적이긴 한가지였다. '엘고르스'가 무너지면 '사우스힐'왕국으로서는
그야말로 '미테이브' 란 왕국의 심장 앞에 적의 창날을 들이대는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6개월 간의 길고도 긴 혈투>
지긋지긋한 엘고르스 전역(戰域)과 폭증하는 사상자 수에 넌더리를 내던 '케로빈' 제국군의 수뇌부는 마침내 "가질수 없으면 파괴하라"라는 극악의 결단을 내리게 된다. '사우스힐'군의 주 거항점인 '칼리가람'의 동안(東岸)은 '케로빈'제국군의 조직적인 파괴가 불가피 했다.
그녀는 이제 화를 낼 기운도 없어진듯 했다. 마음을 가득 채운 분노가 가시자 그 자리를 슬픔이 대신
채우는것을 느끼며 그녀는 천천히 아래로아래로 떨어졌다. 더이상 하늘 거리는 춤도 추지 않은체.
'왕의 다리 <리벌레이테 교(矯)> 그럭저럭 이것만은 멀쩡하군.'
슬픔 중에서도 그녀는 약간 안도 할수있었다.
강 서편의 도시 중앙부의 종탑과 함께 이 도시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왕의 다리>는 멀쩡했다.
'그래. . . .그 가증스러운 파괴도 노장(老匠)의 혼이 담긴 이 다리만큼은 어쩔수 없었겠지. . . . . .'
눈송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다리의 난간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폐허가 된 이 도시에
유일하게 남은 과거의 영광에 자신의 몸을 의지하고 싶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녀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행인 하나 없이 을씨년 스럽기만한 <리벌레이테 교(橋)>주변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무리가 약간 묘했다.
맨 앞에는 머리가 반백이 된 노인이 힘겹게 앞장을 섰고 한 젊은이가 그런 노인을 부축하고 있었다.
노인은 걷기도 힘에 부친지 휘청거렸지만 그래도 걷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그리고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은 커다란 석비(石碑)와 공구들을 들고오고 있었다. 노인의 왼팔은 바람에 펄럭 거리고 있었고 오른쪽 눈에는 갈색 가죽 안대로 가려져 있었다. 안대 뒤에는 위아래로 찣어진 커다란 흉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녀는 슬며시 궁금증이 생겼다.
마침내 사람들은 다리 앞에 섰다. 노인은 무리들을 향해 뭔가를 힘겹게 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다리 앞 한켠의 포석을 들어내고 커다란 석비를 세우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힘차게 휘둘려진 곡괭이가 포석을 찍어내고 이렇게 생긴 틈사이로 튼튼한 쇠지렛대를 조심스럽게 밀어넣는 작업이 한참을 계속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모습을 잠시 쓸쓸히 지켜보던 노인은 젊은이의 부축도 잠시 거절한체 다리의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넓은 다리 가운데를 홀로 걸어가는 노인의 모습은 그녀에게 더할 나위없이 슬프게 보였다.
<중심왕>'일리아손 언더힐'
<공의왕>'리버트 언더힐'
<진격왕>'투르킨 언더힐'
<군인왕>'체이거 언더힐'
<철벽왕>'프리모게 언더힐'
<상인왕>'멜리헴 언더힐'
<현명왕>'갈리마크 언더힐'
<자애왕>'시르진 언더힐'
다리의 좌우에 늘어서있는 왕의 동상들을 힘겹게 하나하나 짚으면서 걸어가던 노인은 다리의 중앙 조금 못 미친 곳에 있는 <철벽왕>'프리모게 언더힐'의 동상앞에 힘겹게 무릅을 꿇었다. 아무리 위대했던 왕의 동상이라 해도 전쟁의 불똥이 튀는 것을 피할수는 없는 법이다. 거대한 방패를 짚은 체 앞쪽을 향해 손가락을 펼쳐 가르키며 서 있는 <철벽왕>의 동상에는 몸뚱아리에는 무수한 칼자국이 나있었고 방패는 석궁화살과 총탄 구멍이 숭숭 나있었다.
노인은 하나뿐일 팔로 난간을 부여잡고 소리없이 슬퍼하고 있었다.
". . . . . .장군. . . 장군. . . .제가 왔습니다. . . . ."
눈송이는 점점 더 궁금 해졌다. 그래서 그녀는 노인쪽으로 천천히 접근했다. 노인 앞의 다리 난간에 내려 앉으려고 하는 찰나 노인의 검은 장갑을 낀 두툼한 손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녀를 받아 내었다. 그녀는 깜짝 놀랐지만 곧이어 느껴지는 왠지 모를 따스함에 온몸이 나른해 졌다. 볼을 타고 내려와 손위에 떨어진 노인의 뜨거운 눈물에 녹으며 정신을 잃어가던 그녀에게 노인의 피곤에 지친 목소리가 저 멀리 들려왔다.
". . . . . .눈 . . . . . 눈이 내리는군. . . . . . "
3.
". . . . . .눈 . . . . . 눈이 내리는군. . . . . . "
케르빈 제국 제 3 군단 소속의 기마대 장교인 '페르쿠난 퍼시'는 먹물을 뿌려 놓은듯 잿빛으로 가득한 엘고르스의 하늘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중얼 거렸다. 흐긴 언덕의 빈민가는 조용했다. 낮게 드리운 먹구름과 군대군대 쌓인 눈들은 마치 솜이 물을 빨아 들이듯 모든 소리를 흡수하였다. 그런 이유로 빈민가의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오직 바람소리, 갑옷이 절그럭 거리는 소리, 포석을 밟는
규칙적인 케로빈 제국군들의 군화소리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속에서는 그의 나즈막한 중얼거림 조차 너무나도 잘 울려 퍼졌다.
북방의 매서운 삭풍에는 익숙한 그 이기에 남부 지방인 엘고르스의 겨울 날씨는 그에게는 오히려 답답할 정도로 더운것이었지만 이 시도때도 없이 쏟아지는 폭설만큼은 도무지 익숙해 지지 않았다. 그리고 물론 그런 점이라면 대륙 북부의 각지가 고향인 병사들도 다를 것이 없었다.
"젠장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동네이길레 또 눈이 오는거야."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따라오던 병사들의 불만이 즉각 터져 나왔다. 컬컬한 목소리 하나가 땅바닥에
대한 모욕의 의지를 담은 행동을 실천하는 소리와 함께 페르쿠난 퍼시의 뒤통수에서 들려왔다.
"빌어먹을 또 오네 또 와. 카---악--- 퉤-!"
이렇게 병사들이 원성을 터트리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본디 추위중에는 습기를 동반한 추위가 가장 무서운 법이다.
가까운 바다와 지형적 특수성. 그리고 계절풍 <스나우>라는 3가지 이유로 인해 눈이 많을수 밖에 없는 '엘고르스'의 겨울은 그런면에서 가공스러운 위력을 발휘했다.
거의 1~2일에 한번 꼴로 폭설이 쏟아졌다. 아마 '엘고르스'의 기온이 온화해 내린 눈이 누군가 일삼아 치울것 없이 그럭저럭 녹아 내리지 않았다면 '엘고르스'는 눈속에 파묻혀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눈이 녹으면 녹는데로 또 문제였다.
조금이라도 움푹한 곳에는 눈녹은 물이 흘러들어 물구덩이를 만들었다. 게다가 이런 물들이 빠져
나가야할 배수로 주변은 갖은 쓰레기로 막힌체 더러운 물웅덩이를 이룬지 오래였다.
평소 같으면 '엘고르스'시에서 앞장서서 시민들을 고용. 부지런히 눈을 치우고 배수로를 정비하여 별탈없이 넘어 갔겠지만 '케로빈 제국군의 대규모 남침'이라는 거대한 전쟁의 폭풍우 속으로 말려 들어간 '엘고르스'시는 이제 그런 일을 할 여력도 정신도 없었다.
눈녹은 물은 군화로 스며 들었다. 물기를 잘 말리고 위생에 신경을 쓰면 얼마든지 예방할수 있는 질병인 동상이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악에 받힌 '사우스힐'군의 역공과 야습이 일어나는 지금으로는 그럴만한 여유가 전혀 없었다.
부대마다 동상 환자가 속출했다.
일선의 병사들 치고 손가락이나 발가락에 한 군데쯤 얼음이 백이지 않은자가 없었다. 피가 나도록 트고 갈라진 손발이 시퍼렇게 죽어가거나 숫제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썩어 떨어져 나가는 악성 동상환자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보면 동상은 지금 엘고르스에서 돌고있는 괴상한 역병 앞에서는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고장난 배수로 근처에서 웅덩이와 수렁을 이룬 물들. 그리고 그런 물구덩이 또는 눈더미에 쳐박혀 있는 양측의 전사자의 시신들. 관리하는 사람 없이 도시 이곳저곳에 방기된 쓰레기들은 '엘고르스'에 심각한 위생상의 문제를 불러왔다.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구토와 설사, 그리고 그로 인한 심한 탈수증세와 지속적 건열을 동반하는 수인성(水因性) 전염병들이 돌았다. 물론 질병들은 '케로빈'과 '사우스힐' 양측을 공평하게 괴롭혔지만 남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춥고 건조한 북부 출신 병사들이 대부분인 '케로빈'제국군은 이런 병들에 '사우스힐'군인들에 비하여 매우 취약하고 대비책 또한 빈약 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어른 종아리 높이 심하면 허벅지 까지 올라오는 눈은 신속한 이동을 방해했다.
푸근한 날씨로 인해 내린 눈은 기온이 떨어지는 낮동안에는 녹았다 기온이 떨어지는 밤에는 도로 얼어 붙기를 반복했다. 빙판을 이루어 기동하기 힘든곳이라면 어김없이 지리에 익숙한 '사우스힐'의 군인과 '엘고르스'의 민병대들이 치고 빠지기 식의 매복공격을 가했다.
교전을 눈치 챈 인근의 아군들이 서둘러 구원을 온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무릅까지 빠지는 눈구덩이나 발 디디기도 힘든 빙판길에서 허부적 거리며 공격을 받던 아군들은 태반이 전사하고 '사우스힐'의 병사들은 빵조각을 물고 달아나 버린 시궁쥐처럼 어디론가 숨어들어 종적이 묘연해진 후였다.
페르쿠시는 사우스힐과 벌써 몇달째 이렇게 치고 박으면서 지지부진한(물론 한가하거나 쉽다는
뜻은 아니다) 앉은뱅이 전쟁을 하고있는지는 생각만 해도 성질이 났다.
" 벌써 5달째라고 5달. . . . . 망할 . . . . . "
푸른 신록이 가득한 7월부터 시작된 전투였다. 누가 봐도 이 여름이 가기전에 끝날듯한 전투였다.
거포와 투석기를 동원해서 엘고르스의 외곽성벽을 기세좋게 짖두들기기 시작할때도. 그리고 그런
화끈한 공세를 펼친지 1주일이 조금 넘어 폐허가 된 엘고르스의 외곽 성벽을 완전히 점령했을때도.
심지어 엘고르스에서 사우스힐군이 벌써 2주일 넘게 아군의 진공을 막아내고 있다는 전선의 보고에
대한 필로스테 황제의 추상같은 친필 교지가 날아 올 때까지도 그래 보였다.
[엉덩이 무거운것들. 당장 치고 나가지 못해!]
상당히 원초적이고 과격하다고 할수있는 황제의 교지에 군단장들은 쩔쩔매면서 케로빈 제국군의 쾌진격으로 인한 보급선의 연장, 기후의 악화로 인한 육상수송의 어려움, 그런 가운데 이루어 지는 사우스힐 패잔병과 토착민들의 산발적 저항과 같은 일과 같은 시시콜콜한 내용을 적은 장문의 답장을 보낼수 밖에 없었다. 간단히 줄이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일것이다.
[충성! 몇가지 불가항력적 문제로 인해 늦어지고 있습니다. 사우스힐군이 강하다거나 저희가 무능한
것은 절!대!절!대! 아닙니다. 모든것은 작전대로 순조롭습니다. 1달내에 점령을 완료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답장을 보냈던 군단장들은 그토록 부인하던 사우스힐군의 강력한 방어에 걸린체 엘고르스의 전투는 거센 겨울바람에 눈발이 날리는 지금까지 질질끌고 있었다.
물론 케로빈 제국군의 군단장들이 땀께나 삐질거리며 없는 문재(文才)나마 총동원해서 올린 보고들이 완전히 거짓말인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하나 꼽자면 '엘고르스 전투'라는 분이 케로빈 제국군이 이때까지 알고있던 전투와는 이름만 같고 성질은 완전히 다른 분이었기 때문이다.
황제 직속의 사관학교를 졸업하신 고매한 얼간이 군단장들(황제의 친필교지에 적혀있던 문구다)께서는 전투 하면 칼같이 각이 잡혀서 승리를 떠먹기만 하면되는(이 또한 황제의 친필교지에서 나온 표현이다) 대규모 회전(回戰)에만 떠올렸지 엘고르스 공방전과 같은 주요 공격목표도 진형도 적군의 주공이나 아군의 주 진격로도 없는 마구잡이 난타전에는 도무지 익숙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페르쿠난 퍼시는 그런 지저분하고 신경이 곤두서는 전투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는 스스로에게 짜증을 느꼈다.
뒤에서 따라오던 병사들의 불만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부관이 슬몃 말을 몰아서 다가오며 페르쿠난에게 짐짓 눈치를 주었지만. 페르쿠난은 못본척하며 그런 시선을 외면했다. 장교씩이나 되는 자신 스스로도 짜증나는 일인데 밑에서 박박 긁기 마련인 병사들이라고 다를것이 있겠는가.
페르쿠난 퍼시는 말 안장위에 몸을 되는대로 실은체 조그만하게 중얼거렸다.
" 빌어먹을 동네..... 엿같은 놈들.... "
이번 순찰만 해도 그랬다. 지난밤 작은 화롯불이라도 피운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난데없는 폭음과 총성이 울리더니 굵직한 석궁용 쿼럴 몇발들이 모닥불쪽으로 날아들었다. 아군이 이미 한번 깔끔하게 밀고 지나간 지역이라 마음을 놓고 휴식을 취하던 페르쿠난의 소대원들은 졸다가 말에 채인꼴이 되었다.
다행히 더이상의 공격은 없었고 피해는 경미했다. 모포에 몸을 푹 묻은채 따스한 화롯가에서 오래간만에 깊은 잠을 청하던 소대원 보난이 총성에 놀라 허둥지둥 일어나다 화롯불에 머리카락을 반쯤 태워 먹었고, 부관 레딥은 자신의 말을 돌보다 폭음에 놀란 말이 그의 손을 깨물어 버렸다. 이런 고만고만한 피해들 중에서 가장 끔찍한 피해를 고르라면 소대원 베린의 배낭에 달린 수통에 쿼럴이 명중하는 바람에 수통에 몰래 담아 놨던 1979년 그레이스산 명품 나콘주(酎)가 철철 흘러 쏟아진 정도. 물론 베린과 그의 몇몇 동료들에게는 자신의 목숨이 날아가는 일과 맞먹는 참혹한 피해였지만 그들은 드러내놓고 슬퍼하지도 못했다. 군내 주류는 배급량 이외에는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었고 위반시 처벌은 꽤나 엄한것이었으니까.
하여튼 사우스힐군의 야습같지도 않은 야습으로 인해 경계태세로 모처럼의 휴식도 망친채 거의 뜬눈을 지세우다 시피한 페르쿠시의 소대원들에게 날이 밝자 마자 떨어진 명령은 또다른 야습에 대비해 흐긴언덕 일대의 점령지역을 철저히 순찰. 수색하라는 것이었다. 흐긴언덕은 복잡한 건물들의 배치와 제법 가파른 경사 그리고 일대 민병대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점령이 상당히 늦어지는 곳중의 하나였다.
소대장 페르쿠난의 묵인속에 병사들의 불만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두런두런 몇마디 주고 받던 수준의 대화들은 숫제 장교인 페르쿠난 퍼시의 뒤에 대고 상부에 불만을 토로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 작은 성토회중에서는 나콘주를 몰래 숨겨 마실만큼 배짱좋고 삐딱한 베린이 단연 발군이었다. 베린이 걸걸한 목소리로 페르쿠난의 뒷통수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 소대장님 우리가 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도시에서 앉은뱅이 전투를 해야 합니까? 퉷! "
병사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페르쿠난은 그들의 불평을 잠자코 들어주기로 했다. 그렇게나마 해야 그들의 불만을 어느정도 무마하고 풀어줄수 있을테니까. 베린의 걸걸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쥐새끼 같은 놈들. 소똥내 나는 남부 촌놈들. 고작하는게 겁쟁이 마냥, 눈먼 시궁쥐처럼 이리저리
쑤시고 도망 다니다 눈치봐가며 비겁하게 한번씩 발뒷꿈치를 물어 뜯는 일이라니. "
다른 병사의 굵직한 목소리가 베린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다.
"제..제길. 이렇게..게 짜..짜증나는 전...전투는 난생 처음..음이다. 이..이노무 도시의 금..금과 여자는 일..일찍이 들..들..들어봤지만 이런 너..너저분..너저분한 일이 딸려있는줄 알았다면 때려쳤...때려쳤을꺼야."
말더듬이. 추헬이군. 페르쿠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추헬이라는 촌놈은 말더듬이라는 자신의 약점
때문에 자연적으로 말이 줄어들게된 과묵한 녀석 이었다. 근대도 불구하고 이런 공공연한 발언에 까지 끼어드는 것을 보니 이번에는 그런 그도 어지간히 불만이 많은 모양인듯 했다.
베린의 걸걸한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 빌어먹을. 제미 붙어먹을 고매하신 군단장 께서는 뭐하신대? 도대체 뭘 하시느라 바쁘셔서 이 손바닥만한 도시하나 못밀어 붙이는 거냐고! 응? 많이 배우신 높으신 분들이 말이야? 에에~ 그러니까~~ 제군들은~~ 전략적 보루인 이곳을~~ 에에~~ 그러니까~~ 젠장! 이런 소리듣는것도 이제 지겨워. 이놈의 난장칠 개싸움에 무슨 전략적 보루가 있어? 얼어죽을 "
베린의 너무나도 그럴듯한 3군단장 제흐고시 그림의 성대모사에 병사들은 모두 거칠게 웃어 재쳤다.
제흐고시 그림은 이름에서도 알수 있듯이 몰락왕족 출신의 필로스테 그림의 대표적 충성파 중의 하나였고, 그의 출신성분에서 기인하는 고루한 고어체와 느릿느릿한 억양은 그의 그럭저럭 뛰어나다고 말할수 있는 지휘력과는 별개의 문제로 병사들의 웃음거리가 되기 족했다.
병사들의 불평을 참다참다 못한 부관 레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위의 수뇌부는 이 도시를 비교적 온전하게 손에 넣기를 원한다. 훌륭한 도시야. 그렇않나 베린? 전쟁이 끝나고 일어난 일들도 생각해 봐야지. 이 도시는 우리의 훌륭한 부의 원천이 될 도시다. 잘 차려진 식탁을 뺏어먹는 다고해서 굳이 뒤집어 엎어버릴 이유는 없지."
우우우~ 즉시 날아오는 병사들의 야유. 동료 병사들의 응원으로 기세를 올린 베린은 다시 떠벌거리기 시작했다.
" 예~ 식탁을 뺏어 먹는다고 해서 뒤집어 버릴 필요야 없겠지요. 뒤집어 버린 밥상은 먹을수도 없을테니까요. 젠장! 하지만 저 망할 사우스힐 놈들은 밥그릇을 뺏어가려는 손을 물어뜯는 개만큼이나 사납게 발악 하고 있다고요. 우리도 따끔한 맛을 뵈 줘야 한다는 겁니다. 이 흐긴 언덕만해도 그래요 왜 싸그리 불질러 버리지 않는 겁니까? 이 너절한 목조 주택들은 사우스힐 놈들에게 아주 좋은 은신처와 매복지를 제공하고 있는데!! "
베린은 거의 미친듯이 흥분해서 씨근덕거리기 시작했다. 장교 페르쿠난과 부관 레딥 또한 베린의
불평이 슬슬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는것을 느꼈다. 부관 레딥이 반쯤은 화가나고 반쯤은 당황한 얼굴로 베린의 불평을 그만두게 하려고 했으나 페르쿠난은 그런 그를 눈짓으로 짐짓 말릴 뿐이었다.
그런후 페르쿠난은 불침맞은 말마냥 길길이 날뛰며 떠벌거리는 베린에게 동조하는 내용의 고함과 불만을 터트리는 소대원들을 보면서 베린이 어디까지 떠드는지 조금 더 두고 보기로 했다.
' 어차피 여기서 억지로 놈의 말의 막아봤자 병사들의 불만만 커지지. 저럴때는 실컷 떠벌거리게 놔둔 후에 스스로의 실수로 인해서 입을 다물게 해야지. 그럼 놈은 저절로 닥치게 되고 병사들은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불만을 가라앉히고 우리는 행복해 지는거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는 부관을 바라보며 페르쿠난은 이가 드러나록 웃었다.
' 않 그런가 부관 레딥? '
' 으흠...그렇군요.. 그 점은 생각 못했습니다. '
' 경험의 차이라는 거지. '
두사람 간의 말없는 대화가 오가고 있을때 베린은 그야말로 게거품을 물며 흥분하고 있었다.
' 조금만 더 진도 나가면 귀에서 연기나올지도 모르겠군. 조금 더 시도해 보는게 어떤가 베린? '
" 빌어먹을!! 이건 손이 묶인 씨름이에요. 황금알을 낳는 오리~ 엘고르스~ 이곳의~ 전후 처리과정에서~ 부각될 전략적 중요성은~~ 난장칠. 오리건 닭이건 다 좋은데 위대하신 황제께서 벡데코힌 황궁의 비단 쿠션위에서 뒹굴거리실 동안 여기 물구덩이에서 허부적 거리다 죽어나가는건 우리 라....."
기다리던 것이 나왔다. 페르쿠난의 눈썹이 기분 좋은 곡선을 그렸다. 그리고 자신의 결정적 말실수를 깨닳은 베린의 목소리는 뚝 끊어졌다. 황제를 비난하는 발언을 하다니. 이런 덜 떨어진놈 너무
흥분 했구나. 베린은 자신의 주댕이를 철썩철썩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베린을 몸을 돌려 매섭게 노려보던(물론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페르쿠난 퍼시는 입을 열었다. 스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최소한 베린이 듣기에는)가 흘러 나왔다.
" 놈. 가만히 놔두면 거기까지 진도 나갈줄 알았다. "
" 죄..죄송합니다!! 시..시정 시정하겠습니다!! "
" 네놈이 어깨갑옷을 벗어던질 마음이라도 있는 거냐!!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
" 아..아닙니다..어찌 감히 제가... "
"몰래 수통에 숨긴 술이나 마시는 걸 보면 안에 뇌가 있는지 없는지 의심스러운 대가리지만 없는것 보다는 있는 것이 낳겠지? 조금 더 입조심 하는게 머리통을 보존하는데 바람직 할꺼다 이 미련한놈."
" 예..옛! "
괭이앞의 쥐처럼 어쩔줄 몰라하는 베린에게서 시선을 거둔 페르쿠난은 병사들을 둘러보면서 외쳤다.
" 너희들 심정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지킬것은 지켜라. 알았나! 모두들 실컷 떠들었지? 앙? 애들 병정놀이는 끝이다! 모두 닥치고 경계나 잘 해. 또 위아래 분간 못하는 놈있으면 주둥아리를 찢어줄테다. "
마지못해 예하는 병사들의 목소리에 섞여 나오는 작은 한숨. 짧은 투덜거림. 페르쿠난 퍼시는 약간은 짜증이 난다는 듯이 말에 박차를 가하며 고삐를 잡아당겼다. 말이 또각거리며 병사들 경보정도의 속도로 행군하기 시작했고 흐긴언덕의 빈민가는 바람소리, 절그럭거리는 갑옷소리와 군화발 소리, 말밥굽 소리 이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침묵속으로 다시 잠겨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포장대로(대로라지만 빈민가의 길인 만큼 매우 좁은 편이다)를 따라 이동하던 페르쿠난의 소대 앞에 눈으로 덮인채 길을 막고있는 하얀 둔덕같은 것이 나타났다. 페르쿠난은 한손 으로는 말고삐를 잡아 당기며 다른 한 손은 짐짓 들어 올려 보였다.
" 워---- 워----워--- 소대 모두 정지. "
하얀 눈으로 덮인 커다란 둔덕이었다. 사람키에서 조금 부족하거나 조금 넘을정도인 3~4큐빗 가량의 울퉁불퉁한 둔덕이 포장대로를 완벽하게 가로막고 있었다. 말을 몰아 페르쿠난의 옆으로 살짝 붙은 부관 레딥이 중얼거렸다.
"바리케이트군요."
페르쿠난은 가볍게 고개를 끄떡했다. 그리고는 둔덕을 자세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울퉁불퉁하게 조잡한 모양을 띄는것이 꽤나 급하게 쌓아올린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사우스힐군의 바리케이트들에 비하면 유치하게 짝이없게 보이기 까지 하였다. 높이가 낮은곳은 기병이 쉽게 도약해서 뛰어넘을수 있을 정도였고 나무궤짝이나 술통, 가구 따위를 엉성하게 쌓아올린것이 발디딤이 많아서 요 며칠간 연속으로 내린 눈으로 완전히 덮여서 미끄러워 보임에도 불구하고 보병도 쉽게 타고 넘을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본래 제대로 쌓아올린 사우스힐군의 바리케이트의 경우에는 아군의 접근을 방해하기 위해 비스듬히 꽂힌 나무 대못과 창들이 촘촘하게 꽂혀있기 마련이었다. 이 바리케이트는 그마저도 없었다. 꽂혀있는 나무대못은 20여개가 채 않되었고 그나마 대부분 눈속에 파뭍히거나 부러져 그저 시늉만 내다 말았을 뿐이다.
"음. 꽤나 조잡하지만 규모 자체는 제법 크군."
"사우스힐군이 주변에 매복하고 있을까요."
"글쎄..... 엉성한 모습을 봐서는 아무리 봐도 버려진것 같은데."
부관 레딥도 바리케이트를 휘휘 둘러보더니 끄덕거렸다. 그 둘의 수군거림을 제외하면 주변에는 온통 바람소리뿐.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골목길 안쪽에 건초가 수북하게 쌓인 수레 같은 것이 하나 있을 뿐이고 온갑 잡동사니와 쓰레기들이 주변에 너저분하게 널려있을 뿐이었다. 매복의 징조 따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만 조심하는 편이 좋겠지요."
"음 그렇지. 일단 1분대와 3분대로 주변을 경계시키고 나머지는 이 바리케이트를 치운다."
얼굴에 '나는 이런일 하기 싫소'라고 써붙여 놓은듯한 레딥의 퉁명스러운 대꾸였다. 제 4공병단 이라고? 페르쿠난은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을수 밖에 없었다.
"이봐 부관. 그치들 한테 이걸 치워달라고 부탁하면 내년 봄 쯤에야 어기적어기적 나타날게 뻔해.
그 때쯤이면 뿌리를 내리고 새싹을 틔운 바리케이트를 도끼로 찍어 넘겨야 할껄."
자신의 의견에 상관 페르쿠난이 능청스럽게 비아냥 거리자 무안해진 레딥은 얼굴이 벌게졌다.
"아니지. 그 녀석들 함정들을 해체하느라고 신경이 지금쯤 무지하게 날카로워 졌던데. 자네가
이런일로 부르면 그치들은 사람을 산채로 얼마나 깊이 파묻을수 있는지를 자네를 대상으로
연구해 볼려고 할껄세."
더더욱 무안해진 레딥의 얼굴이 총천연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페르쿠난은 이 순진하기 짝이 없는
부관을 보며 속으로 낄낄거렸다. 반쯤은 레딥을 놀리기 위해 비아냥 거린 페르쿠난 이었지만 제4공병대가 사우스힐군이 교묘하게 설치한 갖은 함정과 장애물 철거에만 매달려 생고생을 하고 있는것은 사실이었다. 사우스힐군의 함정은 매우 교묘한 것이었다.
어떤 부대는 취사를 위해 벽난로에 불을 지피자마자 벽난로 안에 장착된 화약이 터지면서 부대 인원수의 절반 넘게 날아가 버리기도 했고 또 다른 어떤 부대는 한 병사가 휴식중 날이 저물자 벽의
기름등에 불을 켰는데 켜자마자 등잔이 퍽하고 터지면서 불이 순식간에 홀 내부로 퍼져 연기가 가득차는 바람에 어매 뜨거워라 하고 달려 나와야만 했다. 건물에 발을 들이자 마자 바닥이 꺼지고 지하층으로 나가 떨어지게 되있는 건물도 있었다. 지하실 천장의 버팀목을 몇개는 빼고 몇개는 톱질을 반쯤 해놓아 그런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크고 작은 사건들 중에서도 최고로 꼽을만한 대사건은 제 3군단 제흐고시 그림 휘하의 한 직속부대에서 일어났던 집단중독 사건이었다. 유난히도 춥던 어느날 밤 한 여관에서 휴식을 취하던 제흐고시 그림의 직속 친위 소대중 하나가 지하저장고에 쌓여있던 훈제육을 안주삼아 맥주로
몰래 술잔치를 하고는 단체로 정신착란을 일으켰던 일이었다.
사우스힐군은 이 술들에까지 손을 써서 다량의 환각제를 몰래 첨가해 놓은 것 이었다. 군의관들의 말로는 버섯에서 추출한 계열의 환각제일것 이라고했다. 다행히 독성이 약해 쉽게 죽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요란뻑적지근하게 환자들이 착란현상을 일으킬 것이라고. 하기사 집단중독 사고를 일으켰던 그 소대의 소대장조차도 환각제가 들어간 맥주를 마시고 환각제인지 술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게 취해 가지고는 겨울밤에 덥다고 소리를 고래고래지르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눈을 까
뒤집은체 홑바지 차림으로 눈밭을 뒹굴뒹굴하다가 독감까지 걸려서 뻗어버렸으니 말 다 했었다.
군의관조차도 말하기를 사우스힐놈들이 약간 씁쓸한 맛이 나는 환각제의 특성까지 감안해 맥주에
타 놓은게 분명하다며 혀를 내둘렀으니 정말 적만 아니라면 감탄을 할만한 교묘함이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그들은 적이었다는 것이었다. 덕택에 제 4공병대는 지금도 생고생을 하며 갖은 함정들을 해체, 철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제 4공병 대원들은 하루에도 수십명씩 기름을 발라놓은 계단 따위에서 미끄러지거나 허방다리 같은 함정에 빠져 사지중 한군데씩 부러트려 먹고 여기저기서 펑펑 터져대는 폭약에 비명을 지르며 나가 떨어지며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화재들을 진압하다가 옷자락과 머리카락을 끄슬려 먹거나 벽돌과 서까래가 뚝뚝 떨어져 내리는 건물들 사이에서 소나기 맞은 개미때 처럼 허우적 거리다가 쓰러지곤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그치'들은 신경이 대단히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거기가지 생각이 미친 페르쿠난은 레딥을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어 . . 그러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그치들은 함정이랑 씨름 하느라고 바빠. 그러니까 이정도는 우리가 치우자고."
" . . . . . . . "
"어허 인상 풀라니까. 여기서 우리 담당이 아니라고 제 4공병단에게 대충 뒷일맏겨놓고 그냥 지나가봐. 위에서 우리를 엄청나게 쪼아델거란 말이야. 다 치우자는 것도 아니고 통행로만 개척하는 정도인데 뭘."
통행로만 개척하자는 말에 그제서야 얼굴이 조금 누그러진 레딥을 바라보며 페르쿠난은 자기가 명령을 내리는 것인지 애를 달래는 것인지 분간이 않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완고함만을 제외하면 레딥은 훌륭한 부관이 었으니 페르쿠난도 과시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빙글빙글 웃는 페르쿠난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레딥이 입을 열었다.
" . . . . . 알겠습니다. . . . . 1분대와 3분대는 주위를 경계하고 나머지는 바리케이트를 치운다!!"
"젠장. 또 우리가 치우는군. 대장님은 오지랍이 넓어서 탈이라니까."
이번에도 역시나 삐딱한 베린의 말대꾸. 빙글빙글 웃던 페르쿠난의 얼굴이 갑자기 쓱 굳으며 가느다랗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딱딱한 목소리가 세어 나왔다.
"어이 1분대장 베린. 닥치고 경계나 잘하시지. 아까 그 일 [황제모독, 선동죄, 군중 유언비어 유포죄, 폭동 음모죄]로 상부에 정식 서면보고 해볼까? 그러면 3일내로 자네 모가지만 황도로 소풍 간다에 금화 10닢을 걸지."
페르쿠난의 말이 끝나자 마자 소대원들중 여기저기서 말들이 터져 나왔다.
"앗! 소대장님 혼자서 유리한데 먼저 배팅하는 법이 어디있습니까 나도 거기에 할래요."
"젠장 뭐 좀 불확실한 일이어야 내기가 성립되는 법이지. 소대장님 치사합니다."
"헤헤 . . 소 . . 소대장님 나 . . 나도 거기에 걸 . .걸랍니다요."
"킬킬킬 . . . 베린. 니 약점을 잡혀도 되게 잡힌 모양이다."
완벽한 전세역전이었다. 베린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 . . . . 쳇 . . 이번에는 얼마나 울궈 먹으실지 걱정 입니다요. "
" 말 잘들으면 울궈먹을 일도 없지. 병사들 끌고가서 경계나 해. 얼간아."
잠자코 듣고있던 레딥도 베린을 향해 느물느물하게 웃으며 계속 명령을 내렸다.
"이 대로를 중심으로 좌우 갈라서 좌측으로 1분대 우측으로 3분대 수색한다. 특히 건물 안쪽까지 철저히 경계할것. 놈들은 그런식의 기습에 능하다. 나머지들은 바리케이트를 치워 통행로를 개척하고. 수색할때나 철거할때나 함정을 조심해라. 뭐가 있을지 모른다."
병사들은 궁시렁 거리면서도 빠르게 움직였다. 페르쿠난은 그런 병사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가가는 지겹다는 듯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눈발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점점 더 많이 오는군. 이봐 레딥. 이쪽이 마지막이지?"
"예 그렇습니다만 . . 정말 심하게 오는군요."
"서두르자고. 밤새 잠도 잘 못잔 병사들이니 말이야."
목을 한껏 뒤로 젖혀 짙은 구름이 낮게 드리운 하늘과 쏟아지는 눈의 양을 가늠하던 페르쿠난은 고개를 돌려 바리케이트를 치우기 시작하는 병사들을 쳐다보았다. 그의 말이 불안한듯 푸르륵하며 한두번 투레질을 쳤다.
"젖는건 싫은데. 휴식도 못취한 병사들 체력소모가 심해질텐데."
"저도 다른건 몰라도 이 도시의 눈하나는 정말 싫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눈 좋아하는건 애들하고 강아지밖에 없다고."
뚱한 페르쿠난의 대답. 레딥은 피식 웃을수 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이런 전투. 얼마나 더 해야할까요."
"글쎄. . . . 이렇게 끈질기게 저항하는 놈들은 처음 상대해 보는군."
"아군의 사상자가 폭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 . . . 마치 황위전쟁때의 자벨컨 평야로 돌아온듯한 느낌이야."
"아참 . . 소대장님은 황위전쟁의 참전자셨군요. 어느 군단 소속이셨습니까?"
역전의 용사가 직접 말해주는 경험담. 모름지기 군인이라면 충분히 귀 쑤시고 경청할 만한 주제의 이야기가 아닌가. 부관 레딥은 흥미가 당겼다.
"으와아-- 으와-- 무너지잖아!!"
"이런 젠장. 피해!!"
"스미티!! 이 멍청아 그걸 빼면 어떻게 해!!"
[와르르르---쿵--쿵쾅--]
바리케이트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병사들의 악다구니가 들려왔다. 페르쿠난은 그런 병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심하다는 듯이 쓴입맛을 다셨다. 그리고는 레딥을 돌아보지도 않은체 말했다.
"8군단 소속이었다."
"오 . . 과연 . . 자 . . 잠깐!! 8군단이라니?!"
레딥은 당황했다. 8군단이라면 내전기간 동안 커리마시 그림을 옹호하며 현 황제인 필로스테 그림을 대적한 군단이었다. 11년간의 내전기간 내내 현 황제 필로스테 그림에가 가장 막대한 피해를 입힌 부대이었으며, 자벨컨 평야 최후 전투에서도 가장 완강하게 저항했던 군단으로 유시(流矢)에 맞아 중상을 입은 커리마시 그림을 끝까지 호위하여 전장을 빠져나간 부대였다. 반역자나 다름없이 대우 받아도 이상할것이 없는 일이었다. 페르쿠난은 놀란 레딥을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정확히는 8군단에서도 3중대 소속의 소대장이었지.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이라는 말이 늘 맞는것은 아니라고."
"3중대 . . 라면 . . . 맙소사. 자벨컨 평야의 회전에서 후퇴하는 커리마시 그림군의 후미에선 부대아닙니까."
"그래. 맞아. 최후미였지"
"커리마시군의 철수가 완료될때까지 밤새도록 한치도 물러섬 없이 싸웠다고 들었습니다. 혀를 내두를 정도의 완강한 저항에 적임에도 불구하고 황제폐하의 치하를 받을 정도였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리고 종전후에는 그 충성심과 용기를 높이 사신 황제폐하께서 우리를 사면해 주셨지."
"대단하군요 . . "
"글쎄 . .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자네야 대단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때 정말 필사적이었다고. 그저 기술자에 불과한 3중대 전속 대장장이까지 칼을 잡고 싸워야 됐었고 지휘관의 군막까지 화살이 날아들을 정도였으니 말이야. 지금 사우스힐 놈들의 악에 받힌 저항 . . . .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야 . . . . . . "
어느 사이엔가 팔짱까지 낀 페르쿠난은 잠시 눈을 감으며 심호흡을 들이켰다. 반쯤은 적군의 피에 반쯤은 아군의 피에 젖어가며 싸우던 섬찟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왼쪽 어깨와 허벅지에난 흉터들이 찌르르하며 땡겨왔다. 창날이 무뎌지거나 부러져 버린 창이 적어도 3개는 됐다. 도망가는 병사들과 항복에 '항'자라도 입에 담는 병사들을 손수 베어가며 악귀 같이 싸웠다 . . . .
[히이이익---]
치열했던 그날의 이런저런 기억속에 잠긴 페르쿠난의 상념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척로를 열던 병사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부관 레딥이 그런 병사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애들 병정놀이 하나!!"
"소 . . 소대장님, 시체입니다."
페르쿠난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거두어 주는이 없이 꽁꽁 얼어 붙은 시체라면 엘고르스 시내에 널리고 널려 있었다. 그 정도로 난리라니. 페르쿠난은 짜증난다는 듯이 외쳤습니다.
"젠장. 시체 처음보나!!"
"그 그게 . ."
하긴 그런 종류의 그저그런 시체라면 이때까지 수없이 보아왔고 이렇게 까지 놀랄 병사들도 아니다. 더욱이 지금 거느리고 있는 병사들의 대부분은 지난 내전기간에도 참가한 경험이 있으며 군대밥을 먹은지 꽤 되는 자들 뿐이었다. 슬몃 궁금증이 생긴 페르쿠난은 레딥에게 눈짓했다. 레딥은 고개를 한번 끄덕거리고는 말에서 내려서 그 시체라는것을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이런 . . . 아군의 시체입니다."
"아군의 시체?"
"예. 그것도 상당히 고급 장교의 . . . ."
그제서야 말을 몰아 병사들을 헤집으며 앞으로 나온 페르쿠난은 레딥이 가리키는 시체를 한번 훓어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앞으로 아직도 상체에 눈에 반쯤 덮인체 앞으로 엎어져 있는 시신이 신고있는 군화는 분명히 아군의 것이었고 아무나 신을수 없는 고급의 것이었다. 얼굴을 한껏 찌푸린체 시체를 한참 노려보던 페르쿠난이 입을 열었다.
"눈을 살살 치워봐라. 교활한 사우스힐 놈들이 무슨 장치를 해놨을지 모르니 조심하고."
병사들이 머뭇거리면서 레딥의 눈치만 보았다.죽은 시체를 뒤적거리는 것이 찝찝하기도 하거니와 아군 고급장교의 시신을 미끼로 사우스힐군이 함정을 설치하는 경우도 몇번 있었기 때문이다. 레딥이 인상쓰면서 병사들을 노려보자 병사들은 그재서야 마지못해 시신의 위에 쌓인 눈들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페르쿠난이 신음을 흘렸다.
" . . . . . 1소대장 보라크다 . . . . . "
"네? 1소대장 브로길드 보라크 말이십니까?
"그래 보라크야. 검 손잡이에 멋대가리 없이 가죽을 칭칭 동여놓던 놈은 그 놈밖에 없어. 찰싹 붙는듯한 손맛이 좋다나 뭐라나 . . 뭐 쓸데 없는 얘기 다 빼고 결론만 얘기하자면 목동출신 촌놈 이었지. 지난밤 습격이후 행방불명 이라더니 이런곳에 쓰러져 있을줄은 . . . . "
"일단 확인을 해보지요 . ."
"함정이 설치된 기미따윈 없는가."
"이곳까지 시신을 끌고온 자국 따위는 없습니다. 등판에 쌓여있는 눈도 어제 새로 내린눈이고 바닥에 흥건하게 흘린피는 아무도 건드린 자국이 없습니다. 눈이 쌓인 정도나 피가 굳은 정도를 보면 어잿밤 교전이 있었을때 여기서 쓰러져 죽은것이 확실합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만전을 기하도록."
레딥이 병사들에게 고개를 끄떡거렸다. 그러자 병사들은 조심스럽게 창대를 사용해서 시신을 뒤집었다. 가슴에 부러진 쿼럴이 4발 꽂혀있는 피범벅이된 시신이 드러났다. 벌렁 드러누운 모습의 시신은 촛점 없이 멍한 눈을 들어 하늘을 하늘을 노려 보고있었다. 그 피범벅으로 흉칙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덮어 주려는듯이 어느 사이엔가 더욱 더 굵어진 눈송이가 시신의 얼굴위로 떨어져 내렸다. 레딥은 짐짓 고개를 돌렸다. 페르쿠난의 말이 맞았다. 시체는 1소대장 브로길드 보라크였다.
"이런 제기랄!! 모두 경계대형으로!!"
시체의 얼굴을 확인한 병사들은 이를 악 물고는 검을 거세게 뽑았다. 사우스힐군이 어디에 매복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 이었다. 갑작스런 병사들의 반은에 놀라 푸르륵 거리는 말을 달랜 레딥은 재빨리 고삐를 나꿔채며 장검을 뽑아들은체 으르렁 거리듯이 말했다.
페르쿠난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야간의 혼전속에서 몇몇 병사들과 함께 낙오되어 하나씩 하나씩 몰살을 면치 못했을것이었다. 사냥을 당하듯이.
"제길 . . . . 여기서 매복에 걸린 걸까요?"
"그렇겠지 시체를 이동시킨 흔적은 없다며?"
"그렇긴 하지만 어디서 쏘았을까요. 상당히 정확한 솜씨입니다."
페르쿠난은 시체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대충 들어 가리키며 고개도 돌리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대략 저쪽쯤."
레딥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고개를 돌려 보았다.
"꽤나 높은 건물의 다락이군요. 작긴하지만 원총안 노릇도 충분히 할만한 창문도 몇개 나있고."
"그래. 시체가 쓰러진 상태를 보면 대충 저곳밖에는 없어."
"매복하고 있다가 집중사격을 가하기 딱 좋군요."
"나 같아도 저기서 기달리다가 적군이 달려오면 너무 좋아서 손을 싹싹 비비겠군.:
페르쿠난은 고삐를 잡아 당기며 몸을 크게 돌렸다.
"1분대와 3분대 적황을 보고하라!!"
병사들의 조용한 그러나 다부진 목소리들이 날아왔다.
"1분대장 베린. 별 이상 없습니다!!"
"3분대장 거일. 적의 매복기미는 없습니다!!"
페르쿠난의 눈이 이리저리 데굴데굴 굴러갔다.
'놈들은 이미 이곳을 포기한 것인가? 저항거점으로는 최고라 할만큼 목이 좋은데? 나라도 이런곳은 한번쯤 찔러볼만 한데 . . 하지만 이건 너무 조용하지 않은가.'
모든것이 확실치 않았지만 일단 무엇이든 명령을 내려야만 했다.
"레딥!! 4분대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원 경계태세로. 4분대는 재빨리 바리케이트를 철거하고 개척로를 연 뒤 이곳을 빠져나간다. 너 그리고 너. 너희 둘은 1소대장 보라크의 시신을 수습해라. 모두 서둘러라!!"
이런 좁은 골목길과 밀집된 건물 사이에서의 시가전 만큼은 피하고 싶었다.손놀림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빠른 속도로 바리케이트를 철거하던 4분대원의 모습을 바라보던 페르쿠난은 다시한번 1소대장 브로길드 보라크의 시체를 내려다 보고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지웠다.
'대략 저쪽에서 매복사격을 받았단 말이지 . . .'
회반죽을 하얗게 바른 3층짜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레딥이 설명한데로 원총안으로 쓸만한 창문이 작게 뚫린 이 3층짜리 건물은 낮은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흐긴 언덕에서는 조금 높은 축에 들기는 했지만 그다지 높다고도 눈에 띈다고도 할수는 없는 건물이었다. 허나 그 건물의 표족한 지붕-물론 폭설을 대비하기 위한-은 짙은 회색 구름이 낮게 깔린 엘고르스의 하늘을 찔러버릴듯한 느낌을 주었다. 페르쿠난은 그런 건물을 위에서 부터 아래로 주욱 흟어내려보기 시작했다.
" . . . . . . . .?!!! "
나무로 만든 작은 창문이 반쯤 떨어져 나간 곳에 바알갛게 빛나는 점 하나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 바알간 빛에 불그스름하게 물들은 입가가 보였다. 햇빛이 부족한 날씨인지라 미약한 화승(火繩)의 불빛 이외에는 어떠한 빛도 없어 겨우 입매와 턱의 윤곽만 희미하게 드러나 보일뿐이었다.하지만 입매는 마치 무생물의 것인양 굳게 다물려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입매 위로는 맹수의 것과 같은 푸른 안광(眼光)-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듯한- 두개가 조용히 그러나 확고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파앙-------------]
흐긴언덕에 쩌렁쩌렁 울릴듯한 폭음과 함께 총구에서 잠시 섬광 비슷한 것을 본듯하다고 느낀 페르쿠난은 머리를 망치로 후려치는 듯한 강한 충격을 느끼며 천천히 모로 쓰러졌다. 세상이 옆으로 기울고 있었다.
부관 레딥의 절규. 그리고 알수 없는 사우스힐어가 섞인 소란들을 들으며 페르쿠난은 정신의 끈을 놓아버렸다. 옆으로 기울고 있는 세상, 그리고 그 세상과 함께 옆으로 기울고 있는 레딥의 절망에
찬 얼굴. 어깨의 둔탁한 충격과 함께 보이는 흐릿한 하늘. 그것이 페르쿠난이 마지막으로 보고 느낄수 있는것들 이었다. 도로변에 두껍게 쌓인 차가운 눈이 그의 뜨거운 피를 탐욕스럽게 빨아 들이고 있었다.
"저기다----!! 응전하라아아아-------------------"
[으아아아아아-----------]
대륙력 2201년. 17년 전쟁 개전 2년째 되던 해의 겨울.
케로빈의 정예들은 엘고르스에서 발목이 붙잡힌 체 이런식으로 서서히 녹아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자신에게 이빨을 드러낼수도 있는 군벌의 힘들을 소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던 케로빈 제국의 황제, 필로테스 그림의 의도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결과 이기도 하였다.
첫댓글내숭도 지나치면 좀 그렇습니다.잘 읽었습니다.흑색화약의 방대한 연기는 남자가 시가를 좋아하는 것과 같지요.흐음..개인적으론 마법이니 파이어볼이니 윈드머시기니 이런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전략,전술,경제(특산물 및 기술) 그리고 문인들의 화려한 말빨로 이루어지는 정쟁과 모략 크하하..-_-
첫댓글 내숭도 지나치면 좀 그렇습니다.잘 읽었습니다.흑색화약의 방대한 연기는 남자가 시가를 좋아하는 것과 같지요.흐음..개인적으론 마법이니 파이어볼이니 윈드머시기니 이런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전략,전술,경제(특산물 및 기술) 그리고 문인들의 화려한 말빨로 이루어지는 정쟁과 모략 크하하..-_-
오오... 습작이라고 하기엔 완성도가 높군요...+ㅅ+
아문, 머스켓은 사나이의 로망. 어디서 기관총따위가..;;;
아니오! 스나이퍼건!(...)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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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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