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은 한국불교의 미주전법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본사에서는 2003년 2월호를 시작으로 지난 40년에 걸친 미주지역의 한국불교에 관해-사찰, 인물, 신행단체, 언론, 출판, 열반과 출가, 국제대회, 통일운동, 중요사건 등을 연재 할 계획입니다. 여러 자료들을 정리하고 연대표도 작성하여 본지를 통하여 보도할 예정이오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애독을 바라며, 또 이에 관한 자료나 정보가 있으신 분 들은 본사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 편집자 주 -
현존하는 미주한국불교 최초의 사찰 프로비덴스 홍법원
미주한국불교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64년 6월 서경보스님이 미국을 방문하면서 부터이다. 서경보 스님이 1965년도에 샌프란시스코에 세웠다고 하는 조계선원은 그 흔적을 찾아보지 못했으나 1966년 필라델피아에 세를 얻어 조계선원이란 간판을 붙이고 한국선을 전파한 곳은 본지에서 찾아냈고 이 선원에 다녔던 사람들도 여러 명 살아있다. 그러나 이 사찰은 서경보스님이 버지니아로 이주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현존하는 미국에서의 가장 오래 된 한국 사찰의 시작은 숭산스님이 시작한 프로비덴스 홍법원이다. 1972년 4월에 온 미국에 온 숭산스님은 1972년도 10월에 프로비덴스에서 홍법원을 열었다. 이 사찰이 현존하는 미주 한국불교 최초의 사찰이다.
1976년 까지 지도부 형성되고 거점확보
서경보 스님의 뒤를 이어 1967년 삼우스님 1969년 박성배, 이장수, 강건기,, 고성스님 등이 미국에 입국하거나 방문하였고, 1971년 이한상 거사, 1972년 숭산스님, 계정스님, 정정달법사(당시 스님), 구산스님, 법안스님, 1975년 대원스님, 도안스님, 1976년 카나다 토론토로 비구니 광옥스님이 입국하였다. L.A. 고려사 현호스님은 1976년 방문으로 와 미국에 5개월 머물었고 이어 1978년 입국하여 영주권을 받았다. 이들이 1976년까지 서부의 L.A.와 샌프란식스코, 동부의 뉴욕과 보스톤, 워싱톤 D.C., 시카고를 중심으로 한 중부, 그리고 하와이 지역과 카나다 동부지역에 한국불교의 포교 거점을 확보하였다. 본격적인 불교신행과 포교의 시작이라 볼 수 있는 1969년부터 7년만에 현 미주한국불교의 골격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즉 1976년 까지 미국의 동부, 서부, 중부, 하와이 지역과 카나다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삼우스님, 박성배, 이장수, 강건기, 이한상, 숭산스님, 계정스님, 정정달, 법안스님, 대원스님, 도안스님, 광옥스님을 지도부를 하는 미주한국불교계의 골격이 짜여졌다. 이때가 미국에 한인 이민이 시작되어 이민인구가 급속하게 팽창하던 시기와 정확하게 맞물린다. 본국정부에서는 1968년부터 조건을 갖춘 유학생들에게 여권을 발급하여 이후부터 유학생들이 미국으로 많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1968년 태국에 국비유학생으로 남방불교 유학을 거쳐 1969년에 미국에 입국한 이장수, 강건기씨 곧바로 미국에 입국한 박성배, 이선옥씨 그리고 1972년 법안스님 등이다. 한인사회에는 1969년부터 서독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일하던 사람들이 들어왔고 본국에서는 의사들이 미국 이민대열에 들어서던 시기였다. 이후 1976년까지 미국 이민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미국 전 지역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한국사회는 미주 이민사회와 정반대로 종교인구비율로 볼 때 불교 신자가 가장 많다. 이민자들은 그들의 종교를 가지고 들어왔고 이들의 요구에 의해 자연스럽게 미 전지역에 한국불교가 1976년까지 입국한 스님들이나 법사들을 지도자로 하여 오늘날의 미주한국불교의 골격을 형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계종단을 비롯한 한국불교계는 이러한 흐름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1973년 서경보스님에게 출가한 - 숭산스님에게 미국인으로 첫번째
대혜 돈 길버트 한국불교계로 출가한 무상스님
출가한 최초의 미국인 스님
1977년부터 1981년 사이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박성배 교수가 버클리에서 뉴욕으로 와 1977년부터 뉴욕주립대에서 한국불교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였으며 1978년에는 타고마 지역에 보살이 봉황사라는 절을 시작하였고 1979년에 텍사스주 휴스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1980년에 타코마 시애틀 지역에 도철스님에 의해 성불사, 하와이에 불은사, 조지아주 아틀란타에 보광사 L.A.지역에서는 해외포교에 관심이 많은 구산스님에 의해 고려사가 송광사 분원으로 문을 열었고 환속한 정정달 법사가 1980년에 오렌지 카운티에 정혜사를 개원하여 한국불교의 지형을 넓혔다.
재가자 역할 두드러진 미주한국불교계
정정달(LA) 임대지(시카고)
이강준(LA)
1981년에 이르러서는 필라델피아에 원각사, 오렌곤 주 포틀랜드에 성불사가 들어서고 이해 9월에 삼우스님이 미시간주 앤아보 아파트에서 선려사를 열었다. 이 해에 하와이 달마사 초청으로 입국한 비구니 정업스님은 숭산스님이 지도하는 프로비덴스 홍법원으로 가서 당시 브라운대학교 유학생이던 현 서강대 박광서 교수의 부탁으로 프로비덴스에서 보스톤과 프로비덴스 한인들과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불교모임을 시작하였다. 보스톤에는 정업스님이 오기전에 신도들이 이미 불교모임이 있었다고 한다. 이 모임은 나중에 범어사로 발전을 한다. 콜로라도 덴버, 플로리다주, 그리고 아리조나주를 제외한 현 한국불교계의 지형이 이때 거의 완성되었다. 또 수 없이 많은 절들이 이 후부터 주로 L.A.와 뉴욕을 중심으로 생겨나고 없어지기 시작한다.
이때까지 입국한 사람들을 보면 1978년 백림사 주지 혜성스님, 불심사 법춘스님, 1979년 뉴욕 전등사를 건립한 혜등스님, 하와이 불은사 자은스님, 조오지아 아틀란타 칠보사 무승스님, 1980년에 현 타코마 서미사 일면스님, 불교신문을 발행하였던 도철스님, 샌프란시스코 여래사 설조스님 등이 입국하였다.
삼우스님 광옥스님
도안스님 숭산스님
대원스님 서경보스님
이들의 포교대상과 활동을 분류하면 삼우, 숭산스님은 주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였고, 고성스님, 박성배교수는 미국사회와 한국사회 양쪽을 다 하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주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들중에서 미국인 포교는 숭산, 삼우스님이 한국인 포교는 도안, 법안, 대원스님이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이 다섯 스님이 미주에서 한국불교를 선두에서 이끌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뉴욕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크게 기대를 모았던 법안스님이 1988년 병으로 활동이 중지되면서 뉴욕불교계는 큰 변화가 생겼다. 이후 뉴욕에는 1988년 불국사, 상운사를 비롯하여 1989년 한마음선원 등 수 없이 많은 사찰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한마음선원은 산호세, 알라스카지역에 먼저 개원하였지만 현재 이 두곳은 폐쇄되었고 뉴욕, L.A. 시카고, 버지니아, 토론토 5곳에 선원을 두고 있다.
최초의 신행단체 시카고 불교연구원, 최초의 불교언론 L.A. 관음사 운영 불교방송 신행단체나 불교언론은 이 뒤를 뒤따른다. 불교언론은 1979년에 본국에도 없던 불교방송을 L.A. 김도안 스님이 1979년 3월에 당시 L.A.지역의 KBC방송망을 통해 매주 월요일 1시간 방송하고 저녁에 재방송하는 불교방송을 시작하여 약 3년 동안 지속하였다. 미주 첫 번째 불교언론의 시작이다. 이어 1985년 3월에 하와이 대원사에서 <대원신문>이 발행되어 하와이 지역에 배포되었으며 4월에 도철스님이 뉴욕에서 <미주불교>란 이름으로 한국의 불교신문에 1면을 붙여 12면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언론들은 수명이 짧았고 1989년 본지가 나오면서 본격적인 불교언론이 시작되었고 미 전지역을 대상으로 취재와 보급을 하기 시작하여 15년을 맞이하고 있다. 본국에서 불교방송이 시작된 후 미주에도 불교방송 방송 바람이 일어L.A.에서 1994년 1월 사원연합회와 미주포교사협회 공동으로 한인방송을 빌려 1주일에 1시간씩방송을 시작하였다. 이 방송은 이후 뉴욕,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D.C.로 번졌다.
재가신자에 의해 첫 번째 깃발을 올린 신행단체는 시카고 불교연구원이다. 이 불교연구원은 일찍기 시카고에서 이장수법사에 의해 1969년 말에 문을 열었다. 이 단체는 이 지역의 불교신자의 친목을 도모하고 불타사 초대 주지였던 손지학 스님의 영주권을 신청해주었고 불타사 창립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미주에서 재가불교계로는 가장 빠른 시기인 1977년에 1월 불교연수회, 9월에 불교회관을 역시 이장수 법사가 중심이 되어 열고 여러 가지 불교활동과 봉사활동을 하였다. 이 단체의 활동은 눈부셨다. 이 뒤를 이어 1992년에 시카고불교실업전문인협회와 1993년에 신행회가 탄생하였다. L.A.에서는 시카고보다 늦게 1981년 9월에 <상록회>란 봉사활동을 지향하는 신행단체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1984년에 L.A. 관음사 도안스님이 사회복지 비영리 법인 <한미불교봉사회>를 설립하였다. 1985년에 L.A.에서 <남가주불교청년연합회>가 태동하여 신상철, 백인용, 임병호, 황금서, 서정아씨 등이 중심이 되어 10년 이상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현재는 달마법우회와 조계종 포교사단이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뉴욕에는 1986년 후반기에 박성배 교수가 지도하는 <민족불교연구회>가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미국대학에서의 한국불교에 대한 강의는 1966년 서경보 스님이 템플대학교에서 한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첫 번째이다. 이후 고성스님이 1972년도에 펜실바니아주 이스톤에 있는 리하이 대학교에서 불교강의를 3년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1977년 박성배교수가 뉴욕주립대 스토니부룩 캠퍼스에서 강의하면서 부터 미국대학에서의 불교강의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후 법안스님이 1981년 2월부터 New School University에서 1986년 6월까지 강의하였고 이후 UCLA에서 버스웰 교수를 비롯하여 여러 대학에서 조은수, 박포리, 박진영, 화공스님 등이 미국대학에서 한국불교를 지도하고 있다.
보살계로 불교신자 배출하기 시작
오계는 불교신자가 부처님의 다섯 가지 가르침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이 계를 받으면서 불문에 입문한 사람은 정식으로 불교신자가 되는 것이다. 오계를 받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은 불교가 없던 지역으로서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미주한국불교의 경우는 이민 오기 전 본국에서 오계를 받고 온 사람들이 많이 있어 그 의미는 반감되지만 어째든 이 땅에서 한국스님들에 의해 오계를 받는다는 것은 미주 땅에 한국불교를 전승한다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확하게 알려진 한국불교 스님에 의한 오계 수지 자는 1968년에 서경보스님에 의해 계를 받은 돈 길버트, 존 밀러, 샘 버콜즈, 마이클씨 등 미국인들이다. 1909년 생인 95세 돈 길버트씨는 현재 이후 비구계도 받아 스님으로 캘리포니아에 생존해 있다. 이들 중 본사에서는 샴발라출판사 이사장인 샘 버콜즈씨가 서경보 스님으로부터 받은 계첩 원본을 가지고 있다. 숭산스님은 1972년 11월 8일 Jacob Perl, Barbara Rhodes, Larry Rosenberg, Stephen Mitchell, George Bowman, Lincoln등에게 오계를 주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첫 번째 보살계는 숭산스님과 계정스님을 계사로 하여 1973년 5월 6일(음력 4월 8일) L.A. 달마사에서 25명이 받았다. 이 뒤를 이어 1978년 1월에 L.A. 관음사와 하와이 대원사(현 무량사)에서 있었다. 관음사에서는 1월 15일에 윤고암, 이 능가스님들을 초청하여 보살계 수계식을 하였고 하와이에서는 윤고암, 숭산, 도안스님등이 증사로 하여 수계식을 하였다. 이후 한국에서 큰스님들이 미국을 방문하면 이 큰스님들을 증사로 보살계 수계식을 자주 가졌다.
출가자 배출
불교의 법은 스승과 제자 사이의 사자상승(師資相承)으로 이어진다. 한국불교의 스님들은 은사 밑에서 머리를 깍고 출가한 후에 만행을 하면서 제방 선방으로 여러 선지식을 찾아 다니면서 수행을 한다. 미국에서 한국스님들에 의해 머리를 깍는 다는 것은 곧 한국불교계에 입문하는 것을 의미한다. 첫 번째 출가자는 서경보 스님에게 1973년 7월 13일 "서양인에게 맞게 불법을 펼쳐보라"는 당부와 함께 대혜( The Great Wisdom)이라는 법명을 받은 돈 길버트씨이다. 숭산스님의 밑에서 첫 번째 출가자는 1981년 무상스님이다. 이어 1983년 무승스님, 1985년 도안스님 순이다. 구산스님의 미국땅에서 미국인 첫 번째 상좌는 1982년 현조스님이다.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갖고 미국땅에서 살다가 출가한 첫 번째 한국인 출가자는 1979년 9월 시카고 불심사 법춘스님에게 출가한 비구니 혜인스님으로 현재는 한국에서 수행과 포교를 하고 있다. 이 한상 거사 부인으로 이 거사와 함께 삼보사 불사를 하였던 상품화 보살은 이 거사가 죽은 후인 1987년 11월 본국 비구니 법성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현 뉴욕 전등사 주지 지환스님은 태고종 총무원장을 지낸 혜초스님을 은사로 1992년 출가하였다. 뉴욕에서 한의원을 하던 김종선씨는 1994년 말 청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또 대연사 대산스님, 불타사 현성스님, 조계사 묘지스님, 조오지아 전등사 마야스님, 하와이 백련사 세인스님 등이 출가한 후 미국에서 수행과 포교를 하고 있다. 1.5세로 출가한 사람은 버지니아 보림사 경암스님 상좌인 해인, 보스톤 서운사 현성스님이다. 현성스님은 1999년 사미니계를 받았다. 이외에 서정스님이라는 비구니 스님이 있는데 중국 달마사에서 계를 받았다고 본인이 말한다. 현재 정확하게 확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텍사스주 킬린 지역에 2명이 더 있는 것으로 본지에서는 파악하고 있다.
영주권자나 시민권자가 아니지만 미국에서 삭발한 사람은 김일엽스님의 아들로 일본과 한국에서 중진 화가로 활동하던 김태신 화백이 60이 넘은 나이에 1988년 전관응스님에게 뉴욕 원각사에서 삭발식을 하여 당시 뉴욕 언론들이 크게 보도하였다. 일당스님은 현재 직지사 중암과 일본을 오가며 승려생활을 하고 있고 미국의 하와이와 뉴욕에서 작품 전시회를 매년 하고 있다. 또 현재 프린스톤대학교에서 천태를 전공하고 있는 혜민스님은 유학생으로 와 뉴욕 불광선원 휘광스님을 은사로 출가를 하였다.
한국불교가 이 땅에서 뿌리를 굳건하게 내리려면 1.5세나 2세로 언어 장애가 없고 미국사회를 잘 아는 사람들이 많이 출가하여 이들이 한국불교 최전방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열반한 스님들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머나먼 미국 땅에서 전법활동을 하다 이 세상과 인연을 다하고 승복을 입고 입적한 스님들은 8명에 이른다. 첫 번째 입적은 1990년 11월 3일 지금은 없어진 L.A. 수도사 주지 한계정스님이었다. 1973년 L.A. 달마사 초대 주지였던 계정스님은 이후 1976년 수도사를 창건하였고 입적 당시 수도사 주지였다. 두 번째 입적은 비구니 도명스님이다. 1985년 9월 뉴욕 조계사 주지로 취임한 도명스님은 보문종 스님으로 잦은 주지스님 교체로 흔들리던 조계사 주지로 취임하여 기도를 열심히 하고 절 살림을 규모있게 하여 많은 신도들이 따랐다. 그러나 도명스님은 암으로 고생하다 1995년 6월 서울로 가 치료를 받다가 8월에 입적하였다. 1979년 미국에 입국하여 1989년 6월에 L.A.에서 원명사를 개원한 비구니 원명스님은 1996년 음력 6월 13일에 입적하였다. 이어 1996년 5월 15일 뉴욕 원각사 주지 혜관스님이 입적하였다. 혜관스님은 사형인 법안스님을 도우러 1979년에 미국에 입국하였다. 이어 뉴욕 전등사 혜등스님이 1997년 4월 10일 충주 용화사에서, 1998년 연국사 혜영스님이 1998년 5월 27일 연국사에서 입적하였다. 3년에 걸쳐 뉴욕에서 매년 스님이 입적한 것이다. 이 세 스님은 1980년 초부터 약 각각 약 15-16년에 걸쳐 뉴욕불교에서 활동하면서 뉴욕불교 기초를 닦은 스님들이다.
2002년 5월 10일에는 평화사 주지로 있던 정산스님이 심장마비로 입적하였고 하와이 대원사(현 무랑사)에서 대원스님을 도와 대원사 불사를 하다가 관음사를 개원한 비구니 지법스님이 2003년 2월에 하와이 땅에서 입적하였다.
이외에 영주권이나 시민권자는 아니지만 미국과 관계있는 두 스님의 열반이 있다. 평소 "다음 생에는 미국 땅에서 태어나 출가를 하여 미국인 포교를 하고 싶다"고 말하던 일타 큰스님이 1999년 11월 29일 하와이 와불산 금강굴에서 입적하였다. 하와이 대원사 대원스님의 불사를 많이 후원하였던 전 조계종 종정 윤고암큰스님은 손 상좌 김홍선 스님이 북가주 산호세 정원사 개원식에 설법하러 공항에서 정원사로 오던 중 큰 교통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크게 다친 고암큰스님은 급히 한국으로 갔지만 곧 입적하고 말았다.
스님은 아니지만 삼보사를 창건하여 미국한국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이 한상 거사는 1984년 8월 이 세상을 별세하였다. 이 후 삼보사는 운영상의 큰 어려움을 겪었다.
재가자 역할 두드러진 미주한국불교계.
미주한국불교는 이민사회가 먼저 형성이 되고 이민사회의 필요에 의해 본국에서 스님을 초청하거나 아니면 미국을 방문하는 스님을 만나 사찰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미국사회에 먼저 정착하여 언어장애를 덜 느끼며 미국사회를 좀더 많이 아는 재가 신도들이 사찰 건립과정에 필요한 재정조달을 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뉴욕지역은 원각사를 처음 시작한 명심행 보살, 원각사 초대 신도회장을 지내고 보광선원을 열었던 이 순배 거사, 뉴욕불교진흥원을 통해 불교방송을 하고 원각사를 비롯한 사찰과 자비원을 비롯한 여러 신행단체에 재정후원을 많이 하는 조일환 거사, 카나다 토론토 불광사 개원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여러 사찰에 재정후원을 하였으며 원각사 여신도회장을 역임한 이강혜보살, 뉴욕 원각사에서 청년회장을 역임하고 뉴욕지역 여러 가지 불교행사에 적극 참여한 김연문씨 등이 있다. 시카고지역에는 초기 시카고 불교를 선도한 이장수 법사, 최근 활발한 활동으로 구정을 전후해 매년 '하정 평화통일기원 법회'를 시카고 지역의 큰 행사로 만든 임대지 거사가 있다. 켈리포니아 지역에는 카멜 삼보사를 세우고 미주한국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긴 고 이 한상 거사, 달마사, 고려사 원주를 거치면서 30년동안 불교계에 헌신한 L.A.의 대도행 보살, 오렌지카운티 지역에 정혜사, 법보선원을 세웠으며 미주불교법사회 회장을 역임한 정정달 법사, 현재 불교방송운영위원장으로 있는 이강준 법사등이 있다 이 밖에 워싱턴 DC지역 고 유대비심 보살, 포틀랜드 지역의 고 정심행 보살, 최준, 김동원 거사 디트로이트에서 활동하였고 타코마 서미사와 뉴욕 백림사 대웅전 건립에 큰 공이 있는 고 청정심 보살, 필라델피아 지역의 장영록, 박승수, 차동섭, 이범운 거사와 홍명숙보살, 텍사스주 달라스의 안학선, 조유상 법사, 하와이 차형권 법사 샌디에이고 최미자 보살, 보스톤 지역의 탁원균 박사, 김증모, 김영태 거사 마이애미 지역의 김정각성 보살 등을 비롯한 기타 여러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지금까지 미주의 불교신자들은 단체를 통한 조직적 인 활동보다는 주로 개인의 원력에 의한 활동이 많았다. 앞으로는 L.A.나 뉴욕에서 조직을 통한 움직임이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L.A.의 달마법우회, 조계종포교사단과 뉴욕의 로터스달마스쿨에 기대를 걸어본다.
미주불교는 기본적으로 스님이 부족한 상태이고 본국에서 스님들이 온다 하여도 언어장애 등으로 활동이 제약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도 재가불교인들의 활동 여하에 따라 미주한국불교 발전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수치로 본 미주불교현황
미주불교계는 사찰과 선원이 미국에 대략 100여개 카나다에 7개가 있다. 스님은 대략 140-150 명 정도가 사찰에 거주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스님이 없이 법사들이 운영하는 곳도 L.A에는. 법보선원, 법화홍통원 두 곳, 달라스 보현사, 새크라멘트 영화사, 뉴욕의 금강선원 등 여러 곳이 있고 금강경독송회는 스님들은 사찰이 아니라고 하고 독송회 회원들은 사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종단별로 보면 보문종이 3개, 진각종이 2개, 태고종 사찰이 한 개, 불승종이 한 개가 있고 불교교단 영산법화사 소속이 한 개, 종단소속이 없는 사찰도 10여개에 이른다. 나머지 80 %는 조계종단에 속한다. 여기에 출석하고 있는 신도수는 L.A.와 뉴욕지역을 기준으로 볼 때 각각 700명 내지 600명 정도의 사람만이 정기법회에 참석하고 있다.
불교신행단체는 활동력과 회원 참여 숫자를 기준으로 볼 때 L.A에는 달마법우회, 조계종 포교사단, 정토회, 해인회, 상록회 등이 꾸준한 모임과 활동을 하고 있고 언론으로는 미주불교방송과 한미불교문화TV방송이 있다. 뉴욕에는 주로 언로 기관이 많이 있다. 1989년부터 15년 동안 본지를 발행하고 있는 본사를 비롯하여, 현재 가청지역이 넓지 않아 불교방송을 중단하고 '구름걷힌 햇살'을 격월로 발행하는 뉴욕불교진흥재단, 김자원씨가 진행하는 불교방송, 곽재환씨가 사장으로 있는 뉴욕불교테레비젼방송이 있다. 또 사회봉사기관으로 한마음선원에서 운영하는 자비원이 있고 이외에도 불국사 성해스님이 1989년부터 시작한 맨하탄 퍼레이드는 이제 큰 행사가 되었는데 이 퍼레이드를 전문으로 하는 '뉴욕불교국제봉축위원회'가 있다. 본사에서는 UN/DPI-NGO 정기모임에 꾸준하게 두 사람이 참석하고 있고, 미주에 연꽃보급 운동을 하고 있는데 날로 그 호응이 커지고 있다. 또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워싱턴 D.C. 국립수생식물원에서 열리는 연꽃축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이 행사를 국제행사로 키울 예정이다. 시카고에는 불교신행회, 불교실업전문인협회, 불교연구원이 있다. 스님들의 단체로 활동력이 있는 단체는 남가주사원연합회, 서부승가회, 대한불교조계종 뉴욕불교사원연합회, 미동부승가회 등이 있다. 뉴욕불교사원연합회에서는 격월로 '뉴욕불교'를 발행하고 있다. 신행단체와 언론기관은 그 대체적으로 규모가 작고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기관으로는 동국대학교에서 운영하는 '동국로얄한의과대학'이 L.A.에 있는데 이곳에서는 불교와 관련된 교육은 없다. 대한불교조계종 신도전문 교육기관으로 도안스님이 학장으로 있는 2년제 '로메리카불교대학'이 있고 뉴욕에는 도솔법사가 지도하는 달마스쿨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한 학기에 3개월씩 1년에 두 학기 공부를 한다. 어린이 교육기관으로는 켈리포니아 주정부와 L.A. 시정부에서 정식인가를 받아 유아교육을 담당하는 연화어린이학교를 L.A. 관음사에서 운영하고 있다. 한국학교는 뉴욕 한마음선원, 뉴욕 불광선원이 있고 보스톤 서운사와 L.A. 고려사 어린이 학교가 활성화 되어 있다. 문화단체로는 뉴욕지역에서 김은희씨가 창단한 '깨달음' 극단이 있고 이명숙씨가 <수트란댄스>를 통해 범패를 무대위에 올리고 있다.
극복해야 할 문제
미주한국불교 지형은 1981년에 거의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지역이나 사찰이 개원하면은 신도들이 많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오늘 날 신도 수를 비롯하여 현지인 포교, 어린이 포교 및 청소년 포교, 봉사활동 모든 면에서 이 시기의 상황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찰의 숫자는 4배 가까이 늘어났지만 신도를 많이 확보하지 못했고 프로그램도 크게 진전된 것이 없다. 정기법회 방법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사찰운영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70% 정도가 스님 혼자서 모든 일을 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다만 스님들의 숫자와 공간확보는 20여년 전에 비해 크게 나아졌다.
그럼 현재 미주한국불교계가 직면한 극복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해 도안스님은 "가장 시급한 문제는 청정승단의 정비문제이다. 지도자인 스님들부터 신도들에게 흠집없는 모습과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계율이 느슨하고 그럭 저럭 사는 스님들이 많다. 또 스님들의 지적수준을 높이기 위해 자체적으로 교육기관을 설립하던지 미국교육기관에 나가야 한다."라고 승단정비 문제가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이와 더불어 "신도들도 교리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하는데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도안스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불교인들이 절에 부처님 보러 간다고 하지만 조형 부처님은 어느 사찰에나 다 있다. 실은 대부분의 신자들은 불상이 아니라 스님을 보고 절을 간다. 이 사실은 미주한국불교계가 처한 여러 가지 어려움은 신자들의 진정한 스승이 될 수 있는 스님들을 많이 확보하면 저절로 해결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주한국불교계는 감독기관인 종단과 종법과 종헌의 사각 지대이다. 본국에서 승려로 있다가 결혼하여 10년 이상 머리 기르고 살다가 미국에 와 슬그머니 머리 깍고 조계종 스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스님으로 있다가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조계종 스님인양 행세하는 사람도 있다. 2002년에는 신도들과 아무런 상의 없이 절을 팔아 떠나 버린 스님들도 3명이나 있었다. 이런 행위는 전체 스님들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태고종단과 진각종단 이라고 공개하면서 활동하는 사찰도 아무런 문제없이 사찰을 운영하는데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미주가 법의 사각지대이고 또 스님들의 윤리의식의 부재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는 본국 조계종단의 해외포교에 대한 종책과 의지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한국불교계가 직면한 또 하나의 문제는 L.A.와 뉴욕 양대 도시에 사찰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두 지역에 전체 사찰의 40%정도가 밀집되어 있다. 앞으로는 사찰이 들어설 때는 사찰이 없는 지역에 들어서야 한다. 본지에서 파악한 바로는 현재 세 곳 정도에 사찰이 개원해야 할 장소가 있다.
나아갈 길
불교 승가는 비구, 비구니, 남자신도, 여자신도가 모인 사부대중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국 불교계는 이제 불교집안의 모든 부분에서 신도들의 참여도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내에서 한국불교계는 스님들의 숫자도 모자라고 한국에서 온 스님들은 미국 적응에 시간이 걸린다. 현재 불교계가 나아가는 방향이나 주변 상황이 사찰운영에 있어 스님들의 일방적인 운영에서 벗어나 사부대중이 참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런 방향으로 나가려면 신도들이 믿고 의지하는 스님이 되어야 하고 신도들도 이 절 저 절 전전하지 않고 원찰을 정하여 스님과 일심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 스님과 신도들의 상호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스님들은 수행지도와 법회지도를 하고 사찰운영은 신도들이 맡아서 하는 것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방법이다.
미주의 한국사찰 역할은 이민자의 정착을 돕는 일, 정신적인 귀의처, 수행지도, Korean American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을 돕는 일 등이 될 것이다. 이러한 역할을 보면 미국의 한국불교는 본국불교와 뚜렸하게 구분되는 점이 있는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는 불교계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민 생활이 길어질수록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니다. 이민생활이 길어질수록 본국 사람들과 생각이 다르고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더구나 이곳에서 성장하는 1.5세나 2세들은 이 정체성이 큰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미국 땅에서 Korean American으로 살면서 한국인의 후손이라는 자긍심을 가지려면 한국의 언어, 역사, 문화, 철학, 풍습 등을 잘 알아야 한다. 한국적인 문화와 풍습의 원형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은 한국불교의 사찰이기 때문에 미주 땅에서 한국인의 정체성 확립에 큰 역할을 하여야 하는데도 한국어 학교를 운영하는 사찰이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현실이다. 미주한국사찰은 한국인의 핏줄을 이어 받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국의 정체성 확립 문제에 좀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첫댓글 참좋은 자료 입니다 ()
참 좋은자료 입니다. 감사합니다.
미주불교의 현실과 나아갈 길을 밝힌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