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를 만났네. 은총과 진리가 그분에게서 왔네.”(요한 1,41.17)
지난 주 월요일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를 마치고 연중 시기의 첫 주일을 맞는 오늘,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할 것을 권장하며 18일 목요일부터 한 주간을 그리스도인 일치 주간으로 지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차이와 다름을 넘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일치를 이루기를 기원하는 이 시기, 오늘 우리가 이 미사 안에서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이 갖추어야 할 믿음의 자세를 이야기합니다.
우선, 오늘 제 1 독서의 사무엘 상권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판관 사무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던 여자였던 어머니 한나의 간절한 기도로 얻게 된 아이 사무엘은 한나의 약속대로 하느님께 바쳐져 대사제 엘리로부터 대사제로서의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밤 주님의 성전에서 잠을 자고 있던 사무엘에게 다음과 같이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게 됩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1사무 3,10ㄱ)
세 번에 걸쳐 사무엘에게 그를 부르는 음성이 들려오지만, 그제껏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던 사무엘은 그 음성이 주님의 음성인 줄 모르고 단지 스승 엘리가 자신을 부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똑같은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되는 것에 스승 엘리는 그 모든 일이 하느님의 부르심임을 깨닫고 사무엘에게 다시 그 음성이 들려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하라고 알려줍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9ㄴ)
이에 다시 들려온 하느님의 음성에 사무엘은 이 말로 응답함으로서 처음으로 하느님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로써 주님께서는 그 순간부터 사무엘과 언제나 함께 하시며 그가 앞으로 이룰 일들, 곧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릴 축복과 구원의 선물을 새로운 판관 사무엘을 통해 이루어 주십니다.
한편, 오늘 제 2 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코린토 1서의 말씀은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거룩한 성령이 머무시는 성전임을 설파하며 하느님의 거룩한 지체로서 우리 각자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해야 함을 힘 있게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모릅니까?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 분과 한 영이 됩니다. [...]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1코린 6,15ㄱ 17. 19ㄱ. 20)
이처럼 오늘 제 1 독서와 제 2 독서의 말씀은 하느님이 당신의 음성으로 우리를 불러주시고 그 부르심에 응답한 우리와 함께 해 주심으로서 우리 각자가 하느님의 거룩한 성령을 모신 성전이자 하느님의 지체로서 하느님과 함께 하는 존재임을 드러내줍니다.
이 같은 오늘 두 독서의 말씀은 하느님이 보내주신 메시아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요한의 제자들의 모습을 드러내 주는 오늘 복음의 말씀으로 그대로 이어지며 그 같은 만남을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통해 독서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과 함께함의 모습이 보다 분명히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의 말씀으로서 요한과 함께 있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뵙고 그 분을 찾아가 그 분이 머무시는 곳으로 함께 가서 그 분과 함께 지내게 되는 모습을 전합니다. 그런데 이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그 분과 함께 지내게 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흥미롭습니다. 요한과 함께 있던 두 제자는 사실 예수님이 자신들 앞으로 지나갈 때 그 분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스승인 요한이 그 분을 보고 바로 다음과 같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36ㄴ)
이 말에 두 제자는 바로 그 분을 따라가게 되고 그들을 알아차리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찾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물음에 대한 그들의 대답이 기가 찹니다. 무엇을 찾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그들은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라고 대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찾아 나를 따라오는 것이냐는 물음에 어디에 묵느냐며 다시 묻고 있는 이 형국, 이 상황 속에 드러나는 사실은 요한의 두 제자들은 어찌 보면 얼결에 스승의 이야기를 듣고 그 분을 따라나서기는 했으나, 사실 그 분이 누구신지도 그리고 자신들이 무엇을 찾아 그 분을 따라 가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해 주시며 그들을 당신이 머무는 곳으로 초대해주십니다.
“와서 보아라.”(요한 1,39ㄱ)
이에 그들은 예수님이 머무시는 곳으로 가 그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룻밤을 머무르고 다시 돌아와 다른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놀라운 이야기를 전합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요한 1, 41ㄴ)
스승 요한의 이야기를 듣고 얼떨결에 그 분을 쫓아가기는 하였지만 그 분이 누구이신지도, 자신들이 무엇을 찾아 그 분의 뒤를 따르는지도 잘 모르던 그들이 예수님과 그 분이 머무시는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온 뒤, 바로 그 분이 메시아임을 선포하는 이들의 급격히 변화된 모습은 사실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과연 그들은 예수님이 머무시는 그 곳에서 무엇을 보고 들었기에 이처럼 놀라운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 복음 환호송의 말씀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한 복음의 말씀을 인용한 오늘 복음환호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를 만났네. 은총과 진리가 그분에게서 왔네.”(요한 1,41.17)
요한의 두 제자들은 예수님이 머무시는 그 곳에서 가서 그 분이 하시는 말씀과 그 분과 함께 있는 이들의 모습 그리고 그들이 함께 사는 모습을 보며 그 안에서 하느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강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마치 오늘 제 1 독서의 사무엘이 잠결에 하느님의 음성을 자신의 두 귀로 듣고 그 음성에 응답함으로서 그 순간 하느님을 뵈었던 것처럼, 오늘 복음의 두 제자 역시 예수님이 머무시는 그 곳의 모든 환경과 분위기 안에서 그리고 그 분이 전하는 하느님의 기쁜 소식 안에서 하느님의 함께 하심, 곧 하느님의 현존을 통해 드러나는 은총과 진리를 강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돌아와 바로 이 분이 하느님이 보내주신 약속된 메시아임을 힘차게 고백하며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이들에게 그 소식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송동 교우 여러분,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불러주십니다. 당신의 음성으로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불러 그 부르심에 응답하라고 우리를 초대해 주십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십시오. 사무엘이 그러했던 것처럼,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우리가 우리의 삶 안에서 그 분의 부르심에 응답한다면, 그 분은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해 주시며 우리에게 당신의 거룩한 성령을 부어주시고 우리가 그 분의 거룩한 지체, 그 분을 모시는 성전이 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부르심에 응답한 우리들은 오늘 복음의 제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예수님이 머무시는 곳, 그곳으로 가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 분이 행하시는 일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은 오늘 본기도의 기도문처럼 교회와 전례 안에서, 또 형제들 안에서 하느님이 함께 하고 계시다는 하느님 현존의 표지로 우리에게 드러나고 그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말씀이 전하듯 우리 곁에 다가오시는 그 분을 알아 뵙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 특별히 그 분의 말씀을 듣고 그 분의 몸과 피를 영하는 미사성제를 통해 우리와 하나 되시는 그 분과 함께 살아가며 그 분으로부터 비롯되는 참 기쁨과 희망으로 언제나 행복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를 만났네. 은총과 진리가 그 분에게서 왔네.”(요한 1,41.1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