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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하박국-01 하박국의 씨름(하박국 1장 1-4절)
하나님의 말씀은 하박국서 1장 1절에서 4절까지 봉독합니다.
[하박국 1장]
1 선지자 하박국의 묵시로 받은 경고라
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3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
오늘 저녁에는 요시야 왕이 세상을 떠나고, 유다 역사가 말기에 아주 그야말로 역사가 완전히 기울어질 쯤에 결국은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와서 에워싸게 됩니다.
그 바벨론이라는 악한 나라가 예루살렘을 에워싸게 되었을 때 그 안에 이 하박국이라는 예언자가 있었는데, 하박국이 정말 어이가 없는 거죠.
그래서 하박국이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이 참담은 현실을 두고 도무지 자기 머리로 자기 생각으로 자기 신앙으로 자기 가치관으로 자기 판단으로 그 무엇을 가지고 해결할려고 해도 납득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 눈앞에 전개되는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그리고 이해가 안돼요.
여러분 혹시 삶을 살아오다가 내 자신이 당하는 일이나 우리 교회가 당하는 일이나 우리 민족이 당하는 일을 두고 이해가 안 되고 납득이 안 되고 그런 것 없어요?
그런 것이 있을 수 있어요. 사람이 살아가다가..
그래서 하박국도 참 솔직한 사람이야.
자기 눈앞에 전개되는 이 참담한 현실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고 수용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사실은 기도라기보다도 거의 항의에 가까운 하나님께 문의를 넘어서 그저 항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뭐가 잘못됐다는 거야.
그것 참 어떻게 봐야 될지 모르지만, 그 이름도 좀 비슷해요.
이름이 하박국이란 말이 ‘씨름하다’ 그런 뜻이예요.
우리 눈앞에 전개되는 참담한 현실을 두고 이해가 안 되고 납득이 안 되고 수용할 수 없어서 씨름 해 본적이 없습니까?
밤새도록 이리 생각해도 저리 생각해서 안 맞고 씨름을 하는 건데, 결국은 자기 스스로 암만 씨름해봐야 해결이 안되니까 하나님께 토로하듯이 합니다만, 그냥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항의에 가까운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하박국이 먼저 하나님께 질문하듯이 이야기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하박국이 묻는 그 질문이나 항의가 말 같지도 않아서 사실 대답할 가치도 없지만 하도 시끄럽게 하니까, 번거로워서 그저 마지못해 대답을 해야 되는 그런 분위기입니다. 분위기가..
그래서 나라가 충분히 망할 짓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유대 예루살렘 사람들이 심지어 예언자까지도 자기들이 왜 이 어려움 당해야 되는지 이해를 못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날도 교회가 기독교가 점점 어려움을 당하고 잘 안 되어가고 있는데, 교회가 잘 안되는 이유를 불신자들은 다 아는데, 누가 모르냐? 기독교인만 몰라요.
또 어떤 교회는 성도들은 다 아는데 목사님은 모른다는 거야.
교회가 안 되는 이유를 성도들은 다 아는데, 목사님은 모른다는 거야.
그런 일이 있었어요.
저에게 상담하러 오신 분이 자기 교회는 지금 우리 교회가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지적해가지고 교회 성장 이론을 컨설팅해주는 그런 업체가 있다고 합니다.
교회 부흥 컨설팅, 그 컨설팅을 하는데 그 분을 초빙해오는데 1700만원을 용역을 주어서 교회가 왜 안 되는지 진단을 해 달라.
권사님이 우리는 다 아는데, 교회는 다 아는데, 목사님만 모르는 것 같다고 하면서..
우리 가까운 데 있는, 멀지 않는 곳에 있는 교회예요.
참 안타까운 얘기를 하더라고..
우리도 지금 혹시 그런줄 몰라요.
교회가 안 되는 이유가 뻔한데, 우리 기독교인만 모르고 있다면 참 큰일이죠.
그래서,
[하박국 1장]
1 선지자 하박국의 묵시로 받은 경고라
경고예요. 경고. 하나님께서 여기에서 들려지는 말씀은 경고성 말씀이라는 겁니다.
그 말씀의 성격상..
2절부터 하박국의 부르짖는 그런 항의가 이어지는데,
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그러니까 꽤 기도하고 간구하고 부르짖고 했는데, 아무 하나님께서 들은 척도 하지 않으니까 이것도 견딜 수가 없는 거죠.
3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외부로부터 가해오는 겁탈과 강포가 있고, 내부에서는 변론이 일어나고 분쟁이 일어나는 거야.
뭣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
그리고 4절에 보면,
4 이러므로 (이런 식으로 역사가 되어가니까)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
여기서 하박국의 말대로 ‘악인은 바벨론이고 의인은 예루살렘이다’ 이런 구도하에서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리고 악한 바벨론이 어떻게 보다 의로운 예루살렘을 에워싸는데, 하나님이 되어가지고 가만히 수수방관하고 보고만 계십니까?
이런 식으로 역사하니까 누가 참고 선을 행하겠습니까?
악한 사람이 지고 선한 사람 의로운 사람이 이기게 해 주셔야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용기를 가지고 선을 행하지.
악한 사람이 에워싸고 의로운 사람들은 에워싸임을 당하고, 이래가지고 어떻게 율법이 이 땅에 공의가 시행되겠습니까?
이게 하박국의 머리가 거기까지 밖에 안 가는 거야.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사람의 안목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도 구원치도 아니하시고 응답도 아니하셨다 하는 얘기를 하는 것 보면, 오랫동안 하박국이 씨름하면서 간구했는데도 대답이 없었다 그 말이죠.
이렇게까지 나오니까 이런 식으로 다시 말하면 덤태기를 하나님께 씌울려고 하는 거예요. 하박국이..
이런 식으로 하니까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고 율법이 해이해지는 것 아닙니까?
은근히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길려고..
이러니까 하나님 입장이 곤란하잖아요.
뭔가 할 말을 해야죠.
그래서 주시는 말씀이,
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우리가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다 놀라고 놀랍니다.
요즈음도 거의 매일 한통 두통씩 성경강좌 참여해서 전에 자기가 아는 상식으로 보던 구약 성경 말씀을, 에스라 성경강좌에 오면 다 끌어 엎어버리거든요.
다 끌어 엎어버리고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새로 보자 하고, 계시록까지 보고 나니까 여태까지 성경을 다 헛배웠다는 거야.
30년간 CCC 선교사역을 하던 분이 미국에서 CD를 하나 주더라는 거야.
들어보고 너무 충격을 받고 한국에 나온김에 지난 184회인가 참여하고는 한참 자기정리를 했는가 봐요.
내가 정말 이게 여태까지 한게 잘못된 것이고 노목사가 하는 저게 맞느냐?
이게 맞느냐? 저게 맞느냐? 고민 하다가 해결이 났는데, 자기가 잘못 배웠고 목사님 하는 것이 맞다.
지난 여름에 다녀가셨는데 어제사 편지가 왔어요.
자기는 지금 은퇴할 때가 다 되었는데 이제 와서 알면 어떡하느냐? 알려면 진작에 알았어야지 하면서..
남은 삶의 기간 동안에 사역을, 교회는 이미 은퇴를 했고.. 조기 은퇴를 했어요.
여태까지 너무 작은 말씀속에 갇혀 있었다는 그런 토로를 하는 것을 봤어요.
정말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들으면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라게 되는 거예요.
..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그러니까 때로는 하나님 말씀이 납득만 안 될 뿐아니라, 때로는 믿어지지 않는 그런 때가 있다는 거예요.
성경 전체를 보면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는 거예요.
다르니까 하나님이죠. 다르니까..
다를 때에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들어보면 자기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돼요.
하나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를 때,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 뜻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이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거예요. 믿음.
내 생각과 하나님 생각이 똑같으면 내가 하나님이죠. 그냥..
하나님이 나와 수준이 똑같은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말씀 들어볼 것도 없죠. 내 멋대로 하면 되는 거잖아.
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어봐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 말씀이 범사에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우리 생각보다 높고 우리 생각과 다르다는 거야.
그래서 여러분 다른 내 생각과 다른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우리가 감사해야 돼죠.
거기에 반발하고 할게 아니라 감사해야 돼요.
내 잘못된 내 생각의 수준에서 이루어졌다면 내 잘못된 수준에서 끝날텐데, 내 잘못된 생각을 교정해주는 하나님 나와 다른 생각이 나타났을 때 감사하면서 그러면 우리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것 아닙니까?
그래서 기독교 문화가 오랫동안 정착된 데서는 사람들이 대화중에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말하면 상당히 재미있어 해요.
가까이 다가오면서 Very interesting! 하면서 다가오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 사람은 자기와 조금만 다르면 얼굴도 안 볼려고 하죠.
그러면 발전이 안 됩니다. 발전이..
항상 자기와 다른 소리를 하면 굉장히 관심있어하고 자꾸 다가와서 알아볼려고 하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빨리 발전하는 거예요.
6절입니다.
6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 아닌 거할 곳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이것도 기상천외거든요.
지금 하박국은 이 갈대아 사람들, 이 악한 바벨론 갈대아 사람들이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는데, 악인들이 의인을 에워싸는데, 이래가지고 공의가 굽게 행해지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잠잠 하십니까? 하고 따졌더니 내 말을 들으면 너희가 놀라고 또 놀랄 것이다.
자기 소유가 아닌 거할 곳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내가 일으켜서 내가 보냈어.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지금 갈대아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는 것을 일러바친다고 하나님께 항의했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보냈어. 이 사람아 그걸..’
그러니 얼마나 놀랬겠어요?
7절,
7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심판과 위령이 자기로 말미암으며
8 그 말은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 기병은 원방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기병이라 마치 식물을 움키려 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9 그들은 다 강포를 행하러 오는데 앞을 향하여 나아가며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같이 많이 할 것이요
10 열왕을 멸시하며 방백을 치소하며,
‘치소한다’는 말은 우습게 여기며,
.. 모든 견고한 성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취할 것이라
11 그들은 그 힘으로 자기 신을 삼는 자라 이에 바람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득죄하리라
그것 하나님이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리하라고 내가 보냈지 그렇게 할거야.
그러니까 하박국이 더 정말 기가 막히는 거죠.
12절에,
12 ○선지자가 가로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주께서는 만세전부터 계시기 때문에, 어느 나라가 착한지 어느 나라가 악한지 다 알 것 아닙니까?
바벨론이 예로부터 항상 악한 짓만 한 것 하나님이 아실 것 아닙니까? 그 말이죠.
..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그래도 의로운 나라인데, 악한 나라에 의해서 사망을 당해서 되겠습니까?
하면서,
..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를 두셨나이다,
두셨다는 것 같은데요,
악을 행하는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를 심판하기 위해서 바벨론 같은 강한 나라를 사용하신다면 우리가 그 정도는 인정합니다.
..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를 세우셨나이다
말 안듣고 까부는 나라를 손좀 봐주라고 경계하기 위해서 그를 세우셨다 그 정도면 그것도 우리가 이해합니다.
13절,
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일단 악은)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아직도 여전히 하박국 머리 속에는 ‘예루살렘은 의롭고 바벨론은 악하다.’ 여기에서 못 벗어나는 거예요.
과연 예루살렘은 의롭고 바벨론은 악하냐? 그것은 따져봐야죠.
그래서,
..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하나님이 되어가지고) 잠잠하시나이까
14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으로 바다의 어족 같게 하시며 주권자 없는 곤충 같게 하시나이까,
곤충이나 바다의 물고기 이런 것은 누구든지 그물로 잡는 사람이 임자죠.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런 식으로 잡아먹히게 놔둘 수 있습니까? 그 말이죠.
15절,
15 그가 낚시로 모두 취하며 그물로 잡으며 초망으로 모으고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16 그물에 제사하며 초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식물이 풍성케 됨이니이다
17 그가 그물을 떨고는 연하여 늘 열국을 살륙함이 옳으니이까
따지는 거죠.
하나님과 팽팽히 맞서서 자기가 따지는 거야.
2장 보세요.
[하박국 2장]
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파수하는 곳’이 대개 높은 망대죠. 높은곳에 올라가서 들으면 하나님 말씀이 좀 더 잘 들릴까 싶어서..
..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그러니까 아마 하나님도 대답하기 곤란할 거요.
지금도 당당한 거야.
하나님도 뭔가 잘못 착각하시는 것 같고, 하나님께서 뭘 깜박했거나 미쳐 못 챙겼거나 무슨 수가 있는 거지.. 이럴 수가 없다 하면서 따지는 거죠.
그 때 다시,
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그러니까 판에 명백히 새기면 우리 같으면 현수막 글자만큼이나 크게 새겨놓으라는 거예요.
3절에,
3 이 묵시는 (무슨 얘기냐) 정한 때가 있나니,
줄을 그으세요. 정한 때가 있다.. 하나님 말씀은 짧아요.
..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그 종말’은 바벨론의 종말을 말합니다.
바벨론이 까불고 내가 볼 때도 늘 열국을 살육하고 다니고 그물 걸어놓고 제사하고 초망 걸어놓고 까불어도 오래 안가.
하나님의 정한 때가 있는데, 그 정한 때까지만 까불고 못된 짓 하지, 그 종말도 속히 온다.
..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켜봐)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하박국 생각에는 이 악한 나라가 늘 악을 행하면서 열국을 살육하고 다니는데 계속 그리해도 괜찮은가 하고 항의를 하는 건데, 그 종말로 속히 오는 거야.
그 종말은 바벨론의 종말이죠.
4 ○보라 그의 (바벨론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니까 거짓되고 교만하고, 그런데 그것 얼마나 오래 가겠나..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보통 우리가 하박국서는 앞에도 모르고 뒤에도 모르고 딱 하박국 2장 4절 반절, 그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 외에는 전혀 안보죠. 아예..
인용도 이것 외에는 인용하지 않아요.
하박국이 하나님께 성토하고 하나님께 항의하고 기도한게 뭐냐하면, 악인들이 악인들 같으면 망하게 되고 약하게 되어야 되는데, 악한 나라 악인들을 저렇게 강성하게 하고 이기게 해주면 이 땅에 어떻게 의인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악인들에 의해서 의인들이 다 죽지 않습니까?
의인을 살려달라고 의인을 염려한거죠? 이해가 됩니까?
하박국이 염려한 것은 의인을 염려한건데, 의인이 다 죽어버리면 어떡합니까? 하고 의인을 염려한건데, 하나님께서 바벨론 얼마 안가. 정한 때까지 까부는 거야.
그리고 너 의인을 염려하는데,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사는 길을 만들어놨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거야. 의인은..
사실 우리가 신약성경에까지, 신약성경에 있는 교훈까지 연장을 해서 말씀드린다면 의인은 죽어도 살아요. 그렇죠?
의인은 죽어도 살아야 되는 것이고, 악인은 살아있어도 죽은 거예요.
여러분 예수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면 이미 심판 받았다고 하죠. 세상은..
그러니까 악인들은 살아있어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이고, 의인은 죽어도 산거야.
의인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그랬잖습니까?
지금 하박국은 의인을 염려해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의인은 네가 염려안해도 내가 더 염려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해 놨어.
자, 다시 바벨론 이야기로 가는데, 5절 보세요.
5 그는 술을 즐기며 궤휼하며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그 욕심을 음부처럼 넓히며,
‘음부’의 특징이 뭐죠?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습니다.
.. 음부처럼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로 만국을 모으며 만민을 모으나니
6 그 무리가 다 속담으로 그를 평론하며 조롱하는 시로 그를 풍자하지 않겠느냐,
대개 ‘풍자’라는 것은 히브리 문학속에 ‘믹담’이라고 하죠. 믹담이라는 것이 풍자시인데, 대개 풍자는 약하고 의로운 사람이 강하고 악한 세력을 풍자하는 거죠.
그와 같이 바벨론을 조롱하는 시로서 사람들이 풍자하지 않겠느냐?
뭐라고 풍자하느냐?
.. 곧 이르기를 화 있을진저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 언제까지 이르겠느냐 볼모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 자여
7 너를 물 자들이 홀연히 일어나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어느 날 홀연히 망하는 거예요. 갑자기..
제법 잘되어 가는 것 같고 승승장구 하는 것 같고 하다가 갑자기 어느 날 망하는 거예요.
갑자기..
피하지도 못해요. 회개할 틈도 없고 갑자기 망하는 거예요. 악한 나라가 망할 때는..
..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 언제까지 이르겠느냐 볼모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 자여
7 너를 물 자들이 홀연히 일어나지 않겠느냐 너를 괴롭게 할 자들이 깨지 않겠느냐 네가 그들에게 노략을 당하지 않겠느냐
8 네가 여러 나라를 노략하였으므로 그 모든 민족의 남은 자가 너를 노략하리니 이는 네가 사람의 피를 흘렸음이요 또 땅에, 성읍에, 그 안의 모든 거민에게 강포를 행하였음이니라 하리라
그러니까 강포를 행하고 악을 행하고 약탈하고 겁탈하고 강탈하고 수탈하고 떨어먹고 자기것 아닌 것을 무겁게 짐지고 모든 민족에게 악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 그게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
결국은 바벨론도 망한다 그 말이죠.
지금 하박국은 자기 나라에 의로운 사람이 있는 줄 알고 바벨론 악한 사람들이 의로운 사람을 잡아삼킨다 하는 것도 염려가 되지만, 그보다 더 못봐주는게 악한 나라가 이기는 것을 못봐주겠다는 거죠.
바벨론 같은 나라가 잘 되면 어떡하냐 그렇게 하는데, 하나님이 볼 때는, 네가 볼 때 잘되어가는 것 같지, 내가 볼 때는 하나님이 볼 때는 바벨론이 자기가 형벌 꺼리는 자기 머리 위에 쌓아올리는 것 밖에 아무 것도 아니야.
악을 밭갈면 독을 거두는 겁니다. 결국은..
그래서 벌 받을 사람은 벌 받을 짓을 좀 해야 되거든요. 벌 받을 짓을 해놔야 벌이 임할 것 아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볼 때는 하나님의 진노를 저기 머리에 쌓아올리는 것 밖에 아무 것도 아니야.
하박국이 볼 때 그들이 계속 이기는 것처럼 보이니까 성토하는데,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9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불의의 이를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0 네가 여러 민족을 멸한 것이 네 집에 욕을 부르며,
여러분 힘좀 있다고 남의 것을 다 움켜다가 자기 집에 채우는 것은 잘 된게 아니고 욕을 쌓아올리는 거죠. 욕을..
욕을 쌓아올리고 저주를 스스로 자기 위에 갖다 채우는 것 밖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 너로 네 영혼에게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
바벨론이 악한 짓 하고 담에서 돌도 부르짖을 것이고, 들보가 응답 할 것이다.
12 ○피로 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3 민족들이 불 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열국이 헛된 일로 곤비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음이 아니냐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심판하실려고 죄 짓는 것을 가만히 놔주는 거야.
여러분 심판하실 뜻이 없으면 죄를 지을 때마다 꼭 책망을 하고 교정하고 때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조금만 잘못해도 때리고 망할 백성은 여간 잘못해도 때리지 않고 가만 놔둬요.
자기들 머리에 스스로 저주할 심판을 그 머리에 충분히 쌓일 때까지 가만 놔두는 거야.
그러나 사랑하는 자는 그렇지 않은 거죠.
사랑하는 자는 시시때때로 견책하고 책망하는 거죠.
그래서 성경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한다는 거예요.
바울 사도는 이런 말을 하죠.
우리가 주께 징계를 받게 되는 것은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가만 놔둬서 한꺼번에 다 모아서 심판받게 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잘못하면 시시때때로 책망하고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할려고 우리가 징계를 받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믿는 사람들은 뭘 잘못했으면 그 징계와 책망과 권징을 땅에서 다 받아야 돼요.
땅에서 다 받아야 그 다음 마지막 최후 심판때 미리 다 받았고 우리 원죄를 예수님이 짊어지고 갔으니까 정죄할게 없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이 만약에 아무리 죄를 짓고 계속 죄를 짓고, 고의적이고 의도적이고 계획적이고 반복적이고 지속적이고 그렇게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가만히 놔둔다.
그러면 버린 자식인지 모른다는 거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아들들마다 견실히 채찍질한다는 거예요.
자기 백성일 때는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할려고 잘못할 때 책망도 하고 견책을 하죠.
여러분 우리 교회는 지금 현재 견책을 하지 않는데, 원래 제일 가벼운 권징이 견책입니다.
말로 당회장이 혹은 당회에서 불러서 그렇게 안되는 것 아닌가 하고 견책을 합니다.
그 때 돌이켜야 돼요. 견책을 해가지고 만약에 안 들으면 교회에서 어떤 직분에 대해서 자격정지를 한다든지 아니면 직위 해임을 한다든지 더 나아가서 수찬정지 성찬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든지 그러면 큰 벌입니다.
세상에서는 그것 뭐 성찬식 먹으나 안 먹으나 그리할 수 있으나, 여러분 교회에서 성찬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벌을 굉장히 무거운 벌입니다.
최종적인 벌을 출교죠. 출교.
옛날에 초대교회 출교는 그냥 출교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재판을 해가지고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너를 사탄에게 내어주노라’ 하고 교회에서 내 쫓아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쫓겨나면 대개 교회에서 쫓겨난지 얼마 안되어서 세상 떠났습니다. 죽습니다. 죽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계속해서 습관적으로 지속적으로 범죄하는 육체를 멸하고, 영이 사실상 범죄하지 못하게 해서 그 영혼이라도 구원하게 할려고 그렇게 했다 바울이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믿는 사람들이 뭘 잘못할 때 교회가 예수님 이름으로 견책할 때 그것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견책 앞에는 권면입니다. 권면.
권면해서 안 되면 견책하고, 견책해서 안 되면 자격정지나 그런 것을 하고, 직위해임 하고, 더 나아가면 수찬정지하고, 수찬정지 그 다음에 더 안되면 출교합니다. 출교..
그런데 문제는 우리 교회가 우리 교회 출교시키면 딴 교회에서 환영식을 해 버립니다.
그게 문제죠.
12절,
12 피로 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3 민족들이 불 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열국이 헛된 일로 곤비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음이 아니냐
14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이 지금 까불고 제멋대로이고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무겁게 약탈해 가져가고 승리하고 복받은 줄 알고 있는 이 바벨론이 무너지는 날, 그 때는 그야말로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되리라.
이것은 언제 이루어졌느냐 하면 BC539년에 바벨론 성이 무너지는 거야.
그래서 여러분 성경에 보면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그런 말이 BC539년에 있었는데, 그 메아리가 요한계시록까지 들려요.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인류역사상 바벨탑이 무너진 사건과 바벨론 성이 무너진 사건이 큰 뉴스중에 뉴스였어요.
그 때 과연 하박국의 하나님,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의 말씀이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져서 정말 그 때는 세계 최강국이 당시 바벨론 인데, 바벨론에 고레스에게 무너지면서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게 된 겁니다. 이미..
지금 만약에 우리가 우리 청년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박종호씨가 부른 노래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 이후에 물이 바다 덮음같이 온 세상에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가득하게 된다. 그런 것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림반푼어치도 없어..
거꾸로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지 않고 훼방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그 노래 다시 못 부르겠죠. 저는 그 노래 진작에 못 부르게 합니다.
그 외에도 부를 수 없는 노래가 많아요. 말도 안 되는 노래가 많은 거야.
성경을 전혀 모르고 우리에게 한 말인지 누구보고 한 말인지 모르고..
그냥 가사만 좋으니까 신나게 불러대는 거야.
그래서 제발 좀 찬송가 위원회에서 검증한 곡, 지금 우리 찬송가죠. 그것을 잘 불러보자..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 찬송가에도 틀린 가사가 더러 있어요.
예수님을 갖다가 ‘육신을 입어’라고 작사가 되었는데, 잘못된 것이예요.
‘육신을 입어’ 하면 바로 영지주의 색깔이 나오는 거예요.
‘육신이 되어’ 거든요. ‘육신을 입어’가 아니고.. 그런 것이라든지..
‘값비싼 향유를 주께 바친 막달라 마리아’ 라든지 잘못된 것이예요.
막달라 마리아가 아니고 ‘베다니 마리아가’ 바친 거예요.
또 ‘의심 많은 도마에게..’ 의심 많은게 아니거든요. 도마 의심 한번 했어요.
그냥 의심 많은 도마라고 덤태기를 씌워가지고..
도마가 하늘에서 입장이 곤란한 거야. 맨날 의심 많은 도마가 되어가지고..
우리나라 사람만 그래요. 우리나라 사람만..
그 외에도 ‘주 예수보다 귀가 것은 없네’ 라고 비교할 때, 인격은 인격과 비교해야 되고, 물격은 물격과 비교해야 되는데, 인격과 물격을 비교하면 비교 자체가 잘못된 거야.
만약에 할려면 ‘주 예수님 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 하면 되는데, ‘귀한 것은 없네’ 하면 곤란해요.
그런 가사는 사실은 좀 손을 봐야 되는 부분인데, 그 외에도 가사가 문법적으로 안 맞는 것도 있고, 신앙적으로 안 맞는 것도 더러 있습니다. 그런게..
그래도 우리가 검증된게 찬송가인데, 여기도 이런 것도 있어요.
각 교단별로 자기 교단 출신들이 작사한 것을 밀어 넣을려고 어거지로..
이것을 안배한게 있어요. 이런 것도 참..
그런 것은 곡도 별로 안 좋은데 아무도 안 불러요. 지금도..
세월이 아무리 가도 아무도 안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문학실력도 있고 음악실력도 있고 하니까 최소한 60% 내지 70%는 우리나라 사람이 작곡작사를 해야 돼요.
좀 속히..
우리 민족이 맨날 외국 것 가져와서 그리 할 게 아니라, 좋은 것은 가져와야죠. 좋은 것은 가져와야 되는데, 우리 민족이 만든 노래가 너무 작다는 거야.
우리 민족은 그렇게 노래할게 없어가지고 세상 노래..
여러분 제가 대중가요 이렇게 벅스뮤직에 가서 보니까 무진장으로 노래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 민족이 하나님께 바친 노래는 너무너무 작은 거야.
우리 샤론교회 성도님들 중에서 찬송가 좋은 가사를 쓸 수 있는 분들은 기도하면서 좀 가사를 써봐요.
하박국도 사실 성가대 지휘자였던 것 같은데, 노래를 부르는 청년들 우리 노래를 지도하는 성가대 혹은 성가대 지휘자 이런 분들이 마음을 써서 아름다운 곡을 우리 찬송가 안에 정말 화음을 잘 맞추면 굉장히 아름다운 곡이 많습니다.
그것을 조금 곡의 템포를 약간 조정을 하거나 강약을 잘 조정하거나 화음이 잘 조정되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어요.
맨날 멜로디만 부르니까 곡이 단조롭게 보이지 화음을 잘 맞추면..
그래서 여러분 집에서도 찬송가를 부를 때 맨날 멜로디 하나만 하지 말고, 자기는 어느 파트를 할 수 있겠다 싶으면 연습을 해봐요.
저 같은 음치도 그래도 따라 하지 않습니까? 화음을 맞춰 보기도 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15절,
15 ○이웃에게 술을 마시우되 자기의 분노를 더하여 그로 취케 하고,
폭탄주를 마시게 하는 자는 화 있을찐저.. 이런 것도 하면 안 돼죠.
술을 거나하게 취하게 만들어가지고,
.. 그 하체를 드러내려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아주 못된 놈들이죠.
16 네게 영광이 아니요 수치가 가득한즉 너도 마시고 너의 할례 아니한 것을 드러내라 여호와의 오른손의 잔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라 더러운 욕이 네 영광을 가리우리라
17 대저 네가 레바논에 강포를 행한 것과 짐승을 두렵게 하여 잔해한 것 곧 사람의 피를 흘리며 땅과 성읍과 그 모든 거민에게 강포를 행한 것이 네게로 돌아오리라
여러분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되면 자기 행한 것이 전부 자기 머리로 다 돌아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끝장나는 거죠.
그래서 나중에 이런 풍자가 있습니다.
에스겔서라든지 예레미야서에 풍자를 보면, 바벨론이 까불면서 온 나라를 다 쳤어요.
그러니까 바벨론의 칼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갔을 것 아닙니까?
지옥에 갔는데, 맨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 바벨론을 갖다가, 바벨론이라는 칼을 들어서 악한 나라를 다 친 다음에 그 친 칼, 하나님께서 그 악한 나라 목을 쳐버린 칼이 심지어 예루살렘 목을 쳐버렸던 칼이 하나님 손에 들려있으니까 그 칼이 바벨론인데, 그 칼에 하나님의 첫 사랑 예루살렘의 피가 묻어있지 않습니까?
그 칼을 갖다가 확 분질러서 바벨론도 박살을 내어가지고 한 구덩이에 쓸어 넣었더니, 그 아래 음부가 소동하면서 이르기를, 바벨론 칼에 다 죽은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너도 우리같이 미약하게 되었냐?’
‘너도 우리같이 미약하게 되었냐’ 하고 조롱한다는 거야.
왜냐하면 바벨론 칼에 죽은 사람이 고참이거든요. 먼저 갔으니까..
그래가지고 바벨론 왕을 보고 ‘이리와 열중쉬엇! 차렷! 신고해봐!’ 하고 조롱한다는 거예요.
너로 인해서 음부가 시끄러울 것이다.
여러분 이 땅에서 남을 괴롭힌 사람은, 괴롭힌 누구를 죽여놓으면 그 사람이 지옥가서 고참이 되어 있다니까..
18절,
18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19 나무더러 깨라 하며 말하지 못하는 돌더러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것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보라 이는 금과 은으로 입힌 것인즉 그 속에는 생기가 도무지 없느니라
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박국 너도 잠잠하고.. 온 천하는 잠잠하라는 거야.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나면 잠잠해지는 거야.
유명한 디엘 무디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잠잠하라! 그리하면 듣게 될 것이요, 들으라! 그리하면 잠잠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정말 우리 입이 닫히고 잠잠해야 내가 할 말이 없어져야 하나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나면 우리 입이 닫혀 잠잠해지는 거야.
그래서 잘 무르익은 포도주는 조용합니다.
덜 익은게 부글부글 괴고 그렇죠. 거품을 내 뿜고 게거품을 물고 떠들고 하지..
잘 익은 포도주는 조용해지는 거야.
그래서 들으면 정말 온 천하는 하나님 앞에 잠잠해야 돼요.
제가 참 영적으로 깊이 이렇게 거룩해진 사람을 보니까 그 삶이 잠잠한 거예요.
설교도 물론 잠잠하고 삶이 그냥 고요하고 잠잠한거야.
대개 덜 익은 교회가 시끄럽고 떠들고, 진리가 아니고 소리가 판을 치고..
그래서 온 천하는 하나님 앞에 정말 잠잠해야 됩니다.
3장에, 하나님 말씀을 다 듣고 나니까, 이제는 하박국이 자기가 생각이 너무 짧았다는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 말씀을 들어보고는 이제는 정말 기도와 찬양으로 자기 신앙을 추스리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하박국 3장]
1 시기오놋에 맞춘 바,
‘시기오놋’은 음악용어인데, 시편 제 7편도 같은 곡조인데, 곡조 이름입니다.
변화가 있는 리듬을 아주 감동적인 가락으로 연주한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하박국은 성격상 좀 다혈질 같죠?
노래도 조용하고 아주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변화가 있는 그런 음조를 가진 곡을 시기오놋이라고 하는데,
..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기도인데, 기도를 그냥 기도가 아니고, 가사도 쓰고 곡도 쓰고, 그래서 노래속에 담아서 보내는 기도. 기도시죠. ‘테필라’라고 하는 기도시인데,
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소문이라기 보다도, 주의 말씀을) 듣고 놀랐나이다,
놀랐으면 기도하라라는 거예요.
..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것을 가지고 부흥강사들이 맨날 써 먹는데 ‘부흥’이라기보다도, ‘소생케’.
히브리어로 하면 ‘하이야동사’에서 나온건데, ‘다시 일어나게’ ‘다시 그 말씀이 속히 일어지게..’
그러니까 제발 그 바벨론이 빨리 좀 망하게, 그래서 우리나라가 다시 회복되게, 이런 뜻입니다.
.. 이 수년 내에,
말은 그렇지만 수년이 아니고 70년 걸립니다. 이것은 그저 하박국의 단순한 소원일뿐이지 수년 내에 되었으면 좋겠죠.
그런데 피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피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고 바벨론이 오기는 오는데, 다만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벨론에 짓밟히는 기간이 너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하박국의 소원이죠.
..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나님의 진노는 므낫세가 행한 것 때문에 돌이킬 수 없고 피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고 진노를 당하기는 당하는데, 진노중에도 긍휼을 잊지 마시기를 기도하고 그리고 너무 오래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데, 오래 걸려요.
하박국은 그 영화를 보지 못하겠죠.
3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도다(셀라)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여기 보면 괄호안에 (셀라)하는 말이 있죠?
‘셀라’하는 말은 정확하지 않은데, 쉼표 ‘휴지부’가 아니냐? 음악을 하다가 4분쉼표 8분쉼표가 있죠?
쉬어줘야 다음에 힘이 더 들어가는 것처럼..
4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
5 온역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 발 밑에서 나오도다
6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열국이 전률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하나님의 영광의 능력이 나타날 때 그렇다는 말이죠.
7 내가 본즉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리도다
8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이것은 하나님을 사람처럼 의인화해서 표현한 겁니다.
.. 하수를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대하여 성내심이니이까
9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살을 바로 발하셨나이다(셀라) 주께서 하수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10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
11 주의 날으는 살의 빛과 주의 번쩍이는 창의 광채로 인하여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베풀었던 큰 이적들을 다시 되새겨 보는 거죠.
11 주의 날으는 살의 빛과 주의 번쩍이는 창의 광채로 인하여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12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에 둘리셨으며 분을 내사 열국을 밟으셨나이다
13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셨나이다(셀라)
14 그들이 회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15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이렇게 노래하고 그 노래 마지막 부분에 가서 16절입니다.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나니까, 굉장히 두려운 거죠.
왜냐하면 하박국은 자기가 하나님께 일러바치면 ‘음? 무슨 소리야, 그런 못된 놈이 있나?’ 하면서 하나님께서 일어나서 바벨론을 ‘네 이놈!’ 하고 쫓아줄 것으로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그 바벨론은 내가 보냈다고 나오니까 얼마나 놀랬겠어?
막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이 속절없이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당하기만 해야 된다는 건데, 보니까..
그러니까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떨리겠어요?
그리고 사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데, 자기가 의인인지 아닌지..
그래서 괜히 자기도 투덜거리고 불평하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으면 어떻게 하느냐 말이야.
그래서 여기서도 자기 마음을 가다듬어 추스려가지고 자기 신앙을 챙기면서 내가 노래하고 감사하고 해야지 툴툴거리다가는 나까지 버림받겠다 그런 경건한 생각이 든거죠.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결국은 바벨론이 올라오는 날에는 가만히 손꼽아 기다리면서 앉아서 당해야 될 판이니까 떨립니다. 떨려..
그래서 그 뒤에 이른바,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이 노래 신나게 많이 불렀죠?
지금 하박국은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우리는 신바람 나게 청바지에다가 통기타에 춤추면서 불렀어요.
청년들에게 이보시오. 청년 그게 무슨 노래인지 알기나 알고 불러요?
몰라요. 목소님 우리는 가사가 좋아요. 그냥..
지금 이것은 하박국이 바들바들 떨면서 부르는 노래라니까..
뼈가 썩어들어가는 것 같아.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 밖에 없는..
피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기가막힌 상황에 처한 거예요.
그래서 자기마저 자기 몇 사람 그 때 의인이 있습니까?
하박국 스바냐 예레미야 그 정도밖에 있는 거예요. 사실은..
그리고 어린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포로잡혀간 몇 사람..
그야말로 전 유대 전체가 다 칼과 기근과 염병에 다 죽고 불과 4600명이 바벨론이 포로잡혀가요.
그게 비교적 괜찮은 사람들이 그 정도예요.
그래서 이 하박국의 영장으로 맞춘 이 시기오놋에 맞춘 노래가 굉장히 두렵고 떨림으로 부른 노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8절,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해야 되겠다 그 말이죠?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영장’은 성가대 지휘자죠.
성가대 지휘자를 위하여 작곡 작사 했고 내 수금 맞춰서 노래했던 기도라 그런 얘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런 노래를 성경 구절을 인용할 때라든지 노래할 때도 설교할 때도 그 실제 분위기를 완전히 알고 제대로 파악하고 설교를 하고 노래를 하고 해야지,
앞에도 모르고 뒤에도 모르고 분위기도 모르고 배경도 모르고 그냥 좋은 구절 있으면 앞뒤 다 짤라버리고 곡을 붙여서 노래하는 것은, 참 모를 때는 괜찮은데, 알고 보면 참 어이가 없는 거죠.
그런 노래가 너무 많다는 거예요.
그런 복음성가중에 그런 노래가 너무 많아요. 십자가도 없고 어떻든 즐기자는 거예요. 즐겨..
그 곡이라든지 리듬의 비트가 대개 뉴에이지 음악의 요소들이 너무 많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지극히 삼가하고 조심해야 돼요.
오늘 저녁에는 하박국서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압축해서 줄이면, 지난번에 우리가 요나서를 볼 때 요나서는 자기 자화성이 그려져 있죠?
하나님의 뜻은 이방인도 육축도 아끼시는 분이신데, 자기는 그저 니느웨를 망하기만 바라고 있는 아주 못된 배타주의적 국수주의, 민족주의, 이기주의적인 민족주의자로서 그렇게 망하기만 바라고 있는 그런 모습을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넓은 마음에 비해서 얼마나 옹졸한 꽁생원같은 못된 놈이었나 하고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데,
하박국도 그렇죠?
이 속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있고 자화상이 나오죠?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예루살렘은 의롭고 바벨론은 악한걸로 그렇게 생각해가지고, 하나님앞에 그저 원망이나 하고 항의하고 틸틸거리고 따지고 그런 아주 되먹지 않은 그런 자기 모습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거예요. 자기 모습을..
자기 모습을 미화한게 아니고 자기의 이런 아주 안목이 좁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께 덤볐던 그런 부끄러운 자화상을 그대로 그리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앞으로 유럽에 가서 여행을 하다가 바티칸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이나 르우불박물관이나 세계 굴지의 박물관에 가면 명화, 이른바 세계적 명화가 있습니다.
그 명화를 보면 그 그림 그린 작가가 자기 자화상을 한쪽 구석에다가 그려놨어요.
미술 해설자들은 이 그림에서 화가가 어디에 있는 것 같냐고 물어보기도 해요.
우리는 잘 모르죠. 여기 있는 사람이 자기라는 거예요. 자기를 거기 그려넣는 수가 있어요.
요나서나 하박국서는 현실, 자기앞에 펼져진 현실을 볼 때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들었을 때는 자기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항의하다가 불평하다가 오히려 나중에는 자기 신앙을 추스려서 찬양으로 자기 믿음을 유지할려고 노력하는 그런 모습으로 그려놓은 것입니다.
비교적 솔직한 사람이죠. 참 이스라엘 사람이예요.
마음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그런 사람이죠. 솔직하게 하나님께 물어봤는데, 질문하는 수준은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성실히 대답하셨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풀어 나가는 거죠.
저와 여러분도 인생을 살아가다가 납득할 수 없는 일을 안 당하면 참 좋겠는데, 일생에 몇번 씩은 당합니다.
당할 때 한가지 잊지 말아야 돼요.
‘하나님 하시는 일 중에 옳지 않은 것이 없다’는 거예요.
마리아의 신앙고백이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가 무슨 말씀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이렇게 한 것이고,
또 한편 강도가 그랬죠? ‘이 분이 하신 것 중에 옳지 않은 것이 없었다.’
우리는 적어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죽이면, 죽이는 것도 선이야.
하나님은 선 아닌 것은 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은 절대 선하신 분이다 하는 믿음이 있어야 돼요.
잘못된 것은 항상 사람이지 하나님 편에서 잘못이 있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은 내가 헤아리기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중에는 선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님은 선하시니까..
그런 믿음이 있어야만 우리가 어려움 당할 때 흔들리지 않게 되고, 한참 후에 그 때 그 일도 하나님의 선하게 하셨다 하는 고백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하박국 선지자의 씨름을 잠깐 엿보았습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은 정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어서 하나님께 항의하듯이 질문하고 질문하면서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응답을 들은 후에 하박국은 자기 생각이 짧았고 잘못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도 일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앞에 전개되는 일들을 다 헤아리기 어렵지만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을 믿습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 지금도 어려움 당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이길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