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야, 네가 다치고 기도를 하루에 5시간을 해도 모자랐어. 어떻게 사람한테 이렇게 눈물이 많을 수 있을까 생각했지. 그 눈물을 다 모아 병에 담으면 큰 항아리에 가득 채우고도 또채울 만큼 눈물을 많이 흘렸어. 사람은 눈물로 만들어졌나 봐, 위야"
박위라는 청년이 쓴 <위라클>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글이다. 박위는 자신의 건강한 육체와삶을 사랑했던 청년이었다. 게다가 대학 4학년 졸업도 하기 전에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의정직원이 되었다. 모든 게 자신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었던 느낌이었다. 그러던 28세 5월어느 봄날 그는 하루아침에 사고로 전신마비 진단을 받게 된다. 갓 사회인이 되어 신나게일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려는 순간 그의 인생은 멈추고 말았다. 이런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어머니는 "사람은 눈물로 만들어졌나봐."라고 고백한다.
종종 사람들은 우리가 고통 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지를 묻는다. 고통의 문제만큼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없음은 분명하다. 고통의 이유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가진 사람은없으며, 해답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 역시 고통 중에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다. 마치 자녀를 위해 울며 기도하는 어머니처럼, 선하신 아버지 되신 하나님도 고통 당하는 우리를 위해 눈물 흘리며 함께 고통 당하고 계시다.
25살의 사랑하는 아들을 사고로 잃고 쓴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라는 책에서니콜라스 월터스토프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얼굴을 본 후에는 살 수 없다고 했다. 나는 항상 이 말의 의미를 말그대로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광채를 본 후에는 살 수 없다는 뜻으로 생각했다. 한 친구가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그 말의 의미는 누구도 하나님의 슬픔을 본 후에는 살 수 없다는 뜻일지도 몰라.' 어쩌면 하나님의 슬픔이 바로 광채가 아닐까?"
나는 자녀를 잃는 경험을 하지 않아서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자녀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있다면 자녀 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흘리시는 눈물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하나님은 눈물로 만들어지셨을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의 슬픔에 대해 묵상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