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덕산(德山)은 충청남도 예산군(禮山郡)에 속한 지명으로 본래 덕풍(德豊)·이산(伊山) 등 두개 현을 합한 명칭이다.. 이산현은 백제 때는 마시산군(馬尸山郡)이라 불리우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이산군(伊山郡)으로 바뀌어 웅주(熊州: 公州)가 관할하였고, 금무현(今武縣)과 목우현(目牛縣)이 이산군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에는 홍주(洪州: 충청남도 홍성군)의 관할에 있다가 후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하였다. 덕풍현(德豊縣)은 백제의 금물현(今物縣)을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금무현(今武縣)으로 개칭하였고, 940년(고려 태조 23)에 덕풍현으로 바꾸어 이산현과 함께 홍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5년(명종 2)에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1405년(태종 5)에는 두개 현을 병합하여 덕산현을 만들었고, 1828년(순조 28)에 덕산군으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홍주부에 속속되었고, 1896년에 충청남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덕산면으로 축소, 폐지되어 지금은 예산군(禮山郡)에 속한 덕산면(德山面)으로 남아 있다.
성씨의 역사
덕산이씨(德山李氏)의 시조 이존술(李存述)은 고려 명종 때 덕풍호장(德豊戶長)을 지내고, 그의 아들 이언후(李彦厚)와 손자 이극보(李克甫)는 각각 야인(野人)과 몽골군(蒙古軍)의 공격 때 공을 세웠다. 이핵(李翮)도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을 지내는 등 3대에 걸쳐 장수를 배출하며 명문의 기틀을 다졌다. 덕풍(德豊)은 덕산(德山)의 옛 이름으로 시조가 덕풍의 별아산(別鵝山) 아래에 터를 잡은 이후 후손들이 덕산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분적종 및 분파
순흥귀미파(順興龜尾派)
전주봉강파(全州鳳崗派)
전주우림파(全州雨林派)
전주정동파(全州旌洞派)
전주추동파(全州楸洞派)
충주노은파(忠州老隱派)
칠곡남산파(漆谷南山派)
칠곡동일파(漆谷東日派)
칠곡반송파(漆谷般松派)
칠곡봉계파(漆谷鳳溪派)
칠곡상지파(漆谷上枝派)
칠곡지당파(漆谷芝塘派)
평남양덕파(平南陽德派)
주요 세거지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봉암동(5백여 년, 入鄕祖 李云顯)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덕산이씨는 2,215가구 총 7,198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