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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도 | 감독 | 코치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
| 1982 | ![]() 김동엽 |
조창수 유남호 백기성 |
김용남 김성한 이상윤 방수원 강만식 신태중 김현재 황기선 엄평재 주동식 |
박전섭 조종규 김무종 |
김봉연 김일환 차영화 임정면 조충열 서정환 양승호 장진범 |
김우근 김종윤 김일권 김종모 김준환 송일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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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 |
![]() 김응룡 |
유남호 백기성 조창수 |
김용남 김성한 이상윤 방수원 김현재 황기선 엄평재 주동식 문희수 조도연 강만식 |
박전섭 유승안 김무종 조종규 |
김일환 차영화 양승호 장진범 임정면 조충열 서정환 김봉연 |
김준환 김종모 김일권 김종윤 송일섭 김윤환 강정남 | |||||||||||||
1983년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백넘버)
해태 타이거즈 - 1983년 한국시리즈 우승 (정규시즌 전기리그 1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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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39 김응용 |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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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김응용 감독을 영입한 타이거즈는 6월 24일 부산 구덕 경기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3-7로 졌으나 인천경기에서 2위인 삼미가 OB에게 5-6으로 역전패를 당해 남은 경기에 관계없이 전기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다. 당시 타이거즈는 장명부라고 하는 괴물 투수를 발판으로 단독선두를 질주하던 삼미와의 광주 3연전(6월 7일~9일)에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3연전을 싹쓸이해 전기리그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타이거즈가 2.5게임차의 열세를 깨부수고 선두를 탈환하는 기적을 연출한 것이다. 전기리그를 우승한 타이거즈는 후기리그에서 한 선수의 뜻밖의 사고로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바로 김봉연의 교통사고. 그의 공백은 바로 팀 전력의 누수로 이어졌으며 후기리그를 MBC 청룡에 넘겨주며 결국 숙명의 한국 시리즈를 치르게 된다. (KBO의 서종철 총재가 전기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타이거즈 선수들을 축하하며 선수단과 기념 촬영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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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B베어스에는 박철순이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에는 장명부가 있다. 그러나 타이거즈엔 이상윤이 있다. 82시즌 채 10승을 채우지 못하며 '미운 오리새끼'로 남아야 했던 그가 화려한 백조로 거듭나며 괴물투수 장명부(30승)에 이어 다승 2위(20승)를 차지, 팀의 기둥 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김용남 또한 팀 내 원년 에이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며 13승(5위)으로 이상윤의 어깨를 가볍게 해 주었다. 또한 재일동포 주동식은 비록 7승에 머물긴 했지만 빈약했던 타이거즈 마운드에 한 자리를 훌륭히 채워주며 팀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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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년 화끈한 공격야구를 선보인 타이거즈의 방망이는 83년에도 그 기세를 이어갔다. 전기리그를 마감한 시점에서 김봉연이 타점과 홈런에서 1등을 달렸으며, 타격에선 김성한이 3할3푼으로 2위를 기록하는 등 타격 전반에서 호랑이들의 이름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전기리그의 우승으로 한껏 고무된 방망이는 거포 김봉연의 교통사고로 주춤할 수 밖에 없었다. 후기리그를 제대로 활약하지 못한 탓에 김봉연은 전기리그에서 독주하다시피 했던 타점과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던 홈런왕 자리를 결국 이만수(삼성)에게 넘겨 줄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전기리그에서 타격 10위에도 들지 못했던 김종모는 후반기에만 3할7푼대의 고타율을 유지하며 최종 3할5푼으로 장효조(삼성)에 이어 타격 2위를 차지했다. 한편 김성한은 원년과 달리 타격에만 전념한 덕분으로 프로 최초 200안타를 달성하는 등 타격 전반에서 고른 활약을 펼치며 타이거즈 방망이에 무게감을 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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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윤은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좀처럼 말이 없으며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는 의식적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마운드에 섰다 하면 180도 돌변하며 놀라운 투혼을 발휘, 잔뜩 힘이 실린 쾌속구를 뿜어낸다. 그런 그의 활약 없이는 한국시리즈 우승의 드라마를 연출할 수 없었다. 82년 첫 시즌 어깨부상으로 팬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가던 이상윤은 83년 정규시즌서 20승 10패 6세이브를 거둬 팀이 전기리그를 우승하는데 커다란 공을 세웠으며, 특히 한국시리즈에서는 1승 2S를 기록, 타이거즈 우승의 최고 수훈 선수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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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른 투수력, 짜임새 있는 수비를 자랑하던MBC의 우세 속에 맞이한 '83 한국시리즈는 첫판부터 그 예상이 빗나가며 타이거즈의 일방적인 흐름 속에 진행된다. 전력상 약세라는 평가에 자극을 받은 탓일까 타이거즈는 1차전 초반부터 거세게 MBC를 몰아 세웠다. 김종모의 선제타점으로 포문을 연 타이거즈는 이후 꾸준히 추가점을 쌓아가며 낙승을 거둔다. 예상보다 손쉬운 승리를 낚은 타이거즈는 그 기세를 2차전까지 몰고 갔다. 1차전에서 화끈한 타격감을 선보였던 방망이가 2차전에서도 식을줄 모르며 폭발, 8-4로 승리를 챙긴다. 3차전에선 단연 김봉연의 활약이 눈부셨다. 김봉연은 이날 3점 홈런 포함 혼자서 5타점을 쓸어 담으며 한국시리즈 우승트로피를 호랑이 코앞까지 바짝 가져다 놓았다. 한편 2차전 선발로 나와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던 주동식은 다시 3차전 선발 투수로 등판, 5회까지 역투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고, 주동식을 구원해 마운드에 오른 이상윤은 1차전 승리투수에 이어 3차전까지 깔끔히 경기를 마무리했다. 4차전 경기에서 16안타를 치고도 단 1점에 그쳤던 타이거즈는 5차전에 다시금 주동식을 시리즈 3번째 선발로 기용하면서 승리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인다. 주동식은 기대 이상의 피칭으로 시리즈 2승째를 낚았으며, 3차전과 같이 이상윤이 그 뒤를 이어 MBC 타선을 꽁꽁 묶고 팀에 대망의 우승컵을 안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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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에게도 문호가 열려 호랑이 유니폼을 입게 된 주동식, 이미 전성기를 지난 뒤였지만 그의 활약은 프로야구 판도를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언더핸드의 노장 주동식은 절묘한 컨트롤을 바탕으로 한국시리즈에서만 2승을 기록, 12년의 일본프로 생활을 청산하고 모국에 돌아온 보람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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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투수 | 타자 | ||||||||||||||||||
| 김용남, 이상윤, 주동식 | 김무종, 김봉연, 김성한, 김일권, 김일환, 김종모 김종윤, 김준환, 서정환, 양승호, 조충열, 차영화 | ||||||||||||||||||
| 해태 타이거즈 - 1983년 한국시리즈 우승 (정규시즌 전기리그 1위) |
|---|
감독 39 김응용 |
![]() |
| 차전 | 일자 | 상대팀 | 구장 | 결과 | 승리투수 | 패전투수 | 세이브 | 관중 | 비고 | ||||||||||
| 1 | 10.15 | MBC | 광주 | 7-4 승 | 이상윤 | 오영일 | 10,905 | ||||||||||||
| 2 | 10.16 | MBC | 잠실 | 8-4 승 | 김용남 | 유종겸 | 34,996 | ||||||||||||
| 3 | 10.18 | MBC | 잠실 | 5-3 승 | 주동식 | 이광권 | 이상윤 | 18,378 | |||||||||||
| 4 | 10.19 | MBC | 잠실 | 1-1 무 | 15,953 | 연장 15회 | |||||||||||||
| 5 | 10.20 | MBC | 잠실 | 8-1 승 | 주동식 | 이원국 | 이상윤 | 18,790 | (4승 1무) | ||||||||||
![]() |
| 연도 | 방어율 | 경기 | 완투 | 완봉 | 승리 | 구원 | 패 | 세 | 홀드 |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4구 | 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 | ||
| 1983 | 2.12 | 5 | 1 | 0 | 4 | 1 | 0 | 2 | 51 | 40 | 1 | 17 | 1 | 20 | 13 | 12 | |||
![]() |
| 연도 | 타율 | 경기 | 타수 | 득점 | 안타 | 2타 | 3타 | 홈런 | 타점 | 도루 | 희타 | 희비 | 4구 | 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
| 1983 | 0.312 | 5 | 186 | 29 | 58 | 16 | 3 | 1 | 28 | 7 | 3 | 3 | 16 | 3 | 22 | 0.370 | 0.446 | ||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해태 타이거즈 로스터 명단 : 투수 3명에 , 타자 12명.... ㅠ.ㅠ
** 10월 15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1회말, 선두 타자 김일권의 안타 2번 김일환 사구, 무사 1,2루에서 김성한의 3루 앞 내야 땅볼에서 한국시리즈 전체의 흐름이 갈리게 되는 일이 생기는데, 김성한의 내야 땅볼과 함께 부러진 배트의 조각이 3루수 앞으로 튕겨나가게 되면서 3루수 이광은의 실책을 유발시킨다. 결국 무사 만루 상황, 김종모의 안타, 김무종의 내야 땅볼에 3명의 주자는 득점을 하고, 7:4 승리를 거두게 된다.
2차전은 서울로 옮겨서 잠실 원정 경기로 치르게 되었지만, 비록 청룡의 홈구장이라고 하더라도, 관중석의 절반 이상은 빨간색의 물결을 이룬 해태 타이거즈 응원단이 차지하고, 열광적인 응원을 보낸다. 3승을 먼저 거둔 해태는 4차전에서 15회까지 무승부를 이루었지만, 마지막 5차전 원정경기에서 결국 4승을 먼저 거두면서, 한국 시리즈 첫승의 업적을 이룬다. **
[1983년 팀별 성적]
|
1983년 |
경기 |
승 |
패 |
무 |
승률 |
|
해태 타이거즈 |
100 |
55 |
44 |
1 |
0.556 |
|
MBC 청룡 |
100 |
55 |
43 |
2 |
0.561 |
|
삼미 슈퍼스타즈 |
100 |
52 |
47 |
1 |
0.525 |
|
삼성 라이온즈 |
100 |
46 |
50 |
4 |
0.479 |
|
OB 베어스 |
100 |
44 |
55 |
1 |
0.444 |
|
롯데 자이언츠 |
100 |
43 |
56 |
1 |
0.434 |
< 한국프로야구 역대 개인상 수상자 명단 >
<정규시즌 MVP, 올스타, 한국시리즈 MVP, 신인상 수상자 명단>
|
연도 |
MVP |
최우수 신인 |
올스타전MVP |
한국시리즈MVP |
|
1982 |
박철순(OB,투수) |
김용희(롯데,내야수) |
김유동(OB,외야수) | |
|
1983 |
이만수(삼성,포수) |
박종훈(OB,외야수) |
신경식(OB,내야수) |
김봉연(해태,내야수) |
< 한국프로야구 역대 골든글러브 수상자 명단 >
|
연도 |
투수 |
포수 |
1루수 |
2루수 |
3루수 |
유격수 |
외야수 |
|
1983년 |
장명부-삼미 |
이만수-삼성 |
신경식-OB |
정구선-삼미 |
김용희-롯데 |
김재박-MBC |
김종모-해태 박종훈-OB 장효조-삼성 |
|
1982년 |
황태환-OB |
김용운-MBC |
김용달-MBC |
차영화-해태 |
김용희-롯데 |
오대석-삼성 |
김성관-롯데 양승관-삼미 김준환-해태 |
< 에피소드 1 > 방수원과 김응룡, 그리고 국보 선동렬의 슬라이더
방수원의 원래 이름은 방승환이었다. 방수원은 자신이 9살 때 전북 부용역에서 자신의 실수로 잃어버린 동생의 이름이었다. 학교를 다니고 야구를 하면서도 잃어버린 동생은 마음의 응어리로 남았다.
방수원은 김응룡 감독과 살가운 인연은 아니었다. 선발 투수로 힘이 있었지만 매번 2 이닝만 던진 미들맨이었다. 김응룡 감독은 미국 연수를 통해 중간 계투의 필요성을 느꼈고, 방수원이 선정된 것이었다. 그 때는 홀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연봉 협상에서도 승리와 세이브가 아니면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87시즌 경기 도중 김응룡 감독이 교체하러 나오자 2루쪽으로 뒷걸음치며 도망가는 진기한 장면을 연출했다. 한 타자만 잡으면 세이브였는데 매몰차게 교체하러 나오자 무의식적으로 도망친 것이었다. 방수원은 다음 날 이후 2군으로 내려갔다. 이 날의 수모 때문인지 김응룡 감독은 이 후 다시는 마운드에 올라오지 않았다. 방수원은 89 시즌을 마치고 옷을 벗었다.
방수원이 타이거즈에 대한 또 다른 공로는 선동렬에게 슬라이더를 전수한 일이다. 영남대 2학년 시절인 1980년 광주, 비상계엄령이 떨어져서 광주로 돌아온 방수원은 선동렬의 송정리 집에서 광주일고 후배들 5명과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5.18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고, 그는 시민군으로 오해를 받아 죽을 뻔 했다.
방수원은 "마당 평상에 앉아 딸기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계엄군이 마당으로 들이닥치더니 대검이 달린 총부리를 배에 들이댔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만 기절했다. 깨어보니 선동렬의 아버님(고 선판규씨)이 무릎을 꿇고 통사정해 살아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때 광주일고 2학년을 다니던 후배 선동렬은 안방에서 조창수 감독과 함께 있었다. 하마터면 모두 끌려가 큰 고초를 당할 뻔 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던지 방수원은 선동렬에게 슬라이더를 알려주었다. 방수원은 "당시 동렬이는 낙차 큰 슬로커브를 던졌다. 볼은 빠른데 커브보다는 살짝 휘어지는 슬라이더를 던지면 좋은 투수가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슬라이더를 가르쳤는데 동렬이가 이 후 슬라이더를 갈고 닦아 삼진용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 범타용으로 휘어지는 슬라이더를 만들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삼진보다는 볼을 적게 던져 이닝을 빨리 마치는 게 유리하니 범타를 많이 유도하라고 말을 해준 게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한국야구를 지배하고 타이거즈 왕조를 일으켜 세운 국보 선동렬의 슬라이더는 이렇게 만들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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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 1982년 해태 타이거즈 창단 및 선수 프로필 / 나에게 남은 해태 타이거즈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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