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상촌에 처음 왔을 때가 기억이 나네요.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한 가득 품고 도착했던 상촌은, 정말 따뜻했던 걸로 기억해요. 다 처음 보는 친구들과 언니 오빠들이었는데 다들 먼저 말도 걸어주고 여러모로 챙겨줘서 금방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첫 수업의 신세계를 경험하고, 버스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가던 그 길이 얼마나 설렜던지. 기숙사 친구들에게 통달 쌤 수업 자랑, 친절한 언니 오빠들 자랑, 한 시간동안 떠들었던 기억이 나요. 내년 이 맘 때쯤엔 나도 이 게시판에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정말로 이루어질 줄이야. 영광이고 정말 좋기도 하지만, 과연 제가 이 글을 써도 되는지 아직도 의문입니다. 딱 하나 분명한 건 이런 좋은 결과가 저 혼자서 얻은 건 아니라는 것 같아요. 저보다도 더 열심히 노력하시며 부족한 글 많이 가르쳐주신 통달 쌤, 묵묵히 그 뒤를 받쳐주시던 폴 아저씨, 같이 지금까지 서로 의지하며 파이팅한 친구들.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감사해요. (ㅜ_ㅜ)
1. 단국대 실기
단국대는 시제가 '우체통'이 나왔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저렇게 달랑 하나 주어지는 단어를 보고 잠시 멍 때렸던 기억이 나네요ㅋㅋ 게다가 2700자라니. 분량도 길었습니다. 또 하나의 청천벽력 같은 소리는 화이트 사용 금지! 깜박하고 그 전날 원고지 교정부호를 외우고 가질 않아서 순간 멘붕이 왔습니다. 그리곤 절대 틀리지 않으리라 다짐했죠. 원고지 뒷면에 발상부터 시작했습니다.
우체통이 시제로 나왔을 때, 가장 뻔한 장면은 우체통에 편지를 써서 넣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장면만은 절대로 피하자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은 진짜 우체통이 아닌 다른 우체통을 찾고 싶었지만, 제 부족한 머리는 그런 게 뭐가 있을지 떠올리질 못해서 그냥 정석대로 진짜 우체통을 등장시켰습니다. 막막한 마음에 초고보단 예전에 써놨던 습작을 생각했습니다. 통달 쌤께서도 이 부분은 꽤 괜찮다고 짚어주셨던 부분이었고, 그 후에 저 혼자 고쳐서 몇 번 써봤던 작품이어서 그걸 쓰기로 했죠. 노인이 도서관에서 사람들의 손을 타지 못하고 먼지 쌓인 책들을 보며, 그 책들이 꼭 읽히지 못한 자신의 마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장면 쯤에 우체통을 관객 삼아 연기를 하기도 합니다. 우체통은 솔직히 끼워맞춘 티가 좀 나서... 단국대는 정말 기대도 안 했었습니다. 대신에 허술한 글을 감추기 위해서 묘사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좀 내용이 부실해도 묘사를 공들여서 해놓으면 왠지 있어 보이고 그렇잖아요. 노인의 심리에 맞추어 배경 묘사 하는 것에 중점을 많이 뒀던 것 같아요. 아, 그런데 결정적으로 제가 막판에 원고지 사용법도 헷갈렸습니다. 대화를 사용할 때, 다음 줄로 넘어가면 한 칸을 비우고 써야한다는 게 헷갈렸습니다. 비워야 하는 건지, 안 비워도 되는지. 그래서 대화가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비우고 한 번은 안 비우고 썼습니다. 둘 중 하나는 맞겠지. 그러니까 진짜 모르는 게 아니라 제가 급해서 실수한 것처럼 봐주겠지, 하는 얕은 꼼수...ㅋㅋㅋ 근데 이거 그렇게 큰 감점 사유는 아니었나 봅니다. 다행이죠 휴... 뭐 그렇게 2500자 정도 채우고 거기 앉아 있는 게 지긋지긋해서 뒤돌아보지 않고 30분 정도 남았을 때 고사장을 나왔습니다. 잘 쓴 건지 못 쓴 건지 가늠이 되질 않았어요. 그저 단국대 끝나고 엄마랑 같이 간 칼국수 집의 해물파전이 정말 맛있었다는 것만 기억날 뿐...ㅎㅎ
2. 동국대 실기
실기를 보기 전날, 근처 찜질방에서 잤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동국대 입구역 지하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고... 근데 그 벤치에 앉아서 빵을 뜯어 먹으니까 되게 노숙자라도 된 기분이었습니다ㅋㅋ 동국대 무용과랑 연기과랑 등등 실기 날짜가 겹쳐서 지하철이 도착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제 앞을 지나치며 절 흘긋거리고 보면서 지나갔거든요. 좀 민망했지만 아침은 먹어야 했기에 열심히 배를 채웠습니다. 그리고나서 동국대 그 언덕을 오르는데 이상하게 떨리더라고요.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더ㄹ덜... 고사장 건물을 찾아서 계단을 오르는데 중간에서 울 탄만두랑 ㅈㅎ랑 ㄱㅁ이도 봤었나? 여튼 친구들을 만났습니다ㅋㅋㅋ 아주 좋았어요. 만두가 보고 싶었다고 꽉 끌어안고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카라멜 캔디랑 청포도 사탕을 여러 개 손에 쥐어줬는데 실기 보는 내내 하나씩 꺼내서 오물거리며 먹었습니다ㅋㅋㅋ 아주 달달하니 좋더라고요. 잠도 안 오고. 그렇게 친구들의 기를 받고 고사장에 입실. 실기를 본 대학교 중에 동국대 고사장 분위기가 가장 엄숙했습니다. 전 그게 제일 맘에 들더라고요. 단국대 때는 감독관이 되게 부산스럽고 말도 많고, 중간에 애들 화장실도 엄청 들락거리고 그랬는데 동국대는 그런 게 없어서 좋았습니다.
9시가 되고, 동국대 시제 '목도리'가 칠판에 쓰였습니다. 제 실기 역사상 최대 난국이 닥쳤습니다. 아 그 시제를 받는 순간 왜 목도리 도마뱀이 생각이 나는지...ㅠㅠㅠㅠ 정말 미칠 뻔 했습니다. 목도리 도마뱀을 너무 쓰고 싶은 거에요. 가까스로 그 욕구를 누르려고 하는데, 동물의 왕국 오프닝에서 그 웅장한 음악과 함께 목도리 도마뱀이 뒤뚱뒤뚱 파ㅍ박 달려오는 영상도 자꾸 생각나고ㅜㅜ... 약 30분 동안 저를 설득하느라 시간을 보냈습니다. 안돼, 여긴 극작이 아니야... 목도리 도마뱀 쓰면 바로 떨어지는 거야... 그렇게 절 진정시킨 후, 새로 발상을 하는데도 '아 근데 주인공한테 목도리 도마뱀 열쇠고리라도 주면 안 되겠지...?'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 아주 진땀을 뺐습니다.
전 그 자리에서 초고를 썼어요. 남은 2시간 동안 인물 설정부터 모든 걸 짜느라 시간이 아주 빡빡했던 걸로 기억납니다. 목도리를 정말 털로 짠 그런 목도리로 쓰면 식상할 것 같아서, 목도리처럼 생긴 다른 걸 목도리라고 놓고 글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시간만에 후다닥 쓴 거라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서 생략하겠습니다. ^^;; 그 날 바로 뭐 썼나 집 와서 복원 시켜놨어야 하는데 그 다음 날 중대도 보러 가는 바람에 그냥 까먹고 말았어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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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상촌에서의 시간은 정말 유익했던 것 같아요. 단순히 글 뿐만 아니라, 제 가치관이나 생각도 많이 성장시킬 수 있었어요. 영화, 사진, 그림, 음악 등에 대해서도 더 폭넓게 접할 기회도 가져서 좋았습니다. 여러모로 많은 걸 배우게 해준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상촌에 다니고 나서부터는 상촌 시간에 맞춰서 일주일이 흘러갔던 것 같습니다. 화요일은 습작 내고, 목요일까지 책 읽고, 그런 식으로. 상촌 수업이 더 듣고 싶어서 조금만 더 있다 가자 하면서 몇 분 더 있다가 버스를 놓칠 뻔한 적도 있었어요. 허겁지겁 달려가 버스를 타서 가빠진 숨을 고르면서 창문에 기대도 마음만은 뭔가 가득찬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종종 울면서 가는 날도 있었습니다. 슬프고 안 좋은 일이 있어서가 아니었어요.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감춰 왔던 제 어두운 면을 드러내도 변함없이 절 반갑게 맞이해주고 좋아해주는 친구들과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시는 통달 쌤이 정말 너무나도 감사해서, 또 감동스럽고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북받쳤던 것 같아요. 학교나 집이 아닌 상촌에서 제일 이해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편안하고, 든든하고, 따뜻한 세계가 있어서 힘이 많이 됐던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으 그나저나 저보다 더 열심히 하고 글 잘 쓰는 친구들 많은데ㅜㅜ 다들 분명히 그간 한 노력 헛되지 않게 저보다 더 좋은 소식 들릴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제 합격 기운 쪽쪽 다 빨아가세요ㅠㅠ 완전 응원할게요 파이팅!!!!!
첫댓글 정말 축하해요 ^^ 미자반 친구들 열심히
하는 모습 보면서 저렇게 어린 친구들이 진지하게 수업 수업 받고 있구나 하고 자극도 많이 받았더랬습니다 좋은 결과 축하해요 ^^
축하해요~ 두개나 합격하다니 ㅋㅋ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을까 엿보이네요 :) 행복한 대학 생활하시구, 계속 좋은 작품 써나가시길!
어머!!! 이름부르고싶은데 실명금지라!! 나 알지 알거야 몇번 초콜릿도 줬던거같아ㅋㅋㅋㅋ 나도 너 작년 올해 2년봤는데 멀리서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부지런하고 꿋꿋하게 공부하는 것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ㅠㅠ 그리고 결실도 아주 제대로 나왔네 매우매우축하한다!!! 이 못난 언니 모른척하지 말아줘어ㅓ 앞으로도 좋은 일만 있을거야 멋지다!!
후기 읽는 내내 너 목소리가 들렸엌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축하해 달큰쨩 ㅠㅠ이름 부르고 싶다 하지만 참겠음 너 상촌 그만 다닌다했을 때 엄청 충격적이었는데 이렇게 다시 돌아와서 너무 반가웠어ㅠㅠㅠㅠㅠ 진짜 그때... 극작팸 다 떠나가서 엄청 슬펐는데 너 얼굴 보니까 바로 어제 본 것처럼 친근하고 그래서 너무 좋았음ㅠㅠ 멀리서 다니느라 고생 많았을 텐데 이렇게 좋은 결과 낸 거 축하해ㅎㅅㅎ 나도 정시 땐 꼭.....꼭....어딘가의 대학을....씹어발라버리겠음...(다짐) ㅋㅋㅋㅋㅋ나중에 동대 놀러가면 구경 시켜줘 동대 맛집도 알려주시긔ㅎㅅㅎㅋㅋㅋㅋㅋ 나는 내년에 16학번 소개좀.. 나 연하 좋아해...^^겔겔 축하해 달큰쨩!!!
언젠가 니가 쓴 에세이를 고개를 주억 거리며 읽다가, 문득 네가 커가고 있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런던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던 바로 그 에세이 말야. 어린 나이에 하기 힘든 기숙사 생활에
먼 데서 서울까지 수업 들으러 오는 너를 보면 참 신기하고 놀라웠지.
'가만있자... 내가 저 친구 나이때 뭘 했었지...' 생각하면서 새삼 니가 대견했더랬다. ^_^
노력이 깊었으니 좋은 일 두 개가 겹치는 건 전혀 놀라울 일이 아니지.
기숙사에 앉아 있거나, 음악을 들으며 기숙사로 들어가는 길 위에서 했던 많은 생각들이
네 삶을 비옥하게 하였듯 니가 그리는 고통과 헤매임 또한 누군가에겐 위로와 빛이 될 수 있길.
축하해 ^_^
매일 누구보다 일찍와서 책을 읽고 있던 모습이 기억나.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시간마다 아쉬운 마음에 조금만, 조금만 더 를 얼마나 외쳤을지 스쳐지나가는 말과 모습만 봐도 느꼈어. 정말 사랑하는 구나 글, 하고. 타지에 와서 글을 쓰고 사람들과 만날 수록 더 외로워서 글에 파고들곤 하는데 그러다가도 금새 지쳐 난. 그러면서 너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알았어. 참 짧았는데도 기억에 많이 남아. 그 좋아하고 열렬한 마음이 이번만이 아니라 너가 향하는 모든 곳으로 이어질 거라고 믿어. 축하해
차 시간이 끊겨서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강의실을 나갔던 달큰. 문우로써 늘 안타까웠는데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어내다니 역시 사람은 간절하고 절박해야 뭔가를 이뤄낼 수 있는가보다. 정말정말 축하해. 학교에서도 화이팅 하길 바란다. 달큰 화이팅
제 우상입니다. 단국대 동국대라니...실기에대해 더 자세한 정보를 듣고싶은데 ㅠㅠㅠ 연락가능할까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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