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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가을이 소슬바람 일으키며 빗소리에 실려온다. <사는 기쁨>.황동규
ysoo 추천 0 조회 40 14.09.02 23:1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박해현의 문학산책

 

가을이 소슬바람 일으키며 빗소리에 실려온다

 

콧끝에 찬 기운이 스며드는 아침

숲에서 약초 캐듯 內面을 거닐다

길 잃기 좋은 계절이 다가오는데

가을詩를 읽으며 출구를 찾으니

예나 이제나 시인들이 일러주네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봄바람은 산뜻하고 여름바람은 시원하고 겨울바람은 매섭다지만 가을바람은 소슬하다. 예부터 수없이 되풀이되는 계절의 순환이 일어나면 옛사람이 쓴 글을 뒤적이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가을은 변함이 없을 터이니 앞사람이 느낀 가을이 오늘 눈앞에 닥친 가을을 제대로 맛보는 길을 일러주리라.

 

경허(鏡虛) 선사는 ‘노을 물든 텅 빈 절/ 무릎 안고 졸다/ 소슬한 가을바람 놀라 깨어보니/ 서리 맞은 단풍잎만 뜰에 차누나’라고 읊었다.

늦여름 더위에 창을 열어 놓고 잠이 들다 새벽이면 목덜미가 서늘해져 눈을 뜨게 된다. 가을이 소슬바람을 일으키는 것인지 소슬바람이 가을을 깨우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가을이 되돌아오면 우리 마음이 절로 싱숭생숭해진다.

 

율곡 이이(李珥)가 가을을 즐기며 쓴 한시를 빼어난 국문학자 정민 교수(한양대)의 번역으로 읽었다.

 

 

‘약초 캐다 어느새 길을 잃었지/

천 봉우리 가을 잎 덮인 속에서/

산스님 물 길어 돌아가더니/

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가 이네’.

 

<山中>

採藥忽迷路
千峰秋葉裏
山僧汲水歸
林末茶煙起

 

 

가을 숲은 고요하다. 봄철엔 이 꽃 저 꽃 두리번거리느라 마음이 들뜬다. 봄이 몸 안으로 스며드니 마음이 몸 밖으로 뛰쳐나가 돌아올 줄 모른다. 여름 숲에선 그늘에 드러누워 낮잠이나 자고 싶다.

하지만 가을 숲에선 무엇이든 결실을 거두고 싶다. 율곡 선생도 가을 숲에서 약초를 캐다 한 걸음 한 걸음 깊이 들어가더니 길을 잃었다. 율곡의 약초 캐기는 어딘지 비유의 냄새가 난다.

 

가을은 흔히 성찰의 계절이라고 한다. 율곡의 약초 캐기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정신의 수(手)작업을 뜻하는 게 아닐까. 새해 설날에 세운 뜻이며 짧은 봄날의 아쉬움이며 한여름 땡볕 아래 방만했던 인생이 가을이 오면 절로 곡식이 익고 열매 맺는 자연을 흉내 내 자신의 마음속을 휘저어 도사리라도 줍고 싶어진다.

율곡도 그렇게 가을 숲에서 약초 캐기에 흠뻑 빠져들었다가 길 잃은 자신을 떠올린 듯하다. 미혹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런데 문득 어디선가 산사(山寺)에서 차 끓이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연기가 핀 곳을 찾아가면 산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겠다.

가을은 몰입을 유혹하다가 그 바깥으로 나가는 길도 일깨워주는 계절이 아닐까. 그런데 길 잃은 처지를 구해줄 산사의 차 끓는 연기 같은 것이 도대체 우리네 일상에선 있기나 한 것인가.

 

 

[박해현의 문학산책] 가을이 소슬바람 일으키며 빗소리에 실려온다 일러스트

 

 

추석 연휴 때 황동규 시인이 올해 초 펴낸 시집 ‘사는 기쁨’ 을 뒤적였다. 일흔다섯 살 황동규 시인은 시를 쓴 지 50년이 넘었다. 1958년 서정주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황 시인은 어느덧 스승 못지않은 한국 시의 거봉(巨峯)으로 우뚝 섰다. 그는 지금도 “시신(詩神)이 새벽 2~3시에 찾아온다”며 일어나 시를 쓴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펴내며 “시를 좇아가다 보니 바야흐로 삶의 가을이다. 주위에 자신의 때깔로 단풍 들거나 들고 있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밝혔다.

우리 주변엔 생의 가을을 맞은 어르신들이 늘어난다. 그리고 그 가을은 예전과는 다르게 길다.

 

황동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유난히 가을을 예찬했다.

그 가을은 을씨년스럽거나 울적하지 않다.

‘이 환장하게 환한 가을날 화왕산 억새들은/ 환한 중에도 환한 소리로 서걱대고 있으리’라며 ‘박하(薄荷)에 올려논 혀’처럼 환한 음성으로 노래한다.

 

 

이 환장하게 환한 가을날 / 황동규

 

이 환장하게 환한 가을날 화왕산 억새들은

환한 중에도 환한 소리로 서걱대고 있으리.

온몸으로 서걱대다가 저도 모르게

속까지 다 꺼내놓고

다 같이 귀 가늘게 멀어 서걱대고 있으리.

 

걷다 보면 낮달이 계속 뒤따라 오고

마른 개울 언저리에

허투루 핀 꽃 없고

새소리 하나도 묻어 있지 않은 바람 소리

누군가 억새 속에서 환하게 웃는다.

 

내려가다 처음 만나는 집에 들러

물 한 잔 청해 달게 마시고 한 번 달게 웃고

금세 바투 몰려드는 무적(霧笛) 같은 어스름 속

무서리 깔리는 산길을

마른 바위에 물 구르듯 내려가리.

 

 

아직도 그의 마음은 튀는 중이라고 한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낯선 여자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시인은 어디선가 낯이 익다며 자꾸 생각의 갈피를 헤집는다.

‘사춘기 때 혼자 신나게 따랐던 여자의 딸?/ 얼굴 위로 아우라로 뜨는 또 하나의 얼굴/

그 얼굴 임자 세상 모서리에 험하게 부딪지 않고/ 지금도 실하게 살고 있는가’ 라고 한다.

그는 인생의 겨울을 기다리면서도 ‘보여줄 게 있다고 아슴아슴 눈짓하는 설경 속으로/ 몸 여기저기서 수정구슬 쟁그랑 쟁그랑 소리 나는/ 반투명 음악이 되어 들어가보자’고 노래한다.

 

황 시인은 주선(酒仙)의 해학도 늘어놓았다.

 

‘이 세상에서 나갈 때/

아직 술맛과 시(詩)맛이 남아있는 곳에 혀나 간 신장 같은 걸/

슬쩍 두고 내리지 뭐’.

 

음악을 좋아하는 그는 언젠가 ‘이 세상 떠날 때 빗소리 듣는 귀는 놔두고 가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 빗소리는 단내 풍기는 봄비도, 쫙쫙 쏟아지는 여름비도 아닌 촉촉하게 가슴 적시는 가을비가 내는 소리이리라.

가을엔 누구나 자기 내면의 숲을 거닐다 길을 잃어볼 일이다. 그러다 한 줄기 산사의 차 끓는 연기를 좇아 숲 밖으로 나가는 깨달음이 기쁘지 아니한가.

 

젊은 시인 문태준은 가을을 모과(木瓜)의 계절이라고 노래했다.

울퉁불퉁한 가을 모과를 들고선 ‘내가 꼭 모과 같았지요’라고 했다. 겉보기엔 못생긴 과일이지만 ‘별과 바람과 서리와 달빛의 조각 향기’를 다 담아서 울퉁불퉁한 모과 한 알엔 봄부터 여름까지 지난 시간의 더께가 켜켜이 쌓여 있다. 시인은 모과를 심장에 가까이 대봤다고 했다.

‘울퉁불퉁하게 뛰는 심장 소리는 모과를 꼭 빼닮았더군요’라고 했다. 가을은 그렇게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벌써 소슬한 가을바람이 아스라한 현기증을 일으키며 손짓한다.

 

/ 조선

 

 


가을 모과 / 문태준

 

울퉁불퉁한 가을 모과 하나를 보았지요
내가 꼭 모과 같았지요
나는 보자기를 풀듯
울퉁불퉁한 모과를 풀어보았지요
시큼하고 떪고 단
모과 향기
별과 바람과 서리와 달빛의
조각 향기
별은 둥글고
바람은 모나고
서리는 조급하고
달빛은 냉정하고
이 천들을 잇대서 짠
보자기 모과
외양이 울퉁불퉁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나는 모과를 쥐고
뛰는 심장 가까이 대보았지요
울퉁불퉁하게 뛰는 심장 소리는
모과를 꼭 빼닮았더군요

 

 

 

 


사는 기쁨 / 황동규

 

1

오디오 둘러메고 한강 남북으로 이사 다니며

개나 고양이 가까이 두지 않고

70대 중반까지 과히 외롭지 않게 살았으니

그간 소홀했던 옛 음악이나 몰아 들으며

결리는 허리엔 파스 붙이고

수박씨처럼 붉은 외로움 속에 박혀 살자,

라고 마음먹고

남은 삶을 달랠 수 있을까?


2

사는 건물을 바꾸지 않고는 바꿀 수 없는 바램이 있다.

40년 가까이 아파트만 몇 차례 옮겨 다니며

‘나의 집’으로 가는 징검다리거니 생각했다.


마지막 디딤돌에서 발을 떼면

마련한 집의 담을 헐고

마당 절반엔 꽃을 심자.

야생화 밟지 마라 표지 세워논 현충원 산책길엔 도통 없는

노루귀 돌단풍 은방울꽃

그래, 몰운대(沒雲臺)에서 크게 눈 뜨고 만난 은방울꽃

카잔차키스 묘소에 열심히 살고 있던 부겐벨리아

루비보다 더 예쁜 루비들을 키우는 노박덩굴을 심자.

겨자씨 비유의 어머니 겨자도 찾아 심자.

나머지 반은 심지 않아도 제물에 이사 와 자리 잡는 풀과

민박 왔다 눌러앉는 이름 모를 꽃들에게 내주자.

개미와 메뚜기 그리고 호기심 많은 새들이 들르고

벌레들도 섞여 살겠지.


그래, 느낌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마당이 있고

귀 힘 아주 빠지기 전 오디오 볼륨 제대로 울려줄 집이 주어진다면!

오크통에 30년, 책장 구석에 30년, 세상 잊고 산 위스키 앞세워

와인과 막걸리와 칵테일을 모아 놓고 친구들을 불러

먼저 가버린 자들도 번호 살아 있으면 문자를 보내

파티를 열자. 바램은 아직 유효하다.

 


3

유효할까?

파티 다음 날, 종일 속도 마하0으로 움직이는 텅 빈 맛이

몸에 버틸 힘을 줄까?


가을 들어 처음으로 은행잎이 비행연습을 시작하는 저녁

동향한 창밖으로

건너편 언덕 아파트의 모든 창들이 일제히 황금향으로 피어난다.

대가(代價) 없이 자신을 태우는 황금의 절창들!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는

한 해 가운데 이 한때가 가장 마음에 든다.

‘가장’이라는 말에는 지금까지라는 뜻이 숨어 있고

다음은 텅 빔?

조금 전 건물 입구에서

시들고 있는 꽃에게 안부를 물었다.

코끝에 채 맴돌기도 전에 사라지는 향기로

꽃은 답했다. 텅 빔?

텅 빔이 가짐보다 바람의 근본일까… 아닐까?

햇빛 스러지며 한 자락씩 황금에서 어둠으로 바뀌는 창들이

차례로 물음을 던진다.

 


4

그간 군(郡)에서 주차장 집어넣고

매점과 화장실 내고 길 펴고 넓혀

오르내리는 맛을 한껏 줄인 몰운대,

발걸음 멈추게 하던 제비꽃 달개비들 사라지고

숨었다 들키던 은방울꽃 자취 감추고

미끄러워 마음 잡아주던 바윗길은 보이지 않고,

올라보면, 시야 가득 차오는 비닐하우스들

뜬구름조차 뜨지 않고…

아 몰운대에서 풀려난 몰운대!

그 언저리에 집 한 칸 마련해

강원도에서 차를 몰다 덜 살고 싶을 때면 슬그머니 들러

낮에는 대에 올라 다른 아무 데도 눈 주지 않고

밤에는 모깃불 피워놓고 모기 침 쿡쿡 맞으며

답답함에서 풀려나리라던 긴 긴 꿈에서

이젠 새삼 놓여나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는가?

영영 놓여나지 못하게 되었는가?

 


5

바위틈에 발톱을 박고 서있는 나무 다섯 그루

바로 뒤에 야트막한 초막

비어 있다.

그 뒤로 흐르는지 안 흐르는지 말없이 넓게 펼쳐진 물

물 건너 그림자 하나 없이 커다랗고 깨끗한 산.

원나라 화가 예찬(倪瓚)의 한없이 맑고 적적한 산수는

은둔 신호만 켜지면 모든 것 놔두고 들어가

신선인 듯 가볍게 거닐고 싶었던 곳,

오늘 그의 그림 다시 들여다보니

사람들도 짐승들도 그냥 들여다보기만 했을 뿐

멧새 하나 날지 않는다.

들어오려면 그림자도 놔두고 오라?


읽던 책 그대로 두고 휴대폰은 둔 데 잊어버리고

백주(白酒) 한 병 차고 들어가

물가에 뵈지 않게 숨겨논 배를 풀어 천천히 노를 저을까?

건너편을 겨냥했으나 산이 통째로 너무도 크고 맑아

무심결에 조금 더 무심해져

느낌과 꿈을 부려놓고 그냥 떠돌까?


바람이 인다. 갑자기 구름떼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여기저기 물기둥들이 솟아 상체를 흔들고

얼음처럼 투명한 해가 불타며 하늘 가운데로 굴러 나온다.

바위에 발톱 박은 나무들이 불길처럼 너울대자

부리 날카론 새들이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몰려든다.

느낌과 상상력을 비우고 마감하라는 삶의 끄트머리가

어찌 사납지 않으랴!

예찬이여, 아픔과 그리움을 부려놓는 게 신선의 길이라면

그 길에 한참 못 미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간간이 들리는 곳에서 더듬는다.

벗어나려다 벗어나려다 못 벗어난

벌레 문 자국같이 조그맣고 가려운 이 사는 기쁨

용서하시게.

 

 

 

네가 없는 삶 / 황동규


아픔이 없는 삶은 빈 그릇이다
라고 네가 말했을 때
우리는 천천히 저수지를 돌고 있었다.
앞 벼랑 끝에 V자형 진달래꽃 뭉치
뛰어내릴까 말까 아슬아슬 걸려 있고
저수지 수면은 온통 새파란 물비늘,...
아주 정교히 빚은 그릇일 수도 있겠군, 나는 생각했다.


네가 없는 삶은 빈 그릇이다
라고 말하려다 화들짝 놀란다.
수위(水位) 낮아진 저수지에 어느샌가 가을이 깊어
색채들이 모두 나무에서 뛰어내려
물가까지 내려와 누워 있고
아예 물속에 든 놈도 있었다.
마지막 순간 마음 돌려
물가에 서 있는 술병도 있었다.


물새 한 마리 쓸쓸히 자맥질하고 있는 물에는
물속 땅에 박힌 건지 물 위에 뜬 건지
조그만 배 하나 멎어 있고
하늘이 통째 빠져 있는 수면엔
밝은 조개구름 한 떼가 지나가고 있었다.
문득 가까이 사람 소리
아끼듯 조용히 나누는 말소리, 한참 잠잠하다
이윽고 차 떠나는 소리.
물새 어디 갔다, 자취 없고
조개구름 흘러가버리고
무덤덤한 배가 혼자 떠 있다.

 

시집<사는 기쁨>.  황동규

 

 

 

이별 없는 시대 / 황동규


늙마에 미국 가는 친구
이메일과 전화에 매달려 서울서처럼 살다가
자식 곁에서 죽겠다고 하지만
늦가을 비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인사동에서 만나
따끈한 오뎅 안주로
천천히 한잔할 도리는 없겠구나.


허나 같이 살다 누가 먼저 세상 뜨는 것보다
서로의 추억이 반짝일 때 헤어지는 맛도 있겠다.
잘 가거라.
박테리아들도 둘로 갈라질 때 쾌락이 없다면
왜 힘들여 갈라지겠는가?
허허.

 

 

 

세상 뜰 때 / 황동규


올더스 헉슬리는 세상 뜰 때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사중주를 연주해달라 했고
아이제이어 벌린은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소나타를 부탁했지만
나는 연주하기 전 조율하는 소리만으로 족하다
끼잉 낑 끼잉 낑 댕 동, 내 사는 동안
시작보다는 준비동작이 늘 마음 조이게 했지
앞이 보이지 않는 갈대숲이었어.
꼿꼿한 줄기들이 간간이 길을 터주다가
고통스런 해가 불현듯 이마위로 솟곤 했어.
생각보다 늑장부린 조율 끝나도 내가 숨을
채 거두지 못하면
친구 누군가 우스갯소리 하나 건넸으면 좋겠다.


너 콘돔 가지고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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