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불을 질렀다. 신사 건물의 일부만을 태우고 곧바로 진화된 작은 화재였지만 화재가 발생한 곳이 야스쿠니신사인지라 세간의 관심은 결코 작을 수 없었다.
야스쿠니신사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직후인 1869년 막부(幕府)군과의 싸움에서 전사한 영혼들을 ‘호국의 신’으로 숭배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전몰자들을 호국의 영령으로 숭배하였고, 천황의 참배라는 특별한 대우로 군국주의를 고무시키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1978년에는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일본의 A급 전범 14명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었다. 1985년에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공식 참배하였고, 2000년에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가, 2001년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공식 참배했다. 일본 총리가 공식적으로 야스쿠니를 참배한다는 것은 일본 정부가 일본 전범들을 숭배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군국주의 망령이 부활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현재 야스쿠니신사에는 총 246만여 명의 전몰자가 안치되어 있고, 일본 육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무라 에키지의 동상, 대형 함포 등 각종 병기,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 돌격대원의 동상, 전함 야마토의 특대형 포탄, 군마와 군견의 위령탑, 제로센 전투기 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쟁 유물과 전범의 동상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전시되어 있다.
야스쿠니에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자 일본의 언론들은 야스쿠니에 불을 지른 사람이 한국인이거나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 한국인일 거라는 추측성 보도를 연일 내보내고 있었다. 일본 야스쿠니 방화사건은 한국 국민들의 통쾌함과는 달리 한일 관계에 있어서는 복잡한 문제였다.
은요일 요원은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지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은밀히 일본으로 건너가 조사에 착수했다. 수사 끝에 은요일 요원은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지른 사람이 일본 극우파라는 단서를 찾아냈다. 일본에서 한류가 일어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일본과 한국이 가까워지는 것을 싫어하는 일본 극우파 몇 사람이 작당을 하여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지른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지르고 한국 사람이 불을 지른 것으로 위장하면 극우파로서는 얻을 수 있는 것들이 꽤 있었다. 야스쿠니에 불을 지른 사람이 한국인으로 밝혀지면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아져 일본 극우파들의 인기가 올라갈 테고 더불어 극우 단체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질 터였다.
은요일 요원이 야스쿠니 신사에 방화를 한 사람들이 일본 극우파라는 증거를 일본 경찰에 넘기고 또 이 사실을 각국 언론에 알리려고 하는 순간 텔레비전에서 하나의 뉴스가 보도되었다. 오늘 아침 일본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재일 한국인 왕추리 씨의 호주머니에서 자신이 야스쿠니 신사의 방화범이라고 쓰인 편지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은요일 요원은 급히 편지의 복사본을 입수하여 살펴보았다.
나는 여섯 살 때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왔다. 일본에서 우리는 늘 가난하게 살았다. 아버지는 늘 길거리에서 찌라시를 돌려야했고 어머니는 간이매점에서 돈까스 장사를 하거나 골방에서 곤색의 낡은 미싱을 하루 종일 돌려야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나는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보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더 창피했었다. 나는 그렇게 창피한 한국인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우리 할머니가 종군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큰 충격에 빠졌다. 그 이후 나는 분노의 세월을 살며 역사 공부에 매진했고 또 한국말을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19세에 한국으로 건너간 나는 한국 대학의 국문학과에 입학해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열심히 공부했고, 졸업 후 한국어학당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말을 가리켰다. 또 한글 바로 쓰기 운동도 펼쳤다. 약 10년 뒤인 서른 살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온 나는 한국어학원에서 지금껏 한국어를 가리켜왔다. 하지만 내 분노는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뻔뻔하고 한심하기 그지 없는 일본, 한국을 침략해 어처구니 없는 짓들을 벌린 일본은 어이없게도 우리 할머니 같은 피해자들에게 사과는커녕 아직까지도 종군위안부를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종군위안부 문제에 시종일관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런 일본을 각성시키기 위해 나는 며칠 전 아침 마음을 다잡고 집을 나섰다. 우리 동네 고수부지 윗쪽에 있는 페인트 가게에서 시너를 사가지고 택시를 타고 야스쿠니신사로 향했다. 나는 야스쿠니신사 건물에 시너를 뿌린 뒤 불을 부쳤고 불길은 금새 야스쿠니 신사를 집어삼켜갔다. 내 마음 속의 원한을 태우는 듯한 불길. 하지만 안타깝게도 불길은 금방 경비원에게 발각되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당당히 내 신분을 밝히고 내 주장을 펼쳤어야 하는데 도망 온 것은 큰 실수였다. 이제 나는 일본 경찰에 당당히 자수를 하고 내가 야스쿠니에 불을 지른 이유를 만천하에 밝힐 예정이다.
재일 한국인 교통사고 사망자가 남겼다는 편지를 읽던 은요일 요원은 갑자기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 쳤다. “범인은 분명 재일 한국인 왕추리 씨가 아니야. 이 편지는 위조된 것이 틀림없어. 그렇다면 이건 교통사고가 아니라 살인사건인지도 모르겠군.”
문: 은요일 요원은 무엇을 근거로 편지가 위조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2012. 1.12(목) 응모 마감합니다.
정답 및 당첨자 발표는 1.13(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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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리소설가가 이번 문제 못 풀면 정말 개망신인데요...^^;
한국을 침략한 게 아니라 조선을 침략한 거죠. 역사 공부에 매진했다면 그쯤은 기본으로 알텐데...
한국어를 '가르치는'사람이 가르치다와 가리키다를 구별못하다니...^^
정답은 어디 있나요?
o 정답 및 해설:
편지의 내용대로라면 편지를 쓴 왕추리 씨는 한국어를 오래 공부했고,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고, 우리말 바로 쓰기 운동까지 벌인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쓴 편지에 일본식 단어가 꽤 많이 들어 있고 맞춤법조차 틀린 글이 많다는 것이 이상하다. 이 편지는 한국어를 정확히 사용하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 보기 어렵다.
* 찌라시(ちらし) -> 선전지, 광고지
* 매점(賣店,ばいてん, 일본식 언어) -> 가게
* 돈까스(豚/pork-cutlet) -> 포크커틀릿
* 곤색(紺色, こんいれ) -> 진남색
* 미싱(sewing machine) -> 재봉틀
* 가리켰다 -> 가르쳤다
* 가리켜왔다 -> 가르쳐왔다
* 그지 없는 -> 그지없는 (그지없다)
* 어처구니 없는 -> 어처구니없는(어처구니없다)
* 벌린 -> 벌인
* 어의없게도 -> 어이없게도
* 애매(曖昧,あいまい, 일본식 언어) -> 모호
* 몇일 -> 며칠
* 윗쪽 -> 위쪽
* 고수부지(高水敷地,しきち) -> 둔치, 강턱
* 부쳤고 -> 붙였고
* 금새 -> 금세
# [어의없다]라는 말은 없는데... 작가가 실수 했거나 올리는 과정에서 교정이 되었거나...
# 문제에 [몇일]이라는 말도 없네요. 원본을 보니 있는데... 국정원에서 교정을 본 듯하군요 ㅠ.ㅜ
저도 일본식 말투로 글을 쓴것. 유서같은 내용의 글을 소지하고 있는데 자살이 아니라 교통사고인점들이 의심스럽네요
그렇군요. 나는 왜 홈페이지에 안 들어가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