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2일
제목 끝 날까지 예수님을 붙잡으십시오
본문 히10:19-2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큰 은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받으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길에서 끝까지 예수님을 붙잡는 법을 배울 것입니다.
끝날까지 예수님만 붙잡으십시오
23절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으라.”라고 합니다.
인생에 주어진 최대의 숙제는 죄를 벗고 하나님께로 나가는 문제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두꺼운 휘장으로 막혀 있습니다. 구약 시대엔 하나님께 나아가면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대제사장만이 일 년 한 번씩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20절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새로운 산 길을 여셨다고 했습니다. 20절하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라고 하므로 휘장을 그리스도의 몸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자기 몸을 찢기실 때 휘장이 찢어지므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의 누리는 지고한 특권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림은 생명 길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새롭고 산 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으로 걷어낸 휘장을 지나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음의 길을 벗어나 생명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나를 대신 돌아가신 예수님만 믿고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을 때 구원과 소망이 있고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예수님을 놓치면 모든 것을 잃은 자가 됩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얻으면 고후6:9-10의 말씀처럼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우리가 살아 있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될 것입니다. 세상이 혼란하고 삶이 힘들어도 예수님을 붙잡으면 밝은 내일이 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생명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만 붙잡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서로 돌아보고 격려하십시오
두 번째 가르침은 서로 돌아보고 격려하라고 합니다. 돌봄과 격려가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야만 하는 미완성의 존재입니다. 나 혼자 살 수 없으니 서로를 기대며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사람 “인(人)”는 두 개의 막대기가 서로를 기댄 형태입니다.
교회 역시 혼자서 이루어갈 수 없습니다. 교회를 몸으로 표현함이 어찌나 적절한지 모릅니다. 여러 지체가 어우러져서 한 몸을 완성합니다. 지체들끼리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구조입니다. 강한 지체는 약한 지체를 보호해줍니다. 약한 장기들은 단단한 갈비뼈의 보호를 받습니다. 약한 지체를 돕는 일이 자신에게도 유익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이 점을 간파하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고 말합니다. 서로 돌아보라는 말의 원어의 뜻은 소극적이 아니라, 진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돌보라는 뜻입니다. 돌아보라는 말은 히3:1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라는 말에서 나온 깊이 생각하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서로를 돌보는 일에 깊은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한두 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일상이어야 합니다.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일은 아름답습니다. 작은 친절로 사랑을 표현해 보십시오. 이웃과 형제에게 따뜻한 말로 격려해 주십시오. 교회 공동체에서 서로 격려하면 피차 큰 위로를 얻게 될 것입니다. 격려는 사랑과 선행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것입니다.
서로 격려하려면 모여야 합니다. 만나야 격려해 줄 수 있습니다. 이 서신이 기록될 때는 구약과 신약의 교체하던 과도기라서 성전에서의 모임에 비하여 가정집에서 모이는 교회 모임은 가벼워 보임으로 소홀히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대한 이해가 풍성하지 못한 때여서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이는 일을 힘쓰라고 당부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부탁합니다. 서로 돌아보십시오. 재림의 날이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세상적인 것들을 더 사랑할 것입니다. 그런 때일수록 모이는 데 힘을 쓰고 서로 돌아보며 격려가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 격려가 필요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누구를 격려하겠습니까? 교사, 찬양대원, 김장과 호박죽을 끓인 일, 운전하시는 분들을 격려해 주십시오.
부부간에도 서로 격려하고, 부자간에도 그렇게 하십시오. 직장에서도 동료를 격려해 보세요. 택배원, 미화원, 수위 등 열심히 사는 이웃들에게도 그렇게 하시면 더욱 힘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격려할 때 주님은 자신에게 한 일로 여겨주십니다. 그 일을 주께서 기억해 주시고, 더 큰 격려를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믿음에서 떠나지 마십시오
배교하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26절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라고 합니다. 진리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는 지식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는 지식이 가장 완벽한 지식이며, 고상한 지식입니다. 이렇게 분명한 구원의 도리를 버리고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할 길이 없습니다. 고의로 믿음의 도리를 버리면 다른 속죄의 길이 없습니다. 27절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버린 자는 최후의 심판 날 맹렬히 타오르는 지옥 불에 떨어져 영원토록 고통 하게 될 것입니다.
28-29절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법을 어긴 자도 가차 없이 형벌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하고 배신하는 일은 히6:6에서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못 박아 현저하게 욕을 보임이라.”라고 합니다.
배교는 그리스도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중대한 죄입니다. 새 언약의 보증인 그리스도의 보혈을 모독하는 큰 악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누리는 죄 사함과 영생의 복을 부인하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부인하는 것은 성령님을 훼방하는 일이어서 용서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거절하는 자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30절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31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들어 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배교자는 없습니다.
배교하지 않도록 기도하여 은혜를 구하십시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성도와 교통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십시오. 믿음을 보배처럼 간수 하십시오. 혀가 굳어지고 심장이 멈추는 순간까지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결론/배교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성공자입니다. 끝날까지 예수님을 붙잡으십시오. 그분만이 우리의 길, 진리, 생명이십니다. 믿음의 끝에는 나를 위해 예비 된 영원한 생명과 하늘의 소망이 있음을 믿고 예수만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