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리학의 특징은 고려 말에 수용하여 조선시대에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자리잡았고, 개인의 도덕적 완성과 이상 사회의 실현을 위한 실천적 방안을 제공하였다. 또한 중국 성리학의 심성론과 관련된 탐구를 심화하였다. 그 중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 논쟁은 한국 성리학의 큰 획을 가했다.
사단칠정논쟁은 이황과 기대승 사이의 논쟁이다. 이황의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 칠저은 기가 발한 것’ 이라는 입장을 본 기대승이 ‘사단과 칠정은 모두 정인데 사단은 리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라고 한다면 사단과 칠정이 서로 관련이 없는 별개의 것인 듯 보인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라는 견해를 담은 편지를 이황에게 보냄으로써 시작되었다. 논쟁 과정에서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은 본래 두 가지가 아니며 칠정, 사단이 별개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황은 이와 기가 개념적으로 분명하게 구분된다는 점에 주목하여 사단과 칠정을 두 가지로 구분해 보아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는 도덕적 감정인 사단과 일반적 감정인 칠정을 구분하여 도덕적 기준과 인간의 욕망을 혼돈하는 오류를 방지하고자 하였다. 그는 도덕원리인 리가 발하고 기가 따르는 것을 사단으로 보았고, 기가 발하고 리가 그 위를 올라타는 것이 칠정이라고 말한다. 즉 칠정은 기가 발한 것으로 그 위에 올라 탄 리가 능력을 발휘하는 가에 따라서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시대승은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가 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음은 본래 리와 기가 합해져 있는 것으로 보고, 리와 기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리는 형태의 작용이 없고, 기는 형태의 작용이 있으므로 리는 발하는 근거이고, 기는 발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이황의 주장인 “리와 기는 모두 발할 수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사단칠정을 포함한 모든 현상을 기가 발한 것으로 보았다.
나는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 논변에 대해서 도덕적 감정인 사단과 일반적 감정인 칠정의 연원을 구분하는 이황의 입장을 지지한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기대승은 순선무악한 사단과 가선가악한 칠정의 연원을 동일하다고 보아 도덕적 기준과 인간의 욕망이 혼재될 위험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황은 사단을 이발기수, 칠정을 기발이승으로 구분하여 둘의 연원이 달라, 도덕적 선과 인간의 욕망을 구분하였다. 리는 순선하고 원리적인 개념이고, 기는 선악의 가능성을 지닌 비천한 것이다. 즉, 리는 도덕적 원리로서 선하지만 기는 외부환경과의 사호작용을 통해서 촉발된 것이기 때문에 가선가악하다. 그러나 기대승은 이점을 간과하고 있다. 악으로 흐를 수 잇는 기만이 발할 수 있다고 하여 리의 운동성을 거부한다. 이는 선한 본성은 도덕적 원리인 리에서 근원하고 일반감정은 기에서 근원한다는 점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도덕적 원리인 리의 역할을 발하는 근거로만 축소시켰다. 그러나 이는 감정을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마음이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는 리에서 비롯된 순선한 마음과 일반 감정 중의 선한 마음은 본질에서 동일하지 못함을 간과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사단은 리가 발한 것으로 순선하고, 칠정은 기를 겸하기 때문에 선악이 혼재한다는 이황의 입장을 지지한다.