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친구가 보내준 고구마 ::
종이 상자에 담긴 고구마가 뒷 베란다에서 가을 햇볕을 받아 보라색 빛깔을 보태어 더욱 맛나게 보인다. 고구마는 손녀들의 주먹 굵기에 손가락 끝처럼 앙큼한 모양새들이다. 오래된 내 친구가 3년째 가을 마다 보내주는 고구마다. 내 친구는 경남 통영이 고향인 47년 지기로 군대에서 만났던 친구이다.
나는 1973년 6월에 육군으로 입대하여 철마산 경비부대에서 군복무를 하였다. 군복무 기간 중에 나에게는 첫 후임 병사로 1973년 년말에 철마산 경비부대로 전입 해온 병사가 이영갑 일병이었다. 내가 1976년 2월 제대할 때까지 군대근무를 함께 하였다. 서로는 휴식시간에 장기를 두기도 하였고 바둑을 두다가 감정이 상하기도 했던 허물없는 사이였다. 철마산 경비부대에서 만났던 군 친구들 중에 이영갑 친구가 유독 다시 만나고 싶었다. 젊은 시절에 군대에서 제대한다는 기쁜 마음에 연락할 주소도 나누지 않고 헤어졌음이 애석하였으나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2018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낮선 이메일 주소로 ‘친구 찾기’라는 제목의 이메일이 나의 받은 메일함에 있었다.
보낸사람: Chul
받는사람 : yhsong2000@hanmail.net
날짜: 2018년 8월 14일 화요일, 15시 21분 07초 +0900
제목: 친구 찾기
공과대학 71 김—입니다.
이영갑이라는 고향친구가
그가 군대에서 같이 근무했던
송영한을 아냐고 물어서
동문명단(2013년 제작)을 보니
메일 주소가 있어서
메일 보냅니다.
이영갑은 현재 경남 통영의
통영농협조합장으로있습니다
회신
2018년 8월 16일
김-- 동문님께,
김 동문님의 주선으로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이영갑 친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영갑 친구 또한 저를 찾았다니 '이심 전심'의
마음이 통하였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이 20대 초, 1973년에 군에서 만나 1976년에 헤어졌던 친구들이 42년의 세월이 지난 2018년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이는 잘 발달된 정보기술 덕이기도 하지만 서로간의 인간적인 관심과 간절함이 이심전심으로 통했던 것이리라.
그후 몇 번의 전화와 교신을 하고 10월에 곧장 친구를 찾아서 한반도의 남쪽 바닷가의 통영으로 가을 여행길에 올랐다. 잔뜩 들던 남편의 모습이 신기했던지 집사람이 나를 놀려준다.
“이영갑 친구 만나는 것이 그렇게 좋으냐?”
동서울터미널에서 통영까지 고속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옛적에는 통영은 한반도의 남쪽 끝에 놓여있는 교통 오지 중의 한 고장이었으나, 이제는 경부고속도로, 대진고속도로 그리고 진통고속도로로 서로 연결되고 통하여 고속버스로 4시간 10분이면 도달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집사람과 함께하는 가을여행 길이 상큼했다. 고속버스는 잘 익은 노란 나락들판을 가로 지르고 붉은 단풍 숲을 헤치고 갯내음이 넘실대는 한반도의 남쪽 바닷가로 날쌔게 달려 통영에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친구와의 약속시간까지는 여유 시간이 있었다. 집사람과 통영의 여기저기 볼만한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통영은 내가 거제도의 조선소 건설에 참여했을 때(1978년~1983년) 간혹 들렀던 이웃도시이지만 오랜만에 방문한 나에게는 이름부터 충무에서 옛 이름인 통영으로 바뀌었고, 남해의 다도해를 멀찌감치 떨어져서 굽어 볼 수 있는 미륵도의 미륵산(458m)에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었다. 미륵산 케이블카는 미륵산 봉우리에 오르는 관광객들에게 시간 절약 등 편의를 제공하지만, 집사람과 산길을 오르는 산책의 기쁨과 옹기종기 모여 앉은 다도해 섬들을 찬찬히 감상할 기회를 앗아갔다.
우리들은 발길을 박경리 선생님의 기념관으로 돌렸다. 통영은 선생님의 고향마을이고 또한 소설 “김 약국의 딸들”의 배경 마을이다.
박경리 선생님의 유고 시 ‘삶’이 기념관입구 비석에 새겨져 있다. ‘소쩍새, 뻐꾸기, 고들빼기 꽃, 벌 그리고 달과 해 등의 자연이 자연 속에서 조화로운 삶을 이룬 모습이 찬란하다.’라는 선생님의 시어에 잔잔한 감동을 받아 가을 햇빛에 내 두 눈은 반짝였다.
삶 - 박경리
대개
소쩍새는 밤에 울고
뻐꾸기는 낮에 우는 것 같다
풀 뽑는 언덕에
노오란 고들빼기꽃
파고드는 벌 한 마리
애닮게 우는 소쩍새야
한가롭게 우는 뻐꾸기
모두 한 목숨인 것을
미친 듯 꿀 찾는 벌아
간지럽다는 고들빼기꽃
모두 한 목숨인 것을
달 지고 해 뜨고
비 오고 바람 불고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곳
허허롭지만 따뜻하구나
슬픔도 기쁨도 왜 이리 찬란한가
42년의 세월이 지나 서로가 노년기에 접어 두 눈은 침침하였으나 멀리서 서로를 금방 알아보았다. 이영갑 친구는 나를 “송 고참님, 오랜만입니다”이라고 불렀고 나는 그를 “이 조합장님, 건강하시지요?”라고 반가운 포옹과 악수를 나누었다. 사람들의 목소리 기억력이 뛰어나고 민감한 나는 이영갑 친구의 목소리를 인사말로 확인한 후에 곧 자주 만났던 친구들처럼 철마산 군대의 옛이야기로 수다의 꽃을 피웠다. 집사람도 평소와는 달리 남편이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정답게 나누는데 관심과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어느 가을밤에 철마산 화전마을로 전개했던 ‘야간 비상출동 작전’과 그 작전 중에 화전마을에서 내놓았던 ‘철마산 고구마’ 이야기로 절정을 이루었다.
당시에는 철마산에 화전마을이 있었다. 화전마을에 간첩출몰 등 비상 상황 발생 시에는 횃불을 밝혀서 인근의 군부대와 연락하기로 약정이 되어 있었다. 어느 가을 날 깊은 밤에, 당직 사령관이 ‘철마산 화전마을에 횃불이 올랐다! 출동 명령이다!’ 라면서 비상벨을 울렸다. 이영갑 친구는 비상출동 요원들 중에서 무전 상병이었고 본인은 선임 병장이었다.
한밤중에 비상출동명령을 받은 우리대원들은 간첩이 잠입했을 수도 있는 철마산 화전마을까지 긴장된 상태에서 돌파해야만 했다. 야간 산행 길에서 밤새들의 울음소리와 산짐승들의 눈빛에 놀라서 사격자세를 몇 번이나 취하기도하고 반딧불이들의 불빛에도 허리를 낮추었다. 마침내 철마산 화전마을에 도착하였다.
맑은 하늘에서 가을 별들이 쏟아 내리는 화전마을은 너무나도 고요하여 금방이라도 간첩들이 튀어 나올 듯 긴장 되었다. 화전마을의 움막집을 실탄을 장전한 상태로 경계하면서 수색하였다. 화전마을 사람들은 갑작스런 무장군인들의 출현에 오히려 놀랬으나, 곧 긴장된 군인들에게 맑은 가을밤에는 별들이 횃불처럼 크게 보일 때가 있다면서 군인들을 안심 시켜주었다. 마을 아낙네들은 잠시만에 고구마를 삶아 내놓았다. 그때 먹었던 그 고구마, 철마산 고구마가 내 일생 중에 제일 맛있는 고구마였다.
우리들이 철마산 고구마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 후, 오래된 내 친구는 해마다 가을이면 직접 재배하고 수확한 통영고구마를 나에게 보내준다. 올 가을에도 내 친구가 보내준 고구마를 이웃사람들과 나누면서 내 친구, 농민 이영갑 친구를 자랑하였다.
이제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고구마는, 그 철마산 고구마가 아니고, 47년 지기 내 친구가 보내 준 통영고구마이다.
2020년 11월 15일
송 영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