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넘기면서 깨달은 사실 중 한 가지는
내게 슬픈 웃음이 많다는 것이다
업신여기는 사람 앞에서도
증오하는 상대 앞에서도
손해를 당하면서도
어느덧 습관이 된 나의 웃음
그리하여 전철역 계단에서 웅크리고 자는 노숙자를 보면서도
해고 노동자의 부고를 읽으면서도
엉터리 심사위원의 변명을 들으면서도
실컷 울지 못한다
텔레비전의 코미디를 보면서도
화사한 벚꽃을 보면서도
놀아달라는 아이의 투정 앞에서도
실컷 웃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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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문재 시인은 1965년 충북 단양군에서 출생.
현재 안양대학교 교수이며,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박사입니다.
1991년 월간지 '문학정신'등단
저는 이 "슬픈 웃음"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이 시대의 모든 아버지 아니 모든 중년들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슬픈 웃음, 기쁜 웃음.
무엇이 다를까요?
기쁜 웃음은 자연스럽겠지만,
슬픈 웃음은 슬픔을 감추고 웃기에
그저 좋아서 웃는 줄 알겠지요.
아무도 모르지요 숨겨진 슬픔을.........
슬퍼도 웃어야 됩니다.
아무도 없을 때 슬픔을 꺼내어
"훨훨" 날려 버리면 됩니다.
어쩌면 이것이 자연스럽게 터득한
삶의 지혜인지도 모릅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합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7월의 끝에는 8월이라는 시작이 있듯이.........
크게 보면 이 세상에 끝은 없는 것 같아요.
오늘의 끝에 내일이라는 시작이 기다리듯이
올해의 끝에는 내년이라는 시작이 기다립니다.
그래서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아요.
잘가라 7월아!
어서와 8월아!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