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바닥은 우리들의 교실이었다. 3/4
금당분교와 금당국민학교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금당리에 자리한 금당초등학교의 시작은
일제강점기였던 1944년 4월 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홍동공립국민학교 금당분교장 설립인가를 받으면서 작은 배움의 터전이 문을 열었다.
당시 농촌의 어린 학생들에게 학교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희망의 문이었다.
그러나 교통과 생활 여건이 어려웠던 시절이라 아이들이 멀리 홍동까지 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에 마을 주민들은 힘을 모아 금당리에 분교를 세우고 아이들의 배움을 지켜내고자 했다.
광복 직후인 1947년 8월 1일에는 가교실 2동에 학급 수 4개 규모로 운영되었다.
학교라 하기에는 너무도 소박한 모습이었다.
교실은 초가지붕과 흙바닥이었고, 책상과 걸상도 넉넉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땅바닥에 글씨를 쓰며 공부했고, 비가 새는 교실에서 수업을 이어가야 했다.
겨울이면 찬바람이 교실 문틈으로 스며들었고,
전쟁 중에는 비행기 소리만 들려도 방공호로 뛰어가 숨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눈빛만은 늘 반짝였다.
배우겠다는 향학열은 가난과 전쟁조차 꺾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금당분교는 지역사회의 노력과 학생 수 증가에 힘입어 금당국민학교로 분리·독립하게 되었다.
작은 분교가 독립된 국민학교가 된 것은 단순한 행정 변화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오랜 염원이 이루어진 뜻깊은 일이었다.
이후 교실과 교육 환경도 조금씩 나아졌고, 아이들은 보다 안정된 공간에서 꿈을 키워 갈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1955년 3월 1일, 금당국민학교는 제1회 졸업식을 거행하였다.
어려운 시절 속에서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처음으로 졸업장을 품에 안은 날이었다.
필자는 그 뒤를 이어 1958년 2월 제4회 졸업생으로 학교를 떠났다.
흙먼지 날리던 운동장과 초가지붕 교실,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던 추억들은
세월이 흘러도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금당국민학교의 역사는 단순한 학교의 연혁이 아니라,
가난과 전쟁 속에서도 배움의 불씨를 지켜낸 홍동면 사람들의 땀과 희망의 역사였다.
꿈속의 학교길 *
프롤로그: 꿈속에 그리는 학교길 사계연가
시인은 지금 팔학년 중반으로 다가갑니다.
세월은 참 빠릅니다. 뒤돌아보면, 그동안 무던했던 건강의 바탕은 바로 학교 길에서 뻗어 나왔습니다.
6·25 전쟁이 끝난 뒤, 홍성의 시골에서 초등학교까지 오리길, 중학교까지 이십리 길을 걸어서 다녔습니다.
왕복으로 따지면 하루에 수십 리를 오가던 그 길은 단순한 통학로가 아니라,
계절의 숨결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수행의 길이자 놀이터 이었습니다.
무릎이 시큰거리고 발바닥이 아프도록 걸었던 길들이 지금도 두 다리와 건강의 밑천이 되었습니다.
봄: 산들바람과 삐삐 뽑던 보리밭 길
기지개를 켜는 봄날의 학교길은 푸르고 따스한 숨결로 가득했습니다.
논바닥에 융단을 깔은 듯 빠알간 자운영 꽃결을 더듬어오는 산들바람은
봄기운을 무르익히며 얼굴을 간질이었습니다.
양지쪽 길가에는 쑥과 냉이가 돋아났고, 노오란 꽃다지가 눈길을 붙잡습니다.
삐비 뽑아 입에 물고, 독사풀로 소반지어 소꿉놀이 풍성합니다.
산길로 접어들면 진달래가 지천이었습니다.
꽃잎 한 줌을 따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시냇가에 흐드러진 버들강아지를 꺾어 홑뜨기를 불며 걷던 그 길,
봄의 학교길은 가난한줄 모르며 설렘이 가득했던 희망의 서곡이었습니다.
흙냄새와 풀냄새, 봄 내음이 어우러진 봄길은 지금도 내 마음을 푸르고 젊게 만들어 줍니다.
백화가 만발한 들과 산에 꾀꼬리, 뻐꾸기 노래하고, 들판의 개구리 합창은 자연의 교향곡이었습니다.
여름: 땡볕 아래 신작로와 시원한 시냇물
덤불 속의 찔레 순, 보리천대, 콩천대, 길가의 개똥참외, 참외서리, 복숭아서리, 오야, 살구,
목화다래 하얀 속살은 넉넉한 인심이었습니다.
땡볕이 내리쬘 때 둠벙에서 멱감기, 천둥번개 소나기에 단거리 경주하던 그 여름날의 학교길은
힘들다기 보다 신이 났습니다.
여름날의 신작로 이십리 길을 걷다 보면 무릎은 시어오고, 장딴지는 아프고, 목은 타들어 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고도 뜨거웠습니다.
땡볕 아래 짧아진 그림자와 함께 걸을 때엔 다 닳은 운동화에 발바닥도 뜨거워졌습니다.
고개를 넘고 시냇가에 다다르면 교복 바지를 걷어 올리고 맑은 냇물에 발 담그면,
발바닥의 시원함은 잊을 수 없습니다.
가로수 줄 지은 미루나무 바람결에 실려 오는 매미 합창 반주 삼아 콧노래에 땀이 식습니다.
밭두렁에 널브러진 개구리참외 따먹던 무더운 여름날의 추억은 지금도 등줄기를 시원하게 만듭니다.
가을: 높은 하늘 아래 오곡백과 놀이터
가을이 되면 구름 한 점 남김 없는 파아란 하늘은 한없이 높아지고,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들었습니다.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산자락에는 알밤과 상수리가 길가에 나뒹굴었습니다.
낙엽소리 바스락거리는 길가에 논두렁 볏가래가 앞으로 나란히 줄 맞추어 조회를 하는 것 같습니다.
동무들과 어깨 겯고 시내 건너 산과 들로 랄라랄라 이야기꽃을 피우며 걷다 보면
어느새 수건을 쓴 엄마의 싸립문을 마주합니다.
가을의 학교길은 운동회 가는 길, 송편, 기주, 고구마에, 소쿠리가 좁았습니다.
가을의 학교길은 풍요로운 식탁이었습니다.
하교 길 배고플 때 밭가의 청무는 과일보다 달았고,
산길 옆 덤불에서 따 먹던 으름과 머루는 세상 어떤 사탕보다 달콤했습니다.
발 아픈 줄 모르고 동무들과 재잘대며 걷던 가을 길,
신작로 길가 코스모스가 고개를 까닥이며 응원해 주던 그 길은
소년의 꿈이 영글어가던 아름다운 수채화였습니다.
겨울: 살을 에던 칼바람이 든든한 건강의 밑천
겨울은 콧날이 시큰하고 손이 꽁꽁 발이 꽁꽁 겨울바람이 밉기도 했습니다.
함박눈이 내리면 눈사람, 녹다 얼으면 미끄러운 썰매길 엉금엉금 설설 기지만
눈이 소복이 내리면 온 세상은 순백이었습니다.
굴뚝의 새하얀 연기가 솟아오르는 새벽, 두툼한 속옷을 껴입고 집을 나서면,
발밑에서 눈이 ‘뽀드득 뽀드득’, 동네 개들이 서로 짖어 아는척 해도 학교길 은 총총거립니다.
얼어붙은 개울에 발 스깨또가 쓰르륵 미끄러집니다.
이십리 눈길을 걷다 보면 하얀 콧김이 들락거리고 온몸에 땀이 차서 젖었다 말랐다를 거듭합니다.
눈보라가 옷깃을 파고들고 손발이 뻑뻑해도 교실의 난로불이 언 몸을 녹여주며 도시락을 데워줍니다.
눈길을 헤치며 걷던 그 고단한 발걸음이 쌓이고 쌓여
지금까지 팔학년을 견디어주는 단단한 체력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에필로그: 굽이굽이 이어온 인생 길
논길, 밭길, 신작로길, 산길을 지나 시내를 건너던 그 긴 학교길은 단순한 통학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 위에서 자연을 배우고, 동무를 사귀고, 삶을 배웠습니다.
발이 아프도록 걸었던 그 시간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그 길고 긴 수많은 길 위에서 자연이 베푸는 사랑과 세상을 배웠습니다.
지금은 자동차가 있고, 길도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의 학교길 만큼 정겹고 따뜻한 길은 없습니다.
힘들었던 기억마저도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마음속에 남아있는 꿈속의 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긴 길을 걸으며 쌓인 체력과 인내가 지금의 건강한 노년을 만든 밑천이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학교 가는 길은 곧 인생의 길이었습니다.
봄처럼 설레고, 여름처럼 뜨겁고, 가을처럼 풍요롭고, 겨울처럼 단단해지는 길,
나는 오늘도 그 길을 마음속으로 다시 걸어봅니다.
이제 노랫말로 옮겨질 이 '꿈속의 학교길 사계 연가'는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고난을 축복으로 바꾼 한 노년의 승전보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후대들에게 들려주는 살아있는 인생의 노래입니다.
그 멀고 험했던 홍성의 학교 길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정겨운 추억으로 일렁이는 꿈속의 길이 되었습니다.
* 더보기: 심의섭, 감나무 아래, 시 한 편 이야기 한 그루,
부크크, 2026. 5. 15: 67~71,
https://epreview.yes24.com/preview/viewer/viewer.html?ebookcode=3860788&dm=yes24.com
첫댓글 교수님의 글을 읽으니 나도 모르게 70여 년 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했습니다.
저 역시 왕복 4km나 되는 시골 산길을 걸어서 학교를 다녔고, 고개도 세 개나 넘어야 했습니다.
봄이면 보리밭 사이 산들바람 맞으며 삐삐를 뽑아 먹던 추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어느 날은 “문둥이가 첫 고개에서 간을 빼먹으려고 기다린다”는 무서운 소문에 겁이 나서 집에도 못 가고 엉엉 울던 기억도 납니다.
교실이 모자라 운동장 나무 밑에 가마니를 깔고 수업받던 시절도 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인데,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참 따뜻했던 세월이었습니다.
80이 넘은 이 나이에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그 시절 추억 속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재경 초등학교 동창회를 하며 만나면 존댓말 없이 금세 그때 그 철부지 어린아이들로 돌아갑니다.
세월은 멀리 흘렀어도 어린 시절의 추억은 아직도 가슴속에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