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연합은 동전의
양면으로 비교할 만큼 연합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교사가 활동하는 선교지 중에서 연합이 전무한 곳은 아마도 중국 선교인지도 모른다. 물론
중국 밖에서 소수의 선교사들이 선교협력을 시도하는 것은 퍽 다행한 일이지만 넓은 중국에 비하여는 너무나 미미하다. 중국 선교에서 한국 선교사들의
연합이 부진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물론 선교를 비밀리에 수행해야 특수한 상황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공개된 비밀도 있거니와 북경의 한
도시에 선교사들이 밀집한 것은 더 이상 비밀이라는 말은 사실상 명분이 없어지고 만다. 비밀을 구실로 협력을 거부하는 것은 선교의 효율성을
떨어지게 할 뿐이다. 우리는 중국선교뿐만 아니라 전 세계 선교를 위하여 선교 협력은 절대적이요 성경적이다. 이 점에서 교회(교파) 선교회와
초교파 선교회간의 협력이 우선이다.
1. 한국 선교협력의 현실적 당위성: 부상하는 중국
선교협력의
필요성은 성경적 당위성 외에 중국 현실이 한국 교회로 하여금 선교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선교에서도 도리어 중국 교회
지도자들은 - 물론 소위 지하교회 지도자들이지만 - 중국 교회야말로 종말시대 선교의 마지막 주자라는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데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특히 중국 교회야말로 이슬람선교의 최적격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중국은 이슬람권과 원래 친구지간임으로
선교사 파송도 저항이 제일 적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헌팅톤의 문명충돌론 이론과 아주 맞아떨어진다. 헌팅톤에 의하면 이슬람과 기독교적
서구는 대립관계이지만 공산권과 이슬람권은 친구사이로 협력이 가능하다고 분석하였다. 이렇게 중국이 벌써 선교국가로 부상하는데, 한국 교회가
일방적으로 중국을 선교지로 간주하고 너무 오만하면 도리어 저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따라서 이제는 중국 교회와 동반자로서 협력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 위하여 한국 선교회 사이에 대화와 협력이 있어야 한다. 정치 경제면에서 21세기는 중국의 세기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일찍이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그의 예언은 적중, 중국이 모든 면에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앞으로
한국의 농업이나 기업들, 특히 중소기업은 중국의 인해전술에 서서히 무너질 것으로 본다. 중국은 인건비가 아직도 한국의 1/5밖에 되지 않으며
공장 지을 때 땅값이 크게 들지 않아 중국이 한국 상품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경제 규모는 수년 내에 미국과 대등하거나 추월한다고 본다.
이러한 중국의 대국화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도 있다. 일본의 미와자키 마사히로는 [중국대분열]이라는 저서에서 중국은 앞으로 경제가 어렵게 되고
정치적으로도 마지막 독재국가가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여기에는 일본인의 반중 감정이 깔려 있다고 본다. 중국은 대만의 중소기업, 화교 교회의
자본력, 높은 신학수준, 중국 교회의 급성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즉 유교권에서 기독교부흥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 선교사들도 이미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발행되는 기독교 문서를 활용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동일한 유교문화의 배경과 한자문화를 공유하는 중국, 일본, 한국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
2. 교회와 선교
일반적으로 교회와 선교회라 할 때는 선교지에서는 선교사와 원주민 교회의
관계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교회 선교와 초교파 선교, 즉 Church와 Para-Church의 관계를 의미한다. 양자의 관계는 불행하게도 어느
나라에든지 상호보완의 협력 관계보다는 긴장과 대립적인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교회와 초교파 선교회는 상호보완과 협력의 관계이지
결코 경쟁이나 대립관계가 아니다. 한국 교회도 교회와 초교파 선교회간에는 약간의 불신과 갈등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데, 이것은 어쩌면
본질적으로 불가피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한국 교회는 교단 파송 선교사가 60%를 차지한다. 한국 교회 선교는 초교파 선교회가
우세한 미국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 세계선교의 2/3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선교는 교파 선교보다는 초교파 선교가 숫자적으로 더 많다. 한국에서
교단선교는 목사선교사를 주로 파송한 반면 초교파 선교회는 평신도 선교사를 파송함으로 각자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초교파 선교회는 초기에는
서구의 초교파 선교회와 관련된 것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점차로 독자적인 선교회가 늘어가고 있다. 교회와 초교파 선교회간의 긴장관계는 이미 서구
기독교가 경험하였다.
양자의 긴장 원인은 먼저 초교파 선교회는 제도권 교회의 선교무관심 혹은 냉담을 비판하고, 다음으로는 선교비
협조에 소극적이라고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많다. 반면 교단 선교회는 임의로 사람과 돈을 빼 간다고 불만이다. 이러한 갈등이 처음 표출된 것은
1991년 11월 “2,000년대를 향한 민족복음화와 선교전략” 세미나에서 교회와 선교회간의 바람직한 관계정립의 토론장이었다. 교회는 초교파
선교회가 교회를 무시하고 인사와 행정 등에서 교회의 의견이나 상의 없이 일을 처리한다고 유감을 제기하였다. 반면 선교회는 교회가 초교파 선교회를
경계하고 협조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제기하였다. 선교회는 교회의 권위주의, 분열, 기동성 결여를 지적하면서 자신들은 참신성과 소명감과 선교정신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진다.
이 문제에 대하여 서로의 약점을 비난할 것이 못 된다. 제도권 교회도 문제가 있지만 선교회 역시 한
사람의 권위나 카리스마에 지배되고 폐쇄적이 되며 사유화되는 케이스도 이미 나타났다. 재정도 공개되지 않고 폐쇄적으로 운영될 위험이 더 도사린다.
파라 처치의 분열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이 점에서 교회는 부패와 영적 쇠퇴의 상징이고 파라 처치는 참신성의 상징이라는 흑백논리는 삼가야 한다.
선교회는 교회의 다리 역할을 하거나 전문성을 교회에 제공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교회 역시 선교회에 인력과 자금을 제공해야 한다. 이 점에서
한국 교회는 이중 회원제가 실시되고 있다. 로잔대회는 양자간의 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선교회가 교회에서 독립하는 것은 나쁘고
교회와 협동하는 것은 더 좋다. 그러나 교회의 팔로써 봉사하는 것은 가장 좋다"고 하였다.
3. 중국선교룰 위한 협력
방안은?
중국선교의 효율성을 위하여 먼저 모든 선교회들은 국내에서 서로 협조해야 한다. 최근 한국교회선교협의회 주관의 선교
모임에서 선교지 분할을 논의하고 있다. 그 전에 미전도 종족 입양은 서로 협조하면서 종족을 정하자고 토론하기 시작한 것은 벌써 십 년이
넘었다. 중국의 기독교회는 통제 하에서도, 핍박 하에서도 더 성장하고 있다. 마치 공을 벽에 강하게 던질수록 강하게 반동하듯 중국 교회는 더
생동력 있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 선교사들은 스스로 노출을 삼가한다는 명분으로 선교협력을 안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빌미로 삼지만
현실은 이미 공개된 비밀이 되고 있다. 오히려 박해와 제한이 많은 지역일수록 교회나 선교는 협력하는 것이 기독교회의 역사이다. 초대교회
고기상징은 박해 하에서 신자의 노출을 극히 삼가는 상황에서 신자들끼리의 협력과 보호를 위한 암호문이었다. 암호라 하더라도 선교사들 간에는, 서로
연락하거나 통해야 할 사람 간에는 통해야 한다. 더 이상 점 조직이나 선 조직이니 하면서 선교협력을 기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선교사들은 지도자들 교육이나 제자화 훈련에 중점을 두고 혼자씩 일하는데, 이제 이것도 한계가 왔다. 이미 단순한 성경지식 훈련이나
제자화 훈련도 이미 궤도에 올랐다. 따라서 교육 내용에 방향전환이 필요한데 해당 선교사 단독으로는 할 수 없는 단계에 왔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 선교사가 관할하는 지도자들이나 신자들이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라 몇 년 동안 동일인물일 경우가 대다수라고 본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내용도 변화가 요구된다.
한국 선교는 대체로 원주민 교회 지도자들과 협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며 관찰이다. 중국에는
이미 지도력이 서서히 부상하고 있다. 이제는 한 선교사가 중국 교회에 대하여 가부장적 입장에서 일하는 단계는 지나가고 있다. 교회(원주민 교회
지도자들이나 신자)는 흥하고 선교(선교사)는 쇠해야 한다는 것이 선교의 정석이다.
중국 교회를 지원하는 한국 교회도
선교와 교회간의 협력이 필요하다. 목회하는 목사들이 돈 좀 가져가서 강의하거나 설교하는 시대도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지도자 훈련이 전문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돈이 없다. 따라서 교회들이 대범하게 전문가들을 지원하면서 필요한 일을 하도록 협력해야 한다. 내가 돈
내니 내가 다 해야 한다는 의식구조를 탈피해야 한다.
최근 한국 교회는 중구 서부의 미전도 종족 선교에 눈을 돌리고 있다. 중국
교회의 상당수 사람들도 자기 종족이나 인근 종족 선교에 개입하고 있다. 여기서 중국 교회와 함께 할 때는 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 선교사들끼리
역할 분담이나 전도 대상 분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식으로 중국 전체를 교단 선교부나 초교파 선교부가 지역분할을 하는 것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는 공인교회와 비공인 교회의 접촉에서 상호간의 협력이 요구된다. 한국교회는 NCC든 비 NCC든 중국
교회의 공식 지도자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 적절하게 협력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참 종교의 자유를 주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이 일을 위하여 한국
교회는 적절한 목소리를 발하도록 공동보조를 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