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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4월11일수필연구반4강보충자료 수필문장론이해>
수필의 6수(六手)
수필 언어와 문장을 공부하는 기본자세는 6가지다. 그 6가지 원리는 다음과 같다.
1)당신만의 연장상자를 가져라.
2, 줍는 손을 가져라
3) 하이브리드를 달지마라.
4) 상목수는 못질을 하지 않는다.
5)기록의 손을 놀리지 말라.
6) 물리치료사의 손을 가져라.
이것들은 문장과 문체를 대하는 작가의 자세를 소개한 것이다
문장수련은 정법(正法) 가 활법(活法)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시경》에 “사물이 있으매 법칙이 있다”고 하였다. 글을 짓는 방법에도 법이라는 바탕이 있다. 이것이 정법이다. 좋은 문장을 지으려면 그 기본원리를 알아야 한다. 형식으로는 문법, 내용으로는 문장론이다. 그런데 그 법은 일정하지 않고 사람마다 다르고 글마다 다르다. 이것이 활법이다. 활법은 의(意)와 기(氣)로서 이루어지는데 의란 작가가 구성하려는 뜻이며 기란 개인의 고유한 문체이다. 의로서 채우고 기로써 행하고 법으로 이것들을 잘 세우면 원하는 문장을 펼칠 수 잇다. 이건창선생은 답우인론작문서(答友人論作文書)〉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릇 글을 짓는 것은 반드시 먼저 뜻을 구상해야 하는데, 뜻에는 처음과 끝이 있고 짜임새가 있게 마련이다. 앞뒤가 대략 갖추어지고 짜임새가 어느 정도 타당하게 되면 바로 붓을 내달려 이를 쓴다. 다만 단락의 연결이 서로 통하여 분명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하니, 어조사나 요긴하지 않은 글자를 쓸 겨를이 없고 속되고 저속한 말을 피할 겨를이 없다. 이것은 바른 뜻을 잃게 되어 말하고자 하는 바의 것이 글에 담기지 못할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뜻이 선 뒤에는 말을 다듬는다. 무릇 수사라는 것은 어우러지고 아름답고 깔끔하며 정밀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앞의 한 구절을 다듬을 때는 뒷구절은 생각하지 말고, 위의 한 글자를 다듬을 때는 아랫 글자를 떠올려서는 안된다. 비록 천만 언의 긴 글을 짓는 것도 한 자 한 글자를 마치 짧은 율시 짓는 것과 같이 조심조심해야 한다.
옛 문장이론은 기술적 측면인 정법(定法)보다 원리를 응용하고 운용하는 활법(活法)을 더 중시했다. 고수들이 글허게 한다는 말이다. 쓰려는 내용에 대한 주제 의식이 분명하고, 그것을 요리할 수 있는 안목이 서 있으면 글쓰기 테크닉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옛 문장이론이 법의 문제보다 이(理)나 기(氣)의 문제를 늘 우선시 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하지만 초보자는 정법부터 시작해야한다.
초보자의 정법은 문법이라는 외적 원리를 지키고 문장에서 내적 호흡을 따르는 것이다. 내적 호흡이란 제 분수에 맞는 문체, 문장, 단락 길이의 조정, 주제에 맞는 언어와 문체 선택, 문맥에 일치하는 문장의 결을 말한다. 문장은 눈으로 보아 편안하고 소리 내어 읽을 때 힘이 들지 않아야한다. 속보와 완보를 교차시키되 급발진이나 급정거나 비약이 있어서는 안된다. 상식적인 상황을 무시하거나 수사나 언술의 지표면이 달라서도 안된다.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주문이다. 좋은 구절이나 문장을 빌려오는 것은 좋으나 적절하게 바꾸어야 한다. 잘못하면 문장의 결, 어조, 흐름이 달라져서 표절과 윤색한 것이 드러난다. 직역과 번역과 번안의 차이를 알 필요가 있다.
그 다음에 자신의 기질과 개성을 한껏 펼칠 것이다.
토론 자료
1) 아래 6예문에서 위에서 말한 수필의 6수(六手)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가
2) 예문에서 작가가 각각 구사하는 정법을 바탕으로 둔 활법을 찾을 수 있는가
3) 주제와 소재와 문체간의 통일성을 찾을 수 있는가, 물론 다소 어긋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4) 각 예문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예문
1) 발톱 깎기/최민자
또깍 또깍.......
발톱 깎는 소리가 방안을 울린다. 분주한 일상, 발톱 깎는 시간만큼 오롯한 시간도 없다. 바람은 고요의 바닥을 훼치고, 창밖엔 어린 별들이 글썽거린다. 기다릴 사람도 그리운 사람도 없는 저녁, 신경은 발톱 끝에 집중되어 있다. 적막한 공간에 파종되는 소리, 소리들....... 무슨 씨앗 같기도 하고 섬세한 금은세공품 같기도 한 파적의 음향이 시간의 고즈넉한 결 위에 미세한 족적을 남기고 사라진다.
손톱은 몇 주에 한번 깎고 발톱은 몇 달에 한 번 깎는다. 손톱이 발톱보다 빨리 자라는 건 손가락이 발가락보다 부지런해서가 아니다. “손톱은 슬플 때 자라고 발톱은 기쁠 때 자란다” 던 시인의 통찰이 백번 옳다. 냄새나는 양말 속에서, 음습한 신발 속에서, 깜깜한 이불 속에서 발톱은 야금야금, 마디게 자란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각화된 편린들을 조심스럽게 쓸어 모은다. 조금 전까지는 나의 일부였으되 이제는 나와 무관해진 것들. 버림받은 것들은 매양 날카롭다. 그것들은 이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지구 어느 모퉁이에 내려앉아 소리도 없이 풍화되어 갈 것이다. 저를 버리고 돌아앉은 인정머리 없는 몸뚱이를 이따금 한 번씩은 그리워하기도 하면서.
정갈해진 발톱 위에 초록빛 페디큐어를 정성스럽게 바른다. 몸의 가장 낮은 변방, 숨죽이고 사는 것들도 가끔은 이렇듯 애초롬한 순간이 있어야 견디리. 반짝반짝. 발톱들이 빛난다. 땅 끝 마을 지붕 위 초록별들이 불을 켠다.
2) 함박눈/정목일
덕유산에서 두 해 겨울을 보낸 적이 있었다.
덕유산의 눈은 한 번 내리기만 하면, 숲처럼 내렸다. 산봉우리와 산봉우리가 어깨를 짜고 길게 뻗은 산맥 위에 호호탕탕이 쏟아졌다. 원시림처럼 무성히 내렸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두 손을 모으고 모두 고개를 숙였다. 아무도 항거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독야청청하는 나무가 있을 리 없었다. 산들도 고즈넉이 눈을 감았다.
함박눈은 실로 무서운 정복자였다. 산이고 들이고 마을이고, 순식간에 모든 것을 남김없이 차지해 버렸다. 요란한 승리의 군화소리도, 펄럭이는 깃발도 없이, 밀리고 당기는 실랑이 한 번 없이, 모든 것을 정복해 버렸다. 시시하게 선전 포고 같은 것도 없었다. 단숨에 모든 것을 압도하여 소리 없이 차지해 버렸다. 아무도 함부로 손댈 수 없이 신성해 보이던 덕유산 봉우리도, 변함없이 졸졸거리던 개울도, 울울 창창한 침엽수림도 모두 무릎을 꿇었다.
정복자들은 칼을 차지도 않았다. 승리의 함성도 군악도 없었다. 그들의 행렬은 말할 수 없이 정숙하였고, 그 모습에서는 성스러움이 가득 넘치고 있었다. 모두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악대를 앞세우고 많은 신하를 거느린 황제의 모습이 아닌, 순결하고 다정한 눈빛을 지닌 성자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표정엔 아주 범속을 떠난 것 같은 신령스러움이 맑게 은은히 넘쳐흘렀다. 그들은 말없이 바라보던 백성들의 마음도 어느새 신비롭게 까닭 모를 맑은 감동에 젖어듦을 느꼈다. 여태까지 여타의 힘으로부터 구속되고 속박 받기를 거절하여, 처절한 저항을 보여왔던 무리들도, 오히려 은근히 지배를 당하고 싶어, 알몸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그 위에 정복자들은 마치 꽃송이처럼 거룩하게 내려, 온 누리를 덮어버렸다. 고요한 혁명이었다.
무혈의 혁명이 아니라. 순백의 혁명이었다. 그들의 영토는 여인의 속살보다 더 희고 부드러운 선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초야에 옷 벗는 신부의 나신(裸身)보다 더 아름다웠다. 그 어느 누구도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지는 못하리라. 정복자는 새 헌법을 선포하고, 일시에 공화국을 소리 없이 개혁해 버렸다. 그들의 정복과 혁명은 기적이었다. 어떻게 단번에 말없이 모든 것을 하나의 순백으로 개혁해 버리는지 신기한 일이었다. 그들은 계엄령을 선포했다. 교통과 통신을 단절시키고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시켰다. 그리고, 백성들에 대해, 조용히 자신을 성찰하고 좀 정숙하라고 촉구하였다. 변명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다. 여태까지의 모든 잘못은 묻지 않고 깨끗이 묻어 버리겠다고 했다.
정복자들은 과연 위대한 힘을 지녔다. 그들의 몸에서는 피비린내도 나지 않고, 그들의 모습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티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하였다. 공정하고 지극히 평등했다. 정복자의 선정으로 말미암아 ㅔ상은 갑자기 고요해지고 순결해졌다. 그들이 백성들에게 원하는 건 외부의 껍데기가 아니라, 내부의 알맹이, 그것이었다.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정복자들의 통치는 온후하고 선량했다. 그들은 형식적으로 엄격히 자유를 통제하였으나, 정신적으로는 무한한 자유와 낭만을 부여했다. 무엇보다도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우선 정복자의 미에 감동하여, 도저히 반역을 일으킬 마음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지배 밑에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바라도록 만들어 버렸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오래 전부터 백성들이 꿈꾸어 오고, 갈구해 오던 공화국이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덕유산 산골 마을은 태고적 원시의 정적과 평화로움에 잠겨 버렸다. 눈 속에 파묻힌 초가집에서 아이들의 환희에 찬 음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농사 지어 놓고 심심하게 지내던 산골 사람들, 하나, 둘… 마을회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눈도 왜 이렇게 지독히도 많이 온담…”
넉넉히 지펴 넣은 군불에 방안은 안온하고 궁둥이가 뜨끈뜨끈하였다. 함지박에 내어 온 김이 오르는 고구마가 먹음직스럽고 동김치 무 한 조각을 잘근 씹는 맛이 새큼했다. 투박스러운 구수한 이야기가 담배 연기처럼 모락모락 퍼져 올랐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눈이 끝나고 나면 토끼 사냥을 가야겠다는 이야기에 군침이 돌았다. 모두가 다 진뜩진뜩 찰진 이야기를 그칠 줄 몰랐다.
3) 봄날, 광복동에 안기다/박양근
며칠 전 나는 봄날의 악수를 광복동에서 했다. 따스한 봄볕을 받으며 모처럼 찾아간 광복동 입구에는 황동빛 신사가 사람들을 반기고 있었다. 나는 슬쩍 그에게 윙크를 건넸다. 중절모자를 어깨 위로 들어 올린 그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속삭이듯, “렛즈 쉐이크 핸드”. 그가 내민 손에서 봄이 익는다.
봄은 포즈의 계절이다. 봄은 부활의 시즌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각자가 멋있는 포즈를 취하는 계절이라는 것이다. 냉이꽃, 복수초, 얼레지… 여린 꽃들이 앙다물었던 봉오리를 벌리고 개구리가 뒷발질로 논물을 가르고 산 꿩이 덤불에서 날아오르는 것도 봄 인사를 건네는 그들만의 포즈다.
광복동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포즈다. 두꺼운 바지로 가렸던 정강이를 드러내고 겨울 장갑을 꼈던 하얀 손이 팔랑개비질을 한다. 가로수조차 “우리 악수해요, 봄맞이 스킨십을 해요.”라고 흔들거린다. 봄의 배달꾼은 그들만이 아니다.
광복동에 들어서면 음울한 기억은 이내 잊힌다. 정오 햇살이 내려앉은 살구빛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춘흥이 차오를 정도다. 사람 사는 곳의 기운이 제일 왕성한 법. 보도블록도, 거리 간판도, 오가는 차도…. 무엇보다 이곳을 삶터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운 봄날 액자가 아닌가. 그들이 진정 튀고 돋고 뻗는 생명체들이다. 30년 전처럼, 30년 후에도.
나는 30여 년 전 봄에 부산으로 이사를 왔다. 그때 내 나이는 팔팔한 청춘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봄맞이는 광복동 주변에서 이루어졌다. 아이가 자랄 때 즐겨 찾아온 곳은 용두산 공원이었다. 그곳에 오면 비둘기가 상춘객을 반겼고 모이를 쪼기 위해 모여든 비둘기의 배 밑에서는 봄볕이 출렁거렸다. 40대에는 겨울 동안 눅진해진 책을 볕에 말리는 보수동 골목을 즐겨 돌았다. 콤콤한 헌책 냄새를 맡으며 나도 이젠 헌책이라는 슬픔을 고갈비로 삭히던 곳이 광복동이다. 50대에는 자갈치 시장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죽은 작가들의 영혼을 불러내곤 했다. 막 칼질한 곰장어를 앞에 두고 토하는 고독과 죽음과 부활…. 그때의 인생 선배들은 이젠 광복동에 나타나지 않는다. 기력이 쇠잔하였으므로, 삶의 순수성이 멸하였으므로.
예순을 넘긴 나는 간혹 광복동을 찾는다. 마지막 봄은 아니겠지만, 심춘순례(尋春巡禮)라는 말에 눈물이 흐르면 아직은 더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 마음으로 광복동 한복판에 다다르면 숲과 개울이 없어도 봄물에 젖는다.
길은 여전히 좁고 건물 높이는 고만고만하여 마치 자작나무 숲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간판조차 예쁜 새 둥지로 보인다. 바라본 길은 커다란 황룡처럼 구비 틀고 건물 사이로 올려다본 하늘은 청룡이 꿈틀거리는 모양새다. 올해는 용 띠. 흑룡이든, 청룡이든, 황룡이든, 광·복·동이라는 이름만 불러도 용 비늘이 우수수 떨어질 듯하다.
봄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봄을 만든다. 물론 젊은 시간이 흘러가버리면 모든 것이 어색하지만 어디엔가 옛 친구는 있기 마련이다.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심지어 러시아어 간판이 색동 몸매를 자랑하여도 30년 동안 제자리를 지키는 간판 하나쯤은 만날 수 있다. 그 마음을 읽은 토종 간판 서넛이 골목 안에서 푼수 얼굴을 내민다. 그건 저 멀리 지나간 봄도 여기서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과묵한 표시등이다.
이만 하면 됐다. 두 다리로 광복동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게 아닌가. 세월이 지나면 누구나 자족에 눈 뜨는 나이가 되는 법이니, 돌아가야지.
그때 포장마차 골목이 눈에 띄었다. BIFF 조끼를 걸친 억척 아줌마들이 변함없이 순대와 꼬치와 떡볶이를 팔고 있다. 10년 넘게 제자리를 지키며 인심도 함께 판다. 일인 분 값을 치렀는데 아주머니가 더 잡수시란다. 값은 이미 치렀으니 더 달랜다 한들 어찌할 거냐고. 그 덕분에 나는 광복동 인심을 먹고 또 먹었다. 다음번에는 살찐 미나리를 얹은 비빔밥 가게를 찾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어느덧 주전부리로 봄을 맞이하고픈 나이가 되었나 보다. 그렇더라도 광복동은 언제나 봄이다.
4) 꽃비린내 난다/김용옥
보라, 어느새 꽃비린내 나는 여자를 보라.
인생길 한중턱에 느닷없이 끼어들어 빛이 되어준 사랑, 사랑은 어느 순간에 성큼 다가왔다. 사랑에선 꽃비린내가 났다.
사랑은 뭔가 시적인 것을 담고 있다. 봄비가 내리는 저녁이나, 오동잎이 떨켜에서 뚝 떨어져 스걱스걱 스쳐 구르는 가을 해거름에, 간잔조롬하게 눈을 내려뜨고 그의 숨결과 내음을 살며시 들이쉬게 한다. 사랑은 깊은 우물물처럼 상당히 고전적이면서도 어린애의 살과 같아서 어느새 부드럽고 아름다워지는 여자를 보라. (한단락 략)
처녀시절의 사랑은 뿌리 없이 꺾어다 꽂은, 꽃 만발한 꽃가지 같은 것. 환하고 예쁘고 호사스러우나 뿌리 깊지 못하다. 젊을 땐 잘생기고 육체적인 사람이란 흔하다. 대신 인생에 대해서 표피적이고 어리석다. 꼭지만 틀면 쏟아지는 수돗물인 양 오래 참지 못하고 사랑의 완성인 그리움을 모른다.
그러나 삶의 환상과 좌절과 고뇌의 다리를 터덜터덜 건너 본 후 여전히 지성과 열정을 간직한다면, 그리고 마음의 작고 섬세한 부분에도 감동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면, 마음속 자석이 사랑의 쇳가루를 저절로 끌어당긴다. 힘들게 살아본 사람의 느낌, 좀 살아 봐서 한눈에 전체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힘, 그 신비로운 힘으로 사랑의 문을 연다. 사랑의 문이란 얼른 알 수 있도록 삐그덕 소리나게 열리는 문이다.
사랑은 진정 삶의 발화점이다. 사랑은 더위로 땀이 흐르는 몸의 냄새도 괘념치 않으며 남보기에 우아하거나 고상하지 않아도 괜찮다. 사랑은 이미 상당히 저속하게 아름다운 것이므로. 유치찬란하지만 진지한 진실이므로. 사랑은 풀비린내인 듯 군기난향이나 백련향을 길어 올린다. 그렇다 해도 이승의 사랑은 결코 천상의 복음이나 4차원의 형이상학 놀이가 아니다. 세상을 건너온 만큼 사랑을 잃어버리긴 쉽고, 사랑을 감지하는 천진성의 더듬이는 잘려나가 버린다. 그 무덤 같은 삶과의 결별이 사랑의 힘이다.
(중략)
그런데 그녀의 사랑은 고전적이고 느리고 자연적이어서 사랑에 알맞았다. 천박하지 않게 속되고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도 품위있게 사랑했다. 박수소리 없이도 갈채를 보냈다. 옛 동네 대장간에서 담금질과 연단으로 거듭난 무쇠칼처럼 둔탁해보이면서도 벼려진 칼날만치 예리하다. 그녀의 등에 팔을 감은 손으로 그녀의 볼을 어르는 감촉은 세월 여일하게 현실이다. 보슬비 부슬거리는 저녁 창가에선 연인의 시름에 겨운 어느 날을 돌이키며 여전히 애틋해한다. 달빛만이 흥건히 몸을 어루만져주는 밤, 오래된 영화 ‘보니 앤 클라이드’를 레드 와인 한 잔과 교감하며 감상할 때도 그 사랑은 여지없이 세월의 강을 거슬러 그녀의 가슴에 흐른다. 보라, 어느새 깊어지는 여자를 보라.
우아하고 거만한 야수처럼 그녀를 점령한 사랑. 사랑은 늘 정신적 차원의 문제이다. 늙어가면서도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진부하고 덧없기 한량없다 하겠지만, 사랑만이 인간을 존엄하게 하는 법이다.
커다란 누에마냥 풀밭에 엎드려 쉴 때, 바람에 쓸린 풀잎이 목 언저리를 간질이는 바람에도 사랑이...사랑의 느낌이... 또 다가온다. 사랑한 그 사람이여, 사랑인 그 사람이여. 그녀는 오래된 유적지의, 낡은, 깨어져 조각난 쪼가리 물건들을 어루며 찬탄하는 것일...까... 괜찮다. 지금도 그녀에겐 현실이고 진실이니까. 사랑이니까. 화면 속 책 속의 환상이 아니고 사이보그도 아니니까. 사랑은 그의 생활을 삶의 한 방편으로 만들고, 깜깜하게 그냥 살아지는 그녀를 환하게 살게 했다.
보라, 어느새 꽃비린내 머금은 여자를 보라.
-부분 생략하면서 재구성 하였음-
5) 달밤에 쥐구멍을 찾아서/월산 김기동
월산에 다시 달이 떴다. 추석 달 같지는 않으나 맑고 깨끗한 밤하늘에 별들의 축하를 받으며 떠오른 달빛이 월산 아래 우리 마을을 비춰 주었다. 공기는 벌써 차가워졌고 매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배추 잎에 묻은 찬 이슬은 제법 제 힘을 자랑하듯이 김장을 서두르게 했다. 논두렁에서 용틀임하던 볏가리는 다 제자리를 떠났고, 찢어진 허수아비의 너덜대는 소맷자락도 눈을 부라리는 먹물 그림도 힘없이 빈 논바닥만 하염없이 들여다본다. 그토록 풍요롭던 논두렁 밭두렁을 덮은 콩대들도 몇 잎 안 남은 콩잎을 힘없이 쏟아 내며 서리가 내린 들녘을 떠났다.
(한 단락 생략)
나는 아직 조씨 할아버지네 일꾼으로 그 집 일을 했다. 내가 그 집을 나올 때까지는 있는 힘을 다하여 나무를 해 놓아야 한다. 어느 날, 나는 나무를 간신히 하여 눈칫밥을 피할 만큼 짊어지고 논두렁 밭두렁을 밟고 건너오다가, 쥐가 논두렁에서 뒤뚱거리며 달아나다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쥐는 꽤 큰데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가 행동을 함께 한 것에 관심이 가서 밭두렁에 지게를 잠깐 받쳐 두고 다시 그 논두렁으로 가 보았다. 그때에 논두렁 아래 논바닥에서 10센티미터쯤 떨어진 언덕에 볍씨가 흘려진 것을 발견했다.
가만히 내려가 보니 쥐구멍인 듯한 구멍이 나 있고 그리로 쥐가 다닌 흔적이 보였다. 발로 건드렸더니 큰 쥐 한 마리가 ‘찍’ 소리를 지르며 구멍에서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달아났다. 그때에 벼 알들이 주르륵 그 구멍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옳거니! 쥐들이 겨울 양식을 준비하느라 논두렁 밭두렁에 용틀임하듯이 줄지어 쌓아 놓았던 볏가리에서 벼 이삭을 물어다가 그 구멍으로 끌고 가서 그 안에 처박아 둔 것이었다. 나는 발로 일단 그 구멍을 꾹꾹 밟아 눌러 막아 놓았다.
그날 밤 사랑방에서 벽을 향해 누워 잠을 청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달빛은 유난히도 밝은데 방바닥은 불을 많이 지펴서인지 아직도 뜨거울 때에 나는 가만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급히 구럭 하나와 바가지를 챙겨 들고 나왔다. 구럭이라야 언제 짠 것인지 쭈그러들어 버린 낡은 것이었다. 구럭은 한번 쭈그러들면 원님 셋이서도 못 당해낸다는 말이 있다. 바가지 역시 깨져서 실로 꿰맨 낡은 것이었다. 그걸 가지고 낮에 보아 두었던 그 논두렁으로 갔다.
달은 밝지만 워낙 춥고 한밤중이라 그 시간에 다니는 자는 없었다. 나만 혼자 그 논두렁을 찾아가 아까 막아 두었던 쥐구멍을 찾았다. 손으로 잘 파니 그 안에서 벼 이삭과 벼 알갱이가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을 흙과 함께 구럭에 주워 담았다. 할 수만 있으면 달빛에 비춰지는 알갱이는 모두 주워 담았다. 그것이 적지만 우리 식구에겐 한 끼 아니 두 끼는 족히 먹을 수 있는 식량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다음 쥐구멍을 찾아 논두렁을 헤맸다. 그렇게 하여 세 곳, 네 곳을 발견하고는 마찬가지로 구럭에 담았다. 쥐가 훔쳐다 감추어 놓은 양식을 나도 쥐의 창고에서 도적질을 하는 셈이었다. 쥐가 훔쳐다가 감추어 놓은 양식을 도적질한다고 생각하니 좀 부끄럽고 양반의 체면이 아니라 여겼지만 “우리 식구도 함께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할 수 없다.”라고 중얼거렸다. 당시 사랑방에서 쉽게 듣던 유행어는 “달밤에 체조하네.”라는 말이었다. 내가 그 유행어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어느 정도 찬 구럭을 들고 집으로 오는데 기분이 퍽 좋았다. 그러나 다시 사랑방에 돌아와 잠을 청하려 하는데 밖에서 쥐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찍찍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 거슬리며 마치 “이 도적놈아, 우리 양식 내놓아라.” 하고 성토하는 것만 같았다. 그 일이 있은 후에 논두렁 밭두렁을 밟고 건너다닐 때마다 버릇처럼 내 눈은 땅을 훑고 다녔다. ‘어디 쥐구멍이 없을까?’
내가 쥐의 창고를 털던 날 밤, 높이 떴던 달은 내가 도적질하는 광경을 지켜봤을 터이니 내가 하는 도적질을 협조한 것인지 나를 불쌍히 본 것인지 하여튼 보름달이 뜬 것을 보면 그때 그 생각이 문득 나곤 한다. 쥐들에게 미안하고 불쌍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쥐구멍을 턴 이차 도적질한 자니 나는 쥐를 등쳐먹은 자일까? 이를 추억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그 일이 생각나면 내 스스로가 부끄럽다. 내 고향 밤하늘에 달이 뜬 것을 생각하면 꼭 찾아오는 늦가을의 추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부분 생략하면서 재구성 하였음-
6) 나는 왜 글을 쓰는가/하정아
나는 왜 문학을 하게 되었을까. 그 고단한 작업을 왜 하게 되었을까. 운명이라기보다는 쓸쓸해서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나는 외로울 때가 많았다. 그러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런 때 독서에 빠지곤 했다. 책 속에 묻히면 온갖 시름이 접혔다. 세상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글 속의 풍부한 서정에 빠져서 현실이 주는 슬픔과 고통은 어느새 달콤한 환상이 되어 있곤 했다.
어느 날, 가슴속에서 분출되는 생각들을 억누를 수가 없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괴로운 적이 많았다. 뭔가 명확한 표현이 있을 법 한데 정확한 비유가 생각나지 않을 때, 번개처럼 스쳐지나간 영감과 그 느낌을 족집게처럼 집어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불행했다. 사고가 깊지 않고 체계적이지 못했기 때문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간결하고 명료하게 쓰고 싶었다. 가장 적은 단어로 가장 절실한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다. 기교적이고 화려한 글보다는 어떻게 하면 효과적이고 정확하게 표현할까, 고민했다. 간결한 문장에 대한 집착이 참으로 유난했다. 격조 있는 문장에 대한 갈증은 수시로 절망에 빠지게 했다.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 머리 속에서 문장을 발음한다 했다. 리듬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가 시인이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되었다. 그가 말했던 리듬은 올바른 어순과 짜임새 있는 글의 구성에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다가온 공감으로 오랫동안 행복했다.
(중략)
나는 갇힌 느낌을 주는 내 글이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런들 어떠하랴. 내 모습인 것을. 그렇다고 화려한 글, 대중의 구미에 맞는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의 글처럼 내 삶도 흐릿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내 글에 싫증이 날 때마다 글 쓰는 사람은 자신의 작품을 멸시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앙드레 모로아의 충고를 생각한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외로워서 쓴다. 외로워지면 오기가 난다. 세상을 이길 수 없다고 느낄 때마다 더 처절하게 살아야지, 결심하게 된다. 그래서 쓴다. 오기로 쓴다. 글이 사나워져도 할 수 없다. 남이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해 쓰는 글이기에 눈치 보지 않는다. 예술가나 작가를 창작에 매달리게 원인은 버려진 감정, 불안에 저항하는 반동의식이라고 시몬느 드 보봐르는 말했다. 여타의 업적을 떠나 나의 의식을 대변해 준 이 한 구절만으로도 그녀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나의 글은 문학이 지닌 고유의 속성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잘못을 저지르고 변명하고 싶을 때, 나는 글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지 않는다. 문장으로 나를 변명하는 것은 비굴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어눌한 말로 싸우거나 혹은 침묵한다. 글로 사람을 호리거나 글로 이득을 추구하고 싶지 않다. 나의 글은 그냥 순수한 글로 남아있게 하고 싶다.
나는 최후까지 글을 쓸 것이다. 글로 인하여 더욱 외로워진다해도 쓸 것이다.
-부분 생략하면서 재구성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