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묘 표지판>
1942년, 중국 사천성 성도에서 일본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주민들이 방공호를 파다가 우연히 무덤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 크기가 매우 거대해 예사롭지 않은 무덤이라고 판단한 주민들은 계속 발굴하기 시작했고 발굴 결과 이 무덤은 길이가 무려 80m나 되었으며 그 안에 안치된 묘실도 15m가 넘었다. 묘실에는 12위의 역사상이 늘어서 있고 동서, 남의 3방에는 24위의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기생상이 새겨져있는데 각각의 그림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발굴 당시 왕건묘>
1961년에 이 무덤은 중국의 보호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조사 결과 이 무덤은 왕건묘로 밝혀졌다. 그러나 당시 왕건이라는 이름은 한반도에는 없었으며 오직 대륙에만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고려 태조왕건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맨 처음에 이 무덤의 지명은 왕건묘였지만 곧 이 무덤이 한국인에까지 알려지자 영릉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해서 중국은 고려 태조왕건의 이미지를 철처히 감추려 하고 그 존재를 중국의 역사에 편입시키려 하고 있다.
<맨 처음에 이 무덤의 지명은 왕건묘였지만 중국이 곧 영릉으로 바꾸어버렸다.>
하지만 역사는 결코 바뀔 수 없다. 중국땅에서 발견된 이 고려 태조왕건의 무덤 덕분에 우리는 고려가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빼박 증거에도 여전히 고려가 한반도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