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1. 12. 15. 12:30
■ 24世 이탁영(李擢英)
◇1541년(중종 36)~1610년(광해 2).
◇慶州李氏 十九世 直長公 李養吾의 五代孫임.
◇경주이씨 직장공파 집성촌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상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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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는 자수(子秀), 호(號)는 반계(盤溪) 또는 효사재(孝思齋), 본관(本貫)은 경주(慶州). 영리(營吏> 조선 시대, 감영이나 군영, 수영 따위에 딸려 있던 아전)로서 임란(壬亂)이 발발하자 순찰사(巡察使) 몽촌(夢村) 김수의 막하(幕下)에 들어가 참모로 활약하였으며, 김수가 근왕병(勤王兵)을 이끌고 수원(水原)까지 진군(進軍)하였을 때에도 수종(隨從)하여 헌책(獻策)한 바가 많았다.
1593년(선조 26)에는 초유사(招諭使)와 경상좌감사(慶尙左監司)를 지낸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의 막하(幕下)에서 초병(招兵) 및 모량(募粮) 등의 방책(方策)을 건의하여 전승(戰勝)에 공헌한 바가 많았다. 그리고 두 관찰사의 막하에서 대소문보(大小文報)를 대작(代作)한 바가 많은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평란후(平亂後) 논상(論賞)에는 굳이 사양하였으며 효행이 특출하였다 한다. 숙종(肅宗) 때 평란(平亂)의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증직(贈職)되고 정조(正祖)때, 충효사(忠孝祠)가 세워졌다.
저서(著書)로는《정만록(征蠻錄)》 효사재문집《(孝思齋文集)》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