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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東學) 주문(呪文)의 송주(誦呪)방법에 관한 고찰
1. 들어가는 말 ----------------------- 2p
2. 송주방법의 이견에 대한 지역별 구술증언
1). 평안도 지역의 송주 --------------------- 2p
2). 함경도 지역의 송주 --------------------- 3p
3). 황해도 지역의 송주 --------------------- 3p
4). 경기 충청 지역의 송주 ------------------- 4p
5). 경상도 지역의 송주 ---------------------- 5p
6). 전라도 지역의 송주 ---------------------- 5p
3.천도교 경전에 나타나는 송주
1). 21자 송주에 대한 오해 ------------------- 6p
2). 선생주문과 제자주문의 오해 --------------- 10p
3). 주문송주와 포덕의 관계 ------------------ 11p
4. 동학의 역사에 나타나는 송주
1). 수운 최제우 선생의 송주 ----------------- 12p
2). 해월 최시형 선생의 송주 ----------------- 13p
3). 의암 손병희 선생 시대의 송주 ------------- 14p
4). 송주의 호칭과 방법의 변천 ----------------17p
5. 올바른 송주에 대하여
1). 주문공부의 과정 -------------------------22p
2). 올바른 송주 호칭(誦呪 呼稱) ---------------24p
3). 올바른 주문 외우기 ----------------------25p
4). 송주 시 유념해야 할 사항 -----------------27p
6. 송주 시의 자세에 대하여 --------------28p
7. 심학(주문공부)의 유의사항과 계율(誡律) ------30p
8. 마무리하는 말 ----------------------32p
1. 들어가는 말
수운 최제우 선생(수운대신사)이 직접 집필한 천도교(동학)의 기본 경전에 의하면 무극대도의 핵심심법은 “영부”와 “주문”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영부(물형부)에 관한 사항은 필자의 졸고 “<동학의 영부에 관한 소고>”를 발표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천도교(동학)의 올바른 주문 수행에 관한 사항만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가 천도교에 입도한 이후로 천도교의 연성수련(煉性修練)을 하는 과정에서, 수련의 지도자와 지역에 따라 송주(誦呪)의 방법과 수행용어(修行用語)에 이견(異見)이 속출하고, 심지어는 천도교의 최고 정신적 지도자들이 모인 “연원회합동수련회”에서조차 고성이 오가는 파란을 겪으면서도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당시 이 충격으로 말미암아 당시(1970년대 중반)의 70~80대 원로들을 평안권, 함경권, 황해권, 경기충청권, 경상권, 전라권 등으로 출신 지역을 기준하여 구분한 다음에, 그 어른들이 그 지역에서 자라며 보고 배우면서 수행해 왔던 송주공부의 과정이나 주문수련의 경험에 대해서 일일이 구술청취를 한 바 있다. 그리고 그 메모를 중심으로 천도교(동학)의 경전과 교사(敎史)에 입각하여 동학의 올바른 송주방법을 귀납적 방법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2. 송주방법(誦呪方法)의 이견(異見)에 대한 지역별 구술증언
1). 평안도 지역의 송주
북한 지역에서 대표적으로 수도수련을 강조했던 소춘 김기전 선생으로부터 사사를 받은 삼암 표영삼 상주선도사(평북 구성)의 증언에 의하면, 그가 청년시절 수련지도를 받을 때는 단체든 개인이든 반드시 궤좌(무릎 꿇는 자세=?坐)를 하고 잔잔한 소리인 세송(細誦)으로 물결이 흐르듯이 소리를 내어서 주문을 외웠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1921년생(93세)이면서도 정정한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이영복종법사의 증언은 1940년대 북한에서 송주공부를 할 때, “현송” “묵송”이라는 말을 들으며 수련을 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에 대하여 바로잡을 것이 있다면, 고증을 잘 해서 폭 넓은 논의를 거친 후에, 합의에 이르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2). 함경도 지역의 송주
군암 이우영 종법사와 문암 김용문 상주선도사, 그리고 연원회 의장을 지낸 고문해 도정(함남 북청)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북한 함경도 지방에서의 송주공부에 대해 듣고자 하였는데, 세 원로 모두가 당시 봇물처럼 퍼져나간 야뢰 이돈화 선생의 교리강습에 치중하였던 시기였던 관계로, 주문수련 공부에는 체계적인 지도를 받은 바가 없다 했고, 그저 무시로 21자나 13자 주문을 정성을 다하여 외워야 한다는 상식 외에는 특별히 들려 줄 이야기가 없다고 하였다.
한편 함경남도 함흥지역의 주관도정 괴암(槐菴) 문철모 도정과 최기필 도정의 사사를 받아 1947년에 이 지역의 도정을 이어받았던 규암 한광석 선도사(1920년생)는 수련을 할 때, 주문송주는 정형화된 지도격식이 없었고, 각자가 21자 혹은 13자를 혼용하여 송주를 하였으며, 다만 지극정성을 다하여 외워야 한다는 지도를 받았다고 전한다.
3). 황해도 지역의 송주
황해도 옹진 교구장의 장남으로서 교령을 역임하였던 서암 정운채 종법사에 의하면 강령주문과 본주문은 반드시 따로 떼어서 외워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평북 출신이지만 황해도 사리원의 종리원에서 중책을 맡았던 혁암 조기주 종법사가 연원회 의장시절, 송주방법의 논란이 일어나자 다음과 같이 중재하였다.
<대신사께서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누워서 큰소리로 주문을 외우면 정성스러운 도에 태만이라 한 것을 보면, 앉아서 주문을 외울 때는 소리를 내어서 외운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소리를 내어서 송주하는 것을 시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3.1독립운동 준비기에 의암 손병희 성사가 우이동에서 전국의 지도자들에게 49일 기도를 지도할 때, 가급적 소리를 내지 않고 암송(暗誦)을 위주로 지도하였던 것을 직접 경험하였거나 전해 듣고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당시 일제의 혹독한 헌병정치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송주공부는 시기와 장소 또는 지도받는 사람의 수준과 형편에 맞춰서 지도를 하는 것이지, 딱 부러지게 어떤 한 가지만 옳다고 고집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론하였다.
4). 경기충청 (경충)지역의 송주
춘암 박인호선생(춘암상사)과 화암 최준모 선생의 직접 지도하에 사사를 받은 해암 이종해 종법사(서울)의 증언에 의하면 반드시 궤좌를 하고 주로 13자 본 주문만을 송주케 하였으며, 가능하면 심송(心訟)이나 암송(暗誦)으로 하라고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이 내용은 연당 최병제 상주선도사(충남예산)도 같은 증언이다.
5). 경상도 지역의 송주
의암성사(손병희선생) 재세 시부터 경상도 지역의 대두목이었던 묵암 신용구선생의 문하에서 수련지도를 받은 정암 고정훈 종법사를 비롯한 석암 성낙헌 종법사의 증언에 의하면, 단체수련 시에는 정좌(正坐)를 하고 처음에는 강령주문만을 구송(口誦)으로 합송(合誦) 케 하였으며, 강령체험이 끝난 사람에게는 형화(形化)된 강령을 멈추도록 한 후에, 13자 본주문만을 송주(誦呪) 또는 암송(暗誦)토록 하였다고 전한다.
6). 전라도 지역의 송주
해월신사(해월 최시형선생)로부터 직접 지도받은 용암 김낙철 선생을 이어서, 그의 제자 학산 정갑수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박기중 종법사와 진암 김영묵 전 의창수도원장은 다음과 같이 증언을 했다.
<호남 지역에서는 수련을 할 때, 자동적으로 바른 자세를 취하기 위하여 더러 궤좌(?坐)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주로 평좌(平坐)를 하도록 권 하였으며, 주문을 외울 때는(송주), 가끔 21자를 한꺼번에 외우는 경우도 있었으나, 새벽에는 주로 강령주문만을 구송(口誦)으로 하였고, 그런 다음에는 본 주문만을 심송(心誦)으로 외우게 하였다고 한다. 또 단체수련 시에 혹 몸을 몹시 떠는 사람이 나타나면 수련지도자가 다가가서 붙잡아 멈추게 한 후, 밖으로 내 보내서 잠시 바람을 쏘이게 하였다.>고 한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강령주문은 접령지기(氣接)를 위한 것인데, 수심정기의 정기(正氣)가 되어야만 참다운 접령지기(接靈至氣)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수심정기가 안 된 상태에서 초보자가 고성으로 주문을 외울 때, 여러 형태로 볼썽사납게 몸을 흔드는 것은 내 몸에 잠재된 탁기(濁氣)가 소제(掃除)되면서 일어나는 기발(氣發)의 현상이지, 기접(氣接) 아니므로, 일시적으로는 상쾌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올바른 강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심정기가 되어서 참다운 기접(氣接)이 될 때는 선풍(仙風)이 일어나 갑자기 마음이 섬뜩해지면서 몸이 전율을 하는 심한신전(心寒身戰)의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주문을 외우는 것은 심학(心學)을 위한 공부이기 때문에 가급적으로 낭랑(朗朗)하면서도 명확한 발음으로 구송(口誦)을 하거나 심송(心誦)을 하도록 지도하였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덧붙이기를 소리를 내어서 주문을 외우는 것을 경전에 있는 그대로 구송(口誦)이나 송주(誦呪)라 하였고, 단지 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는 것을 심송(心誦)이나 암송(暗誦)이라고 명명 하였다고 한다. 그런대 근래에 호칭되는 현송(顯?現誦)이나 묵송(?誦)이라는 용어는, 어떤 연유로 생겨난 것인지 도대체 그 용어에 대한 연원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타나서 드러나 보인다는 현자(顯字)나 아무것도 없는 자리인 없을 묵자(默字)가, 주문을 외운다는 외울 송자(誦字)와 이치에 맞는 용어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하며, 예전 의암성사 시절까지만 해도 그 어느 누구도 그러한 용어를 쓰는 일이 없었다고 말한다.
3. 천도교 경전에 나타난 송주(誦呪)
1). 21자 송주(誦呪)에 대한 오해
천도교(동학)를 창도한 수운 최제우선생(수운대신사)은 동경대전 논학문 7절에 “차제도법” 21자에 대하여 “주문”과 “강령지법”과 “불망지사”로 나누어 설명하였다.<一以作呪文 一以作降靈之法 一以作不忘之詞>
흔히 이 점에 대하여 “한편으로 주문을 짓고” “한편으로 강령의 법을 지으며” “한편으로 영세토록 잊지 않는 글을 지으니”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절에 대하여, <한결같은 마음으로 주문을 짓되, 한결같은 마음으로 강령의 법을 짓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잊지 않는 글을 지으니,>라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즉, “주문”과 “강령지법”과 “불망지사”를 나누어서, “주문”은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고, “강령지법”은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이며, “불망지사”를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 로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일이작(一以作)”을 “한편으로”로 해석을 해버린다면, <지기금지 원위대강>과 <영세불망 만사지>는 주문이 아닌 것이 되고, <시천주 조화정>만 주문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운 최제우선생(수운대신사)은 분명히 <지기금지 원위대강>도 “강령주문”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21자는 그 전체가 모두 주문인 것이다. 단지 그 가운데 <지기금지 원위대강>의 강령주문 부분을 <강령지법>이라고 하고,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의 13자는 <불망지사>라고 구분해야 옳은 것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차제도법”은 “제자주문”의 21자 전체인데, “강령지법”인 강령주문 8자(주문1)와, “불망지사”의 본주문 13자(주문2)로 나누어 본다.
그래야만 “강령주문”과 “본주문”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즉 “본주문”에서 <시천주조화정>과 <영세불망만사지>는 별개의 문장이 아니라 13자가 합쳐져서 하나의 통일된 문장이 되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주문”이 따로 있고 “강령지법”과 “불망지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강령주문 8자가 하나의 문장이고, 불망지사 13자가 또 하나의 문장으로, 별개의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강령주문과 불망지사는 의미맥락상, 순서대로 연결이 되어 있으므로 “차제도법”이라는 명칭을 붙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강령주문”만 따로 송주해도 되고, “본주문”만 따로 송주해도 되고, 21자 모두를 동시에 송주할 수는 있지만, <시천주조화정>만을 송주한다거나 <영세불망만사지>만을 따로따로 송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차제도법이 이렇기 때문에 “강령지법”이 영성의 체험과 깊이를 수련하는 법이라면, “불망지사”는 그 영성을 바탕으로 평생도록 잊지 않는 수련으로서의 “심학”이라는 절차가 정립되는 것이다.
일단 강령 체험을 한 다음에는 13자만(불망지사) 해도 된다는 것은 수운 최제우선생(수운대신사)이 이미 적시한 내용이므로(13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며) ,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초기 수련의 단계에서는 21자 모두를 송주(구송) 또는 심송을 하여도 무방하다. 그 이유는 “강령지법”과 “불망지사”가 의미상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한울님의 기운이 내리는 힘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주문수련의 초급자에게는 “영성수련”과 “심학수련”을 떼어놓지 않고 동시에 수련하여도 무방하다는 말이다. 즉, 차제도법을 다음 사례와 같이 연결되는 맥락으로 이해하면서 주문 수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례 : 지극한 한울님의 기운이 지금 저에게 내리시니, 원컨대 더욱 크게 강림하시어 제게 감응하시옵소서. 저는 지금 이렇게 크게 내리시는 한울님의 신령한 기운을 모시고, 한울님의 자연스런 이치를 따라 나의 덕을 한울님의 덕에 합치고 나의 마음을 한울님의 마음에 정하여, 한평생을 사는 동안 한울님을 언제나 잊지 않으며, 모든 일들에 한울님의 도리를 알아서 한울님이 주시는 깨달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천도교 경전 논학문의 “차제도법”에 언급된 21자는, 그 21자가 천도를 수행을 하는 절차와 도법이라고 한 것이지, 이 21자를 항상 한꺼번에 동시에 이어서 외워야만 한다거나, 강령주문과 본주문을 별도로 떼어서 외워야만 한다는 등의 주문 외우는 방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문장이다.그러므로, 이 문장을 들이대서 주문 송주는 반드시 21자를 동시에 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수덕문 8절의 <가슴에 불사약을 지녔으니 그 형상은 궁을이요(胸藏不死之藥 弓乙其形), 입으로 장생하는 주문을 외우니 그 글자는 21자라(口誦長生之呪三七其字)는 구절을 잘못 오해하여서, 입으로 소리를 내어 주문을 외울 때는, 반드시 21자를 한꺼번에 외워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뜻도 주문 3.7자(선생주문의 7자×3인듯)는 “입으로 외우는 장생주문”이라는 “의미문장”이지, 21자를 반드시 동시에 이어서 외워야한다는 송주방법의 “지시문장”이 아님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수운 최제우선생(수운대신사)은 나중에, 이 문.법.사(文.法.詞) 로 이루어진 21자를 기본으로 “선생주문” 3.7자(至氣今至四月來,/侍天主令我長生,/無窮無窮萬事知7+7+7), 그리고 “제자주문”의 초학주문(爲天主顧我情永世不忘萬事宜) 13자와 강령주문(至氣今至願爲大降) 8자, 그리고 본주문(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13자의 체계를 확립했다 고 볼 수 있다.
“제자주문”의 “강령주문”에서 “지기금지원위대강”이라는 것은 천도교에 입도하여 “지기(至氣)에 기접(氣接)하는 것을 알고자, 청하여 빈다는 뜻이요, 기화(氣化)를 원하는 주문이다.(於斯入道 至氣氣接者也 請祝之意也 氣化之願也), 그러므로 이 “강령주문”은 본주문의 맨 첫 글자인 한울님을 내 몸에 모시는 시(侍天主)에 이르도록 하는 도입 단계로 볼 수 있다. 즉, 그 접령기화(接靈氣化)의 도입 단계를 마치면, “본주문”의 모실 시자(侍字) 속에 내유신령 외유기화(內有神靈外有氣化)로 한울님을 내 몸에 모셔서(侍天主), 그 한울님 모심(侍天主)이 언제나 저절로 이루어지고, 항상 한울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정착시켜서(造化定) 영세토록 잊지 않아야만(永世不忘), 비로소 심학(心學)의 목적인 한울님의 천도를 알아서 한울님의 지혜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萬事知=知其道而受其知=至化至氣)
이처럼 21자의 절차와 도법에 맞도록 수이연지(修而煉之=修練)를 하여서, 일정 수준에 이른 사람은 항상 “시천주(侍天主)가 되어 있기 때문에 본주문이나 심고만 잘 드려도 강령(降靈)과 강화지교(降話之敎)를 감득하게 되는 것이다.
또 교훈가에는, <수도하기 힘쓰기는 그도 또한 도덕이라 ...13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며, 심학(心學)이라 하였으니 불망기의 (不忘其意)하였어라 ..이같이 쉬운 도를 자포자기 하단말가>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을 축약하면 수도하기 힘쓰는 것은 열세자 주문을 지극히 외우는 것이고, 이것이 곧 심학이므로 그 뜻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따라서 열세자의 본주문을 외우는 것이야말로 심학 수도의 본질이며, 8자의 강령주문이라는 것은 주문의 초보자들이 13자의 본주문의 “시(侍)”에 이르도록 하는, “시천주”로의 도입단계 주문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는 모든 천도교(동학)의 경전이나 모든 교서의 기록에서 “주문”을 표시할 때는, 강령주문 8자 다음에 오는 “본주문” 13자는 반드시 “시(侍)”자를 별도로 분리하여 길게 발음하도록 해 놓은 것은, 천(天)자를 높이기 위한 뜻도 있지만, 역시 눈여겨봐야 한다. 즉 “강령주문” 8자는 수련의 진도에 따라 본주문의 “시(侍)”자로 들어와야 할, 도입주문으로 봐야 할 것이다.
( 至氣今至願爲大降 侍 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
2). 선생주문과 제자주문의 오해
천도교 경전 “주문”편 에 보면 수운 최제우선생(수운대신사)은 “선생주문”과 “제자주문”을 별도로 구별하여 기록하였다. 이에 대하여 근래에 와서 “선생주문”은 수운대신사만 외우는 주문이므로 후학들은 이 “선생주문”을 외워서는 안 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수운 최제우선생(수운대신사) 당신만 외어야 할 주문이었다면 무엇 때문에 제자들이 읽어야 할 경전에 굳이 이 “선생주문”을 제시해 놓을 필요가 있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제자주문”은 곧 차제도법이므로 영성수련(강령주문=강령지법)과 심학수련(본주문=불망지사)을 목적으로 한다면, “선생주문”은 “장생주문”으로서 장생에 대한 믿음과 기쁨을 일으키는 것으로 그 성격이 다르며, 한 차원 높은 단계이다. 따라서 “제자주문”만 송주하고 “선생주문”을 도외시하는 것은, 천도교(동학) 신앙의 본질을 외면하는 결과가 된다. 그러므로 “제자주문”을 통하여서는 영성수련과 심학수련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결국 장생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기쁨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천도교(동학) 수련의 근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선생주문”과 “제자주문”은 후학들이 천도교(동학)를 포덕 지도하는 선생의 지위에 있는 사람과, 포덕 지도를 받는 제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따라서 외우도록 분류해 놓은 것으로 봐야만 타당할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1932년(포덕73년) 포갱시조직(布更始組織)을 할 때, 천도교중앙종리원(신파)의 대령이었던 정광조가 발표한 대발 제9호의 공함을 보면, 동년 12월11일부터 17일까지의 특별기도 시, <“시천주영아장생 무궁무궁만사지”>의 선생주문의 본주문을 외우라고 하였다.(청수시간에는 105회, 아침저녁으로는 1500독씩). 또 1936년(포덕77년) 2월 7일부터 2월 27일까지 천도교 중앙교회(구파)의 대종사장이던 권동진의 공함(大發第6號)에 의하면, 이번 21일 특별기도는 춘암 박인호교주(춘암상사)가 각 포(包)의 대표인 교장(敎長)들에게 명하여, <“지기금지사월래 시천주영아장생 무궁무궁만사지”>라는 선생주문 3.7자를 21회씩 암송(暗誦)하라고 공고하였음을 보더라도, 천도교의 신. 구파 양측이 공히 각 포의 지도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선생주문”을 송주토록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수운 최제우선생(수운대신사)이 경전 수덕문 8절에 “구송장생지주 삼칠기자(口誦長生之呪 三七其字)”라 한 것은, “지기금지사월래”의 7자 +“시천주영아장생”의 7자 +“무궁무궁만사지”의 7자로 구성된 “선생주문(3×7)”이라 할 수 있으며, 이가 곧 “장생주문”이라 여겨진다. 이를 논학문 6절의 “너는 무궁무궁한 도에 이르렀으니, 닦고 단련하여 글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법을 정하여 포덕하면 너로 하여금 장생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及汝無窮無窮之道 修而練之 制其文敎人 定其法布德則 令汝長生 昭然于天下矣)”라는 구절과 연관지어 살펴볼 때, 이 선생주문을 외우는 자로 하여금 장생토록 하여 무궁무궁한 한울님의 지혜를 받도록 하겠다는 발원의 주문이기도 하다.
3). 주문 송주와 포덕의 관계
논학문 6절에 의하면 , 한울님이 수운 최제우선생(수운대신사)으로 하여금 무궁무궁한 천도를 닦고 단련하여(修而煉之) 한울님을 위하는 글을 지어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고, 수련하는 법을 바르게 하여 포덕을 하면, 너(수운 최제우선생) 역시 장생하여 온 천하에 비춰지게 하리라 하셨다. 그래서 수운 최제우선생(수운대신사)이 한울님으로부터 천도를 받은 후, 거의 1년 동안을 스스로 수련을 하며 헤아려보니 자연스러운 이치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 주문을 짓고 법을 정한 것은 오직 한울님의 덕을 천하에 펴는 포덕(布德)의 목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及汝無窮無窮之道 修而煉之 制其文敎人 定其法布德則 令汝長生 昭然于天下矣 吾亦幾至一歲 修而度之則 亦不無自然之理)
또 포덕과 주문수련의 관련에 대하여서는 수덕문 7절에 <뜻하지 않게 포덕할 마음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정성을 바쳐 수련을 한 까닭이다(不意 布德之心 極念致誠之端) 그러나 이 포덕의 마음을 미루다가(然而彌留), 신유년(서기 1861년) 6월의 한여름에 이르러서야 먼저 도 닦는 법을 정한 후에, 도를 묻고자 찾아오는 현사들에게 포덕을 권하였다(更逢辛酉 時維六月 序屬三夏 良朋滿座 先定其法 賢士問我 又勸布德)>는 대목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따라서 동학 천도교의 주문 송주는 천심(天心)을 회복하기 위하여 한울님께 비는 행위이자, 한울님의 뜻을 세상 사람들에게 펴는 포덕의 절차를 이행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천도교(동학)에서는 전교(傳敎)와 수교(受敎를 통하여 入道式을 행할 때는, 반드시 이 주문을 주고받는다.
4. 동학의 역사에 나타나는 송주(誦呪)
1). 수운 최제우선생(수운대신사)의 송주
천도교 백년약사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포덕 3년(1862년) 10월14일 밤, 수운선생이 용담정에서 목청을 돋우어 주문을 외웠다. 그런데 그 소리가 신선의 소리 같아서 향기로운 운치가 높이 울려, 마치 한울나라의 음악을 연주하는 듯하였고, 구미산의 초목이 진동하며 용담의 물고기가 귀를 기울여 수운선생의 주문소리를 듣는 듯하였다.
바로 이때, 한 어여쁜 미인이 녹의홍상(綠衣紅裳)으로 나무 위에 단정히 앉았으니 그것은 마치 구천선녀(九天仙女)가 신의 음악을 듣는 듯 자못 황홀한 경지가 되었다. 이 광경을 본 문도들이 손을 들어 멀리 그 쪽을 가리키자, 수운선생이 이르기를 그 선녀가 나무 위에 있는 것인지, 듣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인지를 묻자, 문도들이 대답하지를 못하였고, 다만 기화(氣化) 가운데 취하여 황홀한 상태로 후천개벽의 대 태중(大 胎中)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1863년 12월 20일 선전관 정운구가 고종에게 올린 “서계”와 “승정원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최제우를 체포하기 위하여 1863년 11월 25일 문경새재를 넘어 경상도 경계에 들어서니, 여기서 경주까지 4백여리가 되며, 10여개의 군현이 있었다. 고을마다 들러서 동학의 동태를 살펴보니, ...주막의 아낙네와 산골의 초동들까지도 글(동학의 주문)을 외며, 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주문은 “위천주(爲天主)” 또는 “시천주(侍天主)”라 하였다.>
<(경주에 도착하여)양유풍(무예별감) 등을 곧바로 최복술(수운최제우))이 살고 있은 곳으로 보내서 자세히 염탐해오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이렇게 보고하였습니다.
‘최복술(최제우)과 서로 인사하고, 공손한 말로 학(공부)하기를 원하였더니, 최복술은 조금도 꺼리거나 숨기는 것이 없이 흔연히 허락하였습니다. 자리를 두루 살펴보니 두 칸 방에 소위 제자들이 가득하며, 뒤섞여 설명하고 주문을 읽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제자가 학을 청하면서 주문을 소리 내어 읽지 않고 속으로만 읽으면 어떨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는데, 복술이 말하기를 만약 마음으로만 읽고, 입으로 읽지 않으려면, 학을 하지 않는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또다시 그 제자가 남이 알까 꺼려서 소리 내어 읽을 수는 없다고 하자, 복술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배우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 하였고, ...무릇 나의 학(동학)은 이미 이루어졌으니, 오직 한울님밖에는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상의 두 자료에 의할 것 같으면, 수운 최제우선생(수운대신사)이 직접 모범을 보이고 가르친 송주의 방법은 첫째, 송주의 소리는 누가 듣더라도 거룩하고 운치가 있도록 익혀서 외워야 하지, 자유방임의 상태로 방정맞거나 경망스럽게 외우는 것은 옳지 않은 송주인 것이며, 둘째, 송주를 배우는 자는 기본적으로 입으로 소리를 내서 구송(口誦)으로 외워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해월 최시형선생(해월신사)의 송주
동학농민혁명 국역총서 2의 자료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해월 최시형선생이 영덕 등지에서 여러 도인들과 함께 포덕 강론을 할 때였다. 그 때 박춘언(朴春彦)이라는 사람이 강령(降靈)하는 것을 부정하고 오직 자기 마음대로 행동을 하자, 해월 최시형선생이 <비록 나무나 돌도 오히려 강령할 수가 있거늘 하물며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다.>라고 하며, 강령주(降靈呪)를 외우니, 박춘언이 즉시 섭령(攝靈)을 하였다. 해월선생이 연달아 소리를 내어 주문을 외우니, 박춘언은 옷을 벗고 펄쩍펄쩍 뛰는 몸짓을 계속하면서 참회를 하며 옷을 찢으려고 하다가 해월신사가 다시 천령에 고하자 그 때서야 그쳤다. 수운 최제우선생(수운대신사)이 그 일을 듣고는 탄도유심급(嘆道儒心急) 1편을 지었다.>
<또, 해월선생이 태백산의 적조암에서 철수좌(적조암주지)에게 말하기를
내가 공부한 것은 단지 “삼칠영주(三七靈呪) ”만 씁니다.” 라고 한 후, 큰 소리로 고르고 가지런하게 장송(莊誦)을 하였다. 그러자 철수좌는 기쁘고 반가움을 누르지 못하고 성심껏 공양을 하여 49일 제(齊)를 마치게 되었다.>
그리고 갑신년(1883년) 10월 28일 수운선생 탄신기념일 때, 새로운 제사의식을 정하였는데, 3색 빛깔의 비단(彩緞)을 각각 3자 3치씩 갖추고, 밥과 떡과 단술과 쌀은 모두 7번 정밀하게 방아를 찧어 나쁜 쌀은 골라내고, 과일과 채소를 아울러 쓰되, 각각 1말 용량의 그릇을 사용하고, 삶거나 익힐 때는 저절로 말라 죽거나 썩은 나무를 쓰지 못하게 하고, 참배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결하게 목욕재계를 하고,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각각 법관과 법복을 착용하여, 마치 처음 입도할 때의 의식처럼 한 뒤에, 마침내 3차례의 초학주문, 강령주문, 본주문을 송독(誦讀)하도록 하였으며, 이에 겸하여 축문을 고하게 하였다.
이상 해월 최시형선생(해월신사)의 송주 자료에서 알 수 있는 것도, 첫째, 강령주문을 외울 때는, 강령이 되는 것을 부정하여서는 아니되며, 강령이 되더라도 천령에게 고하여 그 강령을 멈추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고, 둘째, 해월선생이 행한 주문의 송주는 소리를 내어서 하였으되, 그 음성은 고르고 가지런하며 엄숙하게 장송(莊誦)하였음을 알 수 있다.
3). 의암 손병희 선생 시대의 송주
의암 손병희선생(의암성사)은 1906년(포덕47)부터 1909년(포덕50)에 걸쳐, 천도교중앙총부의 교리편찬원이었던 양한묵에게 명하여 성훈연의(聖訓演義), 삼도요지(三燾要旨), 관감록(觀感錄), 도경(道經), 체리종약(體裏宗約), 그리고 현야(玄野), 정자공부(定字工夫), 대종선후(大宗先後), 21록(二一錄), 대종정의(大宗正義), 교지(敎志), 교사과요의(敎四科要義), 신언(神言), 등을 편술케 하였다.
근래에 이르러 “무체법경”과 더불어 이들 도서들을 문헌학의 형태, 문자, 생성배경, 전승변화, 원전비평, 번역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일부 비판의 여지가 있는 양한묵의 집필로 이루어진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양한묵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1906년 2월 27일에 의암손병희 선생(의암성사)에 의해 임명된 “교리편찬원”으로서 저술을 하였기 때문에,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정 범위 안에서 의암 손병희선생(의암성사)의 향후 추인과정을 거쳤다고 보기 때문에, 이들 도서들이 “천도교 교리강습소” 내지는 “사범강습소”의 교재용으로 천도교중앙총부 명의로 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중 신언(神言)이라는 책자에 다음과 같은 주문공부와 송주에 관한 사항이 사신편(舍神篇)과 입법편(立法篇)에 자상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 주요 요점을 정리해 보면 ① 처음 송주를 시작할 때는 천천히 호흡을 하면서 105주를 돌려나가다가 주문 소리가 “시천주조화정” 6자에 집중되는 지경을 거쳐서, 모실시자(侍) 한 자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작은 소리까지도 멈춰지는 자리가 된다는 것. ② 한울님을 잊지 않고 염천염사(念天念師)하는 방법은, 오직 주문을 지극히 송주하는 것 뿐 인데, 잡념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면, 13자 주문을 눈 속에 떠올려서, 안으로는 심송을 하고, 밖으로는 구송을 하는 내념외구(內念外口)의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하라는 것. ③ 13자 주문을 외울 때는 각 글자마다 오음(五音:궁상각치우)이 조화된 음률에 맞춰서 송주를 할 것. ④ 주문을 외우는 도중 갑자기 몸이 솟구치는 등의 용동(聳動)의 현상 (강령체험?)이 일어나면, 안으로 고요하게 하는 법을 세워서, 입으로 조그만 소리도 내지 않고, 心誦으로 주문을 외우라는 것 등이 열거되어 있다.
舍神篇
주문을 생각하되, 처음에는 5분간 105주를 돌리면서,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다가, 염두(念頭)에 작고 둥근 신의 지경이 생겨나서, 신령의 빛이 역력하거든, 구송을 하는 입과 염주를 돌리는 손을 재촉하여, 이번에는 200주를 돌리며, 지극한 지경에 이르면, 그 다음에는 300주를 돌리나니, 이때에는 자세한 둥근 테의 빛이 위를 향하여, 벽에 확고히 나타나는 형상을 이룰 것이다. 이 (붕 떠있는) 정신을 모아 묶음을(집중), 곧고 독실하게 정성을 드려서, 비밀스럽고 그윽함에 들어가면, 생각 위로 일어나는 소리가, 다만 (시천주조화정) 6자에 머물며, 또 계속해서 정신을 모아가서, 한 점의 자리에 이르면, (모실)시자 한 글자에 그치며, 또 계속(주문을) 굴리고 굴려서 지극히 현묘하고 지극한 빈자리에 이르면, 입의 촉각이 저절로 입술에 붙어, 작은 소리도 나오지 아니하여, 다만 안광이 현묘한 가운데 맺힘이 생기고, 그 맺힌 가운데 참된 것이 나오며, 그 참됨 가운데 형상이 나오나니, 그 형상이 혹은 어린 아이의 표정처럼 꽃이 피듯 열리기도 하고, 혹은 붉은 구슬처럼 광채를 발하기도 한다.
<呪文을 念하되, 其時에 五分間百珠를 ?하야, ?噓의 緩息을 延하다가, 念頭에 小團團神田이 生하야, 神光이 的歷하거든, 口手交促하야 二百珠를 飜하며, 極境에 지하야 三百珠를 飜하니, 是時에 精暈이 上向하여 壁立의 狀을 成한지라, 精神斂束이 貞篤을 致하야 秘玄에 입하면, 念上作音이 只히 六字에 止하며, 又斂束하야 一點地에 及하면, 侍一字에 止하며, 轉轉히 又斂束하야 極玄極空에 至하면 口角이 自吻하야 小音이 不成이오, 眼光이 只히 玄中生?하며, ?中生眞하며, 眞中生狀하나니, 其狀이 惑小兒開顔하며, 惑丹珠發輝하도다.>
立法篇
몸을 너무 엄독하게 묶어서 그 도가 지나치면, 밖의 간사한 것들이 엄습해 들어오기가 쉽다.< 束身嚴督 過度, 外邪易襲>
한울님을 잊지 않고 생각하는 방법은 오직 지극한 정성으로 주문을 외우는 것뿐이니, 13자 주문만을 한 자 한 자 깊이 생각하라. <十三字를 更字字沈念하도다.>
밖에 있는 도적같은 잡념이 치고 들어오는 것을 시험하려 하거든, 13자 주문을 눈 속에 떠올려서, 안으로 염송하고, 밖으로 구송하는 두 가지를 함께 병행하는 것으로, 밖의 외습을 막고 안의 엿봄을 꺾을 것이니, 이 때 입 근처에 미끄러지는 힘이 생겨서, 생각이 입을 거느리지 못하며, 생각과 입 두 사이에 어그러진 지경을 이루기가 쉽다.
13자 주문을 각각 (궁상각치우의) 오음의 조화된 음률을 붙여, 한도를 정하지 않고 주문을 외우다가, 갑자기 몸을 솟구쳐 뛰는 것처럼 동하는 현상이 일어남에 이르러서는, 밖으로는 동하나 안으로는 고요하게 하는 규칙을 행하나니, (주문소리가) 부분적으로 일어남은 자기 마음을 스스로 채워서 지경 밖으로 달려 나가는 생각을 끌어당겨 돌아오게 하는 것이라, 생각이 본분의 정적지(定的地)에 서서, 그 생각머리(고개)를 숙이고 눈앞의 미묘한 곳에서 한 뿌리를 캐고자하면, 입가에 작은 소리도 내지 않을 것이다.
(※. 주문을 처음 외울 때는 오음이 조화되는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지만, 한번 참된 강령체험의 지경에 이르게 되면, 입으로 조그만 소리도 내지 않고, 心誦으로 주문을 외운다는 뜻)
<外寇침至하야 攻伐을 試하거든 十三字를 眼中에 揭하야, 內念外口의 兩途幷行으로 外襲을 防하며 內伺를 挫하나니, 是時에 口頭滑力이 生하야 念이 口룰 不領하며, 念口兩間이 闊界를 成하기 易하도다. 十三字를 各히 五音調和에 付하야 限度를 不定하고 興分聳動을 致하야, 外動內靜의 術을 行하나니, 興分은 自心을 自實하야, 界外橫馳의 念을 挽回한 者라. 念이 本分定的地에 立하야 其首를 ?하고 眼前微妙地에 一根을 採하면 口頭에 微響이 不發이요,>
또, 의암 손병희선생(의암성사)은 1910년(포덕51년) 8월에 소위 “신사주문”이라 일컫는 “신사영기아심정무궁조화금일지(神師靈氣我心定無窮造化今日至)”라는 주문 한 편을 지어, 반포하였다. 이는 의암 손병희선생(의암성사)이 1905년 12월 1일을 기하여, 과거 은도시대에 무극대도의 대명사로 알려지던 “동학”을, “천도교”라는 이름으로 온 천하에 드러내어, 선포한 바 있다. 그 이후, 1908년 4월에 이르러 천도교중앙총부 공의(公議)로 선사(先師)인 수운 최제우선생과, 해월 최시형선생을 “대신사(大神師)와 신사(神師)로 추존한 다음에, 전국의 교인들에게 두 분 스승님의 영기(靈氣)를 새롭게 각인시키고자 초기인 1913년에는 전교회적인 차원의 특별기도식에서 송주토록 하다가, 그 뒤 1925년부터는 ”시일기도주문“이라 하여, 일주일에 한 번, 시일기도에서 송주토록 하였다. 따라서 이처럼 특정시기에 특별한 필요에 의해서 반포하였던 “신사주문”을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계속해야 되는지는 현기사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4). 그 후 송주의 호칭과 송주 방법의 변천
의암 손병희선생(의암성사)과 춘암 박인호선생(춘암상사) 시대는 “천도동학”이라는 도학(道學)의 시대로부터 “천도교”라는 근대종교로의 면모를 갖춘 시기였다. 이 시기의 송주 호칭과 송주방법에 관한 기록은 “천도교중앙총부”에서 각 지방으로 보내지는 대도주(大道主)의 “종령(宗領)”과 공함(公函)을 살펴보면 비교적 자세한 변천 과정과, 후기에 잘못 변천된 사연들을 들여다 볼 수 있다.
○ 종령 제3호 : 1906년(포덕47년) 2월 3일/ 의암 손병희 대도주(右籍6任 轉飭)
입교식 때는 성주문(聖呪文)을 3회 병송(竝誦 :나란히 맞추어서)해야 하며
성주문의 내용은 < 爲 天主顧我情永世不忘萬事宜 至氣今至願爲大降
侍 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임
○ 종령 제5호 : 1907년(포덕48년) 3월 11일/ 의암 손병희 대도주(이종구 현기사장 轉飭)
致誠 時 주문은 <侍天主 覺我長生 無窮無窮 萬事知>로
하되, 부인들은 이 주문을 외우지 말것.(勿誦)
○ 종령 제8호 : 1910년(포덕51년) 4월 20일/ 춘암 박인호 대도주(나용환 현기사장 轉飭)
의암 대도주가 수운의 “축문”을 일부 개정하여 치성주문(참회문)으로 함.
< 某姓名 生居某國 添處人倫.......今以吉辰 淸潔道場 至誠至願 奉淸 感應>
★ 필자 주 : 한일병탄 : 1910년(포덕51년) 8월 29일 일제는 한일 병합 조약을 강제로
체결 공포함으로써 “대한 제국”은 사라지고 일제의 헌병정치 시작.
○ 종령 99호 : 1910년(포덕51년) 11월 7일/ 춘암 박인호 대도주(大宗司長 홍병기 轉飭)
※. <금번 49일 기도 시 주문은 ?念으로 함>
○ 종령 제104호 : 1913년(포덕54년) 11월 26일/ 춘암박인호 대도주(大宗師長洪秉箕轉飭)
12월18일부터 시행되는 105일 기도는 “기도주문”으로 (神師靈氣 我心定 无窮无 窮 造化知>로 55회씩 “口誦” 함
주문 송주 시, 만약 虛靈이 발하면 이는 천주와 신사의 영기를 잇지 못하게
되니, 엄중히 조심하야 허령이 없도록 할 것.
○ 종령 제112호 : 1914년(포덕55년) 9월 11일/ 춘암박인호 대도주(대종사장 홍병기 전칙)
聖師의 垂訓(베푸신 가르침)을 이어받아 기도의 절차를 布諭(인도하여 선포)
하노니, 종도들은 (다음의 기도방법을) 준행할 것
기도방법: 신사주문(神師靈氣我心定 無窮造化今日知)을 105회 “心誦”할 것
○ 종령 제120호 : 1918년(포덕59년) 12월 6일/ 춘암 박인호대도주(대종사장 정광조 轉飭)
내년 1월5일부터 2월22일까지 49일 기도 (※ 필자 주: 3.1독립선언 거사 직전)
기도 방법은, 신사주문을 13회씩 “細音(매우 조용한 소리)”으로 誦할 것.
★ 필자 주 : 의암 손병희선생 환원 :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으로 의암 손병희선생(성사) 과 춘암박인호선생(상사)이 투옥되고, 손병희선생(성사)은 일제의 혹독한 고문의 결과로, 1922년 5월 19일 殉道. 일제는 국내 최대종단이며 3,1독립선언의 주축 종단인 천도교에 대한 구체적 말살정책에 돌입.
○ 공함 제1호: 1923년(포덕64년) 1월 10일/ 박인호 교주(중앙총부 포덕과 주임 나용환)
지난 12년 동안 외부 사정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정신수련의 중차대한 연성기 도를 잊어버렸음은 실로 근본을 포기하고, 종말을 취한 착오였다.
그리하여 이번 전국 종법사 회의에서 우선 21일기도 실시의 건을 의결하고,
연성기도의 방법은 다음과 같이 결정하여 공함 제1호로 발표한다.
1. 기도기간 : 21일간/ 2. 기도시간 : 매일 하오 9시/ 3. 금기사항 : 酒草
4. 도장 청결 후 청수봉전/ 5. 주문 105회 “암송(暗誦)”
★ 필자주 : 천도교 대도주제 폐지 후, 衆議制 시작 : 1923년(포덕64년) 6월2일 해월 신사 殉道일에 춘암 박인호 교주가 敬告 제6호로 천도교 敎主職 사직.
※.사직사유 : 의암 손병희선생(성사) 환원 이후, 끊임없이 교회분규가 작열하여,
도저히 종식시킬 수 없는 지경인데, 교회 간부들이 교주직을 사임하면 수습 이 가능하겠다고 품고를 하니, <내가 敎를 위해서는 죽는 것도 사양치 않을 것인데, 교회가 잘 된다면 무엇을 주저하리요. 이제부터 교회의 일체 사무를 교인 일반에게 위탁한다.>
※. 신 구파 분열은 일제의 고등전략인 듯함.
○ 공함 제2호 : 1924년(포덕65년)/ (포덕과 주임 최린, 외 서무과 주임, 경리과 주임)
21일기도 실시 (3월 1일~3월 21일)
기도방식 : 奉淸水, ?念기도, 본주문 105회 默誦.
※ 필자주 : 천도교에 “대도주(교주)”직이 없어지고, 교헌을 폐지/ “천도교중앙총부”가
“천도교중앙종리원”으로 변경되면서 “묵념기도” 및 최초의 “묵송” 용어 등장
○ 공함 제6호 : 1924년 9월 1일/ (포덕과주임 최린 외, 서무과 주임, 경리과 주임)
21일기도 실시(10월 1일 ~ 동 21일까지)
기도방식 : 奉淸水, ?念기도, 본주문 105회 默誦.
○ 공함 (의절공포) : 1925년 6월 30일/(포덕과 주임 정광조 외 이인숙 최석련)
입교식 주문 : <至氣今至願爲大降 侍 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3회 낭독
시일예식 주문 :<至氣今至願爲大降 侍 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3회 낭독
기념식 주문 : <삼칠자 주문 ?> 3회 병송(竝誦) ??
위령식 주문 : <삼칠자 주문 ?> 3회 병송(竝誦) ??
매일기도 주문 : <삼칠자 ?> 21회 묵송(默誦) ??
시일기도 주문 : <神師靈氣我心定 無窮造化今日知> 21회 묵송(默誦)
★ 필자 주 : 이 의절 초안에 “춘암선생 승통기념일”을 누락함으로써, 일대 소란이 일어남.
○ 구파공함 제3호 : 1926년(포덕67년) 2월 7일/ (포덕과 이종린 외 서무과 경리과 주임) )
21일기도/ 기간 : 3월 1일 ~21일까지 (매일 오후 9시)
주문송주 : 13자 “본주문” 21회 口誦, 후 “신사주문” 49회 默誦
○ 신파공함 제3호 : 1927년(포덕68년) 2월6일/
21일기도/ 기간 : 2월 21일 ~3월 13일까지(매일 오후 9시)
방식 : 심고 후 神師呪文 105회 默誦.
○ 구파공함 제4호 : 1928년(포덕69년) 3월 1일/
21일기도 실시/ 기간 : 2월 12일 ~ 3월 3일까지(매일 오후 9시)
방법 : 본주문과 신사주문을 동시에 49회 묵송.
○ 신파공함 제10호 : 1928년(포덕69년) 10월 26일/ (신파종리원 정광조, 이인숙, 최석련)
7일기도 실시/ 기간 : 11월 21일 ~27일까지(매일 하오 9시)
방식 : 심고 후 주문 삼칠자 105회 묵송.
○ 신파道發 제2호 : 1929년(포덕70년) 2월 8일/ (도령최린, 부도령정광조, 지도관정이돈화
창도70주년 21일기도/ 기간 : 3월 1일 ~21일까지
주문 ; 삼칠자주문을 매일 50독 하고,
하오 9시청수 시에는 삼칠자주문 105회 묵송 심고.
○ 구파공함 제4호 : 1929년(포덕70년) 4월10일/ (金庚咸, 申泰舜, 金在桂)
21일기도/ 기간 : 5월 1일(음력4월 2일 ~ 21일간)
주문: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105회 묵송
○ 구파공함 제 1호 : 1930년(포덕71년) 2월 8일/ (金庚咸, 崔俊模, 金在桂)
49일기도/ 기간 : 2월 25일(음력 정월17일) ~ 4월 4일 까지
주문 :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49회 묵송
○ 신파大發 제9호 : 1932년(포덕73년)9월 26일/(대령 정광조, 부대령 최석련, 이돈화 등)
7일기도/ 일시 : 12월 11일 ~ 17일까지 (매일 심야 12시)
주문 : “선생주문”의 “본주문”을 청수시간에는 105회,
아침, 저녁으로는 1,500讀.
○ 구파大發 제5호 : 1935년(포덕76년) 1월 7일/ (대종사장 권동진)
특별기도에 관한 건/ 일시 : 2월 20일 ~ 3월 12일까지 (21일)
주문 : 제자주문의 강령주문과 본주문 21회 묵송
○ 신파大發 제28호 : 1935년(포덕76년) 6월 9일/ (중앙종리원 대령 최석련)
21일기도/ 일시 : 7월 1일~ 21일까지(매일 오전 5시 청수시는 105회 現誦)
주문 : 매일 삼칠자를 現誦하되, 3,000독 이상을 할 것.
○ 신파성발 제30호 : 1935년(포덕76년) 10월 11일/ (誠道觀正 李君五)
7일기도/ 일시 : 11월 1일 ~ 7일까지
주문 : 청수시간에 삼칠자 105회 現誦하고, 매일 일천讀 이상.
○. 구파 대발 제6호 : 1936년(포덕77년) 1월 7일/ (대종사장 권동진)
21일기도/ 기간 : 양력 2월7일 ~ 2월27일 까지
주문 : <지기금지사월래, 시천주영아장생, 무궁무궁만사지>
선생주문 삼칠자를 21회 암송(暗誦) 할 것
◎. 현재의 천도교 의절 : 2000년(포덕141년) 제정 공포된 “천도교 의절” 제2편(교인의
수행의례), 제4장(오관), 제1절(주문)편에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현재는 “21자주문(3.7자주문)”, “강령주문”, “본주문” “신사주문”이 사용되 고 있다. “21자주문”은 “3,7자주문”이라고도 하며, 이 21자는
에 “묵송(默誦)” 또는 “현송(顯誦)”으로 외운다.
★. 필자주 : 現誦이 顯誦으로 바뀜.
이상 “천도교종령집”에 나타난 주문송주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천도교(동학)가 스승으로 받들고 있는, 수운선생, 해월선생, 의암선생을 거쳐, 춘암선생에 이르기까지는, 주문 외우기의 호칭이 “구송(口誦)” “송주(誦呪)” “암송(暗誦)” “심송(心誦)”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제의 원격 조종에 의하여, 천도교가 극심한 신, 구파 갈등의 함정에 빠지면서, 춘암 박인호대도주가 “대도주직”을 사임하였고, 도문(道門)에 물밀 듯이 들어왔던, 신진개화의 인재들에 의하여, “주문수련”의 신앙문화가 쇠퇴하고, 전통적인 송주의 원형이 변형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공함 제1호에 적시한 바와 같이 뒤늦게 <지난 12년 동안 외부 사정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정신수련의 중차대한 연성기도를 잊어버렸음은 실로 근본을 포기하고, 종말을 취한 착오였다.>는 뜻을 살려, 1925년대에 다시금 구심점을 회복하려고, 신.구파의 양 수반들이 앞을 다투며, 의미정립이 충분하지 못한 현송(現誦)까지 내세워, 교인들에게 “특별기도”를 종용하는 공함을 반복 하였지만, 일관되지 못한 “송주”지도로, 말미암아 별무 성과를 보지 못한 채, 극악한 일제 말기(대동아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간 것으로 짐작된다.
그 뒤 8.15 광복을 맞으며, 천도교(동학)는 교세의 회복의 기회를 잡기도 전에 또다시 6,25의 참담한 전쟁을 거치며, 일제가 물러간 자리에, 미국과 소련의 제국세력에 의한 좌우(左右)의 남북분단으로 인하여, 신앙회복의 주체성과 구심점을 잡지 못한 채, 1930년대 혼란기의 “천도교의절”을 이렇다 할 손질하나 없이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5. 올바른 송주(誦呪)에 대하여
1) 주문공부[誦呪]의 과정
천도교의 주문공부[誦呪]는 일차적으로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면서 심신의 탁기를 소제하고[消除濁氣], 맑은 기운을 길러[兒養淑氣], 수심정기(守心正氣 )를 하는 공부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강령주문을 지극히 송주하면 대개 강령(降靈)을 체험하게 되는데, 강령은 천도교의 수련 과정에서는 초보적인 도입과정이다. 즉 한울님을 내 몸에 모시고 있다는 것[侍天主]을 실체적으로 감득(感得)하게 되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시천주(侍天主)를 제 아무리 학문적으로 터득하고 있다 하더라도 강령의 체험이 없이는 사실상 자기 몸으로 느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즉 한울님 모심을 자기 몸으로 실감함으로써 비로소 천지부모님이신 한울님께 효도할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진실한 의미의 侍天主]. 그러나 그 마음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단 한 번의 시천주 체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수기심 정기기 솔기성 수기교(守其心 正其氣 率其性 受其敎)”하는 끊임없는 수도연성(수련)의 지속성이 필요하다. 즉 요지부동한 천심을 정(定)하기 위한 단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造化定].
그리고 그 정(定)한 마음을 평생토록 잊지 않고 한결같이 보존함으로써 마침내 한울님의 무궁 무궁한 지혜를 받을 수 있게 된다[萬事知].
천도교 수련의 입문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강령에 대하여 더 자세히 살펴보자. 강령주문인 ‘지기금지 원위대강(至氣今至 願爲大降)’이란, 형상하기도 어렵고 듣거나 볼 수도 없지만 그러나 분명히 간섭하지 않음이 없고 명하지 아니함이 없는, 혼원한 지기(至氣)에 접하기를 크게 원하는 주문이므로, 강령은 수련자의 심신에서 탁기가 쓸려 나가면서 찰나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것은 마치 전화의 벨이 접선이 되는 순간 울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때에는 평소에 탁기로 인하여 느끼지 못하던 깊은 참회를 동반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초기의 강령은, 강령이 되는 사람의 평소 잠재의식의 상태에 따라서 사람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크고 작은 기운의 약동을 감지하는 면에서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주문공부가 깊어지고 높아지면서 강령의 양상도 차츰 달라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강령의 행태를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똑같이 주문송독을 하더라도 쉽게 강령이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좀처럼 강령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강령은 순간적인 기화의 작용인 만큼
수련자가 평소 자기의 지식적 관념을 놓아버리지 못하고 한울님의 존재에 대해, 조금이라도 반신반의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는 강령이 되지 않는다. 강령은 반드시 잡념이 없이 모든 정신이 하나로 통일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강령의 순간은 심화기화(心和氣和)가 되는 증거이므로, 대개 초기에는 주문을 많이 외워야 체험하지만, 공부가 깊어지면 심고만 해도 감득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상태를 길게 보존할 수 있다면 드디어 훌륭한 수련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맨 처음 강령을 경험할 때는 대부분 음성이 커지는 경향[聲化]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 형화(形化)의 진도에 이르게 되면 수련자의 언어, 행동, 안색 등이 달라지면서 주위 사람들에 대한 감화력이 생기게 된다. 강령에는 탁기를 털어 버리는 이치가 있으므로, 혹은 몸에 있던 신병이 저절로 낫기도 하고, 혹은 흩어진 정신이 집중되어 총명과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참다운 강령체험을 마친 사람은 그때부터 강령주문를 떼어버리고, 13자 본주문의 구송과 심송으로 정진하여 심학의 본 궤도에서 주력(呪力)을 얻어서, 강화(降話)나, 영부 체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강령을 잘못 이해함으로써, 강령만을 숭상하고 심취하여 몰입하는 일이 더러 있는데 이는 올바른 주문공부가 아니다. 수운 최제우선생(수운대신사)이 경전 “논학문”의 현사문답(賢師問答)에 이르기를, 도를 배반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강령은 된다고 기록하였다. (曰 反道而歸者 何也 ......曰 然則 何以降靈也 ...曰 不擇善惡也)
강령도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의 능력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주문공부의 목적이 이적이나 신비 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심신을 광명정대하게 만들어 도성입덕(道成立德)의 경지로 나아가고 포덕(布德)의 힘을 길러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2) 올바른 송주 호칭[誦呪 呼稱]
수운 최제우선생(대신사), 해월 최시형선생(신사), 의암 손병희선생(성사), 춘암 박인호선생(상사)에 이르기까지의 전통적인 천도 동학의 송주 호칭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그것은 소리를 내서 외우는 것을 ‘구송(口誦)’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송주(誦呪)” 자체가 기본적으로는 소리를 내어서 외우는 것이기 때문에, 다만 소리를 내지 않고 외우는 것을 ‘심송(心誦)’ 이나 암송(暗誦)으로 구별하였다. 남녘 사람들은 “송주”를 “주송”이라 호칭하는 경우도 있다. (호상→상호, 법설→설법, 송주→주송)
단체수련 시에는 이상의 두 가지 송주의 명칭이 주가 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더욱 세분을 하면 구송(송주) 중에서도 여럿이 소리를 맞춰 외우는 합송(合誦) 병송(幷誦)과 각자 개별적으로 외우는 독송(獨誦), 잔잔한 음성으로 물 흐르듯이 외우는 세송(細誦) 등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심송을 할 때도 마음속으로 주문을 일일이 헤아려 외우는 심송(心誦)과 완연히 고요 적적한 상태에 잠기는 사실상의 암송(暗誦)의 구별이 있을 수 있다. 그 외에도 구송(송주)이나 심송에 관계없이 서서 걸어 다니며 외우는 행송(行誦) 입송(立誦)등의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으나, 수련자는 그때그때 자신의 수련 진도에 맞추어서 지도자의 적절한 지도를 받으면서 송주에 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편 “현송(現誦)”이나 “묵송(默誦)”에 관한 자료는, 일제 말기의 천도교 신.구파 갈등기에 천도교 총부의 “공함”에서 일시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용어가 이치와 궁합이 맞지 않은 용어라는 점에 대해서는 현기사적(玄機司的) 관점에서 앞으로 심도있게 논의 되어야 할 것이다.
“묵(默)”이란 입을 다물고 잠잠히 하라는 “침묵”의 뜻을 지닌 글자로, 일제 강점기에, “묵고(?考)”, “묵념(?念)”, “묵상(?想)”, “묵도(?禱)” 등의 용어와 함께 당시 불가에서 “묵송(默誦)”이란 말도 가끔 쓰긴 했지만, 극히 사용치 않는 용어로서, 또 그것이 외울 송(誦)자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현(現)”이란 “나타남” “나타냄”의 뜻을 지닌 글자로서, 외울 송(誦)자와 어울려 쓸 수 있는 글자는 아닌 것 같고, 국내외의 어느 사전에도 “현송(絃誦)”(거문고를 타면서 시조를 읊음)이라는 말은 언급되고 있으나, “현송(現誦)”이란 말은 천도교에서 새로 만들어 낸 단어임이 분명하다. 굳이 “현송(顯誦)”으로 글자를 고친다면, 동학 천도교가 은도(隱道)시대를 지나 현도(顯道)시기를 맞이하여, 동학천도교를 온 세상에 드러낸다는 뜻으로 사용했을 법 한데, 역시 주문을 외운다는 송(誦)자와 조합할 수 있는 글자인지, 깊은 연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그 후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일부 천도교의 연비집단에서 그 당시 주문수련이 침체된 교회적 상황을 고려하여, 독공의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알려져 있던 특정 수련지도자를 영입하여 주문수련의 붐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그 지도자가 주문수련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이제부터 천도교의 주문수련을 양지로 드러내어 붐을 일으키겠다는 의미로 일제 말기의 “현송(現誦)”을 “현송(顯誦)”이라는 글자로 변경 도입, 일제 말기 “묵념”, “묵도”에서 비롯된, “묵송(默誦)”이라는 용어도 그대로 수용하여서 오늘의 “송주호칭”으로 정착된 듯하다.
또 이것은 1968년(포덕109년) 4월에 천도교중앙총부의 초판 “천도교의절”에 삽입되었고, 그 후 1975년(포덕116년)4월 증보초판을 거쳐, 2000년(포덕141년)에 개정 신판한 것을 현행 “천도교의절”로 사용하고 있다.
3). 올바른 주문 외우기
천도교(동학)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21자 주문을 한꺼번에 외우거나, 강령주문과 본주문을 따로 외우는 경우에 대하여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아직도 주문수련에 대한 절차와 방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의절을 마련하여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어느 한 가지 방법만이 옳다고 고집을 하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때와 장소, 수련 수준에 알맞게, 수련 지도자의 지도에 따라서 그때그때 적정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수련 지도자가 처음으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는 초입자에게는 주문의 뜻과 이치를 자세히 일러주고, 운율(韻律)에 맞춰, 세련된 음성으로 소리를 내어 송주하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정성스러운 도에 태만함이 있거나 잘못된 습관이 들지 않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주문이란 한울님과 스승님으로부터 받은 천도교의 가장 핵심적이고도 가장 성스러운 법문이기 때문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호흡에 맞추어서, 반드시 거룩하고 성스럽게 외우도록 훈습(薰習)을 시켜야 한다.
특히 깨어있는 정신으로 주문을 송주하되, 한 글자 한 글자를 명확하게 발음하면서 지극정성으로 품위 있고 경건하게 하는 것이 가장 훌륭하다.
심송 또한 소리를 내지 않을 뿐, 역시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주문의 송주는 믿음과 공경과 정성을 담아 경건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주문수련의 방법은 수운대신사의 심법이 담긴 동경대전에 근거하여, 그 마음을 수련하는 것인데, 아직 완전히 검증되지 아니한 저술을 주문 수련의 바탕으로 하여 민망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수운 최제우선생(수운대신사) 심법의 견지에서 심각하게 고려할 때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단체가 여럿이 합동으로 주문수련을 할 때에는 가능한 한 소리를 맞춰서 송주하는 합송(병송)이 바람직하다. 즉 다른 사람의 송주에 방해가 되거나, 각자가 제멋대로 송주를 하는 자유방임형이 되어서는 고급 종교로서의 체면을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수련의 수준이 각기 다른 여러 사람이 한 자리에서 수련을 할 때는, 고성방가를 하면서 탁기를 폭산 해소시킨다거나, 마구잡이로 머리를 흔들고, 온 몸과 양팔을 요동치는 등, 이런 경망스러운 행위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명백히 지도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습관적 “카타르시스 (katharsis)”형은 다른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런 방법으로는 근본적인 심화기화와 수심정기, 소제탁기와 아양숙기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며, 천도교(동학)의 진정한 심학의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천도교(동학)의 수련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왜곡시켜서 포덕에도 막대한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사람이 듣기 좋은 것은 한울님도 듣기 좋으신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만 종교집단으로서의 체계적인 수련의 면모가 확립되는 것이다.
4). 송주 시 유념해야 할 사항
천도교의 주문공부(誦呪)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신(誠敬信)과 수심정기(守心正氣)다. 천도교의 수련은 거의 주문 독송의 정성과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수덕문 결사(結辭) 에 의하면, 천도교 수련법에서 정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올바른 믿음을 확고하게 작정하고 그런 다음에 정성을 드리라고 하였다[先信後誠].
그리고 정성을 드릴 때는 지극히 하는 것도 좋지만 반드시 공경의 마음가짐으로써 정성드리라고 하였다[敬以誠之]. 이것이 천도교 수련 방법의 3대 덕목이 되는 성, 경, 신(誠敬信)이며 이 성경신을 실행할 때는 믿음 → 공경 → 정성의 차례로 이루어나가라는, 가르침을 어기지 말라고[無違訓辭] 결론지었다.
이 점은 해월 최시형선생(신사)께서도 수도법에 대한 법설에서 천도교 수련방법은 주문공부와 이치공부를 겸전하되 가장 중요한 것은 잠깐이라도 모앙하는 마음을 늦추지 말라고 하였고, 도를 이루고 이루지 못하는 관건이 오직 기운과 마음의 바르고 바르지 못한 데 있으며, 마음을 확고히 정하고 정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하신 점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하지 않고 재주가 넘치며 꾀가 많은 사람은 심주(心柱)를 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문공부(誦呪)의 성공률이 적다고 하였다[固我心柱]. 또한 무턱대고 마음만 지극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마음을 바르게 갖는 데 있다고 하였다[惟在正心]. 이는 수심정기(守心正氣)와 통하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마음공부가 깊어져 갈수록 수운 최제우선생(수운대신사)의 팔절(八節)인 명덕명도성경외심(明德命道誠敬畏心)과 , 수련자의 천심을 회복하는 절차와 과정이 정성(誠), 공경(敬), 두려움(畏), 마음(心)의 상태를 살피는 데 있다고 한 해월 최시형선생(해월신사)의 강서(降書)를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6. 송주(誦呪)시의 자세에 대하여
수천 년의 수련 역사를 가진 인도 불교의 수련 자세에는, 연화좌(蓮華坐 ; 연꽃을 들고 앉은 자세), 길상좌(吉祥坐 ; 한 쪽 무릎을 올리고 앉은 자세), 수의락좌(隨意樂坐 ; 마음대로 편하게 앉은 자세) 등이 있고, 티벳 불교에서는 준거좌(峻踞坐 ; 걸터 앉은 자세)를 주로 하며, 중국과 한국의 선가(禪家)에서는 가부좌(跏趺坐)라 하여, 결가부좌(結跏趺坐 ; 오른쪽 발은 왼쪽다리 위로 올려놓고 왼발은 오른쪽 다리 위로 올라오게 꼬아놓은 자세), 또는 반가부좌(半跏趺坐) 등으로 정형화되어 있다. 특히 가부좌를 할 때는 허리와 목을 반듯하게 세우고, 의복을 단정히 하여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야 하며[右肩偏斷], 왼손을 오른손 위에 놓아 양 엄지손가락으로 둥글게 원을 만들고, 눈은 반쯤 감아 자기 코끝을 바라보며, 혀끝을 입안 천장에 붙이고, 마음을 안정하여 생각을 한 곳에 집중한 후 번뇌를 제거해야 한다는 등, 기본좌법이 세밀한 곳에 이르기까지 연구되어 있다.
그러나 천도교에서는 이런 까다로운 좌법으로 신체를 핍박하기보다는 정좌(正坐)라고 하여, 자기의 체형(體形)에 따라 편하게 앉되, 머리끝에서 미추골(맨 아래 척추 끝 꼬리뼈)까지, 일직선으로 반듯하게 똑바로 앉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렇듯 자기 체형에 따라 정좌(正坐)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자세를 찾아 취하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련의 자세에 관하여는 무릎을 꿇고 송주하거나(?坐誦), 책상다리로 송주하거나(平坐誦), 선 자세(立誦), 걸으면서 송주하는 것(行誦) 등, 모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각기 장점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조용한 산길에서는 걸으면서 하는 “행송”, 시원하게 흐르는 냇물 옆이나 바위 위에서는 “평좌송”이 좋을 것이다.
“궤좌송”은 경건한 마음을 담을 수 있어서 참으로 좋으나, 숙달되지 않은 사람은 힘들고 특히 수도원 등에서 장시간 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엄숙한 자리에서, 잠시동한 하는 주문은 궤좌가 매우 좋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용담정에 올라가 수운 최제우선생(수운대신사)의 존영 앞에서, 의례적으로 하는 성주문 3회의 병송이나, 21회 정도의 주문 합송은 경건한 마음을 배가하고, 대스승님을 공경하는 예의를 갖추기 위하여 궤좌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각처 수도원이나 교당에서 수련을 많이 한 분들이 자신의 경험에 따른 가르침으로, 한국 사람의 체형상, 평좌장족(平坐藏足 : 편히 앉되 양족 발끝을 가리는 자세이지만, 다리가 짧거나 허벅지가 굵은 사람은 되지 않음)이나, 궤좌(詭坐 : 꿇어 앉는 자세로 자동적으로 똑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는 있으나 장시간의 유지가 곤란함)의 자세를 주로 권하여 왔다. 초보자는 항상 수련지도자의 도움을 받아 자기 체형에 맞춰 오랫동안 정좌(正坐)를 유지할 수 있는 자세로 길들여야 할 것이다. 정좌에 대해서 천도동학에서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자세에는 평좌(平坐)와 궤좌(?坐)가 있었다. 어떤 자세든 정좌(正坐)가 되어 차츰 수련이 깊어지면 자기 스스로 행주좌와(行住坐臥)에 구애됨이 없이 정진할 수 있게 된다.
최근에 “수심정기좌”를 거론하는 것도, 그럴 듯하지만, “수심정기”란 무형의 정신 자세이지, 육신 자세가 아니므로, 수련하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취해야 하는 몸 자세의 명칭으로는 걸맞지 않은 것 같다.
7. 심학(주문공부)의 유의사항과 계율(誡律)
1). 유의사항
천도교의 수련에서 가장 기초적인 유의사항은 수덕문 11절 에 신신 당부하신 바와 같이, 세속에서 떠도는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말을 듣고 수련을 하거나 수운 최제우선생(대신사)의 동경대전 “주문편”에 기록된 주문이 아닌, 떠도는 주문을 외우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수운 최제우선생(대신사)은 향후 반드시 이러한 난법난도(亂法亂道)가 있을 것임을 알고 안타까운 심정을 적시하였던 같다.
실례로 동학혁명의 좌절기와 일제 침탈의 혼란기에, 동학농민혁명의 진원지였던 호남지역에서는 지도자를 잃고 흩어져서 방황하는 교인들과 민중들을 대상으로 수운 최제우선생(대신사)의 3.7자 주문이나 동경대전, 용담유사 등의 내용을 절묘하게 변조하거나, 비결(秘訣)처럼 조작하여 혹세무민하는 유사 동학 계열이 나와서 천도 동학의 도문(道門)을 어지럽혀서 오늘에 이르게 한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천도동학을 하는 사람들은 수운 최제우선생(대신사)이 직접 당부한, 비록 털끝 하나라도 사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단 수련의 도장에서 주문 공부에 들었을 때는, ① 졸음 ② 미신적 몽상이나 쓸데없는 공겁증(恐怯症) ③ 막연한 의심이나 심급증(心急症) ④ 교만 고집으로 자기 생각만이 옳다는 버릇[自是之癖] ⑤ 육신의 고통이나 시련을 인내심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것 ⑥ 시비지심과 신경질 ⑦ 단체수련의 경우에는 남에게 방해가 되게끔 소리 지르는 것, 등을 유의해야 한다.
특히 주문수련은, 하면 할수록 사물을 올바로 바라보게 되고, 천도동학의 본질을 깨달아 천도동학에서 추구하는 문명의 개벽에 함께 동참하는 동귀일체의 정신을 함양하여야 하는데, 근래에는 수도 제일주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수련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자만심이 누적되어 우월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기들끼리 고립되어서 비수련자들을 무시하고 “자시지벽(自是之癖)”을 일삼는데, 이는 차라리 주문수련을 아니함만 못하다.
2). 계율(誡律)의 준수
천도교의 수련에도 몇 가지 수계(守誡)가 있는데 사계명(四誡命), 팔수칙(八守則), 십무천(十毋天), 임사실천 십개조(臨事實踐 十個條) 등이 그것이다.
(1) 사계명
① 번복지심을 두지 말 것 ② 물욕교폐 되지 말 것 ③ 헛말로 유인하지 말 것 ④ 안으로 불량하고 겉으로 꾸며내지 말 것
(2) 여덟 가지 수칙
① 한 번 한울님을 영원히 모시겠다고 한 중한 맹세(입도식)는 절대 번복하지 말 것[永侍之重盟] ② 계속 정성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반신반의 하지말고 작은 의심이라도 씻어 버릴 것[萬惑罷去] ③ 항상 의복을 단정히 하고 자세를 바르게 할 것「衣冠正齊 ④ 천박한 취식이나 행실을 금할 것[路食手後], ⑤ 개고기를 먹지 말 것[惡肉不食] ⑥ 독공을 한다고 하여 찬물에 갑자기 뛰어드는 등 따뜻한 몸을 해롭게 하지 말 것[陽身所害] ⑦ 유부녀를 억압하지 말 것[有夫女之防塞] ⑧ 누워서는 주문을 소리 내어 외우지 말 것[臥高聲之誦呪]
(3) 십무천(十毋天)
① 한울님을 속이지 말 것 ② 한울님을 거만하게 대하지 말 것 ③ 한울님을 상하게 하지 말 것 ④ 한울님을 어지럽게 하지 말 것 ⑤ 한울님을 일찍 죽게 하지 말 것 ⑥ 한울님을 더럽히지 말 것 ⑦ 한울님을 주리게 하지 말 것 ⑧ 한울님을 허물어지게 하지 말 것 ⑨ 한울님을 싫어하게 하지 말 것 ⑩ 한울님을 굴복하게 하지 말 것
(4) 일에 임하여 반드시 실천하여야 할 열 가지 조항(임사실천 십개조)
① 일에 임하여 윤리를 밝히고 ② 신의를 지키고 ③ 부지런하고 ④ 지극히 공정하고 ⑤ 빈궁한 사람을 서로 생각하고 ⑥ 남녀를 분별하고 ⑦ 예법을 중히 여기고 ⑧ 연원을 바르게 하고 ⑨ 진리를 익히고 연구하며 ⑩ 어지럽고 복잡한 것을 금한다.
8. 마무리 하는 말
천도교의 주문 송주(誦呪)는 수련법과 직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수련법은 종래의 기성종교의 수련법에 비해 지극히 간단명료하다. “십 년을 공부해서 도성입덕 되게 되면 속성이라 하지마는 무극한 이 내 도는 삼년불성 되게 되면 그 아니 헛말인가” 라고 한, 도수사 4절 의 말씀처럼 한결같이 3년만 제대로 주문공부(誦呪)를 하면, 누구나 도성입덕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운 최제우선생(수운대신사)은 “도수사”7절 에 다음과 같이 염려하였다. <우리 도인들 가운데 혹 어리석은 사람은 자시지벽(自是之癖)이 있어서, 우리 도문에 없는 법을 혼자 앉아서 제 멋대로 지어내어,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가(수운 최제우선생) 가르치지 않은 것을 제가 어떻게 알았으며, 더구나 입도한 지 얼마 되지도 아니한 사람이 어찌 그렇게 속성으로 이루어져서, 자기의 말이 옳다고 주장을 한단 말인가 ! 참으로 슬픈 일이다.>
또 동 도수사 8절에서는
<거울같이 전해주니 자세히 보고 안심을 해서 불사한 그릇된 거동을 하지 말고, 남의 이목을 살펴보고 정심수신(正心修身)을 하여, 남과 같이 수도를 하라. 신의와 예의를 지키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도, 모두 염치가 있어야 하는데, 선생인 나도 알지 못하는 도 닦는 법과 절차를 저 혼자 알아서, 제 멋대로 행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런 것이 난법난도(亂法亂道)인 것이다. 이렇게 도법을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 무슨 면목으로 나를 만날 수가 있겠는가 ! 비록 도를 닦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가르쳐준 그대로 하지 아니하면, 도를 이루고 덕을 세우기는 고사하고, 제 신수가 가련해질 것이며, 무극대도를 더럽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밤낮 없이 걱정을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라고 하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구나 갓 태어났을 때는 마치 보름달과도 같은 한울님 마음이었다. 그러나 차차 자라나면서 세상 물정에 접하고 희로애락을 알게 되어, 본시 맑고 밝았던 마음의 창에 먼지와 그을음 같은 것들이 먹구름처럼 쌓여서 안으로부터 발산하는 광채를 가린 채, 그 마음이 깜깜하게 어두워 있고 병들어 있다. 이러한 마음들을 물정심(物情心)과 습관심(習慣心), 마탈심(魔奪心)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이를 통틀어 탁기(濁氣)라고 한다.
또 사람의 마음은 찰나의 순간에도 올바른 신념과 삿된 마음[邪心]이 교차한다. 그러므로 이 탁기를 쓸어내고 맑은 기운을 어린아이 기르듯 하며, 찰나의 순간에도 삿된 마음이 들어앉지 못하도록 해야만[道氣長存邪不入], 천심의 본래 기능을 회복하여 무위이화(無爲而化)로 스스로 그러함이 있는 한울님의 지혜와 무궁한 능력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化出自然)
그렇기 때문에 천도교의 수련은 평생토록 쉬지 않고 계속해야 한다.[永世不忘],
그러나 그것을 실행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에, 정기적으로 일정기간 일상생활을 떠나서 수도원에 들어가서 주문수련을 하도록 지도한다. 또는 교회에서도 필요한 경우에는 교회의 명으로 특별 수련기간을 설정하여 전국의 교도들에게 일제히 실시토록 하기도 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사실상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기 자신을 모르고 살아간다. 자기 자신을 자기가 스스로 아는 것은 이미 마음공부가 상당히 높아진 증거이다. 그런데 그 자신을 아는 길은 학문이나 지식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심학(心學)을 통한 수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본래, 종교신앙의 도량(道場)은 지식이나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고, 기도와 수련을 통해서 올바른 마음의 길을 열어주는 곳이다. 나아가서 다른 사람을 감화시킬 수 있는 힘도 수련의 과정 속에서 주력(呪力)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일부 잘못된 “주문수련”의 행태가 혐오스럽다 하여, “주문수련”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러 우리 주변에 오늘날의 천도교(동학)에 잘못 전파된 수련문화에 대해서 비판하기도 하고, 혹은 천도교 쇠운의 원인 중의 하나로 천도교의 수련문화를 지목하는 것이 타당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주문수련의 절대성과 그 열의가 식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주문수련을 강조하는 뜻에서 수련 붐을 조성하는 데 정성을 드렸다면, 이제는 주문수련의 절차와 도법을 올바로 광정(匡正)할 때가 되었다는 요지를 제언하는 것이다. “영부”와 “주문”은 천도동학의 핵심이다. 영부와 주문의 수련을 통하여 사람마다 군자가 되고 더 나아가 지극한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며, 이러한 인격의 도야가 없이는, 동귀일체가 불가능한 것이며, 포덕천하와 광제창생, 더 나아가 지상신선의 세상을 창조할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천도교인(동학인)에게 주문공부는 자기의 일거일동을 수운심법(水雲心法)으로 연마하는 마음공부이다. 즉, 수련을 통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울님과 스승님의 영기(靈氣)가 몸에 배어, 비로소 수운심법의 향내가 전신에서 물씬 풍기는 참된 천도교인의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모든 언어와 행동이 교리에 입각하여 지극히 자연스러워져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감응케 하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모름지기 무극대도의 중일변이나 중흥도 그 길이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천도교인으로서의 기본 수련인 주문공부(誦呪)를 충실히 하는 교인이 많아져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부문별 계층별 지역별로 수운심법의 본질에 어긋나지 않는, 다양한 천도교 수련문화가 계속 연구, 정립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각처의 수도원이 붐비고, 천도교인의 집집마다 교당마다 주문소리가 그치지 않을 때가 오면, 비로소 천도교의 포덕문(布德門)에 생명의 물꼬가 트일 것이다.
2014년(포덕155년) 4월 15일 정암 주선원
『천도교서(天道敎書)』에 의하면 동학초기의 수행절차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道는 天道라 명(名)하시고 기강(其綱)은 守心正氣와 誠敬信이라 하시고 수도(修道)의 절(節)을 정(定)하시니 其大節은 청수(淸水)를 탁상(卓上)에 전(奠)하여 단공궤좌(端拱?坐)하여 염천송주(念天誦呪)함이요 기세절(其細節)은 침식필고(寢食必告)하고 出入必告하여 무악(無惡), 무탐(無貪), 무음(無淫)으로서 심잠(心箴)을 삼으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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