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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강은 낙동강을 이루는 가장 긴 강줄기인 남강(186km)의 3대지류중 임천강(56km),덕천강(52km)에 이은 양천 50km이다.
양천 최장 발원지는 경남 합천군 쌍백면 대곡리 성현산 북쪽 계곡이며,원(源) 발원지는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쌍백면 백역리의 금곡산 서쪽 봉이다.
발원지에서 흘러온 물은 쌍백면을 지나서 삼가면-산청군 생비량면-단성면 신안면(원지)까지 흘러들게 된다.
강이 흐르는 곳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마을은 조선시대 실천 성리학을 강조하신 남명 조식 선생께서 태어 나신곳 이기도
하고 ...
갈길도 멀고 찾아봐야 할곳이 있으니 해 빠질 무렵까지 부지런히 걸음해야 할듯하다.
이른 새벽 자가용으로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로 이동후 지난날 걷던 남강 지맥길로 걸음해 본다.
전날 비가 조금내려 촉촉한 산길과 낙엽이 가득한 산길이 정겹게 이어지며 1시간 가량 천천이 걸음하니 성현산을
알리는 작은 푯말이 나타난다.
남강은 백두대간 남 덕유산(봉황산)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경남 함양군 서상리 방향따라 남쪽으로 흐르며
함양군 유림면에서 지리산 백두대간길의 고리봉에서 흘러온 임천강과 합류한뒤, 산청군 신안면 원지에서 합천땅에서
흘러온 양천을 합류 시킨뒤, 남강댐에서 지리산 중봉 조개골에서 흘러온 덕천강을 만나게 된다.
남강은 다시 진주시에서 북동으로 방향을 틀어 낙남정맥 고성군 대가면의 대곡산에서 흘러온 영천강을 합류시킨뒤 멀리
경남 의령군 성산면과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하게 되는 유역면적 3467.52 km² 길이 186.3km로
남한에서 낙동강.한강 북한강.금강,섬진강에 이어 6번째로 긴강으로 알려지게 된다.
남강을 이루게 하는 산길로는 기존의 진양기맥(156.8km)이 있지만 남덕유-한우산까지 107km 한우산에서 이어지는
우봉지맥길 남강과 낙동강 합수점까지(30,6km)도상거리 137km가 남강을 이루는 온전한 산길 이다.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을 만나 끝맺음 한다는 산자분수령에 의해서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그곳까지 산길 137km,
물길 186.3km, 흘러 경남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와 경남 함양군 대산면 장암리 사이에서 낙동강과 만나며 남강이란 이름을 벗어 두고 낙동강이란 이름으로 흐르게 된다.
남강지맥길의 성현산에서
양천을 감싸고 흐르는 산줄기로는
서쪽으로는 남강 지맥길의 소룡산 갈림길에서 정수산-둔철산을 지나 적벽산까지
그리고 동쪽으로는 자굴산에서 남진하여 오다가 집현산에서 서쪽 엄혜산 길로 가야한다.
기존의 진양 기맥은 남강을 이루는 온전한 마루금도 아니며 양천 물줄기를 감싸 않은 마루금도 아니다.
지나간 경로
강길 42개째 누적거리 5,105km
우리나라에 크고 작은 강길은 모두 6만 2천km 조금 넘고
남,북한의 이름있는 강 길이 2만 7천km(실거리는 3만 km정도)
남한의 이름있는 강은 모두 100개 실거리 8천 키로 쪼매 넘는다.
앞으로 남은 거리 대략 3천 km 남았으니 올해안에 반골빙 들어야 마칠듯
성현산에서 곧장 내려가면 급경사 지역이 나오고 그옆을 잠시 우회해서
잡목 투성이의 계곡 방향따라 진행한다
몇번 넘어지고 자빠지는걸 아무도 본사람이 없어 다행이라
내려가야 할 길의 한실 저수지와 합천군 쌍백면 대곡마을 좌측 멀리 철죽으로 유명한 황매산과 월여산-감악산
그앞으로 허굴과 금성 그리고 악견산이 자리하고
우측으로 합천호의 운해가 보이고 그넘어로 오도산 방향의 산들이 보인다.
황매산에서 좌측은 남강을 이루는 양천이며 반대편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낙동강 지류인 황강 물줄기이다.
두 물줄기는 산능선을 사이에 두고 흐르지만 어디로 흘러가던 결국 낙동강을 만나 하나가 된다.
온통 칡덩쿨이라 진행에 어려움이 많고 전날 비가와서 많이 미끄러운 편이다.
강을 이루게 하는 발원지길은 대부분 칡덩쿨이나 잡목 그리고 너덜길을 이루는데
이곳 역시 예외는 아닌듯 온통 칡덜쿨과 너덜지대로 이루어져있다.
갈 길은 먼데 이녀석들이 가지 말라며 붙잡고 놓지 않는다.
뚫고 나오기 무지 힘이들어
잠시 서서 운기조식 하고
어른 키를 훌쩍 넘는 칡덩쿨
멀리 거창의 월여산과 감악산 방향의 산들과 그앞으로 금성산과 악견산이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 들어온다.
내려온길
아직까지 이렇다 할 물이 흘러 나오는곳은 보이지 않고 이끼만 보인다.
중국집 잠뽕을 시키면 나오는 그런 버섯 아닌가.(목이버섯)
내것이 아니기에 사진만 한장 찍고
계곡따라 한참 내려오다 보니 바위 틈에서 물이 흘러 나온다.
성현산 북쪽 계곡에서 발원한 물이 쌍백면 대곡마을을 지나며 대곡천이라 이름으로 흐르게 되고
이 물이 흘러 합천땅을 지나고 산청군을 지나 남강을 이루게 되지만 물이 얼마나 깨끗하게 흐를지는 좀더 내려 가봐야 알듯
아랫 마을 대곡리에서 농사 짓던 손바닥 많한 묵은 밭을 지나
대곡마을의 한실 저수지
한실 저수지를 내려가다 보니 댕댕이 짖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리 봐도 사람이 사는 집이 없는데...
배낭에 든 오징어 한마리 꺼내들고 100m를 올라 가보니
이녀석과 또 다른 댕댕이 녀석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며 아무것도 없는 밭을 지킨다고 있다.
개 집에는 개 사료가 조금 남아있고 개 앞에 보이는 물 그릇에는 파란 이끼가 자란다.
사람이 얼마나 그립고 반가 웠으면 낯선이에게 꼬리를 흔들고 주위를 빙빙 돈다.
비록 마른 오징어지만 먹으라며 손을 내미니 손부터 핧아 반가움을 표시하고
오징어 반쪽을 먹기 좋게 갈기갈기 찢어 주고 ...
불쌍한 댕댕이
오래 살다보면 좋은날 올테니 잘 지키라며 발길을 돌려 마을로 내려오니 마을에서 대략 700m지점이다.
한실 저수지
저수지 옆 대나무길
한실 저수지에서 흐르는 도랑 물은 이곳 대곡마을 배수로를 지나 흐르며
대곡 마을의 돌 담장
처음으로 만나는 양천 발원지 첫 동네 대곡마을의 도랑 모습은 이렇다.
이런 모습보면 오늘 게임은 끝난거나 다름 없는데
발원지에서 불과 2km떨어진 대곡마을
내려 가는길은 말할 것도 없을것 같고
지나온 강가
대곡마을에서 장마때 떠 내려온 비닐과 쓰레기
비닐과 쓰레기 소각한곳이 많고
대곡마을을 지나 쌍백면 육리마을 앞
곳곳에 폐비닐이라...
전날 비가와서 물이 다소 흙탕물이라 하더라도 강가에 버려진 비닐은 지난번 성주의 백천 강가의 폐비닐과 쌍벽을 이룬다.
하지만 성주의 백천은 쓰레기만 많을뿐 물은 이곳보다 깨끗하다
장마때 떠 내려온 폐비닐과 물이 더럽다면 그건 인근 주민들 잘못인데
대부분의 지역 주민들은 외지인이 와서 버린다고 한다.
외지인들이 이런 곳까지 와서 쓰레기 버리고 소각 하지는 않을텐데...
고구마,조개껍질 그외 각종 쓰레기 수십종이 불에 그을려있다.
더럽다 더러워
외부인 쓰레기 불법 투기 금지
분리수거 철저
벌금 100만원
지랄하네 지랄을 해...
외부인 누가 버린다고
축사에서 나온 소똥 거름을 비닐로 덮어 두고 폐타이어로 눌러 놓았으나
드러운 물은 강으로 흘러든다.
쌍백면 평구마을 앞
지나는 동네 어르신께
-어르신 강가에 쓰레기 왜 그리 많이 버렷어요?- 하니
"우리가 그런게 아니고 강물에 떠내려 왔단다"
위의 사진을 보여 드리며 -이건 강물에 떠내려온게 아니고 누군가 고의로 버린건데요?
"우리동네 사람은 아니고 외지인이 버리고 갔다"고 하신다
갑자기 화가 나서 -어르신 동네분들 인간성이 이곳 더러운 도랑물 보다 더 더러운데 강 좀 깨끗하게 하세요! 하니
"안 들린다"며 가버리신다
하는수 없이 쌍백면 환경과에 전화를 해서 "대곡천 강가에 쓰레기며 불법 소각한거 단속 좀 하시고 쓰레기 언제 치울거
냐!"며 하니
쌍백면에 예산이 없어 아무것도 못한다며 빠른시일내 예산 확보해서 치우겠다는 말씀만 하신다.
예산이 없으면 동네 이장들 면사무소에 불러 놓고 불법 소각이며 자기 마을앞 강가에 걸려있는 폐비닐은 의무적으로
치우게 해야 하는데 합천군 쌍백면 대곡리- 육리- 평구마을분들 참 대단한 마을인건 틀림없다.
성현산 서,남쪽에서 흘러온 대현천 물이 대곡천에 합류 하는곳
최장 발원지 성현산에서 흘러온 대곡천과 원(源) 발원지 금곡산에서 흘러온 양천이 만나는곳
두 물이 이곳에서 만나기까지 대략 2km 정도 차이가 나며 성현산에서 흘러온 대곡천이 조금 더 길게 흘러왔다
양천을 알리는 간판
멀리 한우산과 자굴산이 보인다.
지저분한 쌍백면을 지나서 같은 합천군이지만 쌍백면과 너무나 다른 삼가면에 들어오고 부터 강가로
폐비닐은 없어진다.
아마도 위에서 떠내려 온것 모두 수거해서 버린듯 하다.
한우 고기로 유명한 삼가면에 들어오고 부터 마을에서 강가로 진입하는곳은 녹색 철 구조물 휀스를 만들어 두었다
이렇게 해놓은곳은 쓰레기가 보이지 않고 불법 소각한곳도 찾아 볼래야 볼 수 없다.
지맥길의 산성산과 한우산이 높게 보인다.
다른강에 비해 진흙으로 이루어진 강이라 물이 깨끗하게 보이지 않고
삼가면에서 강가에 설치해둔 철 구조물 휀스가 길게 자리한다.
멀리 자굴산이 보이지만 외초천은 산성산과 한우산에서 흘러온 물이 삼가면에서 양천으로 흘러들게 된다.
멀리 산성산과 한우산 그리고 자굴산 방향
물속으로 녹색 이끼가 자라고
물 위로도 녹색 이끼가 떠내려와서 수중보에 막혀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여름이라면 어떨지 ...
한우산 서,남쪽 계곡과 자굴산 방향에서 흘러온 신전천이 삼가면에서 양천에 합류하는곳
삼사면의 3,1운동 기념탑
정미 의병 전쟁때인 1907년1909년(을사조약1905년 이후)삼가 의병단이 산청 거창 안의 함양 등지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경찰에 맞서 의병전쟁을 벌여 의병 16명이 순국하고 9명이 옥고를 치렀다.
10년뒤 1919년 음력 2월 17일,22일 삼가장날 2차례 삼가장터에서 3만명이 참여하여 만세운동을 하여 40명 순국,150명 부상
50명이 옥고를 치뤄 대한민국에서 가장 격렬하게 일어난 시위였으며 그당시 일본 경찰은 "가장 격렬하고 악질적 시위"라고
했다고 한다.
삼가면에 자리하는 이순신 백의 종군길
삼가면 대장간 앞을 지나며
쇠 다듬는 소리가 들려 안을 살펴보니
가게 주인 어르신께서 쇠를 두두리는 모습이 보인다.
삼가면을 지나며 멀리 삼성산과 한우산이 보이고
지나는길에 당집에 들러 천원짜리 몇장 올려놓고 회원님들의 안전산행을 기원 드려 본다.
"올 한해도 안전 산행하게 해 주십시요" 라며...
이순신 백의 종군길
이제부터 길이 좋아 속도를 좀 내보기로 하고
강길은 지도를 빨리 보고 외워야 하는 길이다.
자칫해서 반대편으로 가면 길은 없어지고 물을 건너거나 산으로 돌아서 가야한다.
가끔 지도나 트랙을 올려 달라는 분들도 계시지만 강 길이나 바다 해안길은 트랙이 필요없다.
해안길은 물때 시간이 맞지 않으면 선답자의 트랙이 필요없고
강길 역시 계절에 따라 물 깊이가 다르기에 ...
제가 간길로 가다보면 아무것도 못할 수 있으니
바다로 간다면 조수간만의 차를 알려주는 물때시간표를 알아야 하고
강으로 간다면 여름보다 겨울에 가는게 조금 편하다는것만 ...
삼가면 합판천이 양천에 합수되는 지점
두물을 가두는 수중보가 길게 설치되어 있으며 합판천의 물은 진흙탕물이다.
남명 조식 선생의 외가 동네의 절벽
이무기가 물속 어딘가에서 스르르 ... 답답한 숨을 참으며 헤엄칠것 같은 모습이다.
외토리 토동골
함천군 삼가면 외토리 마을 남명 조식선생 생가
조선 중기때의 학자인 남명 조식(1501년-1572년) 연산군 7년 6월 이곳 외가(외토리 토동골)에서 태어났다
선생의 본가는 삼가면 판현이었지만 닭의해에 태어난 아기는 자라서 현인이 된다는 풍수설,혹은 예언 때문인지
선생이 태어나던날 우물에서 무지개가 빛을 뻗으며 온방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조선 중기 경상도 상류의 퇴계 이황과 더불어 영남 유림의 쌍벽을 이룬 조식선생은 특별히 의(義)와 경(敬)을 존중하고
배운것을 실천하는 선비 정신을 강조 하셨다.
퇴계선생:정치 기간은 짧았지만 말과 행동 하나가 당대 정치에 영향을 주었으며,주리학(주자의 성리학)을 이룬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 셨으며 인품이 자상 하여 많은 선비들의 귀감이 되었고 특히 가족 사랑이 지극 하셨던분
공부를 잘하고 말고 보다 가족 사랑이 지극하셨던 퇴계선생을 존경하는 편이며 선생의 제자로는 조선 5대 명제상이셨던
서애 류성룡 대감이 있다
조식선생:평생을 처사(지방 말단 공무원격)로 의리와 지조를 강조 하셨으며 주관이 뚜렸하고 올곧은 분
두분은 같은 해에 태어난 학자셨지만 서로 만난적은 없으셨다.공부하는 방법또한 제각각 그리고 퇴계선생은 관직 생할을
하면서 학문 연구를 하셨고 남명 선생은 벼슬은 하지 않고 오직 실천하는 공부만 ...
선생의 제자로는 임진왜란때 의병장이였던 곽재우가 있다.
조식 선생 생가앞 계단아래 자리잡은 개불알꽃
예전에 조식 선생의 생가터가 일부 남아 있었지만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허물어지고
폐허로 남아있던걸 새롭게 단장한 모습
조식 선생 생가터에 자리잡은 건물
조식 선생의 흔적이 전혀 없어 보는이로 하여금 발길을 돌리게 만든다.
어느집 담벼락 처마밑에 고이 모셔둔 나무 사다리 부부
요즘은 이녀석들 보기 귀한 물건인데
길바닥에 둔건 그나마 사용 하였는듯 하다.
외토리 마을앞
조식 선생 외가 제실(祭室)과 옆에 용연사가 있다.
용연사
남명 조식 선생의 용암서원과 뇌룡정이 있는곳
남명 조식 선생
잠시 서서 읽어보다가 눈이 아파서 ...
명종(1555년)임금께서 조식 선생의 사직 상소문 다 읽으셨는지 알길 없으나
조매만 읽다가 "알았다" 그래라!~~하셨을듯...
그냥 짧게 "내 단성 현감 못한다 전해"라 하면 얼마나 좋았을꼬
용암서원은 조선말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 졌으며 2007년에 복원한 건물이다.
용암서원은 삼가면 인근의 유림들이 조식 선생을 존모하여 향사 하면서 강학 할동을 하셨던곳이다.
현실 정치에 누구보다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날카롭게 비판 하셨으니...
조선말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서원은 학문을 닦고 배우던 공간이었으나 서원이 많아 지면서 자연스레 그 폐단이 이어진다.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유지하려는 수단과 세력을 확대 형성하려는 의도가 앞서 서원제도는 폐단을 낳기 시작하고
학연으로 맺어진 붕당(정치 집단)은 각자의 서원 중심으로 분활되어, 여론을 형성 하면서 중앙에 진출한 자기세력 관료를
통하여 반영 시켰다.
개인의 명예를 세우는데 급급 하였으며 타당을 배척하고 헐뜯는데 열중하다 보니 선열들의 가르침은 뒷전이고
당쟁만 일삼아 국정을 파탄으로 몰아 넣는다.
서원이란 이름은 처음과 다르게 교육에서 붕당의 거점으로 변질 하였고
서원의 주인으로 행세하던 양반,유생들은 대부분 하는일 없이 서원의 재산을 독식 하거나
백성들은 자진해서 서원의 노비가 되므로써 나라의 구역을 피하거나
어딜가나 있기 마련인 상태 안좋은 팔자걸음의 양반들이 고을을 휩쓸고 다니거나
그리고 무엇보다 서원은 세금이 없다보니 특권을 남용 하거나 국고를 축내고
유생들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붕당에 가담하여 향교의 쇠퇴를 유발하였다.
조선의 모든 서원은 성리학을 연구하고 유생들을 교육하며 선현들의 제사를 지내는것이 목적이었고
그외 마을의 질서를 유지하고 사림(유교를 닦는 선비)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으나
조선후기에는 서원의 숫자가 너무 많아 경제적인 폐단이 너무 심각했다
고종때 흥선 대원군이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서원의 모든 특혜를 없애고
1000개중 47개만 남겨 두고 철폐하기에 이르렀다.
뇌룡정
남명조식 선생께서 서울과 김해에서 생할 하시다가 외토리로 돌아온 48-61세 때까지 제자들을 가르쳤던곳
61세 이후로는 지리산 인근의 덕산으로 가셨어 곳에서 말년을 보내게 된다.
용암서원 모습
용암서원과 양천
외토리 마을의 노거수
노거수 옆에 자리하는 남명로 안내글
가끔 보이는것이지만
모래대신 머드팩 할 수 있는 진흙강
합천땅을 뒤로하고 산청군 생비량면으로 들어와
지나온 강길
생비량면의 경남 간호 고등학교
지나온 강길
진주시 미천면 망룡산에서 흘러온 천곡천이 양천에 합수 되는곳
우측 멀리 집현산이 보인다.
저곳 집현산 가까이 가야 양천 일정이 쉽게 끝날텐데
20번 국도가 지나는길과 지금은 차량이 뜸한 예전 20번 국도
생비량면
생비량 뜻은 "옛날 이곳 인근에 덕망있는 비량이란 스님이 돌아가실 지경에 이르자
신도들이 "스님없는 세상에 우리는 누굴 의지하며 살겠느냐?며 통곡 했지만
비량 스님은 입적하고 말았다.스님은 돌아 가셨지만 스님의 영혼은 우리곁에 살아 있을거란 믿음과 염원으로
비량(比良)이란 글자앞에 생(生)자를 붙여 생비량이라고 하였다.
비량스님
지금은 산청군 생비량면 이란 이름을 하나 얻었으니 좋으시죠
생비량면 사무소 앞의 부부바위
집현산 기슭 현동 마을에 있던 부부바위를 이곳에 옮겨 세웠으며 우측은 남편 좌측은 부인이다
현동마을에서 이곳 생비량면에 기증한것
지나온 생비량면
가야할 길은 멀고
강 가운데 크고 작은 바위는 강을 정비 하면서 물고기들의 안식처로 남겨 두었다
지나온 강길
날씨가 포근해서 산수유가 노랗게 올라온다.
이달 중순에 만복대에서 이어지는 서시천을 걸음하면 구례의 산수유를 볼 수 있을것 같은데
여기 저기 매화가 많이 피어있고
지나는분께 부탁해서 인증 담아두고
생비량면을 뒤로하고 신안면 땅으로 들어와
멀리 황매산-감악산이 보였지만 사진으로는 뿌연게
양천을 이루는 또하나의 물길인 신등천이 황매산에서 흘러 내려와 양천에 합류되는곳이다.
철쭉이 곱게 피는날 저곳 황매 정상에서 이어지는 신등천(27km) 한번 걸음해야 할듯하여 기억해 둔다.
산청군 신안면 청현리 어느집 담장 넘어로 길게 내려온 개나리와 닮은 영춘화(迎春花)
꽃말은 사랑하는 마음 이란다.
개나리와 비슷하지만 개나리는 꽃잎이 4개,영춘화는 6개의 꽃잎이 있다.
신안면 땅에서 본 집현산
멀리 집현산이 보이고 앞의 산은 학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듯한 신안면 청현리의 산이다.
학이 품은 산이나 온통 조상들만 모시는 무덤만 보이니 ...저곳 마을에 살고 계시는 후손들은 조상이 잘 되어야 후손이
잘된다는 풍수를 믿고 좋은 터는 조상분들께 양보 하신듯 하다.
집현산은 임진왜란때 진주성 탈환을 위해 아군과 왜군이 격전을 벌인곳이며
소심한 용의 전설을 간직한곳이기도 하다.
도를 닦기위해 지상으로 내려온 용이 다시 승천하려 할때 인근 마을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며 욕하며 고함을 질러
용이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는지 승천하지 못하고 이승에서 고생을 하게 된다.
용은 인근 마을 사람들을 원망하며 가뭄과 질병으로 보복 했으나,인근 마을 착한 청년이 100일간 기도하며 잘못을 빈
끝에 용의 저주를 풀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산이다.
어딜가나 이무기나 용의 전설이니 대부분 용은 사람들에게 당하는 쪽이다.
마실 구경 나오신 청현리 할매분들
학이 날개를 펼친듯한 명당터 동네라며 자랑을 하신다.
집현산에서 신안면 원지로 가는 엄혜산 마루금
모퉁이만 돌아가면 원지가 보일것 같다.
신기 배수장 앞을 지나며
원지마을과 멀리 웅석봉인듯 보이고
강가로 이어지는 길에 멀리 돌아 가는길 보다 대나무밭 속으로 올라가면 좋은 임도길 나온다.
지나온 강길과 3번 국도의 토현교
아름다운 대나무 숲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진주에서 지리산으로 갈때 경유하는 원지마을
엄혜산 둘레길에서 인증담고
남강과 양천을 이어주는 잠수교를 건너면 양천50km 길은 끝나게 된다.
양천이 남강품에 안기는곳 넘어로 망해봉이 보인다.
남강댐 상류쯤으로 보시면 될것 같고
양천과 원지
원지마을 넘어로 남강이 보이는 곳에 절벽이 멋진 적벽산이 지척이며
그뒤로 백마산이 자리한다
남강에서 본 백마산
산위에 백마산성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때 진주에서 밀려든 왜적을 이곳 백마산성에서 의병들이 지키며 지구전을 펼치고 있었다
때는 한여름이라 산위에 마실물은 모두 떨어지고 왜놈들은 이사실을 아는지 그저 항복하기만 지키고만 있을뿐이다.
의병들은 목가른 갈증에 고생하고 있는데 어떤 장수가 말(馬)을 끌고와 쌀을 말등으로 퍼서 던지니 산 아래서 보던 왜놈들이
산위에 물이 많은것으로 착각하고 "야 저위에 물이 많은것 같으니 그만 지키고 돌아가자"고해서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양천 옆으로 엄혜산 둘레 나무테크길이 잘되어 있고
양천과 남강 그사이로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 경호강 6교가 길게 이어지고
멀리 진주시 대평면들의 산들이 하나의 능선인양 길게 늘어서 있다
남강을 배경으로 인증 담고
요즘은 해가 조금씩 길어지니 당일로 50km는 쉽게 이어갈 수 있어 좋다.
이곳에서 택시로 합천 땅으로 가서 새벽에 세워둔 자가용을 타고 대구로 향한다.
다음강은 대구 팔공산에서 금호강으로 흘러가는 신녕천
실망 시키지 않은 동네 영천 그곳으로 갑니다.
첫댓글 걱정입니다.....
강길따라 다니시면
물처럼 유~해져야 하는데
짜증과 신경질만 느시고
복지부동으로 잘~지내는 공무원들 피곤하게 만들고....
시골 논내들 조심하세요.
낫 들고 쫒아 오는수가 있습니다..ㅎㅎ
다음판에 낫들고 싸웁니다.
기대하십시요
멋지십니다.
기회되면 산에서 조우해요^^
감사합니다.
더 멋지게 돌아 댕기겠습니다.
강줄기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하군요
직접 가면서 사진담을때 얼마나 더 불편했겠나싶네요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쓰레기공화국이 되었는지..
전지가위는 꼭 다니고 다니십시요... 칡넝쿨 넘어가다가 잘 넘어지니
전지가위로...ㅎ
다음강줄기 기대하겠습니다
전지 가위로 어느세월에...
에초기들고 다녀야할듯 합니다.
설악 늘 잘보고 있습니다.조심해서 다니세요
@배병만 내일 연차쓰고
설악들어갑니다 형닝
수류탄 찾지를 못해서
오늘20번 통화해서
도저히 않되지싶어서요
마등령 삼거리 가기전 정규등로
3미터라
역사를 쓰고 계시는 방장님!화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역사 쓰다가 골빙 들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니겠습니다.
오늘도 역사공부 강길주위 구경 간접적으로 체험합니다^~^ 방장님 고생덕분에 전 편안히 글과 사진으로 지식을ㅋ 습득하네요^^
어딜가나 용새끼들이 많아 재미는 좋습니다.
4월에 보입시더
양천 요기는 쓰레기 집합장소 같습니다
뭔놈의 쓰레기를 강가에 그리많이 버려놨는지..
방장님 강길 탐방 끝날때쯤이면 강행기만
읽어도 역사책 보는것 보다 더 많이 알게될것
같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시골분들 인식이 문제이지요.
지자체도 예산이 없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물이 더러워지니....
비닐을 한군데 모아놓으면 수거해 간다고 하던데 이곳은 그렇지 않나 봅니다.
환경의 소중함을 알아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양천은 상류쪽에서부터 온갓 쓰레기로 맘이 아프셨을것 같으네요.
미세먼지에 고생은 많겠지만 날씨는 포근하여 걸을만 할것 같으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러운 강길 찾아걷느라 속상하셨지요. 그러려니 할수도없고 화낸다고 또한 깨끗해지지않으니 답답하시겠습니다.
또 깨끗한 강길 만나면 맘도 깨끗해지겠지요.
쭈~~욱 고생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