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마음선원 대행 큰스님 추모법회 거행
대행 큰 스님이 지난 5월 22일 열반에 들었다.
뉴욕 한마음선원에서는 지난 7월 1일 큰법당에서 신도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묘공당 대행 대선사 추모법회’를 가졌다.
이날 행사는 천수경, 삼귀의, 반야심경, 헌다,헌향, 헌화 , 큰스님께 삼배, 금강경 독경을 하고 잠시 입정에 들었다. 이어 ‘큰스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원공스님이 낭독하였다. 그리고 ‘큰스님께 올리는 글’은 버지니아 선원 신도인 문범강 교수가 하였다.
문 교수는 “ 오직 자성인 네 뿌리를 믿어라. 오직 네 뿌리에 일임하라”고 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큰 스님은 가셨지만 큰 스님이 가르침은 용암처럼 뜨겁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다함께 발원문을 낭독하였다.
원공스님은 대행 큰스님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원공스님이 설명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큰스님께서는 1927년 음력 1월2일 서울에서 태어나셨다.
명문 가문의 후손이라 비교적 넉넉한 가세였으나,부친이 항일 의병에 참여하시는 등 일제에 항거하시다가 모든 재산을 잃고 흑석동 산마루턱에 움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일곱살의 스님에게는 어려운 생활 환경도 힘에 겨웠으나,모든 것을 잃고 파탄에 빠지신 부친께서 대하심이 혹독하게 엄하여서 하루하루가 힘겨운 일상을 보내야 했다.
가족들이 먹을 식량이나 땔감을 구하기 위해 산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스님은 점점 자연속에서 풀이나 들짐승들과 대화하는 법을 터득했고,내면의 아빠를 그리워하며 마음을 안으로 집중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깊은 내면의 길에 들어서게 되셨습니다.또한 헐벗고 굶주려 고통을 겪는 이웃들의 실상을 보면서 깊은 아픔과 삶에 대한 큰 의문을 품으셨고,스님의 나이 9세에 자성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으니 매우 희유한 일이었다.
1940년 14세때 어머니를 따라 오대산 상원사 부근에 살던 외삼촌 댁에 몇 달 머물면서 한암 큰스님을 처음 뵈었다.그후 간간이 한암 스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산중 수행을 하셨다. 그러던중 1945년 해방이 되었다. 1950년 스님의 나이 23세 되던 해에 한암 스님을 찾아가시어 출가하셨다.
30대 초반 무렵 문득 일대사의 중대한 때가 되었음을 아시고 옷감 한 벌을 꺼내 가위로 둥글게 일곱 조각을 잘라내서는 그것을 마당에 뿌린 다음 하나씩 밟으며 집을 나서 고행의 길에 드셨다.그후 화장사,국립묘지,한강변,관악산,광나루,헌인릉,청계산을 거쳐 남한산성,경기도 이천,강원도 춘천,영월,충북 제천 백련사에 이르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리는 고행이었습니다.그때의 고행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처절한 것이었습니다.스님께서는 산에서 산으로 돌며 몸을 돌보지 않아 누추하고 헤진 차림으로 다니시다가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하시고, 빨치산으로 몰려 고문을 당하시는 등 수 없이 고초를 당하셨습니다.또한 빈사 상태에 빠져 산길에 쓰러지기를 수십 차례,그때마다 죽음의 고비에 처하셨으나 하루 콩 몇 쪽, 혹은 열매 한 알,나무뿌리 등으로 공양하시며 때로는 지쳐 산길에 쓰러지고 때로는 동상 걸린 맨발로 눈 쌓인 산길을 걸었다.
스님께서는 길을 걸으시다가 인연 닿는 대로 병고 액난에 빠진 사람들을 만나면 큰 자비심으로 제도해 주셨습니다.손에 닿는 대로 길가의 이름 모를 풀이나 나뭇잎 등을 뜯어 환자에게 다려 먹으라 하시거나 무심의 마음을 내주시니,스님은 사람들에게 이적을 행하는 분으로 알려졌다.그때마다 스님께서는"이는 나의 힘이 아니고 사람마다 각자 지니고 있는 자성불의 위신력이라,스스로에게 갖춰진 능력으로 이루어진 공덕이니 스스로의 자성에 감사하라."하셨고,
"모름지기 사람마다 다 자신의 근본을 믿고서 모든 일을 그에 맡기고,항상 주처를 관하라."말씀하셨습니다.
마침내 스님께서는 치악산 상원사 견성암에 이르셔서 몇 해를 계시면서 자재한 권능을 나투시면서 중생들의 아픔을 제도하시는 보살행을 하셨다.하루에도 5-6백명의 사람들이 다녀갔으나 스님께서는 토굴 문을 걸고 내다보지도 않으셨다.1963년에 상원사 중창불사를 마치셨다.
1965년 스님께서는 담아주어도 그릇이 비면 또 채워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각자 자신이 지니고 있는 내면의 보물을 찾게 하기위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 주인공에게 구하는 길을 알려주기 위해서 하산하셨습니다.
원주 인근에 머물며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베푸시고 ,안양으로 옮겨서 1972년 '대한불교회관'이라는 이름으로 법당을 건립하셨다.그리고 1982년 조계종에 사찰을 등록하고 한마음선원으로 이름을 고쳤다.1982년에 첫 국내지원인 광명선원을 충북 음성군 금왕에 개원했다.이후 국내에 15개 지원이 세워졌고,198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모건힐 지원이 설립된 이후 10개의 해외 지원이 설립되었다. 또한 많은 재가 제자와 150여명의 출가제자들이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며 전법하고있다.
큰스님께서는 불교의 포교 대중화에 앞장서셨다. 불교의 생활화,현대화, 과학화,세계화를 위해 노력하셨다.
-1984년 본원 합창단 창단을 시작으로 선시와 법어로 만든 선법가를 통한 음성포교를 하였다.
-1994년에는 불교계 최초로 거사합창단을 창립하였으며,특히 2001년,2004년,2011년 세차례에 걸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마음선원 합창제는 불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창조적인 대규모의 행사였다.
-1985년 비디오 법문을 통한 영상포교를 시작하였으며,
-1986년에는 금왕지원에 한마음 영탑공원을 조성했는데,국내에서 처음시도된 현대적인 불교장례문화로 주목받았다.-
-1987년에는 천수경 반야심경을 뜻으로 풀이한 한글 졍전의 보급을 시작하여 1995년에는 뜻으로 푼 한글 금강경을 발표했다.
-1990년 부터 남자신도들을 위한 법형제 법회를 실시하여 남자불자들의 참여를 높였다.
-1994년에는 주간 불교 신문인 '현대불교'를 창간하였다.
-1996년에는 불교계 최초로 홈페이지 개설을 통한 온라인 포교를 시작했다.
-또 한마음심성과학연구원을 설립하여 불교의 과학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다.
-1999년에는 국내 최초로 불교 인터넷 방송국HBTV를 개설했다.
2001년에는 국제포교를 위한 외국어 법어집 제작을 위한 한마음국제문화원을 설립하였다. 또한 문화예술을통한 포교의 일환으로 최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연등축제에도 가장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동참하고있다.
이와같은 활동으로 한마음선원은 도심포교의 살아있는 이정표로 간주되기도한다.
또한 전국비구니회관의 건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면서 비구니의 위상과 활동을 높이는데에도 크게 기여를 하였다. 2004년에는 '동아시아 불교 전통에서 본 비구니의 수행과 삶'을 주제로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대행큰스님의 해외포교 기록
큰스님께서는 특히 해외 포교에 선구적 역할을 하셨다. 자주 세계 여러나라를 다니시면서 법문을 하셨고 여러차례 대법회를 가지셨다.
-1996.6.뉴욕Queense College Concert Hall 대법회
- 1997.6.시카고 North Shore Center 대법회
-1997.6 로스엔젤레스 Wilshire Ebell Theater 대법회
-1998.6뉴욕 LaGuardia Community College 대법회
-1999.7독일 뒤셀도르프 라팅겐 시민회관 대법회
등의 법회를 통해서 많은 외국인 불자들에게 법을 설하셨다.
큰스님께서는 수많은 방편을 새롭게 시도하시고 한마음합창제와 잠실체조경기장 대법회와 같은 문화와 대규모의 법회로 포교의 새로운 장을 여셨지만 무었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수행의 방편을 제시하여 물질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한 새시대를 앞장서서 열어갈 수 있는 불교의 앞길을 열으셨다는 것이다.
또한 스님께서는 9살의 어린 나이에 내면의 소리를 듣고 20대 초반에 견성을 하시고 30대에 이미 나툼의 구경열반의 경지에 이르셨다. 그리고 누구의 가르침 보다도 스스로 내면의 스승에 의해서 스스로 완전한 경지에 이르셨다. 이러한 일은 불보살의 화신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스님께서는 중생제도의 큰 원력을 가지고 스스로 오신 분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불기 2556년 5월22일 0시 큰스님께서는 열반의 세계에 드셨다. 그러나 항상 말씀하셨듯이 스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세세생생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이제 모든 제자들은 더욱 발심하여 스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전하는 일에 힘을 더하여 스스로 자유인이 되고 이 지구상에 불국정토 이루는 일에 앞장서야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스승의 은혜를 갚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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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추모 법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우리 스님께서는 如如하게 오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며, 如來의 모습을 본 우리는 곧 성불할 보살이라는 것을 믿고 물러섬이 없이 정진할 것을 발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추모법회를 통해서 스님께서는 우리에게 如如하게 오셔서, 如如하게 사는 길을 보여 주시고, 如如한 자유인이 되라 하신 뜻을 깊이 새기고 실천하는 것이 스님의 은혜에 진실로 감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추모 법회에 동참한 모든 분들이 깊은 신심으로 환희심을 일으켜 날마다 새롭게 발심하시길 발원합니다.
한마음선원에서는 행사가 끝난 후 참석자들에게 대행스님의 저서, DVD, 한방비누 등을 무료로 증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