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하나님나라
2026.7.4. 브솔시냇가방송
우리가 이 땅에서 삶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성도라도 재물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돈에 대해서 성서는 어떻게 말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셨습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뜻이지요. 돈이 주인이 되든지 하나님이 주인이 되든지 하나를 사랑하면 하나를 미워하게 되어 있고 하나를 중히 여기면 하나를 가볍게 여길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구체적으로 예수님만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을 가볍게 여길 수 없지요. 중히 여겨야 된다는 뜻에서 주요, 미워할 수 없고 사랑하기 때문에 님입니다. 주님! 오직 나의 주님은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돈과 하나님나라”라는 제목으로 사도행전을 중심 해서 네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돈 없이도 일하십니다
사도행전 3장 6절에 보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고 있는 앉은뱅이에게 베드로가 말씀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나면서 앉은뱅이였던 그 사람은 일어나서 뛰어 다니며 성전 안에서 찬송을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돈으로 그를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수술비를 준 것도 아닙니다. 베드로의 마음 속에 주님이 성령님으로 그를 일으키도록 역사해 주신 겁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돈 없이도 주권적으로 일하십니다.
교회사 속에서 있었던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13세기 수도사이자 ‘신학대전’을 저술한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있습니다. 그는 로마 가톨릭 교황에게 방문했습니다. 교황은 “여보게 토마스 형제 초대 교황 베드로 사도는 은과 금이 없다고 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네”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황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습니다. “그렇네요. 그러나 교황 성하께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말씀하실 수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돈이 중요합니까? 주님이 중요합니까? 돈도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온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돈으로 시험하십니다
사도행전 5장 3절에 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성령의 감동으로 자신의 땅을 팔고 전액을 헌금하겠다고 작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돈이 손에 들어오니까 탐심이 생겨서 그 중 얼마를 감추고 나머지 돈만 가지고 오면서 이게 전부라고 성령을 속이고 교회를 속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심판을 받아 죽게되고 뒤따라 왔던 삽비라도 같은 이유로 심판을 받게 되었지요.
갈라디아서 3장 3절이 생각납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우리는 성령으로 시작했다면 성령으로 마쳐야 될 줄 압니다. 지키지 못할 일이라면 처음부터 약속하지 말아야지요.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세상이나 하나님나라가 사람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돈이 사용된다.” 돈에 대한 어떠한 평가를 갖고 있는지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그것이 그 사람을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돈을 필요 적절하게 사용하십니다
사도행전 4장 35절에 보면 바나바가 자신의 돈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줌이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형제사랑이지요. 사도행전 6장 3절에도 사도들이 재정 관리를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기게 되자 사도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겠다”라고 했습니다. 일곱 집사님을 세우는 순간입니다. 재정 관리는 일곱 집사님께 맡기고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므로 교회가 든든히 서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 하나님의 은혜를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8장 20절에 보니까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사마리아에서 예수 믿음으로 성령을 받게 되는데 사도들의 기도 속에서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걸 보고 욕심이 생긴 시몬이라는 사람이 돈을 주고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살 줄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것은 돈과 함께 네가 망할 것이다 라고 베드로가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모하고 구하는 영혼에게 주어지는 것이요, 돈이나 어떤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값 없이 주어지는 것이지요.
이사야 55장 1절이 생각납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그리스도인의 경제관은 자신의 소유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것이자 하나님의 축복으로 사용되도록 잠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게 청지기된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돈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건강도, 우리의 지식과 재능도, 우리의 시간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모두 주님의 것이지요. 주님께서 사용하시도록 우리의 몸과 마음, 물질과 시간을 다 주님께 드려야 될 줄 압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 결론적으로 말씀합니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장 35절 말씀도 읽어드리겠습니다. 사도바울 선생님의 말씀이지요.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
돈 없는 사람은 가난하죠. 그러나 돈 밖에 없는 사람은 더 가난합니다. 우리는 돈이 있든 없든 간에 주님 모신 든든한 마음으로 참된 부요 속에서 주님의 뜻에 따라 섬기며 살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말세가 되어서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욥과 아브라함을 생각해 봅니다. 자식보다 주님을 돈보다 주님을 그 어떠한 것보다 주님을 선택하며 사랑했습니다. 전심으로요. 우리의 삶도 그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돈이 있어도 그 종이 되지 아니하고 주님의 종으로서 족한 줄로 알면서 제게 맡겨진 소유를 청지기답게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우리들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돈을 이기고 유혹을 이기고 자신을 십자가에 넘겨버리고 부활의 생명과 빛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게 해주옵소서. 우리의 마음과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수 사람으로 길 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