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낼 수 있는 용기, 상처와 헤어지기 위한 첫걸음>
출처 : 빛과 소금 / 두란노 2023년 11월호
박요한 / 프렌즈교회 담임목사이자 CCM 가수다. CBS <새롭게 하소서> 진행을 맡고 있다. 대표곡으로 <기대>, <주가 보여준 생명의 길>, <축복의 사람> 등이 있다.
'은둔형 외톨이'라는 표현을 들어 보셨나요? 우리 사회 보이지 않는 곳곳에 고립되어 위기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의 통계가 수십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사회적 교류를 거부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여러 문제와 상황이 있겠지만, 결국 사람과 환경을 두려워하고 스스로 격리를 선택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대부분 대인기피증이라는 아픔이 자리해 있습니다. 이 증상은 해결되지 않는 극심한 트라우마로 인해 생겨난 자기 방어기제입니다.
저 역시 이 증상을 깊이 경험한 시절이 있습니다. 중학생 때 입양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버려진 존재라는 사실로 인해 인생의 가장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졌던 그때, 나에게 벌어진 이 상황에 대해 어디서도 해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고통의 시간들이 이어졌지요. 당시에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내 주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내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또 누가 있을까?' 가까운 친척들, 교회 사람들, 학교 친구들 등등, 내 입양 사실을 다 알고 있을 것만 같아서 두려웠습니다. 또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하고 나를 대했을 것만 같아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수치심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나를 향한 그들의 진심이 마치 내가 불쌍한 고아라서, 입양아라서 동정심을 베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내 마음은 모가 나고 삐뚤어졌습니다.
이렇게 변해가는 저 자신으로 인해 더욱 괴로웠습니다. 전혀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마치 소설을 써 내려가듯 하며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단정 지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웠습니다. 더 이상 이전의 '박요한'으로 사람들을 만날 자신이 없었습니다.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모든 관계와 만남을 차단했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학교생활에도 소홀했습니다.
저는 스스로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것을 택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나만의 깊은 동굴 속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이 마음의 병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 고통스럽고, 더 외로웠습니다. 아픈 나날들이 저를 죽음과 절망으로 치닫게 했습니다. 부모님은 그 처절한 아픔의 시간을 저와 함께 보내 주셨습니다. 그 고통의 긴 터널을 함께 지나가 주셨습니다. 두 분의 마음은 얼마나 더 아프고 고통스러우셨을까요?
이제 저도 세 아이의 부모가 되어 보니, 저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었는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포기하지 않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결국 그 영혼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위대함이고 능력인 것을 저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개월의 고립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삶의 현장으로 복귀할 때부터 저에게 이상한 증상이 생겼습니다. 일종의 '웃음강박'이었는데, 제 마음속 아픔과 눈물을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나온 증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고 너무 건강하게 회복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더욱 밝은 웃음과 높은 텐션을 유지했습니다. 그렇게 내 마음을 감추고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몸도 마음도 영혼도 지쳤습니다. 그렇게 억지로 나자신을 포장하며 살았던 하루의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면, 또 다른 자괴감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 무렵 모 교회에 처음 다닐 때부터 저를 참 많이 챙겨 주시던 선생님과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그간의 많은 일을 나누던 중에 선생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제 인생에 너무나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요한아!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 아프면 아프다고, 지치면 지친다고 다 표현해도 돼. 억지로 괜찮은 척, 안 아픈 척, 건강한 척하다 보면 마음의 병은 절대로 낫지 않아. 알았지? 선생님 앞에서 만큼은 있는 그대로 솔직한 네 모습을 보여 줘도 돼.“
대인 기피증, 웃음강박증을 가지고 있었던 한 청소년이 자라서 찬양을 부르는 사람이 되었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제 마음속에 있는 것을 감추고 누르려 하지 않습니다. 다 나누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목사로 살아가는 특수성으로 인해 더욱 나를 엄격한 기준으로 가둘 수 있음에도, 제 연약함과 부족함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드러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픈 상처를 누르고 묻어 두면 계속 곪아 가지만, 밖으로 드러내서 이야기하면 치료가 시작되는 것처럼, 이제 제 삶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과 이어지는 접점이 되었습니다. 함께 나누고 함께 해결해 나가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먼저 나누고 고백하니 성도들도 마음을 열어 주더군요. 목사도 아픈 사람이고 어려움이 있는 사람임을 고백하니, 우리가 지닌 아픔의 무게들을 더 친밀하게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황과 환경은 다르지만 저마다 삶 속에서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떨쳐내고 살기 원하는 간절함이 있을 겁니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용기' 입니다. 내 문제와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용기 말이지요. 저에게도 그 용기의 시작은 한 선생님의 귀한 마음이었듯이, 여러분을 응원하고 포기하지 않는 그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굳게 닫아 두었던 마음의 문을 열어 보시기 바랍니다.
오랫동안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트라우마와 헤어질 결심을 하는 순간, 이미 평안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헤어짐과 이별에 꼭 아픔만이 있는 건 아닙니다. 내 인생에 꼭 필요한 헤어짐을 통해 우리는 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