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시를 품은 사마귀 / 한재영
나는 사마귀, 오늘도 종착지를 향해 가고 있어.
거미줄에 걸리거나 참새에게 잡히거나
개구리의 혀에 붙거나 하면서
나의 종착지는 물이 흐르는 계곡
언제 어디서든 그곳을 만날 수 있지.
나는 지금도 내 종착지를 찾아 걷고 있어.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
그동안 먹은 모기들 중에
연가시의 유충이 있었나봐.
내 가슴에서 연가시의 유충이 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미 나의 종착지를 알게 되었지.
내 종착지가 죽음이라는 것을 말이야.
언제라도 꿈틀거릴 것 같은
뱃속의 연가시가 날 지배하고 있어.
연가시는 내 삶의 목표를 만들지.
목표는 끊임없이 나를 움직이게 해.
목표에 영양을 빼앗겨 말라버린 몸뚱이가
자꾸만 죽음의 계곡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
그렇게 나는 내 발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어.
어느새 저기 보이는 계곡물이
나의 마지막 모습을 기다리고 있어.
그동안 열심히 잡아먹은 모기와
열심히 나를 잡아먹으려던 거미와
풀 속 어딘가에서 크고 있을 나의 자식들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거야.
나는 이곳 계곡물 속에서 내 결말을 맞이하겠어.
삶의 마지막 장소가 된 이 계곡물 속에서
그동안 내가 이룬 것을 다 해방시키겠어.
조금 있으면 연가시가 내 가슴을 뚫고
계곡물 속으로 빠져나오겠지. 그렇게
나는 생명을 다 하겠지. 지금 나는 편안해.
저 연가시 좀 봐. 다음 세대를 위해
차가운 물속에 제 몸을 웅크리고 있는 놈 말이야.
* 창작노트 : 삶의 목표,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연가시가 기생해 계곡물로 향하는 사마귀로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