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5-13)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서로 인사를 나눌까요?
“참 잘 오셨습니다. 잘 될 것입니다. 더 잘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결정됩니다. 땅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비관주의자가 되고,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낙관주의자가 됩니다. 땅을 바라보는 사람은 우울한 사람이 되고,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은 밝고 즐거운 사람이 됩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다.”(약 1:17)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골3:1)
여러분은 어디를 바라보며 살고 계십니까?
사람은 누구나 다 인생의 긴 여정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건 간에, 예고 없는 위기와 고난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우리 모두 예외는 없습니다. 누구나 문제를 경험합니다.
다양한 문제 속에 살아갑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사업의 실패, 질병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우리에게 닥쳐올 때, 그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위기와 고난을 신앙으로 잘 극복하면,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되지만, 위기와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면 낭패를 당하기 일쑤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고난이나 위기가 올 때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일이든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라는,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누군가 “당신의 인생에 폭풍우가 몰아닥치면,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우리는 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편 42:5)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낙심되고 불안할 때,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을 내려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위기와 고난을 만나면, 자신들의 힘만을 믿고, 노력하고, 애쓰며, 또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을 의지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불안하게 하는 위기나 고난의 해결방법은 아닙니다.
다윗은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시 146:3)고 말했습니다.
누가 나의 도움이 되어 줄 수 있겠습니까?
평생 누가 나의 편이 되어 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삶에 예고없이 닥쳐오는 고난과 위기를 해결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은혜와 능력을 받고, 위험으로부터 건짐을 받고, 질병으로부터 고침을 받고,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받고, 전쟁에서 승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할 때마다,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해 주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으며, 반석에서 샘이 솟게 하여 주셨습니다.
뜻을 정한 기도의 사람 다니엘은, 기도하면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하루 세 번씩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는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은 사자의 입을 막아, 다니엘을 죽음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존귀한 사람 야베스는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대상 4:10)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구한 모든 것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귀중한 사람,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혜의 사람 솔로몬은 하나님께서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고 했을 때, 그는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과 장수의 복을 얻었습니다.
기도의 사람 히스기야 왕은 회복할 수 없는 질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심히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사 38:5)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십오 년의 생명을 연장받았습니다. 더 나아가, “예루살렘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주겠고,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사 38:6)는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더니, 모든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삶의 자리에 어떤 고난이나 위기가 찾아올 때, 문제가 발생할 때, 먼저 우리의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수단이나 노력이나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주님은 해결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고 하였고, 예레미야 선지자도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26)라고 하였습니다.
기대하며, 기도하고, 기다리면 반드시 그 일은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남 유다 제 4대 여호사밧 왕이 B.C. 848년경에 이웃의 모압과 암몬과 마온이라는 세 나라가 연합하여 쳐들어 와 치룬 전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호사밧은 왕이 되고 난 다음,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을 각 지방으로 파견했습니다. 백성들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요새들과 국고성을 건축하여 나라를 강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규군을 조직하여, 유다의 온 성에 군대를 파견하였습니다.(대하 17장))
여호사밧 왕은 다른 왕들과는 달리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계명을 잘 준수해서 하나님께서 여호사밧 왕에게 축복을 주셔서, 나라가 부강하게 되고, 그 영광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사회적으로 평안한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웃음이 있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행복이 있는 그런 아람다운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여호사밧은 주변의 세 나라가 연합하여 쳐들어오는 그런 큰 위기를 맞게 되었을까요?
그 원인을 먼저 찾아보고자 합니다.
역대하 19:2절을 보면,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왜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여호사밧 왕에게 임한다고 했을까요?
역대하 18:1절을 보면,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사밧 왕의 아들과 아합 왕의 딸이 결혼을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여호사밧 왕과 아합 왕이 사돈지간이 된 것입니다. 아합 왕은 역대 이스라엘 왕 중에 가장 하나님을 미워한 왕입니다. 더구나 그의 부인 이세벨은, 하나님을 배척하고, 이방신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종들을 핍박한 사람입니다. 여호사밧은 그런 아합과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를 며느리로 맞이하였습니다.
사돈지간이 된 여호사밧과 아합은, 이 년 후에, 함께 손을 잡고 길르앗 라못을 공격했습니다.
“이 년 후에 그가 사마리아의 아합에게 내려갔더니 아합이 그와 시종을 위하여 양과 소를 많이 잡고 함께 가서 길르앗 라못 치기를 권하였더라”(대하 18:2)
여호사밧 왕은 악한 아합 왕을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던 북 이스라엘 아합 왕의 딸과 자신의 아들 여호람과의 정략결혼을 시키는 죄를 범하고, 또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지도 않고, 아합 왕과 연합해서 아람을 공격했다가, 전쟁에서 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후의 예언처럼, 그 죄로 인하여 여호사밧에게 감당 못할 풍랑이 덮친 것입니다.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모압과 암몬과 마온의 연합군이 쳐들어 왔습니다. 연합군의 침공 소식을 보고 받은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임했다는 사실 때문에, 크나큰 두려움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 왕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나아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비록 여호사밧 왕이 악인들과 교제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엄청나게 훌륭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는 일편단심,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하였더라”(대하 19:3)
여호사밧은 아합의 손자 여호람과 손을 잡고 모압을 치고자 할 때, 출전한 지 7일만에, 병사들과 가축들이 마실 물이 떨어졌습니다. 위급한 일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왕하 3:11)고 물었습니다.
여호사밧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늘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더욱더 기도합니다.
문제를 만났는데, 너무 막연할 때, 내 지혜로 주어진 일에 대해 감당하기 벅찰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고 했습니다.
여러분!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과 마온 사람들이 여호사밧을 치고자 남유다를 침공했습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라고 했습니다.
여호사밧처럼, 우리도 하나님께로 낮을 향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여야 합니다.
5-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전 새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 서서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아멘.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심을 믿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다.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음을 믿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이런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7-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주를 위해 건축하고 이르기를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아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여호사밧 왕은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들어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를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솔로몬의 봉헌기도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왕이 새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막론하고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왕상 8:37-39)
여호사밧은 위기를 당했을 때,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드린 기도는 능력 있는 기도입니다.
예수님도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막 11: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드리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성전을 향해 드리는 기도도 기쁘게 받으십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교회에 나와 기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를 향하여, 교회를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들어 주십니다.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시 20:2)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교회를 향해서, 우리는 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방황하십니까?”
내 힘만 의지할 땐, 패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마스터키입니다. 기도는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위급한 상황을 만났을 때, 환난 가운데에서,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비록 환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주께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그렇습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르면, 하나님께서 나를 건져주실 뿐만 아니라,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로 삼아주실 줄로 믿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아멘.
여호사밧은 견고한 성을 쌓고, 용맹스러운 군사들을 양성했습니다.
역대하 17:13-19절 말씀입니다.
“유다 여러 성에 공사를 많이 하고 또 예루살렘에 크게 용맹스러운 군사를 두었으니 군사의 수효가 그들의 족속대로 이러하니라 유다에 속한 천부장 중에는 아드나가 으뜸이 되어 큰 용사 삼십만 명을 거느렸고 그 다음은 지휘관 여호하난이니 이십팔만 명을 거느렸고 그 다음은 시그리의 아들 아마시야니 그는 자기를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자라 큰 용사 이십만 명을 거느렸고 베냐민에 속한 자 중에 큰 용사 엘리아다는 활과 방패를 잡은 자 이십만 명을 거느렸고 그 다음은 여호사밧이라 싸움을 준비한 자 십팔만 명을 거느렸으니 이는 다 왕을 모시는 자요 이 외에 또 온 유다 견고한 성읍들에 왕이 군사를 두었더라” 아멘.
여호사밧은 온 유다의 견고한 성에 무려 116만이라고 하는 대군을 배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호사밧의 마음에는, 그러한 자신의 강군이 아무 힘도 없고, 또 어찌 할 바를 모르는 자들처럼, 여겨졌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솔직하고, 적나라한 여호사밧의 고백입니다.
여호사밧은 이미 하나님이 반대하시는 전쟁에, 아합과 함께 나간 길르앗 전투에서, 철저하게 패배의 쓴맛을 보았기 때문에, 자기의 군사력을 의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전쟁은, 반드시 패한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아무리 숫자적으로 우세하고, 좋은 무기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 전쟁이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전쟁일 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여호사밧은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15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도, 우리는 이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완전무장을 한 거대한 골리앗 앞에 선 소년 다윗은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7)고 외치며 나아갈 때에, 그는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진리를 깨달았기에, 116만이라고 하는 엄청난 군대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인간적인 수단을 포기하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습니다.
국가적인 큰 위기 앞에서 여호사밧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자기의 군사력, 인간적인 모든 방법들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 절대 신앙으로 나아갔습니다.
시편 146:5절을 보면,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여호사밧은 “오직 주만 바라나이다. 주님이 함께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여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나는 약하고 힘이 없습니다. 나의 상황을 내가 움직이기에 너무나도 약합니다. 도와 주십시오.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는 삶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삶의 자리에서 크고 작은 삶의 위기를 만날 때마다, 여호사밧과 같은 믿음으로 성전에 나와, 주님만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어떤 일이 해결되지 않을 때,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에, 도저히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에, 기도하십시오.
큰 난관이 앞을 가로막고 있을 때, 고통으로 인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문제 해결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시고 역사하여 주십니다.
예수 믿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의 아버지는 산행을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불행히도 산에서 잘못 발을 디뎌서 떨어져 돌아가셨습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의 할아버지도 산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이 청년도 산행을 참 좋아했는데, 사람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너의 집에는 산이 내린 저주가 흐르니 그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산을 피하라. 산에 오르지 말라. 너도 산에도 죽을 것이다.”
이 청년이 그 사람에게 정색을 하면서 말합니다.
청년이 그 사람에게 “당신 할아버지는 어디서 죽었소.”라고 물으니, 집에서 돌아가셨답니다. “집 어디에서 돌아가셨느냐”고 물으니, 침대에서 죽었다고 말합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어디서 죽었소”라고 물으니, 아버지도 침대에서 죽었다고 말합니다.
믿음의 청년이 말합니다.
“당신은 절대로 집에서 자면 안됩니다. 침대에서 자면 안되고, 이제부터 거적 깔고 길거리에서 자시오”
너무나도 신앙적으로 정확한 답변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미신에 현혹되어서는 안됩니다. 무슨 징크스에 사로 잡혀 살면 안됩니다. 과거의 일에 사로잡혀 살면 안됩니다. 바로 오늘의 삶에서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 의지하여야 합니다.
왜 우리는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이 오직 주님만 바라본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야하시엘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대하 20:15-17)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열심히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였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들은 여호사밧은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갔습니다.
여호사밧은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외쳤습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20)
여호사밧은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였습니다. 그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대하 20:21)라고 찬송하였습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하나님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여 도망갔습니다.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대하 20:23)
여호사밧은 전장에 나갈 때 노래하는 찬양대를 무장한 군인들 앞에 세웠습니다.
찬양대는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소리 높여 찬양했습니다.
당연히 전쟁이라면, 총과 칼을 가지고, 무장한 병사가 앞서야 하고, 탱크와 전차가 앞서야할 터인데, 오늘 이 전쟁의 모습을 보십시오. 앞에 대적이 몰려오는데, 이 군대 앞에 거룩한 예복을 입은 찬양대가 앞장 서 있습니다. 나팔을 불며, 그들은 입을 벌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찬양대가 찬양을 시작할 때에, 적의 진영의 뒤편에서 복병이 일어나서 대적을 치기 시작합니다. 대적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자기들 스스로 서로를 죽였습니다. 그 결국, 그 대적들은 광야에, 모두 다 쓰러져 버리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스스로 자폭하고 말았습니다. 세 나라의 연합군이, 서로 적이 되어, 서로를 죽였습니다. 대적들은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여호사밧은 기도로 승리하였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아감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찬송함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기도와 말씀과 찬송으로 남유다를 침략한 연합군을 물리쳤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여호사밧에게 어떤 일들이 따라왔을까요?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으므로 각기 탈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거두어들이고”(대하 20:25)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전리품이 너무 많았습니다. 패배하고 도망친 연합군들의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너무 많아, 사흘 동안을 거두어 들여도, 모자랄 정도였습니다.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대하 20:30)
하나님은 여호사밧과 그의 나라에 태평성대를 주셨습니다. 평강을 주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마십시오.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도 마십시오.
감당할 수 없는 문제 가운데 던져져 있다면, 기도하십시오.
자신이 가진 재력이나 권력,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경험을 믿고, 행동하지 마십시오.
세상적인 모든 것들을 다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 46:1)고 고백했습니다.
누군가 죠지 뮬러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당신은 그토록 위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까?”
그때 그는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다른 사람과 똑같은 믿음을 가졌을 뿐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님을 더 많이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찰스 스펄젼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스펄젼은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목사님이었지만, 그에게는 늘 하나님이 자신을 벌하실 것 같은 두려움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신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는지, 그는 알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스펄젼은 심한 눈보라 때문에, 섬기는 교회에 가지 못하고, 가까운 작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눈보라가 너무 심하여, 그 교회 담임 목사님도 못 오시고, 성도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이, 목사님 대신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어린아이도 바라볼 수 있고, 귀머거리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바라보라. 내가 지금 십자가에 달려 널 위해 피를 흘리고 있노라. 나를 바라보라. 내가 너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고 무덤에 묻혔다.’”
이 설교자는 눈보라 때문에, 그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있는 스펄젼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젊은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당신이 할 일은 그것 밖에 없습니다. 자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스펄전은 그 순간 무릎을 꿇고 외쳤습니다.
“오 주님, 제가 주님을 바라봅니다. 저를 구원하여 주소서!”
스펄젼은 바로 그 순간 죄많은 자기 자신을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도저히 설 수 없는 죄인이지만, 이런 자기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스펄전은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구원받았습니다. 그는 설교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 말씀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분이십니다.
평안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주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나를 바라보라. 십자가를 바라보라. 주님을 바라보라. 주님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고 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 나는 주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나는 주님의 도우심을 믿습니다. 나는 나의 기도에 주님께서 응답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나는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고, 믿고, 찬송하면 반드시 승리와 영광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주님만 바라봅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주신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믿고 나아가겠습니다.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살겠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건져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