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으로 악을 이기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17-21).
본문은 불신 이웃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불신자들 중에서도 좋지 않은 이웃들, 즉 핍박하는 자들에게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①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17) 합니다.
㉠ “아무에게도, 그리고 모든 사람 앞에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러므로 형제들아”(1) 한 “그러므로”를 놓치지 않고 있는 사람뿐입니다. 주님께서도,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하십니다.
②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18) 하십니다.
㉠ “할 수 있거든”이란,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이라는 가정(假定)입니다. 이 말은 “더불어 평화”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감정(感情)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眞理)의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시고 다시 사심을 통해서 이루어주신 복음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한에서는 “할 수 있거든 더불어 평화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 사도는 에베소서에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엡 4:13) 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이 진리에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더불어 평화”하기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사도 자신이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갈 1:8) 하고, 결별을 선언하는 것을 봅니다.
③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19상) 합니다.
㉠ 어찌하여 “내 사랑하는 자들”이라 말씀하는가? “원수를 갚지 말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환난 중에 있는 로마 형제들을 지극한 마음으로 위로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 합니다. 17절에서는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고, 친히 원수를 갚는 것”은 불신자들의 악순환이지 그리스도인들의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④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19하) 합니다.
㉠ 이는 신명기 32:35절의 인용인데, 심판 주는 하나님이시며 심판의 권한은 하나님께만 있음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대신 죽으심”으로 구속하여 자기 자녀로 삼으신 분께서, 어찌 “대신 갚아주시지” 않겠는가? 그래서 “진노하심에 맡기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대속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자신이 갚으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이 할 일은,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14)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⑤ 한걸음 더 나아가,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20) 하십니다.
㉠ “원수”는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먹이고, 마시우라”는 것은 살리는 운동입니다. 그렇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하십니다.
㉡ “먹이고, 마시게 한다”면 다 회개할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고전 7:16), 그래서 불신 남편과 갈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같은 이치로 그렇게 함으로 네가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⑥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20하) 합니다.
㉠ “숯불”을 머리에 놓게 되면 어찌 되는가? 얼굴이 빨게 지도록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⑦ 그래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21)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 “악과, 선”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악(惡)은 무엇이고, 선(善)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를 “그러므로 형제들아”(1) 하는 문맥으로 본다면 “악”이란,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8:31) 한 사탄의 세력을 가리키는 것이 되고, “선”이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한, 하나님의 “은혜, 사랑”을 가리키는 것이 됩니다. 결국 악을 이길 수 있는 무기는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된 하나님의 사랑”(5:5)인 것입니다.
㉡ 이렇게 권면하는 사도 바울도, 이렇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사랑하는 자들아”(19상) 하고, 지극히 위로와 애정 어린 말로 불러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란 왜 이렇게 행하지 아니하면 아니 됩니까?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만 합니까? 이렇게 살아야 될 동기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⑧ 이에 관해서 형제에게 물어 볼 말이 있습니다. 이런 윤리(倫理)는 기독교에만 있는 것입니까?
㉠ 불교에서는 악을 악으로 갚으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유교에서는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불화하고, 원수에게 보복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비슷한 교훈들을 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윤리가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이 대목을 상고하면서 이를 간과(看過)한다면 그는 로마서 1장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현대교회의 실상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⑨ 그리스도인이란 어째서 이렇게 살아야만 합니까? 첫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게 하기 위한, 이것만이 참 된 동기요 목적이어야만 합니다.
㉠ 우리는 예수를 믿지 않으면서도 이웃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그런 차원에서만 이웃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당신 자신은 그들에게 좋은 이웃이라는 평판을 들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진정한 이웃인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만나게 해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내가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은, “하나님의 이름, 영광”에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윤리가 타 종교의 윤리와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이유입니다.
두 번째로, 왜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만 합니까? 이에 대한 답변은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떠나 이 땅에까지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했는가를 생각하는 일입니다.
㉠ 대답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 3:18)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가 주님과 같은 삶을 살아야하는 목적은,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 베드로전서 2:12절은,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입으로는 복음을 전하면서 행위로는 전도의 문을 닫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명심해야할 말씀이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19)는 말씀입니다.
㉠ 우리는 원수를 갚아야할 재판장이 아니라, 오직 은혜를 입은 빚 진자임을 잊지 마십시다. 가장 큰 죄는 자기를 하나님의 위치에 두는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주인(主人)이 되시는 주가 계십니다. 주가 없는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이 원수를 갚으려고 살기등등한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가 되사 우리를 주관해 주시며 책임져 주십니다. 그 분께 맡기십시다.
넷째로, 본문말씀은 자녀 된 우리를 아끼시기 때문에 주어졌다는 점입니다.
㉠ 왜냐하면 악을 악으로 갚고, 원수를 향해 분을 내고 미워해 보아도 그것이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 마음의 평화만을 빼앗길 뿐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기는 길이 아니라, 도리어 마귀의 궤계에 말려드는 패배(敗北)의 길인 것입니다.
㉡ 형제여,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는가를 생각하십시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이렇게 사는 삶은 결코 약한 삶이 아닙니다. 약하기는커녕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강한 자의 삶이요, 승리의 삶인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으로 우주를 정복하셨습니다. “사랑은 가장 위력이 큰 하나님의 최대의 무기”입니다. 이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