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2014-10-05)
< “이발사는 잘 깎는 것이 행복이다” >
- 文霞 鄭永仁 -
“이발사는 잘 깎는 것이 행복이다.”
이 말은 88년을 한 자리에서 이발을 대를 이어 하는 손자 이남열 씨의 말이다. 100년 된 면도칼, 60년 된 숫돌, 면도칼을 다듬는 오래 된 말가죽! 어느 신문에 난 기사다.
내가 다니는 단골 이발소가 있다. 그전에는 ‘이용원, 이발소’라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말이 촌스러운지 이즈음에 걸맞게 ‘닥터 J'가 간판명이다.
몇 년 전부터 젊은 총각이 혼자 운영하는 이발소다. 주로 남성 머리 커트 전문점이다. 지금은 그전 냄새가 나는 이발소는 거의 다 없어지고 퓨전식 이발소다. 하기야 이즈음은 미용실에서도 남성 머리 커트를 하니 경계가 모호하고 휘뚜루마뚜루이다.
나는 성질머리가 외곬수거나 주변머리가 없어서 한집을 정해 놓고 한 달에 한 번씩 이발을 한다.
미스터 J에서는 이발만 해주지 면도는 해주지 않는다. 커트만 하면 머리도 자기가 감아야 한다. 나는 컬트라는 이발을 해서 머리를 마사지도 해주고 감아주기도 한다. 그래도 면도는 안 해준다.
이곳은 1인 사장·종업원 이발소다. 젊은 총각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한다. 나는 이곳 이발소 젊은 주인을 ‘젊은 사장!’ 이라고 부른다. 이즘 가장 흔하디 흔한 칭호가 “사장님‘이지만 그 사장은 어엿한 창업 사장이고, 나는 백수 가짜 사장이다.
길거리 건너에 또 하나 남성 커트 전문점이 생겼다. 지나가는 길에 커피 한 잔 얻어먹으면서
“젊은 사장, 건너편에 남성 전용 커트집이 생겼는데 영향이 없어?“
“별로요, 우리 집은 단골이 많아서요.”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젊지만 서글서글하고 예의 바르다. 또 청소년들에게 형처럼 대하니 단골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친구에게 “젊은 사장!” 이라고 불러주면 되게 좋아한다. 한국 사회가 호칭의 과대·과공을 남발하고 있지만……. 이 친구는 진짜 사장이니깐 그런 호칭을 들을 만하다. 올백수인 나는 언제 “사장님!” 하는 소리를 들어보겠나?
“사장님, 저번처럼 시원하게 칠까요?”
“젊은 사장이 알아서 해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인가…….
하루는 이발을 하는데 뜬금없이
“사장님, 제가 이발 배운 것이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왜요?”
“첫째, 정년이 없거든요. 그리고 기술이 있어 내가 일할 수 있을 때까지 할 수 있잖아요. 또 대학을 나와서도 취직 못하고 빌빌 거리는 제 친구들을 보아도 그렇고요.”
하기야 지금처럼 직업의 불확실성 시대에 큰 걱정 없을 것이다. 사오정, 이태백 같은 조기 정년도 없고, 창업의 실패라는 블랙홀도 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젊은 사장’ 소리까지 들으니 말이다.
“아무렴, 잘했고 말고요!”
이 젊은 사장은 경상도 부산 총각이다. 고2때부터 이발 기술을 배우기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그간 창업하기까지 남의 치다꺼리에 피땀을 얼마나 흘렸겠는가.
“젊은 사장은 장가 안가?”
“저, 애인 있어요. 집도 장만했어요. 내년에 갈 거예요.”
“참, 이번 여름휴가는 어디로 가나?”
“저 여친하고 괌으로 갈 거예요. 예약해 놓았어요.”
휴가커녕 백수에 빈둥빈둥 방콕에 방굴러대시하는 내 처지와 비교하니 내 처지가 처량하기도 하다. 괌커녕 국내도 못 가니 말이다.
공부 잘하면 의대·법대·공무원대 가는 이즘 세태다. 카이스트 우수학생의 20%가 의사·법관 가는 길을 걷는다고 한다. 결국 지본주의 사회에서 투자한 자본과 이익의 원리를 쫓는 것이리라. 하기야 그들은 하기 좋은 그럴 듯한 이유를 대지만 다 눈 가리고 아옹이다.
어느 의대 교수는 퇴직 후 10년을 좌우하는 요소는 ‘연골, 관계, 할 일’ 이라고 말한다. 연골이 다 닳으면 다니지 못하고, 늘그막에 친구 없으면 외롭고, 할 일이 없으면 죽은 삶과 같다.
그래서 ‘내 일은 내일(來日)이다(My Job Is Tomorrow)’이다.
늙어서도 ‘할 일, 나의 일’이 있어야 나다니기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삶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있는 일’이 일치하는 사람이라 한다.
이 ‘닥터 J' 젊은 사장은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하고 싶은 이발하죠, 해야만 하는 일이죠, 하고 있는 일이죠.
“이발사는 잘 깎는 것이 행복이다.” 라는 말이 빈 말로 한 게 아니다.
톨스토이의 말이 생각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이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이 사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