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걱봉, 오른쪽이 북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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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필연적으로 광인(狂人)이다. - 미치지 않은 것도 결국 다른 형태의 광기라는 점에서
광인이라 할 수 있을 만큼.
--- 파스칼, 『팡세』에서
▶ 산행일시 : 2012년 11월 3일(토), 맑음
▶ 산행인원 : 13명
▶ 산행시간 : 10시간 30분(휴식과 점심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10.4㎞
▶ 교 통 편 : 25인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0 : 42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3 : 00 - 옥녀탕휴게소 주차장, 계속 취침
05 : 30 - 옥녀1교, 산행시작
06 : 15 - 515m봉
07 : 34 - 1,137m봉
08 : 52 - 주걱봉(1,386m봉)
10 : 00 - 주걱봉 하강 완료
11 : 08 ~ 11 : 48 - 가리봉 전위봉, 점심
12 : 06 - 가리봉(加里峰, 1,518.5m)
12 : 41 - 1,416m봉, ┣자 능선 분기
14 : 18 - 1,061m봉
16 : 00 - 해바라기 펜션, 군량교, 군량밭, 산행종료
1. 촛대봉(1,348m)
![](https://t1.daumcdn.net/cfile/cafe/02043B3D5097B99E31)
▶ 주걱봉(1,386m)
주걱봉, 그 북릉. 숱한 날 한계령을 지날 때마다 혹은 서북주릉을 오를 때마다 혹은 가리봉을
오를 때마다 이 기묘하게 생긴 뭉툭한 봉우리와 매끈한 북릉을 다만 선망하여 바라보거나 우
러러볼 뿐이었다. 수년을 두고 거기 오를 날 오늘을 기다렸다. 오늘로 날을 받아놓은 지난주
부터는 마음 한구석이 문득문득 불편했다. 꿈자리마저 가위 눌리고 사나웠다.
가다 못 오를 것 같으면 뒤돌아서는 것이 지극히 당연할 일일 텐데도 막상 거기 가면 그럴 용
기가 생길까?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 하고 일로직등을 고집하지나 않을까? 뒤돌아선다 해도
그 분(憤)을 어떻게 삭일까? 이게 걱정이었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가도 후회, 가지 않아
도 후회가 아닐까? 암벽 전문가인 설앵초 님을 모신 것이 유일한 위안이다.
옥녀탕휴게소 너른 주차장에 우리 차만이 혼자 히터로 그렁그렁 코 골며 두 시간을 곤히 잤
다. 05시 기상. 차문 열고 밖으로 나오자 ‘설월(雪月)이 만정(滿庭)’한 듯 사방 가득한 달빛이
눈부시다. 하늘엔 이운 스무날 달. 옥녀1교 우쭐우쭐 지나는 헤드램프가 반딧불이다. 우리 발
걸음이 곧 길이다 하고 덤불 헤쳐 나아간다. 지도에 첨봉으로 보이는 516m봉을 넘지 않고 돌
아가려고 느아우골 초입의 너덜을 연거푸 건넌다.
참호 지나고 능선 본궤도에 들어선다. 잡목이 어두운 틈을 타 이따금 얼굴을 할퀴거나 옷자락
을 붙잡지만 능선은 완만한 평원이다. 우리들 발아래에서 규칙적으로 나는 낙엽 버석거리는
소리가 영화 속의 질서 정연히 행군하는 군홧발을 연상케 한다. 그에 발걸음 스텝 부지런히
맞춘다. 참호인지 이장한 무덤 터인지 움푹 팬 구덩이를 수시로 지난다.
새벽잠이 없기로는 안산이다. 가다 숨 돌릴 겸 뒤돌아보면 안산의 연이은 기봉(奇峰)이 우리
들 하는 양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다. 부디 응원해주시라 읍한다.
자고 있는 주걱봉 북릉을 마침내 깨웠다. 고개 들더니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한다. 점점 가팔
라진다. 예상하고 각오했던 것. 낙석을 경계한다. 고개 뒤로 젖혀 올려다보는 공제선이 아득
히 멀다.
1,137m봉에서 둘러보는 주변이 사뭇 험상궂다. 오른쪽은 삼형제봉을 받드는 암릉 암봉이, 왼
쪽은 가리봉을 옹위하는 층층 첨봉이 흘립한 슬랩을 드러내고도 부동한 도열이다. 앞은 주걱
봉 북벽. 수직으로 보인다. 호흡 가다듬고 한발 한발 다가간다. 1,137m봉을 잠깐 내려 암릉을
오른쪽 밑으로 돌아 오른다. 나이프 릿지다. 주변이 잡목 숲이라서 적이 맘 놓인다.
2. 촛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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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멀리 왼쪽은 방태산 깃대봉, 주걱봉 정상에서
![](https://t1.daumcdn.net/cfile/cafe/1869B4435097B9E238)
4. 맨 왼쪽부터 설앵초, 더산, 하늘재, 주걱봉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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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삼형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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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리봉 연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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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왼쪽부터 도자, 해마, 백작, 앉은 이는 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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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안산
![](https://t1.daumcdn.net/cfile/cafe/1678BA3E5097BA3013)
절벽으로 멀리 내리 빠지는 왼쪽 사면이나 오른쪽 사면으로는 아예 눈길을 주지 않기로 한다.
눈앞의 손 잡고 발 디딜 일에만 몰두한다. 행동의 자유스러움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하여 목에
건 카메라는 배낭에 넣는다. 짧은 슬랩이지만 장갑 벗고 돌부리 움켜쥔다. 일목일초(一木一
草)가 생략할 수 없는 버팀이고 홀더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충실 한다.
마침내 주걱머리에 이르렀다. 웃음소리 뚝 그치고 거친 숨소리만 들린다. 나이프 릿지는 수직
사면으로 이어진다. 벽이다. 붙드는 잡목이 고사목인지 생목인지 일일이 잡아당겨 확인한다.
그것도 밑동을 바짝 내려 잡고 호흡에 맞춰 잡아당긴다. 늑목(肋木)과 철봉을 병행하여 오른
다. 자고 나면 팔 몸살하리라. 앞사람과 간격이 너무 떨어지기라도 하면 혹시 길을 잘못 들까
봐 아등바등 따라간다.
선등은 하늘재 님. 설악의 사나이답게 마치 아는 길인 듯 거침없이 오른다. 슬랩을 바위 틈새
비집어 오르고 가파름이 한결 수그러들어 정상이 가까웠다. 키 작은 억센 잡목 숲에 기대고
주변 가경에 여태 꾹꾹 참았던 눈길을 돌리니 현란하여 어지럽다. 릿지 살금살금 지나 주걱봉
정상이다. 천지를 향해 두 팔 벌린다. 통쾌하고 유쾌하고 상쾌하다.
주걱봉 정상에는 돌 몇 개 쌓아 올린 케른과 산행표지기 석 장이 있다. 우리는 저마다 바위 차
지하고 걸터앉아 언제 여기서 또 볼까 첩첩겹겹한 산천경개 보고 다시 본다. 숨죽이고 촛대봉
과 삼형제봉 전라(全裸)의 모습을 본다. 아름답다 말을 다 할까. 촛대봉은 주걱봉의 듬직한 품
에 바싹 안긴 형세고 삼형제봉은 좀 더 컸다고 저만치 떨어져 있다.
얼마나 더 머물러야 덜 아쉬우랴 내려가야 할 시간. 서쪽으로 선답의 발길이 나 있다. 울퉁불
퉁한 바위 슬랩이다. 설앵초 님이 자일을 두 겹으로 깔고 하늘재 님이 먼저 내려 발 디딜 곳을
보아준다. 생각한 것과는 달리 크게 어려운 곳은 없다. 이후 슬슬 트래버스 하여 슬링 걸어 내
리고 살짝 돌아 상수리나무 부둥켜안고 내렸다가 마지막 슬랩은 고정자일 잡고 내린다.
그간 고고하여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던 주걱봉이었다. 대간거사 님 말마따나 이제는
한층 친근한 모습이다. 앞으로 기고만장할 일만 남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오늘의 쾌거를 입에
올려 우려먹을 것인가 하니 미리 즐겁다. 응봉 오른 이후 그랬고, 감투봉, 삼형제봉, 희야봉,
칠형제봉을 그랬다. 여기에 ‘주걱봉, 그 북릉’을 더한다. 한편, 내내 붙들었던 등정의 희망을
마침내 지우고 나니 왠지 허전하다.
9. 촛대봉 협곡과 가리봉 서쪽 사면
![](https://t1.daumcdn.net/cfile/cafe/153D30415097BA7817)
10. 주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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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삼형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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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주걱봉과 북릉
![](https://t1.daumcdn.net/cfile/cafe/170AFE405097BAA70D)
13. 주걱봉
![](https://t1.daumcdn.net/cfile/cafe/030C573D5097BAB727)
14. 가리봉 북릉 서쪽 사면
![](https://t1.daumcdn.net/cfile/cafe/147E9F3E5097BAC709)
15. 하늘재 님, 주걱봉 오르내리는 데 선등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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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앞은 소가리봉, 멀리 왼쪽은 방태산
![](https://t1.daumcdn.net/cfile/cafe/164393415097BAE60A)
▶ 가리봉(加里峰, 1,518.5m)
주등로 따라 가리봉을 향한다. 걸음걸음이 뿌듯하다. 촛대봉 협곡 사이로 가리봉 서벽의 위용
을 감상하고 바위 슬랩을 트래버스 한다. 이곳이 한계령에서 한계리에 이르는 가리봉 주등로
중 가장 험한 구간으로 상세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다. 우리는 방금 주걱봉을 넘어왔던 터라 익
숙히 지난다. 그래도 주걱봉 내리자마자 분음한 탁주 축하주의 얼근한 술기운이 확 깬다.
고정 밧줄구간 지나고 절벽을 테라스로 트래버스 한다. 오르는 봉마다 일류 경점이다. 볼거리
는 단연 주걱봉이다. 멀쩡한 길바닥에 삼각점이 있다. 2등 삼각점이다. 설악 23, 2007 재설.
가리봉 정상에 설치해야 할 삼각점을 저기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고 힘들어서 여기에다 설치
했나 보다. 예전에는 관계부처에 이런 경우 그 연유를 따졌는데 이제는 시들해졌다.
가리봉 정상이 빤히 보이는 전위봉의 바위벽 두른 양지에서 점심자리 편다. 초동 햇볕이 따스
하다. 화은 님은 주걱봉 오르느라 심히 긴장했었는지 밥맛을 잃어버려 제대로 먹지 못한다.
알뜰히 준비해 온 강화 부대찌개도 나 몰라라 한다. 만복 안고 스퍼트 낸다. 가다말고 가리봉
북릉을 자세히 살피는 것은 어찌하든 거기 도전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다.
가리봉 정상. 문자 그대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아(我)’를 ‘우리들’로 새긴다. 오늘은 벌거벗은
소가리봉이 늙고 오종종한 모습이다. 어느 해 가을날 양단(洋緞)으로 치장하여 그 곱고 화려
하던 모습은 간곳없다. 건너편 귀때기청봉은 어디서 보나 당당한 모습이다. 그를 맹주로 한
서북주릉은 볼 때마다 가고픈 맘 들뜨게 한다.
필례약수나 군량밭으로 가는 분기봉인 1,416m봉에서 쭈욱 내리다가 약간 불룩한 1,061m봉
이 눈으로는 한달음 거리다. 그리로 간다. 발로는 예사롭지 않은 길이다. 가리봉 내리는 길이
오르는 길과 비슷하다. 슬랩 나오고 뚝뚝 떨어지기 예사다. 봉봉을 넘는다. 한계령에서 온다
는 일단의 등산객들과 마주치고 수인사 나눈다. 한계령 삼거리에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이
나와 있다고 일러준다.
┣자 능선 분기봉인 1,416m봉. 낡은 이정표는 그나마 땅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오른쪽 등로가
더 반질반질하다. 내닫는 걸음 뒤로 먼지가 풀풀 인다. 하늘 가린 숲속 등로가 꽤 사납다. 바
윗길이 자주 나와 번번이 돌아간다. 뚝 떨어졌다가 멈칫하기를 반복한다. 등로에 드리운 나뭇
가지에 머리 받칠라 앞사람이 선창하는 ‘머리조심’을 복창하여 뒷사람에게 인계한다.
너른 평원인 ┤자 갈림길인 안부. 왼쪽은 필례약수로 간다. 1,061m봉을 오르는 직진은 인적
이 뜸하다. 1,061m봉은 가리봉의 위성봉이 아니라 독립하여 어엿한 산봉우리다. 듬직한 산형
이 그렇고 오르내리는 능선 또한 장하고 실하다. 긴 오름이다. 새로이 산을 간다. 1,061m봉
전위봉은 오를 수 없는 암릉이어서 왼쪽 사면으로 크게 돌아간다.
1,061m봉 정상은 사방 조망 가린 숲 두른 평원이다. 후미 오기를 기다리느라 선두 네댓 명은
배낭 괴고 깜박 잠이 들었다. 잠결에 후미의 부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더덕을 찾았다느니,
그래서 15분간 더 휴식이라느니 ….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주위가 조용하다. 벌떡 일어나서
자고 있는 일행을 깨워 1,061m봉을 서둘러 내린다.
군량밭으로 내리는 남쪽 능선은 여태의 산길과는 전혀 딴판으로 부드럽다. 사면 쓸며 우르르
줄달음한다. 일행을 만난다. 모두 8명이다. 5명이 없다. 이 뻔한 등로를 헷갈리다니 도무지 이
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하늘재 님이 목청 높여 그들을 몇 번이나 불렀으나 아무 대답이
없다. 1,061m봉 내리면서 하늘재 님과 대간거사 님이 서로 자기가 가는 등로가 맞는다고 우
겼다.
나름대로 한 독도 하는 분들이니 어련하시려고. 그들을 걱정하기보다는 고소해 하며 내린다.
그들이 1시간 더 걸렸다. 군량밭에 다다르고서야 의문이 풀렸다. 각자 가지고 있는 지도가 서
로 달랐다. 자다가 일어난 신가이버 님은 910m봉을 넘어가는 지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얼
떨결에 직하하는 일행을 따라 내렸다. 대간거사 님 주변을 서성거린 화은 님은 끝까지 함께
했으니 그렇지 않아도 기진맥진 지경인 터에 된 고역을 덤으로 치렀다. 희비(喜悲)는 운이다.
이래저래 즐거운 날이다.
17. 주걱봉과 삼형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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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형제봉은 가리봉, 주걱봉, 1,232m봉을 말하는데 1,232m봉만이 이름이 없어 삼형제봉으로 이름이 굳었다.
18. 왼쪽부터 해마, 영희언니, 설앵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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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왼쪽은 점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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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방태산 연릉 왼쪽 뒤는 소계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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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왼쪽은 귀때기청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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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가리봉 북릉 동쪽 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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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군량밭으로 내리는 중에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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