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던 물살처럼"
*낙동정맥 3구간
*덕재-갈미산-검마산-매봉산-삼승령-독경산-창수령-영양풍력발전단지-맹동산-봉화산-명동산-포도산-여정봉-화매재(61㎞, 2016.7.30.~31.)
사당역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한 버스는 12시가 넘어서야 영양 땅에 도착했다. 저번에 갔던 수비면 강천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덕재로 올라가 3구간을 시작했다. 불볕에 한 꺼풀 녹아내린 하늘은 색 바랜 정오의 바다다. 햇살 따가운 한낮은 하늘빛의 농담도 꿈을 꾸듯 흔들어 놓았다. 솜꽃 같은 구름송이들은 건너지도 머물지도 못하고, 울먹줄먹 솟은 산봉우리들 머리맡에서 빌빌거린다. 때를 탄 빛 하나 없이 구름은 저리 새하얗게 펴져 있는데 오늘은 염천이 따로 없겠다.
검마산 가는 길은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이내 옷은 흠뻑 젖어 몸에 달라붙고, 신발은 땀이 배어 비 맞은 듯 축축해졌다. 식사를 하고 바로 출발해서인지 몸이 무겁다. 열기에 숨이 턱턱 막히는 산길을 5킬로쯤 오르자 검마산이 나온다. 산기슭에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는 검마산은 생김새가 뾰족하고 칼을 닮았다고 하여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정맥길에 보기 드물게 조망이 트였고, 산객들이 쉴 수 있게 의자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온몸이 물먹은 종잇장처럼 뚝뚝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여름의 이파리들은 햇볕을 받아내느라 바람도 없이 허우적거렸다.
매봉산을 지나 저녁 9시쯤 영양읍 기산리에 있는 삼승령에 도착했다. 멀리 안동에서 지원을 나온 추산대장님이 수박이랑 맥주를 한가득 준비해 놓고 있었다. 여름철 산에서 먹는 수박 맛은 에어컨 켜져 있는 아파트에서 먹는 맛과는 비교할 수 없다. 거기에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 마시면 산길의 갈증은 언제였나는 듯 까마득해진다. 초당님 직원분이 차에 싣고 온 담근 술을 한 잔 마셨더니 피로가 좀 풀리는 것도 같았다. 추산대장님이 끓여 준 라면을 든든히 먹고 다시 출발했다. 행운별님은 그때까지도 내려오지 않았다. 길을 나서면서도 혹시나 하고 걱정했었는데, 나중에 들어 보니 더위를 먹어 길이 늦어졌다고 했다.
새벽 2시가 넘어 30킬로 지점인 독경산에 도착했다. 영덕군 북서쪽에 있는 산으로 성왕사와 오현사에서 수행하던 스님들의 독경 소리가 산 전체에 울려 퍼진다고 해서 독경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너무 졸려 정상에 있는 헬기장에 배낭을 베고 누웠다. 희미하게 빛나던 별들은 금세 까무룩 눈꺼풀이 감겼다. 백구님이 다리에 불개미들이 올라붙는다며 부스스 일어났다. 5분 정도 깜박 잠이 들었을까, 산에서는 이 정도도 꿀잠이다.
창수령에서 새벽 식사를 했다.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밥이 넘어가지 않아 꾸역꾸역 물에 말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비몽사몽 걷는 사이 저 멀리서 동이 터 오고, 밤새 푹 고아진 어둠 위로 새벽안개가 비실비실 몰려왔다. 숲은 눅눅했던 어젯밤과 진드기 같은 잠을 증류하는 중이다.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라 나무들을 동여매고 숲은 미몽의 물가에서 허우적댔다. 이윽고 산중은 밤잠을 설치던 매미 울음과 막 깨어난 새소리가 뒤섞여 농가의 희멀건 새벽처럼 분주해졌다. 고갯마루에 다다르자 영양풍력발전단지의 거대한 날개들이 윙윙대며 회초리처럼 바람을 갈랐다. 시원한 새벽 안개망울을 가둘 길이 없어 웃통을 벗고 도로를 걸었다. 일련번호가 매겨진 풍차와 고랭지 채소밭이 고개를 따라 길게 이어진다. 채소밭에는 날이 더워지기 전에 마치려는지 농부들이 부지런히 배추를 뽑아 박스에 담고 있었다. 짙은 안개에 길을 잃은 백구 총무님은 한참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았다. 선두조가 출발한 지 삼십 분이 지나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솔별대장님과 둘이서 후미조로 출발했다.
맹동산으로 가는 길을 잃고 삼십여 분을 또 헤맸다. 능선을 따라 기다랗게 늘어선 풍차들은 가쁘게 쉭쉭대며 바람을 받아들인다. 안개 속을 둥둥 떠다니는 날개들은 징검다리에 앉아 여울을 틀어막던 손가락들처럼 하얗게 여렸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던 물살처럼 바람은 몸을 한번 뒤척이고는 아득히 흘러가는 것 같았다. 막을 생각이 없었으니 머물 이유도 없었을까. 물살이 흐르던 자리에 소년은 간 데 없고, 바람이 지나간 길에 늙은 농부의 쉰 목소리만 팔랑거린다. 눈부시게 푸른 초원 가운데 실금처럼 나 있는 도로를 따라 흰 트럭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웃자란 풀들과 싸리나무 가지에 팔다리가 쓸렸다. 봉화산을 지나 여러 번의 오르막을 숨 가쁘게 올라 명동산에 도착했다. 명동산은 영양군의 남동쪽 끝에 있는 산으로 속곡계곡 근처에서 자생하는 약초는 약효가 좋기로 이름나 있고, 지품면 산기슭에 닥나무가 많아 인근 지역에서 한지생산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거기서 3킬로쯤 더 가면 포도산 갈림길이다. 너무 더워 포도산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잠시 쉬었다가 여정봉 쪽으로 향했다. 솔별대장님은 성큼성큼 앞서서 포도산으로 가는 모양이다. 맞은편에서 사인암님이 배낭도 없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포도산을 깜빡 놓쳐서 다시 되돌아오는 중이란다. 이 더위에 정맥길도 아닌 산을 찾는 저 열정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여정봉 가는 길에 큰 배낭을 멘 등산객을 만났다. 더위에 지쳤는지 웃통을 벗은 채 쉬고 있었다. 정맥길에 산객을 만날 일이 거의 없으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클럽을 알아보고는 대단하다며 응원해 주신다. 여정봉을 지나 한참을 내려가니 나나님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도사님이 자기를 버리고 갔다며 원망이 대단하다. 더워서 천천히 함께 진행하는데 포산마을 임도에서 추산대장님이 수박이랑 생수를 잔뜩 쌓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휴일에 가족들과 보내지도 못하고 어젯밤부터 우리 동선을 따라다니며 지원해 주고 계신다. 한여름 장거리 산행을 해본 산꾼이라면 이런 지원이 얼마나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인지 잘 안다. 허겁지겁 수박을 먹고 마지막 남은 4킬로를 서둘렀다.
푹푹 찌는데 날머리는 가도 가도 나오지 않는다. 후끈 달아오른 숲의 열기에 뒷머리가 뜨거워져 아껴둔 생수를 머리에 부었다. 유난히 땀이 많은 체질이라 혹서기 산행은 조심스럽고 늘 긴장된다. 대간을 뛰고 있는 나나님은 누추한 정맥길에도 힘든 기색 없이 잘 걸으신다. 61킬로 지점 화매재에서 산행을 마쳤다. 뙤약볕 내리쬐는 고개 어디에도 그늘이 없다. 걷고 또 걸었는데 손마디만큼의 축척을 넘어서지 못했다. 쥐어짜낸 두서너 줄 정맥의 기억은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 위에 범벅이 되어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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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쥐어짜낸 두서너 줄 정맥의 기억은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 위에 범벅이 되어 녹아내렸다...문장력 좋으십니다. 무더운 날씨에도 정맥길을 이어가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맹동산 근처에서 헤매다 대구담님 시그널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무더위에 건강 조심하세요. ㅎ 글 고맙습니다 ~~~
문장력이 좋으셔서 글만 읽어도
산행하는 모습과 상황들이
생생하게 살아나는듯합니다
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정맥길 이어가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은 계곡에서 첨벙첨벙이 최곤데요 ㅎ 산은 더위 가시고 선선해질 때 가는 것이...ㅋ 말뿐이지 다들 몸이 근질근질~~~ 글 감사합니다.
안개낀 새벽아침이 상쾌함을 주네요
추산 대장님이 마중을 오셔서
산우의 정을 듬뿍 나누시고...
땀흘린 뒤에 먹는 시원한 수박과
맥주는 천상에도 그런맛이 있을까??
생각이 들정도 이지유~~
건강관리 잘하시고 수고하셨어요..
아고, 추산 대장님 더운데 꼬박 하루를 우리 따라다니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그 정성에 감동했습니다. 이러한 헌신이 있어 클럽이 쑥쑥 성장한 것이겠지요. 지부장님, 감사합니다 ~~~
더운날 긴~거리 만큼이나 힘들어 가는
걸음 했네요! 안개속에 정신없이 쭉~걷다보니 도로가 ㅋㅋ 8km알바하고 그 돈으로
택시비 6만원 날렸네요ㅎㅎ
더운날 모두가 수고 많았지요!
추산대장님~개인시간 투자해 가면서
3번씩이나 지원은 해주셨네요~~
정맥6차팀 큰 은혜를 입게 되었구요
많이 감사드립니다./^ㅇ^/
졸음이 웬수여유. 알바도 열 받는데 거금의 택시비까지 탕진했으니 우짜꼬...ㅎㅎ
바람의 언덕에 바람이 멈춘것 같네요
칠월마지막날 푹푹찌는날씨에 고생하셨습니다..
글쎄, 바람이 힘들이 없었어요. 이 폭염에 바람도 흐물흐물 엿가락처럼 녹아내리는 듯해요. ㅎ 글 고맙습니다 ~~~
이 더위에 잘도 가시네유...
나는 조금만 걸어두 숨이 막혀오던데~
ㅎ더워서 기어 오른 구간도 꽤 있어요. 이 여름 잘 견디시길요~~~
안개자욱한 풍력 발전 단지 이른 아침 농부들의 부지런함과
졸음에 겨운 산객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차분하게 써내려간 산행기 훗날 많은 후배 분들께 낙동의 아름다움과 한여름의 힘겨움이
함께 전해 지리라 생각해 보며 더운날 산길 조심해서 이어 가시기 바랍니다.
대간길이나 정맥길이나 걷고 나면 항상 아쉬운 것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산마루에서 어슴프레 내려다보이는 마을에는 누가,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가는지.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딱히 바쁜 일도 없는데 쫓기듯 나는 항시 앞만 보고 걷고 있더군요. 가끔씩 식사하러 마을 식당에라도 들르면 얼마나 향기가 나던지요. 이 정맥길에 사람 냄새 그득했으면 좋겠습니다. 대간길 무사히 마치시길요~~~
바람개비도 지쳐 멈추게 만드는
숨이 막히는 무더위속의 정맥길..
힘겨운 날개짓이지만 안개속에서 이따금씩 보이는풍력단지의 풍경이
운치있게 다가왔던 길이었는데
더위로 인해 힘겨운 걸음이셨네요..
힘겨운길 오아시스가 되어준 추산대장님의 고마움 마음도 전해지네요..
다음구간은 시원한 바람이 맞아주기를
기원드려봅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서너 번씩 지원하기란 참 쉽지 않을 텐데, 추산대장님 노고에 무사히 마쳤지요. 이번 주 호남정맥 잘 다녀오십시오. 간간이 비도 좀 내리는 시원한 길 되시길요~~~
고생없이 산행만 하신듯한 멋진 산행기 즐감합니다.
무지 더웠지요?
지원팀 산행팀 모두 수고많으셨습니다.
같이 넘었던 강동5산보다야 더웠겠어요?ㅎ 총대장님, 잘 계시죠? 선선한 바람 불어오면 수도권지부 산행에도 자주 참석하겠습니다 ~~~
정맥5차팀은 북풍 몰아치는 날, 이구간을 진행했었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풍력단지 시멘트길, 길 좋은줄 알고
찬바람에 지나치게 힘차게 걸었던 나머지 뒷끝으로 무릎병 얻어서 몇구간 조리가 필요했던 구간이라... 기억이 남다릅니다. 쉬운듯 쉽지않으니..추위에도 더위에도 힘든구간인가 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다들 이 구간이 기억에 많이 남는 모양이군요. 눈보라 치는 날 풍차들의 모습은 또 어땠을까요? 긴 시멘트길도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이 여름도 곧 지나가겠지요~~~
지난날 이구간 지날때 한여름 이었는데 얼매나
덥던지 힘들게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릴때 정맥길 이어간다고
고생 많으셨습니
더운 길, 힘들었어도 볼 게 많아서 좋았습니다. 대장님, 몸 관리 잘 하시고요. 글 감사합니다 ~~~
네번째부턴 가을바람좀 불어오려나요~~~
한여름 무더위 추산대장님 지원으로 조금은 견뎌내셨겠군요^^
무더위속 긴거리 수고많으셨습니다
아마 추산대장님 지원이 없었으면 진행이 힘들었을 겁니다. 다시 감사드립니다. 17차 대간팀도 이제 두 구간 남았네요. 마지막까지 잘 마치시길 바랍니다 ~~~
언제쩍 산행인지..
벌써 가물가물 하네요ㅎㅎ
정맥팀과 함께해서 너무 너무 즐거웠답니다
귀한 대접받아 황송하고 감사합니다
바보도사님 제 걸음에 맞춰 리딩해주셔 덕분에 잘 마무리했습니다.
대장님 총무님 산개미님 산이야님 사인암님 행운별님 초당님 모두 반갑웠고 감사합니다
대간 뛰랴 우정산행 하랴 바쁘다 바빠 ㅋㅋ 덕분에 웃음 만발한 산행 되었구만요. 인기 만점 나나님아야~~
아직도 더위가 전해지네요 ^~^
풍력단지 힘든길 지나며 맹동산 가기전 알바 고의는 아니었시유 ^^
무더운 날씨였지만 추산대장님의 정성으로 잘 넘을수 있었던 구간이었죠
가벼운 발걸음 수고 많으셨습니다
긍께, 고읜지 안 고읜지 판단이 안 선당께요. 인자 머 헐 수 없지만서두요. 대장님 고생 많이 하셨어유 ㅎㅎ 더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