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의 숨은 역사유적을 찾아서 마이크로기행을 떠납니다^*^
9월이라 폭염은 지나갔지만 아직 낮기온이 30도정도되어 꽤나 더울 것이라 예상을 했지만 그래도
바람이 솔솔 불어서 기행다니기 무리가 없겠다 싶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Go Go!!ㅋ
달서구 진천역 버스정류소에서 급행8번을 타고 9개정류소(30분정도)를 간후 대1리 용흥지앞정류소에
내리서 본격적인 도보기행을 시작합니다^^
4곳 모두 서로 멀지않은 거리에 있어서 도보하이킹으로 탐방하기가 용이합니다!
(탐방코스)
대1리 용흥지앞정류소~(1km)~이양서원~(700m)~추보당~(350m)~현풍곽씨 12정려각
~(700m)~한훤당고택~(1km)~대1리용흥지건너정류소
1.이양서원(尼陽書院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대리 907-4)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2호로, 조선 세조때 청백리인 곽안방을 배향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숙종33년(1707) 사당인 청백사(淸白祠)를 건립한 뒤 서원으로 발전하였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1945년에 사당을 복원했고 1982년 동.서재를 건립하였는데, 총 8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청백사(사당),경렴당(강당),신문,읍청루(대문),고사(향사때 제수보관고) 등이다.
배치형태는 강당인 경렴당 오른쪽에 사당인 청백사가 있어 병렬형을 이루고 있다.
청백사에는 곽안방을 으뜸으로 하여 곽지운, 곽규, 곽황 네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1)이양서원 전경(평소에는 대문이 닫혀있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원거리촬영함)
2)읍청루(挹淸樓) : 서원정문
3)경렴당(景廉堂) : 유림의 회합 및 학문강론장소
4)고사(庫舍) : 향사때 제기류 보관장소
5)청백사(淸白祠) : 현풍곽씨 곽안방외 세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
6)후손들이 향사를 지낼때 드나드는 대문
7)향사를 지내는 장소
#이양서원으로 가는 진입로에 세워진 "현풍곽씨세거지" 입석
2.추보당(追報堂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삼강1길 22)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6호
솔례마을 현풍곽씨 집성촌에서 곽안방(郭安邦)의 제사를 모시기위해 지어진 제청이다.
특징은 재실과 문중강학소로서의 이중성을 갖고 있으며 종택과 제청이 함께 구성된 점으로 전통건축과 민속적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1)대문
2)담벼락 안쪽에 위치한 작은 문(포산제일문)
3)솔례정사(率禮精舍)
4)추보당 안쪽 모습(맹견들이 심하게 짖어대서 안쪽까지 들어가지 못함 ㅠㅠ)
#솔례(率禮)마을 : 예를 따르는 충효의 마을
현풍읍의 남쪽끝에 있는 마을로 원래 현풍군 마산면 지역으로 대니산 밑에 으뜸가는 큰마을이라 해서 이름붙여진 대동의 본마을로 이후 조선 세조13년(1467)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원종공신 익산군수 곽안방이 이곳에 터를 잡고 스스로 예절바른 사람이 되기위해 그리고 후손들이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뜻으로 마을이름을 솔례라 하였으며,
임진왜란을 거치며 충신,열부,효자를 다수 배출하녀 다른 집안의 귀감이 되었고 충효교육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하여 달성군내의 대표적인 현풍곽씨 세거집성촌이다.
3.현풍곽씨 12정려각(旌閭閣)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지동길 3)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9호
#정려각 : 충신,효자,열녀 등을 기리고 표창하기 위해 건립한 상징적인 건물로 내부에 정려비나 현판처럼 만든
정려기를 모시는 곳
조선 선조31년(1598)부터 솔례마을의 현풍곽씨 문중에 포상된 여각1 0려, 비각 2려를 한데 모은 정려각으로,
정려를 내릴때마다 따로 정려각을 세우던 것을 영조1년(1725)이후 현재의 자리에 모아 세웠다고 하며 6.25때
건물일부가 포격으로 무너지고 비석1기가 부서졌으나 1963년에 모두 보수하였고, 2008년 도로변에 있던 것을
현재장소로 옮겼는 바, 한 문중에서 12차례나 정려각을 받은 일은 매우 드물고도 자랑스러운 일로 그 내용은,
이조판서 안음현감 충렬공 존재 곽준, 호조정랑 곽이상, 공조정랑 곽이후, 곽이상 처 거창신씨, 유문호 처 현풍곽씨, 효자사공 곽결, 곽청, 곽형, 곽호 4형제, 별검 곽의창, 곽유창 형제, 곽재기 처 광릉 이씨, 곽홍원 처 밀양 박씨,
곽수형 처 안동 권씨, 곽내용 처 전의 이씨, 처사공 곽경성 등 16명인데 곽준과 두 아들인 곽이상, 곽이후 형제는
정유재란때 황석산성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함께 전사하여 충신,효자정려를 받았으며 곽이상의 처 거창 신씨는
이때 남편을 따라 자결하여 열부정려를 받았고 이어 곽준의 사위 유문호마저 전사하였는데 그 처인 곽준의 딸
현풍곽씨는 남편을 따라 자결하여 열부정려를 받았다. 곽재훈의 네 아들인 곽결,곽청,곽형,곽호는 임진왜란때 비슬산자락의 사효자굴에서 병든 부친을 대신해 목숨을 바쳐 효자정려를 받았다.
1)12정려각 건물로 들어가는 삼강문(三綱門)
2)현풍곽씨 12정려각 전경
3)12정려각 상세현황(현판 및 비석)
4.한훤당고택(寒喧堂古宅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지동1길 43)
한훤당 김굉필의 11대손인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를 제수하신 도정공 김정제(1724~1794)가 1779년 구지면
도동에서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지리(池里)는 서흥김씨의 동족부락으로 고택안에는 선생의 불천위 제사를 모시는
광제헌과 국령으로 건립된 가묘가 있는데, 본래 70여호의 와가로 형성하였으나 6.25전란으로 소실되고 말았고
못골 또는 지리란 명칭은 마을의 형국이 나비처럼 생겨서 마을앞에 못을 파면 세거지로서 좋을 것이라는 풍수설
에서 유래한 것이다.
#못골마을의 유래
지곡(池谷), 지리(池里), 지동(池洞)이라 불리며 정조2년 한훤당의 11세손 태보 김정제가 이주할때, 어느 지관이
마을의 형국이 나비처럼 생겨서 마을앞에 못을 파면 후손이 번창한다고 하여 못을 조성한데서 유래되었고,
서흥김씨(瑞興金氏) 집성촌으로 유명한 못골마을은 한훤당 김굉필의 종가가 자리하며 지금도 20여가구의 서흥
김씨들이 살고 있습니다.
#용흥지(龍興池)
현풍읍 대리와 지리일대에 분포하는 습지로 용이 승천한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하는 데에서 유래
1)한훤당고택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2)한훤당고택 정문
3)한훤당고택 내부전경(정면에 보이는 사랑채외 건물들은 내방객들의 휴식공간인 카페로 사용중임)
4)사랑채와 행랑채
5)카페로 사용중인 고택건물
6)장독대
7)한훤당고택 진입로앞에 있는 보호수(수령400년이 넘은 은행나무) 1982.10.29 지정(고유번호 B-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