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의 서남부에 위치하며 중국 22개 성중에서 가장 큰 면적을 소유하고 50개가 넘는 소수민족이 살아가는곳
수천만년전 엄청난 지각변동으로 바다였던 곳이 지구의 가장 높은 지붕이된 에베레스트산맥의 기슭인 지구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있는 심장부!
서울에서 3800km을 날아가 수도인 곤명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한눈에 보여주는 운남성 석림을 구경하고
4방 2km정도의 기기묘묘한 석회암으로 형성된 돌숲이다. 그림은 석림입구의 연못과 석회암의 절경
2009년 12월 28일 밤 10시 30분
32인승 침대 버스를 난생처음으로 탓다.
약간의 땀냄새와 발냄새가 어색하고 신경 쓰인다.
어짜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체험을 하기위해 수천키로를 왔으니 참을 만하다.
운남성의 크기가 대한민국의 4.5배라고하니 도시 하나를 이동하려면 8시간은 기본이고
하루종일 버스를 타는 것보다 밤새워 달리는 것이 시간적으로 효율적이고 덜 지루하다.
8시간을 달려 보산시에 도착한 시간은 6시, 이곳은 우리나라보다 한 시간늦게 날이 밝으니 아직은 어두운 밤이다.
날이 새기를 차에서 기다린 후 8시에 나오니, 11월 초의 날씨에 기온이 5도쯤되는 싸늘한 느낌이다.
이곳에서 택시를 타고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반복하면서 어디론가 2시간 가까이 달린다.
깍아지른듯한 절벽을 달리기도하고, 평화스럽고 오염되지않은 농가와 바나나 .커피.사탕수수밭이 보이기도한다.
외국 - 동남 아시아에 온 실감이난다.
중남미 아이티라는 생소한 나라에 7.2강진으로 수십만명이 죽고 폐허가 된 모습을 매일 TV로 보면서
달 나라에 사람이가고, 스마트폰이라는 기기가 지구촌을 한 화면으로 연결하고, 100층이 넘는 건물을 만드는 현대과학이 자연앞에 얼마나 미약한 것인지...
이곳의 웅장하고 기기묘묘한 산세를 보면서, 수억년전 바다가 육지가되고 육지가 땅속으로 흔적없이 사라진 그날의 천지개벽을 상상해보지만 TV로 본 불덩어리가 솟아오르는 화산폭발정도 밖에는 연상할 수가 없다.
오늘 나를 이곳에 올 수있게한 김사장은 7년전 우연히 이곳을 여행하다가 강가에서 황금색의 나무가 그려진 바다돌을 보고 수석 수입을 결심했다고 하면서 마치 자기의 고향에 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우리를 중국의 오염되지않은 자연속으로
때묻지않은 사람속으로 안내한다.
좌부터 이집주인, 필자. 운곡님. 김사장. 우리의 기사
바나나 농장의 농가에서 닭한마리를 잡아 닭도리탕으로 아침을 해결하는데 운곡님은 중국음식 특유의 향채의 향이 싫어 음식을 잘 먹지못하고 고추장에 오이를 찍어먹고, 김단장은 자기 어머니음식처럼 맛나게먹고, 나는 그냥 그데로를 받아들인다.
80년대의 동네 구멍가게 같은 곳에서 탐석준비물을 챙기고 드디어 돌밭으로 들어섰다.
하늘은 푸르고, 물은 만년설이 녹아내려 특유의 옥빛이고, 공기는 맑고,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이외에는 적막 강산이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차마고도라는 화면을 통해보던 절벽아래로 도도히 흘러내리던 루짱 즉 노강의 하류로 이 강이 흘러 미안마로 가는 국경지대다.
2차대전 당시의 전쟁의 흔적이 여기 저기에서 보인다.
한국에서처럼 산지에 사람이 탐석한 흔적은 전혀 보이지않는 처녀 탐석지다.
여름 홍수의 물살이 만들어놓은 그 방향으로 돌이 누워있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이 돌밭에도 사람을 감동시킬 환상적인 작품은 보이지 않는다.
자연에게 인간이 추구하는 명품을 만들라고 하는것 자체가 욕심이라고 생각된다. 그냥 자연속에 동화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꿈과 희망을 갖고 노력하는 자에게 자연은 언제나 그 진실한 대가를 주는법
5000km을 달려온 나의 수석 열정에 뭔가를 선물해줄 것같은 분위기다.
쌍홍교라는 다리밑 모래바닥에서 자연은 나에게 찬란한 보산 노강옥 한점을 선물한다.
내가 이 먼 외국으로 탐석을 결정하게 된것은 남한강 충주목계 주변을 맴돌며 탐석에 열중하는 나를 우리 식구들은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했는데, 2000년대 초부터 우리 수석계에 해석 바람이 불면서, 그동안의 나의 수석취향에 갈등이 생겼다,
바다돌은 대체로 작다는 점과 변화가 없이 모두가 둥글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돌 속에서 그림을 찾는다는 매력이 우리 식구들이 관심을 갖게 해 주었고, 다양한 곳으로 여행 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2006년 수많은 산지로 탐석을 다닐무렵, 수석잡지에서 중국곤명수석을 알게되었다.
경기도 고양시에 대명수석이라는 곳이었다.
바로 이곳 사장님이 보산 1500고지 노강에서 발견되는 수천만년전 지각변동 이전에는 바다였던 곳의 그림돌 수백톤을 원주민들을 동원하여 수입해 대명수석원을 개업하셨다,
님의 대단한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대명수석에서 만난 천년고목이다.
이 수석을 만나고 언젠가는 바다가 육지가되고 육지가 바다가 되는 수천만년 전의 지구역사를 체험하고 태어난 이 수석산지를 탐석해보리라 마음먹게한 계기가 된 수석이다.
수천키로를 달려와 모래와 자갈사이에서 작품을 찾는다는 설래임은 선보러 나간 아가씨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이곳 돌밭의 분위기는 70~80년대의 남한강이 연상된다. 물론 규모가 좀더 크기는하지만...
화강암의 잡석사이로 오석이 가끔보이고 가끔 수천만년전 지각변동 때 바다에서 자리를 옮긴 이 돌이 보인다.
어떤것은 조개껍질이 뭍어있고, 어떤것은 열받아 붉은 녹물이 뭍어있고, 어떤것은 흐르는 물에 피부가 닦여 수묵화같기도하다.
이곳에서 탐석한 추억의 그림돌이다.
백설이 가득한 숲속에서 스키를 타고내려오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이다.
이제 12월 스키씨즌이다. 이 수석이 12월을 맞으며 탐석기를 쓰는 계기가 된 것같다.
원주민 아주머니와 김사장과 나
수많은 곳으로 탐석을 다닌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탐석지는 이곳 윈난성 보산 노강 탐석의 추억이다.
하루종일 사람하나 볼수없는 오지에서 식사를 해결하기위에 외딴 농가에 들어가 닭도리탕에 미주 한잔과 식사를 하고 돌아설 때면 겨우 한두시간의 만남과 헤어짐에 사람이 그리워서 눈물 흘리던 모습과
목욕탕이 없는 오지에서 피로를 풀고 몸을 씻기위해 강변의 자연 온천에서 자연을 온몸으로 즐기던 추억
1500고지에서 바라보는 쟁반같이 둥근달과 대낮같이 밝은 달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말없는 수석을 곁에두고, 자연의 섭리를 배우고, 삶의 지혜를 깨닫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배우는 내 삶의 스승이요 동반자가된 수석!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말처럼
우리 수석의 요람이 남한강이요 일광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얼마나 협소한 것인지 깨닫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자연은 그리고 우리가 살고있는 이 지구는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넓고 다양한 실체이며 그 실체를 알기에는 인간은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좀더 겸손하고, 좀더 진지하며, 좀더 충실하라고...
첫댓글 창봉님!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므니이다.
사랑합니다^^^^^
잘보고갑니다.
그리고 열정에 경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